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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순봉 플레이그라운드 대표] “‘소맥’ 닮은 도수 7.6% 라거 맥주 개발” 

 

연간 수제맥주 150만 생산… 10월엔 브루어리 증설해 두 배로 확대

▎천순봉 플레이그라운드 대표. / 사진:전민규 기자
‘바사삭’ 소리를 내며 춤을 추듯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벼 이삭이 드넓게 펼쳐진다. 싱그러운 논을 등지고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그때부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한쪽 벽에는 큰 글씨로 ‘Drink Better, Play Better(더 잘 마셔라, 더 재미있게 놀아라)’이 적혀있고, 테이블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제각각 이슬이 맺힌 시원한 맥주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7월 14일 찾은 경기도 고양시 수제맥주 양조장 겸 레스토랑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의 모습이다. 이곳은 소셜미디어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일명 ‘핫한 어른들의 놀이터’로 알려졌다.

자유로 도로 끝자락에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는 2016년에 처음 문을 연 수제맥주 양조장이다. 90평에 가까운 레스토랑을 포함해 양조장 전체 크기는 300평이 넘는다. 현재는 연간 수제맥주 150만ℓ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오는 10월부터는 양조장 규모를 확장해 연간 300만ℓ 맥주를 생산할 수 있도록 증설할 예정이다. 이 규모는 500㎖ 캔 기준으로 연간 600만개, 하루에 1만6500개 정도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수입맥주에 대한 갈망보다 어디서 만들었든 제대로 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게 우리나라 애주가들의 정확한 니즈라는 것을 깨닫고, 제가 직접 제대로 된 수제맥주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어요.”

2015년 수제맥주 시장이 활발하게 형성하지 않았던 시기에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 용기 있게 나선 천순봉(41) 플레이그라운드 대표를 만나 플레이그라운드 맥주를 맛보고, 그만의 맥주 철학에 대해 들었다.

화려한 색상의 화회탈 그림으로 디자인

지난 5년간 플레이그라운드가 선보인 수제 맥주 종류는 약 50가지. 이중 현재까지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세 가지는 젠틀맨라거, 몽크IPA, 홉스팰리쉬IPA를 꼽을 수 있다. 모두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에서 개발한 레시피로 만든 수제맥주로,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젠틀맨라거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먹는 국내 음주 문화인 ‘소맥(소주+맥주)’ 문화를 바탕으로 개발한 필스너 라거다. 보통의 라거 맥주 도수가 4%인 것과 달리, 소맥처럼 도수를 높여 7.6%의 높은 도수가 특징이다. 천 대표는 “처음 이 맥주를 선보였을 때 비교적 높은 도수와 라거라는 장르에 대해 많은 분들이 걱정을 했다. 2016년에는 수제맥주의 저변이 지금보다 훨씬 더 미약했고 대기업이 선점하고 있는 라거 장르에 제대로 도전한 브루어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걱정과 달리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다. 소비자들은 젠틀맨라거가 삼겹살과 함께하면 최고의 궁합 맥주라고 평한다”고 말했다.

몽크IPA는 홉의 강렬한 향과 몰트의 고소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정통 IPA다. 지난해 수제맥주 전문 잡지인 [비어포스트]에서 조사한 ‘가장 맛있었던 맥주’에도 꼽힐 정도로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맥주다.

홉스플래쉬IPA는 1~2년 전부터 국내 애주가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IPA이다.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IPA는 홉 향을 극대화하고, 쓴맛은 극단적으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천 대표는 “맛있는 수제맥주만을 찾아다니는 ‘맥덕(맥주+오덕후)’들에게 인정받는 제품”이라며 “뉴잉글랜드 IPA는 공정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수제맥주 브루어리에서만 구현 가능한 제품이라고 생각돼 특히 정이 가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천 대표는 맥주 맛뿐만 아니라, 제품의 디자인에도 ‘한국스타일’을 더했다. 제품마다 화려한 색상의 화회탈 그림을 그린 것. 수제맥주는 맥주가 생산되는 지역성을 반영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데, 당시 국내에 있던 수제맥주 브루어리의 이런 부분이 아쉬웠다. 이 때문에 천 대표는 제품 디자인에 한국 전통 그림을 넣어, 제품 겉모습만 봐도 소비자들이 한국 맥주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양한 표정과 이야기를 지닌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를 생각했다.

