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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IT 사회학] 국가자격과 면허는 디지털로 전환될 수 있을까? 

 

전환기의 기능인 자격 고민 해야 할 때… ‘의료는 케어’ 가치의 전환 일어나고 있어

▎2월 26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사면허 취소 범위를 확대한 의료법 일부개정안이 계류됐다. / 사진:연합뉴스
범법자의 의사 면허를 취소한다는 법, 일단 불발되었지만 추진하는 쪽도 의료계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듯하다. 여론이 차가워도 의료계는 물러날 분위기가 아니다. 가속하는 시대 변화로부터 직업을 지키는 데는 총량 규제의 직업면허나 국가자격만큼 효과적인 것이 여전히 없음을 만인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자격시험제도는 전문직 집단을 형성하고 그 신분의 긍지를 안겨줌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근대 이전, 의사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여느 나라처럼 신분적으로도 낮은 기술직이었다. 그러나 위생과 현대적 치료가 국민이라는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근대국가의 정책 과제가 되면서 서양 의학이라는 수입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전문직 집단을 양성해야만 했다. 이처럼 국가자격으로 업의 독점을 허락하는 일은 근대 국가의 필요성을 위한 것이지, 그것이 천부의 권리는 아니었다.

의사 집단, 의료 독점의 정당성 구축에 성공


▎2010년대 후반 중국 국가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한 중국산 로봇 ‘샤오이(Xiaoyi)’는 합격을 위한 최저점수보다 96점이나 높게 받았다. / 사진:중국 CCTV 유튜브채널 캡쳐
의사 ‘선생님’의 우월적 지위는 실질적 지식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는 견해도 있다. 현대 의학의 과학 지식이 우리를 효과적으로 구원할 것이라고 대중이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슨(Larson, 1979) 등의 여러 선행 연구는 그 외에도 사회적으로 조직화하는 방식을 주목한다. 의사의 권위를 만든 것은 직업적 소명에 대한 사상적 설득이었다. 의료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지식이기에 그 독점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통했다. 특히 미국의 의사 사회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자율 통제의 가치를 확립하게 된 계기는 사회 구조 상층으로 이동하기 위한 명분이라는 분석이다.

의사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전문직의 신분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육 과정과 직업윤리를 강화하는 등 의료 독점을 위한 정당성을 공히 나름의 방식으로 구축했다. 자치적 내부 통제로 집단의 가치를 구조적으로 높이기도 했다. 자격의 가치를 향상한다는 공동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집단적 영향력을 이용했다. 집단으로서 의사는 면허로 보호받는 전문적 집단의 모범과도 같았다.

반면 개업의 위주의 한국 의료는 자신의 의원 경영이 공동체에 대한 헌신보다 우선순위였다. 의료 공동체도 스스로 자신을 감독하거나 규율하는 구조도 아니었다. 미국은 진작에 갖추고 있는 의사 행정처분 이력 조회 시스템을 우리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 전문가 공동체는 이익 집단이었다.

사정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사실상 의료 행위 전체가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의사의 통제하에 놓여있다는 점은 같았다. 즉 의료에서 모든 판단은 의사에게 독점권이 있었다. 동시에 누구의 지시로부터도 독립적일 수 있는 직업, 일의 내용과 조건을 스스로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는 직업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근대라는 전환기가 부여한 이 특권이 작금의 기술 대전환기에도 의미가 있을지 현대 과학 기술은 묻기 시작한다. 의사의 권위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과학의 성과를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번역해 줄 임상의 경험을 존중해서다. 하지만 의학도 과학의 일부라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일, 발전하는 기술은 지금의 의료 또한 최선이 아님을 소비자에게 넌지시 알려 주고 있다. 수줍은 기술이 ‘의료’라고 직접 불러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헬스케어’라는 표어 뒤에 숨어서 성장하고 있지만 목적지는 명료하다. 모든 의료의 지향점, 바로 건강이다.

병을 고치는 병원은 지금 나의 건강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프지 않으면 타깃이 아니다. 건강 보험이 할 수 있는 일도 1~2년에 한 번 건강 검진을 보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프기 전에 예방하는 일의 가치는 커도, 종래의 의료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만약 건강을 구독할 수 있다면 가계 지출의 우선순위는 바뀔지 모른다.

몸을 스캔해 병을 추론하고 원인과 대책을 도출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리고 이를 매일 아니 24시간 실시간으로 추적·조사할 수 있다면! 그저 중병이 내게는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건강의 요행을 바라던 일도 추억이 될 수 있다.

치료를 위해 캡슐에 들어가는 날, 의사의 역할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SF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미 많은 수술은 로봇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노벨상 수상작 크리스퍼(CRISPR)처럼 치료용 유전자 편집 기술이 대중화되는 등 인간이라는 기계의 수리 설명서, 즉 서비스 매뉴얼도 충실해지고 있다. 인간의 서비스 센터는 더 다양화되고 대중화될 수 있다.

액과 유전자를 분석해 맞춤 환약을 코딩해 처방하는 신종 의료가 생겨날 수도 있다. 20세기 의사가 19세기 한의사를 쳐다보는 시각으로 이 21세기의 신 의사는 지금의 의사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서비스 기사, 기능인 자격으로서의 의사는 앞으로 한 세기에 급변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 의사 면허 무용론까지 나와

밀턴 프리드먼은 누구나 자유롭게 의료 행위를 해야 의료도 발전한다는 면허 무용론을 펼쳤다. 극단적 의견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디지털 기술은 모든 면허에 대해서 이 무용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소비자는 돌팔이를 걸러낼 수 있다. 마치 우버가 택시 면허보다 소비자에게 안심을 준 것처럼.

디지털 기술은 개인에게 귀속된 지식을 클라우드로 흡수하고 숙련의 단계를 기계 학습한 후에 칩에 넣고 싶어 한다. 숙련공이 기계화되듯 자율주행은 모범운전자를 모방하고 싶어 한다. 의료만큼 보수적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의 지식 콘텐트는 이미 ‘인강’ 등 디지털 미디어로 정리되고 있다. 교사들은 화면 속 ‘일타 강사’와 경쟁할 필요 없이 학생 한 명 한 명을 사랑과 관심으로 동기부여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온라인 교육은 그렇게 티칭이 코칭과 분리되어 클라우드로 넘어갈 수도 있음을 알려주었다.

어떤 택시 기사를 만나는지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 교사는 1년의 배움을 좌우했다. 의사의 경우는 생사가 달라질 수도 있다. 개별 직능을 규격화해서 중앙 통제할 수 있다면, 그리고 베스트 프랙티스를 인공지능 모델로 복제 확산할 수 있다면 이차 소견을 찾아 헤매던 환자의 눈물도 가까운 동네 의사가 닦아줄 수 있다.

의료란 곧 케어다. 디지털로 복제 불가능한 가장 가까운 손길에 의사의 미래가 있다. 판단의 독점이 클라우드로 해방되는 날, 학교 선생님이 티처만큼 중요한 코치의 가치를 재발견했듯이 의사 선생님도 케어의 가치를 재발견할 것이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576호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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