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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 2-(1)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임기응변] 후회와 기쁨이 엇갈리는 ‘결정적 순간’ 

 

임기응변의 조건은 흥분·변명하지 말 것

▎ 사진:© gettyimagesbank
1918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양자물리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때다. 전국에서 쏟아지는 강연 요청에 응하다 보니 똑같은 내용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해야 했다. 하루는 그가 너무 피곤해하자 운전기사가 제안을 했다.

“박사님 강의를 다 외울 수 있고 참석자들이 하는 질문도 거의 똑같으니 제가 한번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요즘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몰랐던 때라 괜찮겠다 싶었다. 그가 큰 모자를 눌러 쓰고 앞줄에 앉아 있는 동안 운전사는 박사급들 앞에서 긴 내용을 술술 풀어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의가 끝나나 싶었는데, 한 물리학 교수가 생각지 못한 질문을 했다. 모든 게 탄로 날 그 순간, 운전사가 재치를 발휘했다.

“뮌헨은 참 발전한 곳인데 이런 단순한 질문도 하시는군요. 이 정도는 제 운전사도 대답할 수 있으니 그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적절한 임기응변이나 재치는 이렇듯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 역할을 한다. 우리 모두 이런 능력을 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소원을 이루는 이들은 많지 않다. 있다 해도 뒤늦게 생각나는 바람에 한숨만 깊어진다. 문제는 이런 ‘결정적 순간’이 후회와 기쁨, 아니 더 나아가 실패와 성공이 시작되는 갈림길이 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뼈아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두고두고 뼈아픈 갈림길

나 과장에게 오늘은 홀가분한 날이다. 팀장과 선배인 김 과장이 같이 출장을 떠났으니 눈치 볼 사람도 없고 딱히 중요한 일도 없다. 자리에 앉아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면 퇴근 시간 아니겠는가. 마음이 가벼워서인지 눈도 일찍 떠졌다. 별일 없겠다 싶어 옷도 대충 걸치고 출근했는데 오늘따라 출근길조차 막힘이 없다. 이런 날만 있으면 회사 다닐 맛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그런지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도 없다. 그렇게 서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어, 나 과장 아닌가? 출근이 빠르구만?”

돌아보니 어이쿠, 사장님이다. 세상에, 나를 알아보시다니. 이렇게 황공할 데가.

“예. 안녕하세요.”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어색한 침묵이 시작됐다. 좁은 공간에서 높은 분과 함께 있는 그 무거움이란. 평소엔 바람처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오늘은 굼벵이처럼 22층까지 기어가는 것 같다. 별수 없이 앞만 보고 있는데 다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재택근무하는 날인데 회사에 나온 건가? 복장이 아주 자유롭네?”

“예? 아 예…”

난데없이 옷 얘기가 나오자 할 말이 없다. 때마침 구세주처럼 열린 문으로 탈출하듯 나온 나 과장이 25층으로 올라가는 사장에게 인사를 하자 언제나 들을 수 있는 말이 들려온다.

“그래. 열심히 해요.”

돌아서 사무실로 향하는데 뭔가 께름칙하다. 뒷맛이 개운찮다. ‘내 복장이 이상하다는 건가? 그냥 하시는 말인가? 아, 설명을 잘 해야 했는데… 바보 같이 왜 우물쭈물했지?’ 화장실 거울에 비춰 보니 이상한 것도 같다. 별일 없겠다 싶어 대충 걸치고 나온 건데 하필 사장님과 마주치다니. 더구나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얼버무렸으니. 아, 망했다 싶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일을 막상 겪으면 오래 간다. 생각할수록 자신에게 화가 난다. 왜 그랬지, 하는 자책이 틈만 나면 파고들어 속깨나 썩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심심찮다는 것이다. 나를 무시하는 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어어 하다 바보가 된 기분,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발표나 회의 때 치고 들어온 기습 질문에 중언부언하다 하는 실수는 또 어떤가. 뒤늦게 혼자 분통 터진다. 제대로 대응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그랬다면 내 잘못이니 그럴 수 있다 싶지만 이런 식으로 옆구리를 훅 찔리거나 뒤통수를 맞으면 속이 이그러진다. 경계에 실패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한 장군처럼 분통은 터지는데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면 더 그렇다. 사장님께 멋지게 대답했더라면,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싸움을 걸어왔을 때 통쾌하게 한 방 훅 날려버렸더라면. 결과를 비교할수록 한숨만 커지고 분노 게이지가 쭉쭉 올라간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경쟁자의 질문에 ‘비수’가 들었다면?

