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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호주 바이롱 광산 불허’ 항소] 10년 표류, 5000억원 손실에도 개발 사업 재추진 

 

호주바이롱비상대응TF 조직 확대… 전문가들 “경제성 잃었다” 지적

▎ 사진:Pete Dowson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해외 자원개발 사업으로 2019년 5000억원 손실을 낸 호주 바이롱 유연탄 광산 개발사업이 다시 추진된다. 사업 주체인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손실 원인이 된 호주 정부의 개발 불허에 대한 법적 구제를 재신청하면서다. 특히 한전은 바이롱 광산 사업 추진 부서를 확대,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고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선 한전의 사업 재추진이 되레 손실만 키울 것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윤세종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법적 구제를 받는다 해도 전 세계적인 ‘탈석탄’ 기조 속 석탄 광산 개발은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 한전은 지난 3월 15일 호주 정부의 바이롱 유연탄 광산 개발 사업 불허 무효 행정소송을 또다시 제기했다. 호주 독립계획위원회(IPC)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바이롱 광산 개발사업 계획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 피해에 우려가 있어 개발 허가를 발급할 수 없다”는 판단에 반발, 2019년 12월 호주 토지환경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데 이은 두 번째 소송(항소)이다. IPC는 대규모 개발 계획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 개발을 승인하는 법정 기구로 앞서 토지환경법원은 IPC의 판단에 따라 한전의 소송 제기를 기각했다.

한전은 2014년 이미 바이롱 광산 예비타당성조사와 타당성조사를 모두 마친 만큼 항소심 재판에선 승소, 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실제 한전은 2010년 영국 다국적 광산기업 앵글로아메리칸으로부터 바이롱 광산을 인수한 후 2014년까지 발 빠른 사업 추진을 계속했다. 100% 지분을 갖고 ‘탐사·개발·생산’ 모든 단계를 직접 주도한 최초의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었음에도 현지 광산 개발사를 앞세워 토지 개발에 속도를 냈다. 한전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와 개발 인허가 단계서 IPC에 막힌 것 뿐”이라며 “사업 추진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사업 추진 가치 충분하다” 항소


바이롱 유연탄 광산은 한때 한국의 에너지 자립 거점으로 주목받았던 곳이다. 석탄을 수입해 발전하는 대신 유연탄 광산을 소유, 석탄 생산과 발전까지 직접 하자는 목표였다. 2010년 개발도 되지 않은 토지를 4억 호주달러(약 3400억원)에 인수해 개발에 재차 5000억원 가량 돈을 쏟은 것도 우리 소유의 자원을 갖자는 판단에 기인했다. 하지만 2015년 한전이 제출한 바이롱 광산 개발 계획을 IPC가 4년 만인 2019년 9월 불허하며 위기에 빠졌다. IPC는 “석탄 광산은 탈탄소 등 지속가능개발과 어긋난다”고 했고, 한전은 같은 해 5135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한전이 외부 전문가를 끌어와 구성한 호주바이롱비상대응태스트포스(TF)가 사업 재추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9년 12월 한전이 IPC의 판단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도 외부 전문가와 한전 사내 직원 동수로 구성한 호주바이롱비상대응TF 결정에 기반을 뒀다. IPC의 개발 불허 결정 후 구성된 호주바이롱비상대응TF는 개발 계획 보완 후 개발허가 재추진과 사업 지분(한국전력 90%, 발전 5사 10%) 3자 매각, 유·무형 자산 매각 후 청산 등 절차를 다각도로 고려하다 호주 정부 대상 법률 소송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전은 올해 초 8명이었던 호주바이롱비상대응TF를 12명으로 확대, 항소심 소장 제출을 결정했다. 호주바이롱비상대응TF 소속 한전 관계자는 “바이롱 광산 내 8억7000만 톤 규모 원량을 이제와 포기하긴 어렵다”면서 “바이롱 광산에서 연간 350톤 가량 유연탄을 생산해 발전 자회사 등에 판매할 경우 연 1100억원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 김종갑 한전 사장 역시 “주민도 찬성하고 주 정부도 가능하다는 사인을 냈는데 독립평가 위원회에서 반려한 사안”이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행정소송 항소심이 IPC의 바이롱 광산개발 불허에 대한 법리 오류 소송인 만큼 승소한다 해도 인허가 절차를 다시 밟아야하기 때문이다. 한전의 바이롱 광산 개발 허가 신청 후 IPC의 반려까지 4년, 행정소송 1심 판결까지 1년 총 5년이 걸린 것으로 고려하면 한전이 항소심 승소를 한다 해도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인허가 후 채굴권 승인, 채굴을 위한 건설 기간을 포함하면 시간은 더 길어진다. 한전이 2010년 바이롱 광산 투자에 뛰어들 당시 지하 탄광을 개발 2020년부터 40년간 연 350만톤 석탄을 생산하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된다.

이런 가운데 석탄화력발전 축소 등 ‘탈석탄’인 핵심인 탈탄소 시계마저 빨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0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맞추는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12월 확정한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석탄화력 발전량을 2019년 대비 23% 줄이기로 정했다. 윤세종 변호사는 “한전은 바이롱 광산에서 생산한 석탄을 발전 자회사에 팔아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이지만, 한국의 발전용 석탄 소비량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연간 1900만톤씩 감소할 전망”이라며 “경제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사업 추진보다 퇴로 고민해야 할 때” 지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한전이 사업 추진보다 매각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전의 바이롱 광산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 뒤에는 한전의 오판이 자리했다는 판단에서다. 발전업계 전문가는 “호주는 국가 특성상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환경영향평가나 주민 동의 등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천억원 투자를 실행, 5000억원 넘는 손실을 봤다”면서 “IPC 불허와 1심 기각 등 두 차례 거부된 사업의 승소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사업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면서 “퇴로를 고민할 때”라고 제언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정해진 만큼 한전이 항소심에서 승소, 2026년 석탄 채굴에 나선다 해도 석탄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24년에 그쳐서다. 당초 계획(40년)의 절반 수준이다. 실제 한전은 호주 현지 주민과 투자자로부터 토지 매각 제안을 받고 있다. 3월 17일 호주 현지 주민들은 405억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바이롱 광산 부지를 인수해 재생 농업 단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한전 이사회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한전은 “현재로썬 자산 매각 후 청산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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