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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 GERMAN CARS - 한국에서 고속 질주하는 독일차 

 

김태진 포브스코리아 전문기자
독일차가 한국 수입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세 대가 팔리면 두 대 이상이 독일차다. 올 1월 수입차 판매에선 특이한 데이터가 나왔다. 일본차 점유율이 처음으로 한 자릿수(9.8%)로 떨어졌다. 독일차는 역대 최대치인 74.8%에 달했다. 독일차 강세의 비결은 무엇인지, 문제점은 없는지 짚어본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최근 2년간 BMW,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 아우디·폴크스바겐으로 대표되는 독일차 군단이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전체 수입차 판매(13만858대) 가운데 이들 독일차는 10만5580대를 팔아 68%를 점유했다.

수입차 세 대가 팔리면 두 대 이상이 독일차인 셈이다. 판매 대수만 전년 대비 26% 증가했고 점유율도 4%포인트 높아졌다.

브랜드별로 BMW가 3만3066대로 1위를 차지했고 폴크스바겐(2만5649대), 벤츠(2만4780대), 아우디(2만44대) 순으로 1∼4위를 독일차가 휩쓸었다.

올 1월에는 이런 쏠림이 더 심해졌다. 전체 1만4849대 수입차 중 독일차는 1만1112대로 74.8%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치다.

독일차가 약진하면서 한때 국내 수입차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차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2만2042대를 팔아 전체 수입차 가운데 14%에 그쳤다.

시장 점유율은 2012년 대비 5%포인트나 빠졌다. 올 1월에도 일본차는 계속 후진해 점유율이 9.8%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12.1%)보다 2.3%포인트 또 빠진 것이다.

신차 시장이 100만 대가 넘는 자동차 주요 소비국 중 한국처럼 독일차가 절대 강세인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은 독일차보다 일본차와 한국차가 월등히 많이 팔린다. 도요타·혼다·닛산같은 일본 빅3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450만 대 이상 판매했다. 현대·기아차도 130만 대 넘게 팔았다.

폴크스바겐과 벤츠·BMW·아우디·포르셰 같은 독일차 다섯 곳을 합쳐도 120만 대도 안 된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도 독일차 쏠림은 별로 없다. 지난해 폴크스바겐-아우디 그룹이 304만대 팔았지만 GM도 294만대, 현대·기아도 160만 대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 소비자는 유독 독일차를 좋아하는 것일까. 2005∼2008년 4년 동안은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 점유율이 50%를 넘어서기도 했는데 말이다.

전문가들은 독일차 강세의 이유로 2010년 이후 디젤 중심으로 변화한 한국 수입차 시장에 맞는 상품성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다음으로 고급차라는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의사결정이 느린 일본 업체에 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 시스템 등을 지목했다. 독일차는 매달 시장 상황을 보면서 엄청난 금액의 할인 정책을 수시로 쓴다. 이이 비해 일본 업체는 수많은 회의와 방대한 자료를 준비하느라 의사결정이 늦다. 내부에서조차 ‘보고와 자료가 너무 많아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자동차 품질 및 브랜드 조사업체인 ‘마케팅 인사이트’의 2013년 수입차 백서를 보자. 일본차는 독일차보다 품질에서 앞서 있지만 브랜드나 상품성(특히 디젤)에서 독일차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차의 품질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지난해 품질 평가에서 폴크스바겐이 국산차 평균보다 떨어지는 등 전체적인 독일차의 품질 지수가 하락했다.

독일차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차종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BMW는 국내에 총 86개 차종을 판매한다. 주력 모델인 5시리즈 종류만 13가지다. 미국 포드는 17종, 크라이슬러도 14종에 불과하다. 일본 도요타 역시 판매 차종이 11가지 뿐이다. 차종이 많으면 선택의 범위가 넓어져 보다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도 있다. ‘명품이 최고’라는 한국인의 브랜드 집착증이다. 독일차는 시승 없이도 입소문만 듣고 산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체 판매 차량의 62%가 디젤차

독일차 강세의 가장 큰 이유는 디젤 열풍이다. 2011년 35.2%에 불과했던 수입 디젤 판매 비중은 2012년 50.9%로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전체 판매 차량(15만6497대)의 62.1%까지 치솟았다. 디젤차가 강세라는 유럽의 50∼55% 비중보다 쏠림이 더 심하다. 2005년 디젤 승용차 판매가 허용되면서 디젤은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친환경차에다 연비가 좋은 경제적인 차로 탈바꿈했다.

상대적으로 일본차는 인피니티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변변한 디젤 모델이 없다. 수입차 10대 가운데 6대가 디젤인데 주력 상품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미국차도 디젤 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차 업체의 한 관계자는 “디젤은 가솔린 차보다 200만∼300만원 비싼데 소비자는 연비가 30% 정도 좋다는 말에 초기 구입비용을 망각하고 디젤로 넘어간다”며 “가솔린의 연비향상 기술이 놀랍게 발전한데다 정숙성도 더 좋아져 2~3년 내 가솔린 시장으로 소비자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할인 거센 독일차에 현대·기아 속수무책

독일차 강세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현대·기아차다. 대당 판매이익이 큰 4000만원이 넘는 대형차(제네시스급 이상)에서 시장을 빠르게 잃고 있다. 역으로 최근 3년간 독일에서 ‘가격대비 가치가 높은 차’로 현대·기아의 비약적인 성장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유독 현대·기아차의 내수 판매는 신통치 않다. 현대차는 전년 대비 1.3% 줄었다. 기아차는 무려 3.5% 감소했다. 소폭 감소한 양(量)보다 질(質)이 문제다. 그동안 현대·기아가 내수 시장에서 알토란처럼 이익을 주워 담던 중대형 세단이 독일차에 밀려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이 뼈아프다. 대표적인 게 기아 K9, 현대 제네시스·에쿠스같은 대형차다. 독일차를 대표하는 중대형차인 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의 지난해 월 평균 판매량은 2500대를 훌쩍 넘긴다.

이들 모델 가운데 70% 정도가 6000만원대 초반 가격대에 포진한다. 수입차 본사의 판매 지원과 딜러들의 자체 할인 폭을 감안하면 실제 구입가격은 5000만∼5700만원이다. 지난해 9월 BMW 5시리즈 마이너 체인지를 앞두고 가장 인기있던 520d(소비자가 6200만원)는 5000만원 이하에 판매됐다. 할인폭이 무려 1200만원이 넘었다. E클래스 역시 차종에 따라 300만∼600만원 할인은 기본이다. A6는 올해 1~2월 1000만원 이상 할인해 팔고 있다.

반면 현대·기아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유례 없는 정가 판매제를 2010년 도입했다. 여기에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가격을 5% 이상 올린다. 전문가들은 현대·기아가 독일 수입차와 경쟁하기 위해선 뛰어난 편의장비를 갖추고도 가격이 20∼30% 더 싸야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가격차가 20% 이내로 좁혀지면 5% 이상 상시 할인하는 수입차에 가격 경쟁력에서 뒤진다는 것이다.

성능도 고속주행 안정성에서는 독일차를 따라잡기에는 아직까지 2%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기아차 대형 세단인 K9의 경우 평균 판매가격이 5500만원대다. 독일 수입차에 맞먹을 정도로 비싸 판매가 부진하다는 분석이다. 독일차 승승장구에 제동을 걸 현대·기아차와 일본차 등의 반격 카드가 뭘지 주목된다.

201403호 (20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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