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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LG·SK 배터리 분쟁 합의] 조 단위 보상 수출 금지 10년 모두 ‘난색’ 

 

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 ‘희박’

▎ 사진:연합뉴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LG 측 손을 들었지만 양측의 합의는 요원한 분위기다.SK이노베이션은 ITC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위해 총력전을 펴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배터리업계는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LG와의 합의가 최선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SK이노베이션이 거부권 유도를 위해 과도한 여론전을 펴다가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ITC는 이달 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건 최종 의견서를 공개하고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11개 카테고리 내 22개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침해로 인정된 영업비밀은 전체 공정, 원자재 부품 명세서 정보 등으로 광범위하다. ITC는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없이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섰다면 10년이 소요됐을 것으로 판단해 미국 내 수입금지 기간을 10년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ITC 결정에 문제 많다는 SK


ITC의 최종 의견서를 보면, 양측의 분쟁은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의 완승으로 끝났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며, 자료 수집·파기 등의 기업문화가 만연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이 증거 개시 과정에서 더딘 대응, 정직함이 부족한 대처 등으로 지나친 지연을 초래했는데, 이는 ITC와 ITC행정판사가 정한 절차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에도 LG에너지솔루션 측이 삭제되지 않은 자료와 복구는 불가능하지만 파일명이 남아있는 자료 등을 기반으로 파기된 증거에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는 내용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고 봤다. 예를 들어 LG의 원가·조달·가격 책정 등의 영업비밀을 활용해 SK가 이득을 취했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ITC는 “LG의 입증 수준은 연방순회항소법원이 기존 사건에서 요구한 수준을 훨씬 더 뛰어넘었다”고 설명했다.

ITC는 또한 SK이노베이션이 폴크스바겐과 지난 2018년 9~10월에 전기차 배터리 수주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서도 LG의 영업비밀 침해를 통한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SK이노베이션이 LG의 가격 정보 등 사업상 영업비밀을 침해해 가장 낮은 가격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ITC의 결정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SK이노베이션의 독자적인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에 대한 실체적인 검증 없이 소송의 절차적인 흠결을 근거로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ITC는 영업비밀 침해라고 결정하면서도 여전히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는지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며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LG에너지솔루션 측과 합의금 협상을 진행하면서 ITC 결정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배터리업계에선 “SK이노베이션이 LG와의 합의를 포기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위한 여론전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벼랑 끝’ SK 여론전에 역풍 불 수도

실제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10년씩 공장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면 그냥 사업을 접으라는 것”이라며 ITC의 수입금지 조치가 뒤집히지 않을 경우 미국 배터리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미국 시장 철수 언급 등 SK이노베이션의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은 미국 조지아주 지역 민심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SK이노베이션이 약 3조원을 투자해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시장 철수가 현실이 되면, 조지아주는 조 단위 투자와 수천개의 일자리가 공중분해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는 2월과 3월 등 두 차례에 걸쳐 바이든 대통령에게 ITC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시장 철수까지 거론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위한 총력전을 펴고 있지만, 배터리 업계에선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ITC 판결을 뒤집은 전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오히려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한 다소 과도한 여론전이 역풍으로 작용해 실낱같은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미국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할 것이란 입장이지만, 항소를 통해 ITC 결정이 뒤바뀔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2010년 이후 ITC가 영업비밀 침해로 수입금지 명령을 내린 6건 가운데 5건에 대한 항소가 진행됐으나 결과가 바뀐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소가 진행돼도 ITC의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수 조원에 달하는 합의금이 부담인 것은 맞지만, 현재로선 LG에너지솔루션 측과 협의를 거쳐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선 SK이노베이션이 보상금을 마련할 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유동자산은 13조3104억원이다. 유동자산은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다만 정유 사업 부진과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아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악재로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지난해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149%로, 2019년 말보다 32%p 확대됐으며, 같은 기간 순차입금도 2조원 이상 늘어난 8조7254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폴크스바겐이 파우치형이 아닌 각기둥(각형)의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밝힌 것도 악재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폴크스바겐의 선언으로 파우치형이 주력인 LG와 SK 모두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동안의 업력 등을 감안하면 LG보다 SK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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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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