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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제 大예측 | 가계 부채 뇌관 터질까?] 부채비율 급증… 증가세도 가팔라 

 

집값 상승, 대출 규제로 위기 가능성은 적어

▎금융당국이 2020년 11월 30일부터 신용대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힌 지 1주일 만에 신용대출이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 사진:연합뉴스
2020년 11월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3분기 중 가계 신용’(잠정) 자료를 보면 가계 신용 잔액은 1682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다. 기록은 매일 새로 쓰이고 있다. 2분기와 비교하면 44조9000억원(2.7%) 증가했다. 2020년 11월 13일부터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내놓자 일주일간 신용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은행으로 몰렸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일일 신규 마이너스 통장 개설 수는 4082개(2020년 11월 18일 기준)로 집계됐다. 가계부채 관리방안 발표 전날 마이너스 통장 개설 수가 1931개였던 점을 고려하면 두 배 가까이 수요가 늘어난 셈이다.

유례 없는 가계대출 폭증 ‘위험 경고등’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다 큰일 난다’는 것이다.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내려가고 주식 투자 열기가 가라앉으면 한국 경제가 주저앉는다는 위기론이다. 하지만 2021년에 그런 일이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도하게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이유는 경제 위기를 불러오는 트리거(Trigger·총 방아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늘면 소비를 위축시킬 우려도 함께 커진다.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많을수록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어서다. 이는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예상치 못한 경제 충격이 발생할 경우 가계와 국가 경제 모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이 그런 상황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20년 11월 23일 글로벌 금융회사 연합체인 국제금융협회(IIF)가 세계 34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해 발표한 ‘글로벌 부채 모니터(부제, 부채 쓰나미의 공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6%로 나타났다. 이 비율이 10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2019년 1분기 가계부채 비율이 92.1%였는데, 2020년 1분기에 가계부채 비율이 97.9%로 늘더니 3분기에 100%를 넘어섰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경제 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영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87.7%, 미국은 81.2%를 기록했다. 일본은 65.3% 수준으로 집계됐다. 한국보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레바논(116.4%)뿐이다.

가계대출 증가세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20년 상반기까지 가계 신용 잔액은 1637조3000억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보다 5.2%(80조5000억원) 증가했다. 가계 신용 증가율은 2019년 3분기 3.9% 수준이었는데 4분기 4.1%를 기록하더니 2020년 1분기에는 4.6%를 기록하는 등 점차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3분기 대출 행태 서베이 결과를 보면 국내 은행들은 기업과 가계의 모든 대출에서 신용위험이 증가할 것이란 잔망이 나왔다. 특히 가계의 경우 저신용·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은행이 2020년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고위험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위험 가구란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고 자산을 매각해도 부채를 상환하기 어려운 가구를 말한다. 고위험 가구 수는 2015년 29만9000가구였는데, 2017년 32만4000가구로 증가했다. 2019년에는 37만6000가구까지 늘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0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가계부채 수준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최근 증가세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비정상적 상황 확산에 대출규제 압박 강화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경제 위기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이 하락할 위험이 적다는 것이다. 집값이 폭락하지 않는 한 가계부채 뇌관이 터지기는 어렵다. 그런데 현재 새집은 부족하고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시중에 자금도 풍부하다. 2020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 시중의 유동성이 이미 3000조원을 넘어섰다. 넘치는 자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인 부분이 아니라 건전하고 생산적인 투자에 유입될 수 있도록 모든 정책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갈 곳 잃은 돈이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상황에서 집값이 떨어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출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더는 빚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정부는 주택 구매 용도의 대출을 억제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강화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지만, 사실상 대출 구멍을 좁힌 셈이다.

대출 규제 내용을 보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고가 주택에 대한 LTV 기준을 9억원과 15억원으로 나눴다. 9억원 이하 분은 40%, 9억~15억원분은 20%를 적용하도록 했다. 시가 15억원이 넘는 주택을 살 때는 주택담보 대출을 못 받게 만들었다.

2020년 11월 30일부터는 신용대출도 까다롭게 만들었다. 금융위원회는 30일부터 새로운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연 소득 8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가 1억원을 웃도는 신용대출을 받으려면 총부채 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연간 총부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신용대출을 규제한 것이다. 또 1억원 넘게 신용대출을 받은 뒤 1년 안에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에서 주택을 매입하면 대출금액을 회수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빚을 갚기 어려워 연체 위기에 빠진 개인 채무자들의 가계대출 원금 상환을 유예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2020년 11월 26일 코로나 피해 채무자의 가계대출 원금 상환 유예 신청(가계대출 프리워크아웃 특례) 마감일을 2021년 6월말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당초 가계대출 원금 상환 유예 마감일은 2020년 12월 31일이었다. 이것도 한차례 연장한 조처였는데, 한 번 더 연장해준다는 것이다.

‘영끌의 시대’가 결코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일련의 조건들은 아직 가계부채 뇌관이 터질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66호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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