천 대표는 “하회탈이 나오는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는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전통 놀이이고 각 탈만의 사연이 있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맥주의 특징과 각 탈이 가지고 있는 사연도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홉, 맥아 등 원재료 공급받는데 어려움 겪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300여평 규모의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 / 사진:전민규 기자
하지만 지금의 수제맥주 브루어리를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천 대표는 “맥주를 좋아하는 일반 소비자에서 맥주를 만들어 판매하는 제조자로 입장이 바뀌다 보니 모든 게 새롭고 어려웠다. 특히 우리 회사에는 맥주업계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몇 명 없었다. 정말 열정과 의지만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원재료 공급이었다. 한국에는 공급처가 없는 홉과 맥아 등 원재료를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데 초반에는 플레이그라운드가 대기업처럼 구매력이 크지 않아, 원하는 원재료를 제 때 받기 어려웠다. 천 대표는 “직접 식품수입업 면허를 취득하고 아일랜드, 호주, 벨기에 등에서 수입을 한 경험도 많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보다는 공급처도 많아지고 체계적으로 원재료를 제공받지만 현재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천 대표는 맥주의 원재료 공급이 어렵고, 세금도 높아 사업 구상 당시 미국에서 맥주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 역시 고려했다. 한창 수입맥주가 성장하고 있을 때였고 우리나라에서 소규모로 맥주를 만든다는 게 흔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천 대표는 더욱 고심했다. 하지만 결론은 ‘신선한 국내 맥주를 만들자’는 것으로 났다.

수입맥주는 대부분 생산 후 6개월이 넘은 제품들이다. 배송, 유통 보관 등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수제맥주는 생산에서 소비까지 3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직접 브루어리에서 맥주를 만들면 어느 수입맥주보다 훨씬 더욱 신선한 상태의 맥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도전했다.

천 대표는 “와인과 반대로 맥주는 캔 또는 병에 들어간 순간부터 맛과 향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요즘은 패키징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그 속도가 많이 줄었지만 산소, 빛과는 상극인 맥주의 특성상 이는 극복할 수 없는 본질”이라며 어려운 초기 상황에도 수제맥주를 고집한 이유를 설명했다.

수제맥주 개발만큼 음식 메뉴 개발에도 심혈

질 높은 수제맥주 완성에 전념하고 두 번째로 집중한 것은 맥주와 함께 먹음 음식이었다. 천 대표는 맥주에 대한 평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 순간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메뉴와 같이 맥주를 마셨는지에 따라 같은 맥주라 할지라도 기억이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천 대표는 브루어리 레스토랑 오픈 당시, 호주 르꼬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공부한 김성훈 셰프를 영입했다. 김 셰프는 계절마다 새로운 음식 메뉴를 내놨고, ‘음식까지 맛있는 브루어리’로 입 소문이 났다. 점심시간에는 맥주가 아닌 식사만 하러 오는 직장인들도 생겼다. 현재 브루어리에서 판매하는 메뉴들은 어항가지 튀김, 피시소스를 곁들인 동파육, 멘보샤 등 대부분 오리엔탈식 퓨전음식으로 동남아시아에서 맛볼 법한 요리들이다.

천 대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인생맥주’를 물으면 ‘하와이 비치에서 마셨던 맥주’ ‘유럽 노천식당에서 마셨던 맥주’ 등을 말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며 “이처럼 맥주를 마신 순간은 사진처럼 기억에 남고, 그 순간에 함께 했던 맥주에 대한 로열티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결국 경험이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음식이 그 미식경험에서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맛있지 않으면 맥주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플레이그라운드가 음식에 맥주 못지않게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플레이그라운드 수제맥주는 브루어리 매장 외에도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약 400개 정도의 음식점에서 캔 제품으로 맛볼 수 있다. 올 가을부터는 편의점에 입점할 예정이다. 제품은 해외로도 수출되고 있다. 2017년부터 홍콩에 수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미국, 싱가폴, 호주, 중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천 대표는 “지금까지 선보인 수제맥주가 50개 정도 되는데 이보다 더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고 싶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식문화가 반영된 제품을 더 높은 완성도를 갖춰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것이 로컬 크래프트 브루어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44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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