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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의 심리학 공간] 당신이 어깨부터 펴야 하는 이유 

 

자세가 바뀌면 일어나는 두 가지 놀라운 일들

▎존 볼턴(오른쪽)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 주관의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모습. / 사진:뉴시스
여기 두 사람(사진) 중에 누가 더 힘이 세고 지위가 높은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서열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사이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바로 자세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몸을 크게 만드는 ‘확대 자세’를 취하면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몸을 작게 만드는 ‘축소 자세’를 취하면서 공간을 적게 차지한다. 몸동작을 통해 서로에게 ‘나는 내 사회적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저는 당신에게 대들지 않을 거예요. 우리 잘 지내요.’

‘내가 얼마나 힘센지 알지? 그래, 잘 지내보자.’


이렇게 몸의 자세를 통해 서로의 위치를 협상하는 것이다. 위 사진과 같은 장면을 보는 순간 우리는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지 순식간에 정해 버린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자세로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내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들을 가치가 있는지를 마음속으로 결정한다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몸의 자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웅크린 자세를 취하는 순간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군.’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이 그의 저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언급한 바닷가재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바닷가재의 세계에도 위계가 있다. 싸움에서 승리한 바닷가재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유연한 몸을 쭉 뻗어 더 크고 무섭게 보인다. 반면 패배한 바닷가재는 구부정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세를 취한다.

승리자와 패배자는 신경화학적 상태부터 다르다. 승리한 바닷가재는 세로토닌의 수치가 높고 옥토파민 수치는 낮다. 패배한 바닷가재는 반대로 세로토닌의 수치가 낮고 옥토파민의 수치가 높다. 세로토닌의 작용은 다소 복잡한데 갑각류 동물에게선 공격성을 일으키고 척추동물에게선 반대로 공격성을 낮춘다. 옥토파민은 동물에게서 발견되는 신경전달물질인데 갑각류의 경우, 옥토파민이 분비되면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몸 자세에 따라 뇌 상태 달라져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세로토닌 주사를 맞은 바닷가재는 팔다리를 쭉 뻗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지배하는 자처럼 행동한다. 반대로 옥토파민 주사를 맞은 바닷가재는 몸을 웅크리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실제 몸집보다 더 작아 보인다.

싸움에서 진 바닷가재는 패배자의 뇌 상태로 전환되어 더 이상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에 이겨 본 상대도 두려워서 도망간다. 실패를 경험한 인간도 패배한 바닷가재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몸을 작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마음도 구부정한 상태로 유지된다. 우울해지면서 비관적으로 변하고 의욕을 잃게 된다.

뇌과학자인 캐롤라인 징크(Caroline F. Zink) 연구팀의 보고에 따르면 뇌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계산하는 영역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관찰하면서 본인의 서열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점수가 낮게 매겨지면 패배감이 밀려온다. 패배자의 뇌 상태로 돌입하는 순간이다. 자신감이 사라지고 스트레스에 더 민감해진다. 혹시 패배한 바닷가재처럼 이런 상태에 있다면 조던 피터슨의 구체적인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정신을 차리고 자세부터 반듯하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패배자의 뇌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뇌의 명령에 따라 몸의 자세가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뇌→신체). 그런데 거꾸로 몸의 자세에 따라 뇌의 상태가 달라지기도 한다(신체→뇌). 즉, 뇌의 관점에서 보면 몸의 자세는 중요한 정보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분야의 많은 연구에 따르면 몸의 경험이 바뀌면 마음이 달라진다. 몸이 뇌에 정보를 주는 것이다. 몸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심리학자 줄리아 피셔(Julia Fischer) 연구팀이 알아낸 것은 당당한 자세를 취했을 때 더 낙관적으로 되고 자신의 강점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세에 따라서 의사결정 능력도 달라진다. 심리학자 파블로 브리놀(Pablo Brinol) 등의 연구에서 자신감 있는 자세로 의사결정을 한 사람들은 더 큰 결단력을 발휘했다.

포기하지 않는 뚝심도 바른 자세에서 나온다. 심리학자 존 리스킨드(John Riskind) 등의 연구에서 자신감 없는 포즈를 취한 사람들은 본인의 능력을 칭찬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운 시험을 치를 때 더 쉽게 포기했다. 반면, 자신감 있는 포즈를 취한 사람들은 어려운 과제를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수행했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면 두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첫째,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을 보니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꽤 괜찮은’ 이 느낌이 참 중요하다. 이 느낌은 긍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둘째, 다른 사람들이 나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고, 그렇게 대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신념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하루 종일 어떤 자세로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회의에서 의견을 주고받을 때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자세로 자신을 소개하는가? 컴퓨터 앞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는 말은 거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상대를 위협하라는 조언이 아니다.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다만 짚어볼 점들이 있다. 시종일관 구부정하고 웅크린 자세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고 지속적으로 속삭이는 것은 아닌가. 이것만큼 자기파괴적인 행동은 없다.

‘자세 하나 바꾼다고 내 삶이 달라질까?’

아직도 의심하는가? 자세를 바꾸면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달라진다. 역경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달라진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산다는 것은 ‘나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발휘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들려준 이 말을 기억하는가? 어쩌면,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는 몸의 자세에서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다면, 허리를 반듯이 하고 어깨를 쫙 펴자. 다른 사람들도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1555호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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