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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업 총수 신년사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대한-아시아나 통합 시대적 사명” 경영권 달린 빅딜에 ‘올 인’ 

 

송현동 부지 매각 등 자구안 언급 없어… 조현민 품은 ㈜한진도 주목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2020년 6월 29일 서울 대한항공 본사 격납고에서 임직원과 함께 A330 항공기 기내 소독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월 4일 대한항공 사내 인트라넷에 게재한 신년메시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가득했다. 2021년 진행될 ‘항공 빅딜’이 그룹의 명운을 가를 중차대한 일이란 방증이다. 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조 회장의 운명도 이 딜의 성사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한진그룹의 최우선 과제는 인수 절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연초 대한항공 임시주주총회에서 발행주식 총수 확대를 위한 정관 일부개정안이 의결됐지만 남은 과제가 산적해있다. 본격적인 과제는 인수합병 절차를 마친 뒤 시작된다. 우선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야 항공업황이 살아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항공 산업 질서 속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화학적 결합 또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약속한 구조조정도 완수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줬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성숙해지는 계기도 마련해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한 가족이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하늘을 책임지고 있는 양사 임직원들에게 주어진 운명, 시대적 사명이라고 믿는다.”

유증안 통과로 8부 능선 넘은 M&A

조 회장은 신년 메시지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시대적 사명’이라고 규정했다. 일각에서 비판받는 항공 빅딜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추진된 빅딜에 대해 이해관계자 일부는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사모펀드 KCGI 등 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3자 연합은 통합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유증에 참여해 사실상 조 회장의 경영권을 보존하는 것에 대해 극렬한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조 회장으로선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이번 딜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주주연합의 반대에도 항공 빅딜은 별 탈 없이 추진되고 있다. 인수합병 성사는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다. 지난 1월 6일 열린 임시주총에서 대한항공은 발행주식 총수를 늘리는 정관 일부개정 안건을 상정해 이를 의결했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출석한 주주 중 69.98%의 찬성을 얻어 가결됐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오는 3월 중순 경 예정된 2조5000억원 수준의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가능하게 됐다. 대한항공은 이 금액을 가지고 아시아나항공의 3자 배정 유증에 참여, 경영권 지분을 확보할 방침이다.

다만 조 회장은 또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대한항공 일반노조는 이번 딜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지만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 열린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등 5개 노조는 “노동자를 배제한 인수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 회장이 통합의 당위성 강조에 전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 회장은 “이번 인수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해보지 않고는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려면 우리는 도전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앞두고 ‘불가피한 상황’임을 호소하는 효과도 있다. 대한항공은 1월 14일까지 공정위를 비롯해 해외 당국에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기업결합 심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조 회장의 고민은 단순히 인수합병의 성사에만 있지 않은 듯하다. 조 회장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양사 임직원은 입고 있는 옷과 서 있는 자리만이 달랐을 뿐 고객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양사 임직원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인수 후 화학적 결합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회장이 인수 추진을 통해 당장의 경영권을 방어한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주주연합의 경영권 공격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장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3자 연합 측은 이사회 진입에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이 경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산업은행 역시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계속 조 회장의 편에 서긴 어렵다. 경영성과를 내기 위해선 코로나의 종식과 임직원 간 화학적 결합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일각에선 이번 신년사에 존재했어야 할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의지가 빠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경영 개선을 위한 자구안을 완료하지 못했다. 기내식·기내판매 사업과 왕산레저개발, 칼 리무진 등 매각은 성과를 냈지만 서울 송현동 부지 매각은 서울시와의 갈등으로 난항에 빠진 상황이다.

조 회장의 신년사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또 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이름으로 처음 신년 메시지를 낸 2019년에 이어, 지난해 한진그룹 회장으로서 낸 신년사에서도 대한항공에 대한 이야기만을 했다. 이는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 회장 신년사가 온통 ‘대한항공’인 이유는

조 회장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항공 전문 경영인으로서 입지를 구축함과 동시에 조현민 ㈜한진 부사장과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에선 조 회장과 조 부사장이 그룹 주축인 항공과 물류 분야를 각각 나눠 맡는 것으로 경영구도가 사실상 정리됐다고 보고 있다. 한진그룹은 앞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 과정에서 ‘물컵 갑질’ 등 물의를 일으킨 조 부사장과 이명희 고문 등이 항공 관련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로 산은과 합의한 바 있다.

2019년 한진칼 전무로 경영에 복귀한 조 부사장은 이 합의가 이뤄진 뒤 지난해 9월 ㈜한진 마케팅 총괄 전무로 선임됐고, 3개월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대신 한진칼 전무와 토파스여행정보 부사장에서는 물러났다. 이번 승진으로 조 부사장은 ㈜한진의 류경표·노삼석 대표이사와 직급이 동일해졌다. 조 부사장은 아직 이사회 진입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머지않아 사내이사 등극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커진다.

다만 ㈜한진 역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어 조 부사장의 입지도 안정적이지만은 않다. ㈜한진 지분 9.79%를 보유한 사모펀드 HYK파트너스는 지난달 8일 회사 측에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제안’을 보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HYK파트너스는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운영하는 경방이 설립을 주도한 사모펀드다. 경방은 올해 들어 ㈜한진의 주식을 꾸준히 매입하면서 지분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최근 HYK파트너스의 HYK1호펀드에 ㈜한진의 지분 일부를 넘겨 주주권 행사에 나섰다. HYK파트너스는 지분참여 목적을 ‘경영참여’라고 공시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68호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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