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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문화·관용 도시 건설 ‘박원순의 몽(夢)’] 그는 떠났어도 ‘사회적경제’ 시정 비전은 유효 

 

스마트시티 구축은 거스를 수 없는 길… 세계적으로 도시 경쟁력 전쟁, 시민행복이 인재·자본 끌어와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당선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내리 3연임에 성공했다.
“사람이 행복한 서울은 시정 좌표가 될 것이며, 시민들 삶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하겠다.”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54.4%의 득표율로 승리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당선소감으로 시민의 행복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밝혔다. 당시 불공정·불합리를 타파하자는 사회 여론은 박 후보를 무난하게 서울시장으로 만들었고, 박 시장도 이에 화답한 것이다. 시민들은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등 시민사회 활동에 일생을 바친 박 시장에게 비정치의 문법을 기대했다. 이에 박 전 시장은 ‘사회적 경제’를 시정 가치로 내세웠다.

박 전 시장은 거침이 없었다. 시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이루겠다며 생활 안전과 복지 정책에 힘을 쏟았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 주력하던 전임 시장들과 달리 반값등록금·무상급식 등 정책을 펼쳤다. 박 전 시장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3180일간 정책 전반의 변화를 주문했고, 서울의 가치를 전반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관성에 젖은 늘공(늘 공무원)들과도 항상 부딪혔다.

그 결과 3연임에 성공하며 역대 최장기 서울시장이 됐다. 유력 대권 후보로도 성장했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9일 돌연 고인이 됐다. 박 전 시장이 추진하던 사업들에 변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떠나도 철학과 가치는 남는다. 이에 박 전 시장이 펼쳤던 사회·경제 정책을 돌이켜보고, 그가 남긴 숙제와 의미를 짚어봤다.

취임 뒤 문화교류·교통접근성 향상 추진


서울은 거대한 도시다. 세계에서 18번째로 많은 1001만명(2020년 기준)이 살고 있다. 82만여개의 기업이 경제활동을 벌이며, 연 422조원의 지역내총생산(GRDP)을 만들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22%에 달한다. 매일 11만6000 배럴의 석유를 쓰고, 2818톤의 쓰레기를 방출하며, 연 28억 명이 지하철로 이동한다.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38명의 억만장자가 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런 거대한 도시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과 인프라가 잘 닦여서다. 국제연합(UN)과 럿거스대학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도시며, IESE비즈니스스쿨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대중교통망을 가진 도시다.

이런 서울에도 개선해야 할 점은 있다. 일본 모리기념재단은 세계 주요 도시들을 대상으로 경제·연구개발(R&D)·문화교류·거주·환경·교통접근성 등 6개 항목을 평가해 종합한 ‘세계 주요 도시의 국제경쟁력평가(GPCI)’를 매년 내놓는다. 서울은 2008년 13위에서 2011년 7위에 오른 뒤 현재까지 꾸준히 6~7위를 지키고 있다.

세부 항목별로는 박 전 시장 취임 전인 2008년에 경제 11위, R&D 4위, 문화교류 19위, 거주 28위, 환경 37위, 교통 접근성 17위 등을 기록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경제 22위, R&D 5위, 문화교류 9위, 거주 34위, 환경 34위, 교통 접근성 11위 등을 나타냈다. 박 전 시장 재임 동안 문화교류와 교통 접근성 순위는 크게 올랐지만, 경제·거주 순위는 하락했다. 이런 항목별 순위 변화는 박 전 시장의 시정 철학과 최근의 도시가치 변화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

박 전 시장의 지난 9년을 돌이켜보면 시민 중심의 시정 활동이라는 뼈대 위에 생활·거주 안정, 협동조합 강화, 녹지·대기 등 환경 개선, 안전한 도시 생활, 창조형 혁신도시 구축, 일자리 확보 등을 실천 전략으로 추진했다. 박 전 시장은 취임과 함께 공동체 중심의 사회적 경제를 서울의 발전 모델로 제시했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11년 외신기자간담회에서 “토건 사업에 투입됐던 재원을 복지·환경·교육 등 삶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하겠다”며 “지출구조 개혁을 위해 추진 중인 모든 사업을 검토해 재정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시정 신뢰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실제 박 전 시장은 서울시의 중앙집권적 시정을 지역공동체 기반으로 옮기고, 토건 사업에 집중된 예산을 시민들이 직접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업에 썼다. 도시재생·마을재생·청년수당·은퇴자 재취업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 사업이다. 박 전 시장은 시민사회 활동을 할 때부터 “다수 공동체의 민의를 모으면 새로운 문화·경제적 가치가 형성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이에 박 전 시장은 재임 시절 사회적 경제 비전을 공유하는 국제엑스포 개최를 추진하는 등 거버넌스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그러면서 재정 지출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예산이나 제도는 한 번 정해지면 줄이거나 없애기 어려운데, 이런 사업들을 전면 조사해 불필요한 사업을 없앤 것이다.

