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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일수록 고객과의 접점에 신경씁니다” 

세계 남성복 1위 ‘제냐 그룹’ 제냐 회장 

밀라노(이탈리아)=글 강승민 중앙일보 기자 / 사진 에르메네질도 제냐 제공
창업자와 이름이 같은 제냐의 에르메네질도 회장은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시장점유율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밀라노 본사에서 만난 그는 “불황에서 살아남는 기업만이 호황의 과실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는 제냐 그룹의 승리 전략을 들어봤다.

지난해 말 프랑스의 경제 일간지 레제코는 ‘명품 불패 신화도 60년 만의 경기침체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 명품 그룹인 루이뷔통모엣헤네시(LVMH)의 간판 브랜드 루이뷔통은 일본 도쿄 긴자 거리에 2010년 오픈할 계획이던 세계 최대 매장 계획을 백지화했다.

자금 사정 때문이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화 한 미국발 금융 쓰나미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가운데 불황에도 끄떡 없다던 명품 산업에도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두자릿수 성장을 하며 최근 수년간 명품 시장의 활황을 이끌어온 LVMH는 금융위기 탓에 주가가 약 40%나 하락했다. 매년 성장만 하던 일본 시장에서도 매출이 7% 줄었다. 창사 이래 처음이다.

세계 2위 명품 그룹인 스위스의 리슈몽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감원 계획을 세운 티파니, 계약직 해고를 통보한 샤넬 등 명품 업계 전반이 비상이다. 세계 최대 고급 남성복 메이커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에르메네질도 회장은 이런 가운데서도 “시장점유율을 지키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 본사에서 만난 그는 “불황에서 살아남는 기업만이 호황의 과실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제냐 그룹의 ‘불황기 경영 전략’을 공개했다. 2007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는 그는 창업자와 이름이 같다.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이하 제냐) 그룹의 100년 노하우는 무엇일까.

한국 시장에선 원화 가치 하락으로 제냐 그룹 같은 명품 업체도 힘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룹은 원화 약세에도 제품 값을 거의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익을 줄여서라도 시장점유율을 지켜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얘기는 믿지 말라’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유로화에 비해 원화 가치가 많이 떨어지면서 한국에서 유럽 브랜드가 고전하고 있습니다. 원화 대비 유로화 절상 폭을 그대로 제품 가격에 반영한다면 지금 당장 한국 시장에서 우리 브랜드는 제품 가격을 40~50% 이상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대로 가격을 올리면 아무리 고급 브랜드 소비자라 해도 우리 제품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제냐의 올 봄·여름 상품은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대비 4~5% 정도 인상된 가격에 팔리고 있는데 원화에 대한 유로화 값은 같은 기간에 비해 약 30% 올랐다.

제냐 같은 고급 브랜드 고객이라면 경기 영향을 덜 받지 않을까요.
“고급 제품을 사는 소비자도 가격 저항이 상당합니다. 고급 브랜드 특성상 브랜드 충성도가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객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밑지고 팔 순 없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이 어렵다고 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 시장점유율을 지킬 수 없습니다. 어려울 때 잃은 시장을 호황기에 다시 찾는 데는 10~20배의 노력이 들기 때문이죠. 오히려 이때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고객과의 접점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 브랜드의 철학입니다.”


제냐의 최고급 맞춤 양복

경영자 입장에선 당장 수익이 줄어들면 걱정이 될 텐데요.
“CEO로서 내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자신 앞에 놓인 물컵을 가리키며) 평범한 얘기지만 난 이 컵에 물이 ‘반 밖에 없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이나 남았다’고 여기는 거죠. 기업 경영에서의 원칙도 그렇습니다. 적절한 전략만 있다면 조바심을 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한국에 수출하는 다른 유럽 브랜드는 원화 약세 때문에 가격 책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냐 그룹은 수직계열화를 이뤘기 때문에 마진을 줄이면서도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캐시미어나 울 같은 원료를 조달하고 그것으로 원사를 만든 다음 원단을 짜는 것, 또 기성복을 제작하는 전 과정이 모두 제냐 그룹 내에서 이뤄지고 있죠. 단계마다 마진 폭을 줄이면 굳이 환율 때문에 고객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격 책정 과정이 궁금합니다.
“환율은 늘 변합니다. 수출을 하는 입장에선 환율에 따른 가격 변화는 언제나 대비해야 하는 변수죠. 우리 제품 가격은 대개 1년 전에 정해집니다. 지금 한국에서 팔리는 제냐 브랜드의 가격이 덜 오른 것도 1년 전 환율에 맞춰 놓은 덕입니다. 물론 그 환율도 당시보다 더 낮게 잡아서 급격하게 제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피하고 있습니다.”

수익이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불황을 견뎌낼 수 있는 기업의 체력이 필요할 텐데요.
“재무적 안정성은 100년 기업의 제1원칙입니다. 이것이 담보돼야만 불황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같은 기업은 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재무적 안정성이 갖춰져 있다면 경기 위축의 위험은 피해갈 것입니다.”

