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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 논란의 진짜 문제] ‘희귀 아이템 뽑기’는 로또 수준, “도박 중독 과정과 비슷” 비판도 

 

10만번 뽑아야 2~4번 당첨… 한국 게임시장 사행성 문제 논의할때

▎게임업계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래봤자 한낱 게임 얘기 아닌가. 억울하면 게임을 그만두면 될 일이다. 시위를 벌이고 법을 따로 만들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 필요가 있나.” 게임에 별 관심이 없는 국민이라면 게임 업계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이렇게 치부할지도 모른다. 게임업체가 몰린 판교에서 전광판을 단 트럭으로 시위를 벌이고, 여러 국회의원이 SNS를 통해 게임사를 성토하는 게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선 게임 3사(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의 2020년 매출의 합이 8조314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깟 게임의 문제로만 보긴 어렵다. 게임이 오락의 일부가 아닌 엄연한 하나의 디지털 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먼저 해당 논란이 어떻게 번졌는지 살펴보자. 지난 2월 18일 메이플스토리는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아이템에 붙는 능력치 추가 확률을 동일하게 바꿨다”는 게 골자였는데, 금세 유저들의 항의로 이어졌다. 확률을 동일하게 바꿨다는 건 그전엔 동일하지 않았다는 뜻이라서다.

그간 메이플스토리 측은 ‘무작위’로 아이템에 추가 능력치를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실상은 사용자의 인기가 높은 능력치는 낮은 확률로, 인기가 낮은 능력치는 높은 확률로 부여했다. 무작위로 표기해놓고 확률을 제각각으로 설정한 건 유저들의 아이템 획득 기대 수준을 기만한 행위였다.

이는 국내 인기 게임 대부분이 겪고 있는 해묵은 논란이다. 게임사들이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확률을 조작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까지 나오고 있다. 게임사는 “자율규제를 통해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자율규제의 실효성은 크게 떨어진다.

한국 게임산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7개 게임 중 106개(2021년 1월 기준)가 확률 공개를 통해 자율협약을 준수하고 있었다. “확률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현장의 목소리와는 딴판이다. 왜 그럴까? 이는 자율규제의 확률 공개대상이 ‘이용자가 유료로 직접 구입한 아이템’에 한정됐기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다.

컴플리트 가챠, 확률 비공개의 문제


▎‘리니지M2’의 영웅 직업을 얻기 위해선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다. / 사진: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리니지2M’의 사례를 통해 자율규제의 사각지대를 들여다보자. 이 게임의 ‘신화 무기’는 올해 초 선보인 가장 높은 등급의 무기 아이템이다. 신화 무기를 만들기 위해선 ‘신화 제작 레시피’가 필요한데, 이를 얻는 과정이 꽤 복잡하다. 먼저 재료상자를 현금으로 구입하면, 0.25~2%의 확률로 ‘희귀 제작 레시피’ ‘영웅 제작 레시피’ ‘전설 제작 레시피’ 등 세 종류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각의 아이템을 ‘고대의 역사서 1~10장’으로 변환해야 한다.

고대의 역사서 1~10장을 다 모았다면, 그제서야 신화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신화 제작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희귀·영웅·전설 제작 레시피를 바탕으로 고대의 역사서를 제작할 때다. 100%가 아닌 ‘비공개 확률’에 따라 제작 여부가 결정된다. 이렇게 되면 게임 사용자는 신화 무기를 얻기까지의 정확한 확률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제작에 실패했을 경우, 그간 모은 레시피도 잃게 된다.

업계에선 이런 방식을 ‘컴플리트 가챠(뽑기를 의미하는 속어)’라고 부른다. 아이템을 뽑아 여러 재료를 전부 모으면 완성된 아이템 보상을 주는 구조인데, 국내 게임사는 최종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은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율규제의 공개 대상은 ‘유료로 결제한 아이템의 확률’에만 그치고 있으니, 비공개로 둬도 규제를 어기진 않는 셈이다.

이 때문에 유저들은 게임 업계에 “100%가 아닌 모든 뽑기의 확률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도 움직였다. 지난 2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었다. ‘게임산업진흥법 전부 개정안(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법은 국내 게임 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담았는데, 그중에서도 확률형 아이템 표시를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논란이 확대되자 게임 업계는 바짝 엎드렸다. 넥슨이 지난 3월 5일 ‘확률형 아이템의 완전 공개’를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넥슨과 더불어 ‘빅3’로 꼽히는 넷마블과 엔씨소프트도 완전 공개 방침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논란의 화두가 ‘확률 공개’에만 쏠리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문제의 본질은 현금을 쏟아붓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거나 달성할 수 없도록 구조를 설계해 놓은 게임사들의 탐욕”이라면서 “수치 놀음에 따라 게임사의 돈벌이가 결정되는 구조를 타파하지 않으면, 확률이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업계가 공개한 확률만 봐도 ‘희귀 아이템 뽑기’는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 리니지2M의 직업 뽑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위 직업인 ‘영웅 클래스’를 뽑을 확률은 0.00245%~0.0049%에 불과하다. 10만번을 뽑아야 2~4번 정도 나온다는 얘기다. 직업 뽑기(11회) 가격이 3만원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유저는 천문학적 확률에 기대를 걸고 수백만원을 쏟아야 한다. 희귀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유저들의 반복 결제를 유도하고 있는 건데, 이는 국내 게임사의 주요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게임을 도박판으로 만드는 회사들


이런 확률형 아이템의 작동 방식은 도박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투입 비용보다 높은 가치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하게 만들어 과소비를 부추기는 구조다.

박용천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유저들은 희박한 확률인 걸 알면서도 당첨됐을 때의 쾌감을 위해 계속해서 현금을 결제하는데, 이는 도박에 중독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돈을 잃으면서도 매번 ‘이제는 나올 때가 됐다’ ‘나는 남들과 달리 당첨을 뽑을 거야’ 같은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게 그렇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게임 내재화는 현금화도 가능하다. 한국 게임시장의 사행성 문제를 더 무게감 있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게임사의 자체 전면 공개든, 법제화든 향후 ‘깜깜이 확률’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이 논란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안심할 순 없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는 “낮은 확률로 과금을 유도하는 국내 게임업계의 수익구조”가 문제라면서 “이대로라면 콘텐트로 승부하는 외국산 게임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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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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