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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호조 조선업계가 만난 암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 노사 갈등에 '속앓이' 

 

대우조선 파워공 90% 작업 거부…현대중공업 노사, 2년치 임단협 ‘삐걱’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3월 울산 본사 안에서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국내 조선업계가 부활 뱃고동을 울리는 와중에 노사 갈등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9년과 2020년의 임금·단체협상에 대해 현재까지도 합의하지 못했고, 대우조선해양은 하청회사 소속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작업 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회사 측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노사 갈등의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다.

올해 수주 내년 일감인데 목소리 커지는 노조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3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 520만CGT(133척) 가운데 한국은 286만CGT(63척·55%)를 수주해 중국(219만CGT·63척)을 따돌리고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3월 총 발주량은 2월 선박 발주량(295만CGT)과 비교하면 76% 증가한 수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124만CGT)보단 무려 320% 급증했다. 월별 기준으로 따지면, 조선업 호황이던 지난 2015년 6월(603만CGT) 이후 약 6년 만에 최대 규모다. CGT는 표준 화물선 환산 톤수를 말한다.

한국 조선업계의 올해 1분기 누적 발주량을 보면 전체 1024만CGT 가운데 532만CGT(126척·52%) 수주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중국 426만CGT(161척·42%), 일본 35만CGT(17척·4%) 순이다. 한국의 1분기 누적 발주량은 지난해 1분기보다 약 10배 증가한 실적으로, 2008년(646만CGT) 이후 13년 만에 최대 규모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해양사업 부문 중간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8일 기준으로 약 55억 달러(68척)를 수주해 올해 수주 목표(149억 달러)의 37%를 달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수주 실적(13억 달러·20척)과 비교해 323% 급증한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대우조선 역시 지난해 3월 말 실적(3억8000만 달러·3척)보다 371% 증가한 17억9000만 달러(19척)를 수주한 상태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올해 1분기 만에 수주 목표의 60% 이상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51억 달러(42척)를 수주해 수주 목표(78억 달러)의 65%를 달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3억 달러(3척)를 수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것이다.

국내 조선업계의 실적 개선과 대조적으로 노사 갈등 국면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지난 2일 2019년과 2020년 등 2년치 임단협에 대한 2차 잠정 합의안을 두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했으나 조합원 반대로 부결됐다. 전체 조합원 7223명 가운데 6760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이 중 3650명(53.99%)이 반대했다. 2년 넘게 임단협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현대중공업 안팎에선 “2차 잠정합의안이 찬반투표에서 가결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지난 2년간 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하면서 누적된 피로감 등을 고려하면 이번 2차 잠정 합의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올해 수주 성과와 연내 상장 추진 등의 현안으로 조합원의 기류도 변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수주 성과를 내고 있는 데다, 상장 등으로 대규모 자금 확보가 가능한 만큼 근로자들의 기본급도 인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2차 잠정합의안에 담긴 2019년 기본급 4만6000원 인상, 2020년 기본급 동결 등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 내에선 “2차 잠정 합의안은 지난 2년의 회사 실적 등을 감안해 도출한 합의안인데, 조합원들이 올해 성과 등을 근거로 과거 2년치 임단협 합의안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난감하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파워공 작업거부에 전운 감도는 대우조선

대우조선의 노사 갈등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대우조선 노조는 현대중공업으로의 매각에 반대하며 경상남도청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8일 기준으로 경상남도청에서 37일째, 공정위에서 23일째 농성 중이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을 매각하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며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에게 매각 철회에 대한 답을 들을 때가지 무기한 천막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상남도 측은 “현재로선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지난 2019년 대우조선 매각과 관련해 “고용보장과 협력업체 지원 등 최소한의 조건 없이는 진행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게 경상남도 측의 설명이다.

대우조선의 하청회사에선 근로자들이 지난 3월 31일부터 작업 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에 따르면 현재 대우조선 하청회사 소속 전체 파워공(배 철판의 녹 등을 파워그라인더로 제거하는 근로자) 가운데 90%인 400여명이 작업 거부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는 “지난 3월 31일 작업 거부를 시작한 이후 약 200명의 파워공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며 “사측이 단체교섭에 나올 때까지 작업 거부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 파워공들은 지난 6일 대우조선 사내 9개 도장업체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상태다. 이들은 일당 2만원 인상, 퇴직적치금 폐지, 단기계약 폐지(최소 1년 단위 계약), 법정 연차휴가 보장, 법정 공휴일 유급휴일 적용, 블랙리스트 철폐 등을 사측에 제안했다.

조선업계에선 그동안 파워공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파워공은 일당제이거나 회사와 1~2개월의 단기 고용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아 회사를 이동하는 일이 잦다”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 눈 밖에 난 파워공들의 재취업이 사실상 제한되는 등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돼왔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는 “회사 의사에 반해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등 이른바 회사에 찍히면 재취업이 되지 않는 사례가 있었다”며 “지난 2019년 대우조선 파워공들이 작업 거부에 나선 적이 있는데, 당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파워공 중에는 대우조선 하청회사에 채용되지 못해 삼성중공업 하청회사로 취업한 사람도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없는 삼성중공업의 경우 노동자협의회가 사측과 입단협을 진행해왔는데, 최근 사측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고용 불안 등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측은 노사 갈등 등과 관련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80호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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