보통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고 난처하게 하는 ‘결정적 순간’은 질문이라는 형태로 날아올 때가 많다. 프레젠테이션이나 회의 때 던져지는 누군가의 공격적인 말이 대표적이다. 이럴 때 우리는 대부분 우리도 모르게 즉각 대답하려고 하는데 대체로 이런 시도는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날 때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대는 질문을 던지기 전 여러모로 다듬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협상 전문가들은 이럴 때 두 가지 전제조건을 강조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과 설명하거나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지 말 것. 감정에 휩쓸리면 실수하기 쉽고, 설명하거나 변호하려 하면 상대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설명하고 변호하려 하는데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럴 땐 잠시(약 3~5초) 생각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효과적이다. 상대의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비춰져서 좋고, 시간을 벌 수도 있다.

상대의 질문에 ‘적의’가 없다면 어느 정도 설명해도 좋지만 그 속에 ‘비수’가 들었다면 대응이 달라야 한다.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의 마셜 비즈니스스쿨에서 설득과 협상을 강의하는 캐서린 리오돈 교수는 이럴 때 특히 조심해야 할 게 있다고 한다. ‘상대의 의도가 이럴 것이다’라고 지레짐작하고 추측하는 것이다.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라 헛짚을 수 있고 그런 이유로 “아직도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네요” 같은 연타를 맞을 수 있다. 스스로 궁지에 몰리는 꼴이 된다.

질문에 ‘비수’가 들었다면 굳이 대답을 짜내기보다 그 ‘비수’를 돌려주는 방법이 좋다. 질문으로 받아넘기는 반문(反問)이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정확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상대가 자신의 의도를 설명한다면 시간은 물론 의도를 더 많이 알 수 있어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다. 단순한 비수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려는 말에는 주어를 전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어제 밤새 달렸어?(술 마셨어?) 왜 이렇게 얼굴이 푸석푸석해?”

이런 말은 대답하자니 그렇고 안 하자니 이상해진다. 제대로 대답하면 “아니, 그냥 그렇게 보여서. 웃자고 하는 말이야” 같은 말로 쓱 넘겨버린다. 설명이 좋지 않은 건 ‘나’가 주어가 되기에 할 말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던진 그물에서 몸부림치는 꼴이다. 이럴 땐 상대를 주어로 받아쳐야 한다. “그래? 근데 박 팀장 얼굴은 번쩍번쩍 빛이 나네요?” 상대를 주어로 하면 상대가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노련한 이들은 의도성 짙은 이런 말에 무대응 전략을 쓰기도 한다. 딴죽을 건다 싶으면 상대를 보며 씩 한번 웃어주고 자리를 떠나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다. 대응할수록 긁어 부스럼이 되는 까닭이다.

그들에게는 ‘나만의 노트’가 있다

상대의 말에 가시가 들어 있다면 역으로 던지는 질문의 구체성을 높이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이 그렇다는 건가요?”처럼 범위를 좁히면 상대의 설명도 그에 맞춰진다. 특히 그렇게 말하는 근거를 물으면 상대의 말이 사실에 근거한 건지 단순히 그의 생각인 건지 알 수 있다. 상대가 설명하면 그 말을 요약한 다음 내 생각을 말하면 된다.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는 인격 비하 발언에도 비슷하게 대응할 수 있다.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니느냐고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보낼 것이고, 그러면 말하는 사람은 보통 발을 뺀다. 상대의 말에서 반격할 수 있는 근거를 얻을 수도 있다.

가시 돋친 질문이라고 모든 걸 부정할 필요는 없다. 수세적 방어 자체가 좋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조건 쳐내기만 하면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비친다. 합리적인 게 있으면 일부를 수용해 내 아이디어와 연결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상대가 “듣던 대로 까다로우시군요”라는, 대응하기 애매한 펀치를 날리면 “맞아요. 제가 좀 까다롭긴 하죠? 대충하면 회사에 큰 손해가 갈 수 있어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일에서만 그렇다는 뜻이다. 덩달아 이미지도 좋아진다. 더 나아가 상대에게 공을 넘길 수도 있다. “맞습니다. 저도 고민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좋은 방안이 있는 것 같은데 알려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 중 의외로 타고난 능력을 갖춘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능력 대신 방법을 갖고 있었다. 수험생들의 오답 노트처럼 있을 만한 상황 10가지 정도를 예상한 뒤 적절한 대처법을 틈날 때마다 기록해 두는 것이다. 일종의 ‘나만의 노트’다. 예를 들어 서두에 나오는 나 과장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 예. 조깅을 좀 하고 오느라고요”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니 이 정도는 괜찮다. 자연스럽게 건강 같은 대화가 이어질 것이고 사장님과의 거리는 가까워질 것이다. 후회가 들어설 자리에 기회가 들어서는 것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75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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