협동조합·대주택 정책 추진은 난항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만든 ‘서울로7017’이다. 박원순 전 시장은 도심지 녹지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박 전 시장이 취임 초기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사업은 협동조합 육성이다. 협동조합이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끼리 구매·생산·판매·소비 등을 협동하는 조직단체다. 육아·친환경 식자재 조달 등 같은 목적을 가진 시민들끼리 여러 니즈를 사기업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정책 당국으로서는 복지 등 행정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시민들은 대기업의 사업 독점과 일방적 서비스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 스페인의 명문 축구단 FC바르셀로나·선키스트·서울우유·농협 등이 국내외 대표적 협동조합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경우 협동조합 400여 개가 활동 중이며, 지역 경제 활동의 45% 이상을 협동조합이 차지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은 2013년 ‘협동조합 활성화 기본계획’을 밝히며 “서울에서만 2022년까지 8000개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속할 수 있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에는 시민들의 주거 안정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협동조합형 임대주택 확대 계획도 내놨다. 땅콩주택·타운하우스 등 아파트에서 벗어난 다양한 방식의 주거 형태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각자 삶에 적합한 맞춤형 주택단지들을 사업 초기부터 입주자들이 만들어가는 주거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주택 경기 침체로 박 전 시장이 내걸었던 8만 가구의 임대주택 공급이 사실상 어려워 이런 계획을 내놓은 측면도 있다. 건설·매입형 임대공급은 택지와 재원 부족으로 사업성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실제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이 뉴타운 등 대규모 주택 사업을 벌인 결과 서울주택도시(SH)공사의 부채비율이 크게 올라 임대주택 사업을 확장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2013년 SH공사의 부채비율은 311%에 달했다. 이에 박 전 시장 취임 후 택지 매각과 장기전세 주택리츠 전환 등을 통해 부채 비율을 2016년 226%, 2019년 191%로 크게 떨어트렸다.

그러나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은 조합원들 간에 이견 조율이 어려웠고, 시민들은 재개발·재건축에 익숙한 영향으로 넓게 확산하지 못했다. 부엌, 식당, 세탁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점도 시민들의 참여를 가로막았다. 나중에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위해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크게 낮춘 서울리츠 행복주택이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 시내 시민들의 쉼터 마련도 박 전 시장은 주요 정책 중 하나다.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를 미국의 뉴욕 하이라인파크에 견줄 수 있는 도심 고가 녹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고 2017년 5월 ‘서울로7017’을 열었다. 또 미군 용산공원 부지 243만㎡를 공원으로 만드는 사업에도 관여했다. 2018년에는 광화문광장을 지금보다 4배가량 키운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회 기반 강화 정책은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책 효과를 입증하기도 어렵다. 또 도시의 이미지와 정책 평가는 국내외 전문가가 인정하고 대중적 인식이 쌓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임기가 4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체적 성과가 나오는 토건 사업 등에 정책과 예산을 집중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대선을 바라보며 마음 급한 박 전 시장도 임기 중반 이후부터는 가시성 높은 정책을 늘리기도 했다.

도시 재생·개발 ‘전시성 정책’ 비판도


서울의 스마트시티 전략이 대표적이다. 1조4000억원을 들여 서울 전역에 5만 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 시민 행동과 관련한 빅데이터를 수집해 2022년까지 스마트시티 서울을 만드는 방안을 내놨다. 2022년까지 1조7000억원을 투입해 태양광 발전용량을 8배 가량 늘리는 ‘태양의 도시 서울’ 종합계획도 발표했다.

2018년에는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무리한 뒤 강북 발전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민자사업으로 추진했던 비강남권 4개 철도노선 사업 추진과 청년임대주택 확대, 구립도서관 확충, 서울시 산하기관 강북 이전 등을 추진했다. 강남에서는 코엑스부터 GBC, 잠실을 잇는 초대형 마이스밸리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용산·여의도 개발에 불을 지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여의도를 신도시급으로 개발하고 서울역∼용산역 철로를 지하화하는 한편, 그 위에 마이스 단지·쇼핑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이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유관부처와 여당 지지층의 반발에 부딪혀 개발계획 발표 및 추진을 전면 보류했다.

박 전 시장의 정책은 여러 논쟁을 낳았지만, 국제적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네옴시티처럼 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시티 개발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서다. 미국 시카고와 같은 문화 도시들은 저이용 공공건물을 활용해 주민들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 재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 오사카는 대기업-중소·벤처기업 간 이노베이션 인재 육성 도시로 전환을 꿈꾸고 있고, 교토는 지속가능한 관광 도시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전국 120여개 도시를 스마트시티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런 변화는 세계적으로 부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산업 환경의 변화가 가속하면서 도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어서다. 시민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선진 인프라를 갖췄으며,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주는 제도를 갖춰야 인재와 자본이 몰려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자유로운 예술 활동과 관용적 시민 문화도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삶의 질이 곧 도시 경쟁력, 가치창출 노력 지속해야”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그의 책 [후즈유어시티]에서 “2030년까지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도시에 거주할 것이며, 고숙련자 중 다수가 어디에 정착하느냐 가장 큰 문제”라며 “도시의 커뮤니티의 만족도와 행복은 세련되고 안전하며, 녹지, 학군, 경영 환경 등이 경쟁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실리콘밸리나 헬싱키처럼 생활이 안정되고 문화가 개방돼 있으며, 치안이 뛰어난 녹지 많은 도시가 세계적으로 경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삼정KPMG도 보고서에서 “미래 도시 대전 속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비용 외 요소와 삶의 질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도시의 내재 자원을 기술적으로 재창조하고, 시민의 다양성을 포용하며, 자연재해 등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도은 전 서울시 대외협력보좌관은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서울은 브랜드가 필요하며 함께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며 “하향식의 도시재생 사업에서 벗어나 시민 생활 안정과 국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을 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44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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