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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 yeontan energy - 해외에서 활활 타오르는 우리 연료 

 

권태훈 연탄에너지 대표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연탄으로 연탄을 만들어 보급한다. 한 해에 약 100만 개를 판매한다.

▎권태훈 연탄에너지 대표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연탄을 사용하는 보일러와 난로로 대박을 쳤다.



1970·80년대 겨울, 집집마다 쌓여 있는 연탄재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90년대부터 사용량이 줄어 이제는 ‘연탄구이’ 고깃집에서나 볼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연탄이 새로운 난방연료로 주목 받고 있다.

이곳의 수도 비쉬케크에 연탄공장을 짓고 연탄을 만드는 권태훈(58) 연탄에너지 대표는 “사용해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 점차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생산직 직원 13명을 포함한 현지 직원 20명과 키르기스스탄에서 연탄을 만드는 권 대표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연탄에너지의 연탄공장은 2011년 가동해 이듬해 생산에 들어갔다. 권 대표가 연탄에너지를 설립하기 전 하던 일은 연탄과 무관했다. 그는 2007년 건축 관련 회사 ‘아티스글로벌’ 대표로 취임하면서 키르기스스탄과 인연을 맺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그가 맞은 첫 겨울은 무척 추웠다.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키르기스스탄은 전기나 가스 공급이 열악해 거의 석탄으로 난방을 하더라고요. 전기를 풍부하게 생산하는 나라인데도 공급체계가 미흡해 단전이나 정전이 자주 일어났어요. 가스를 공급하는 인프라도 부족했죠.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광산에서 채취한 석탄 중 덩어리만 사용하고 가루는 버리는 것을 본 권 대표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르기스스탄 정부 관계자에게 ‘버리는 석탄 가루로 한국의 연탄을 만들 수 있다’고 했죠.” 그렇게 겨울이 지났고 다시 2008년 겨울이 왔다. 그가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할 때였다. 키르기스스탄 정부 관계자는 권 대표에게 연탄과 관련 장비를 보고 싶다고 했다.

2009년 1월, 권 대표는 한국에서 연탄 100장과 연탄 보일러·난로를 비행기에 싣고 키르기스스탄으로 가 장관 등 정부 관계자 앞에서 연탄 난로와 연탄 보일러를 직접 시연해 보였다. 연탄 한 개를 비행기에 싣는 데 10만원이 넘게 들었다. “연탄이 금탄(金炭)이었죠.”

권 대표의 연탄 시연을 본 키르기스스탄 관계자들은 “당장 사업을 시작하자”고 했다. 석탄처럼 연기가 많이 나지 않고 한번 불을 지피면 오래 갔기 때문이다. 국가사업으로 진행하자는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제안에 권 대표는 ‘한국의 기술만 전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에 위치한 연탄에너지의 연탄공장.
쉽게 생각했지만 고생도 많아

연탄 사업을 위해 한국에 돌아온 권 대표는 키르기스스탄의 석탄으로는 연탄을 만들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았죠.” 우리나라의 석탄은 무연탄(無煙炭)이기 때문에 연기도 별로 나지 않고 연탄 모양을 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에서 나오는 석탄은 유연탄(有煙炭)이다.

연기도 많이 나고 연탄 모양으로 만들어도 타고 나면 재가 뭉쳐져 있지 않아 사용하기 힘들다. 십수 년 전부터 유연탄으로 연탄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왜 빨리 사업을 시작하지 않냐”는 재촉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광해관리공단에서 유연탄으로 연탄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단을 찾아갔더니 몽골의 공장에서 연탄을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몽골에 있던 유연탄 연탄공장은 여러 사정으로 현재 폐쇄됐다). 공단 관계자와 몽골에서 연탄 생산 과정을 지켜본 권 대표는 키르기스스탄으로 달려가 사업 준비를 했다. 다른 물질을 첨가해 연소되고 나서도 재가 부서지지 않는 연탄을 만들었다. 모양은 한국의 연탄과 똑같은 22공탄이다.

이후 사업은 순탄해 보였다.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실은 2009년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의 취임행사에 한국의 광해관리공단이 참석하고 연탄기술지도 계약을 하자고 요청했다. 2010년 2월, 한국에서 출발한 연탄 제조설비가 키르기스스탄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같은 해 4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났다. 대통령과 가족들, 주요 정부인사들이 해외로 도피했다. 새로 들어선 과도 정부는 과거 대통령 및 친인척이 관련된 모든 회사를 몰수했다. 기계를 기다리며 한창 사업 준비를 하던 김 대표는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 연탄에너지는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사업 진행 계획은 무산됐다. 권 대표는 백방으로 투자자를 찾아 회사를 다시 꾸렸다.

연탄은 키르기스스탄 주민에게 생소한 제품이었다. 사용 방법을 모르는 주민에게 직원들이 일일이 번개탄 불을 피워주며 설명했다. 유연탄으로 만든 연탄을 사용하는 보일러·난로도 자체 개발했다. 이곳의 난로 입구는 옆에 있다. 유연탄은 무연탄에 비해 빨리 타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타오르지 못한다. 위에서 아래로 타도록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난로 윗부분에 입구가 있으면 열효율이 좋지 않다.

“너무 쉽게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얻은 기술을 토대로 러시아 등에서는 특허를 취득했고, 다른 여러 나라에 기술특허를 출원 중입니다. 몇몇 나라에서는 기술 전수를 요청했어요. 사용해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점차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에요.”

현재 키르기스스탄에서 연탄은 거의 가정 난방용이다. 간혹 식당이나 비닐하우스에서도 사용한다. 연탄 1개의 소비자가는 우리나라 돈으로 250원 정도. 한 해에 키르기스스탄에서 팔리는 연탄에너지의 연탄은 약 100만 개다. 연탄에너지 공장은 하루 1만~2만 개의 연탄을 생산한다.

하지만 공장의 하루 생산 능력은 15만 개이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도 대응할 수 있다. “힘들긴 했지만 다른 나라에도 좋은 사업파트너가 있다면 추진해 볼 유망 사업입니다.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 등 이곳보다 북쪽 지역은 더 춥기 때문에 전망이 밝습니다.”

한국 난방문화가 해외로 연탄뿐 아니라 한국식 난방문화가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 온돌 방식으로 난방하는 중국인도 늘고 있고 서울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 중에는 바닥을 온돌난방으로 개조하는 사람도 있다.

온돌 시스템과 함께 한국 가스보일러 수출도 청신호다. 경동 나비엔은 199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1995년에 현지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중국은 온돌식 난방에 관심이 많은 데다 앞으로 시장이 커질 것에 대비해 온돌 플러스 열교환기 기술을 도입해 차별화를 꾀했다. 이 회사는 미국 순간식 콘덴싱온수기시장 1위, 러시아 벽걸이보일러시장 1위다.

한국무역협회 기준 국내 보일러 및 가스온수기 수출액의 63%를 차지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보일러로 자리매김했다. 귀뚜라미 보일러는 2012년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시장을 겨냥한 ‘귀뚜라미 건식난방시스템’을 공개했다. 바닥공사 없이 간단하게 온돌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비용도 기존 방식 대비 낮춰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을 겨냥했다.

가스보일러 수출이 지난해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가 집계한 ‘2013년도 가스연소기 수출실적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스보일러 수출액은 1억1571만 달러(약 1234억471만5000원)로 전년도 9484만 달러보다 22.0% 증가했다.


201403호 (20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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