이익의 얼마만큼을 비축해 둬야 불황기를 견딜 수 있죠.
“그것은 비밀입니다. 가족 기업이니 공개할 의무도 없고….”(웃음)

제냐의 원단은 한국의 동네 양복점에서도 고급으로 통합니다. 100년 동안 명성을 유지하며 전 세계 곳곳에서 성공적인 영업을 해온 비결은 뭡니까.
“남성복에 전념한 것, 수직계열화를 이룬 것, 이탈리아 정통 신사 정장의 맥을 이은 것. 이 세 가지를 꼽겠습니다.”

‘100년 전통’에는 낡은 이미지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혁신이 중요하죠. 다행히 우리에겐 브리오니, 살바토레 페라가모,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강한 경쟁자들이 있어 혁신의 충분 조건을 제공해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혁신의 속도 조절입니다. 개혁과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고객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최고급 슈트를 입는 고객의 취향은 상당히 보수적이죠. 그러나 패션은 속성상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패션 디자인에서 감각이 너무 앞서 가면 고객이 쫓아오기 힘들고 그렇다고 너무 뒤처지면 고객에게 외면당합니다. 그러니 항상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고객 요구와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혁신을 이뤄 나가야죠.”

한국 남성복 시장에선 갈색 계열이 잘 팔리지 않습니다. 피부색과 비슷해서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죠.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갈색 계열 양복·원단을 한국인에게 세일즈 한다면….
“제냐가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고객을 상대로 100년 동안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현지화(glocal) 전략 덕분이었죠. 현지 고객의 취향을 전적으로 존중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알고 적응해야만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은… 1910년 이탈리아 북부의 트리베로에 설립된 방직공장이 모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기업으로 4대째 이어오고 있다. 전 세계에 500여 개의 매장이 있다. 2007년 매출액은 8억4300만 유로(약 1조6400억 원)다.

재단 세워 80년 동안 숲 가꿔
제냐 그룹의 사회공헌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차로 2시간여를 달렸다. 알프스 산맥과 가까운 트리베로로 가는 길. 고속도로를 거쳐 트리베로에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국의 여느 시골과 다름 없는 산과 들의 모습이었다. 알프스 산맥에 가까워서인지 제냐재단 건물은 가파른 산악 도로를 한참 올라간 뒤에야 나타났다. 창업주의 4대손인 안나 제냐(52) 에르메네질도 제냐재단 회장이 기자를 맞았다.

안나 제냐 재단회장은 재단 건물의 유리창 사이로 펼쳐진 울창한 삼림을 가리켰다. 커다란 통 유리는 한 폭의 수채화를 둘러싼 훌륭한 액자처럼 보였다. 그는 “풍경이 아름답다”는 인사에 이렇게 답했다. “단지 풍경이 아름다워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저 울창한 나무들은 1930년대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가꾼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알프스 하면 원래 푸른 숲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30년대 이곳 주민들은 나무를 베 땔감으로 썼다. 화석연료보다 나무가 훨씬 저렴하고 구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제냐 회장은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기자가 바라보고 있는 곳과 같은 곳의 사진인데도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민둥산 그대로였다.

제냐 재단회장은 “30년대 이런 상태의 삼림을 보고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당장 조림을 시작했다. 그는 자연이 건강해야 더불어 살아가는 근로자도, 자신도 행복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민둥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처럼 환경에 대한 기업의 책임 의식이 없던 때였지만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생각은 그때부터 남달랐다.”

그는 “80여 년 전부터 이 지역의 조림부터 시작해 환경보호 활동에 힘써 왔는데 2000년엔 더욱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에르메네질도 제냐재단’을 설립했다”고 소개했다. “제냐 그룹이 조림한 지역만 100만m2가 넘는다. 예전의 숲이 다시 돌아온 다음엔 이 지역에 서식하는 희귀한 동물 보호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만큼 우거진 삼림이라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돈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제냐 재단회장은 “경제적 수익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은 제냐 그룹이 자연 상태의 삼림을 복원한 뒤 이탈리아 정부가 법으로 보호하게 됐다. 덕분에 요즘은 이 지역이 천혜의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얻었다”고 자랑했다.

제냐 재단회장은 자부심을 갖고 설명한 이 지역은 해발 1500m에 있는 스키장, 산악 트래킹과 승마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제냐 그룹이 조성한 것을 기려 지역 전체를 ‘오아지 제냐(Oasi Zegna)’ 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어 ‘오아지’는 영어의 오아시스와 같은 뜻이다.

그의 자랑이 계속됐다. “자연 보호뿐 아니라 근로자의 복지를 위한 것도 우리 그룹은 30년대부터 시작했다. 수영장과 영화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을 완공한 것도 30년대다. 공장 근로자들의 복지 시설이다. 이곳은 지금도 ‘카사 제냐(Casa Zegna)’로 불리고 있다.”(카사 제냐는 이탈리아어로 ‘제냐의 집’이란 뜻이다.)


200904호 (200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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