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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으로 전 세계 잇는다 

 

최은경 포브스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세계 어디서든 침대와 아침밥을 제공해주는, 아니 제공해줄 사람을 찾아주는 온라인 숙소 공유서비스업체 에어비앤비가 급성장하고 있다. 20대 젊은이 셋이 모여 창업한 이 회사는 5년 만에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 용산구 백해영갤러리 옥상, 방은겸 작가가 그린 벽화 앞에서 여행 기분을 만끽하는 네이선 블레차르지크.



“여기 사진 좀 보세요.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대나무 집입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정글이 보이고요. 침실과 욕실이 3개씩 있어요. 가만 보자, 하룻밤 300달러가 넘네요. 제가 묵었을 때는 290달러였는데.” (웃음)

에어비앤비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네이선 블레차르지크(31)는 지난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함께 묵었다는 숙소를 소개했다. 물론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곳이다. 그는 꽃과 마사지 서비스를 미리 부탁해 아내에게 좋은 이벤트를 해줬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블레차르지크는 세계를 다니며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에 묵는다. 지난 4월 10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서울 용산구 백해영갤러리 역시 그 중 하나다. ‘주인장’ 백해영 관장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과 공간을 나눠 쓸까 고민하다 에어비앤비에 등록했다”며 “나와 맞는 투숙객을 고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지난밤 이곳에서 묵었다는 블레차르지크는 “디자인이 인상적인 곳”이라고 평했다. 그가 직접 숙소를 이용해보는 것은 현지화를 위해서다. “현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나라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물론 숙소 주인과 여행자들을 모아놓고 대화하며 정보를 얻습니다. 이번에 서울에 온 것도 한국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은 아시아 넘버원 시장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만나 한국 사업에 대해 얘기했다는 블레차르지크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곳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에어비앤비는 2012년부터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에어비앤비의 회원 수가 지난해 600% 넘게 증가했고, 외국의 에어비앤비 숙소를 이용하는 한국 여행객 수는 470% 가까이 늘었습니다. 현재 등록된 한국 숙소는 2000개를 웃돕니다. 브랜드 인지도 역시 많이 높아졌어요.” 블레차르지크는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게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한국 시장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비단 한국 숙소만의 특징은 아니다.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에는 호텔 같은 일반 숙박시설과 다르게 이야기가 있다. 현지인의 가정집부터 나무 위 통나무집, 선상 가옥, 고성, 이글루, 섬, 비행기까지 독특한 콘셉트의 숙소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블레차르지크는 “에어비앤비는 단순히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여행 경험을 선물한다”며 “여행자와 숙소 주인 사이에서 기대치를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숙소를 등록할 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이유다. “예약·취소·결제 정책을 기본으로 지켜야 하고 최근 안전 요건을 추가 했습니다. ‘이 숙소에는 연기 탐지기가 꼭 있어야 한다’와 같은 내용입니다. 또 투숙객이 싫어할 만한 요소가 있는지도 물어봅니다. 있는 그대로 조건을 알아야 서로 원하는 사람들끼리 이어줄 수 있어요.” 또 실제로 숙소에 머문 사람만 남길 수 있는 후기는 투숙객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블레차르지크는 설명했다.

독특한 콘셉트의 숙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글로벌 네트워크 덕분에 블레차르지크와 공동창업자인 브라이언 체스키, 조 게비아는 억만장자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3월 미국 포브스는 에어비앤비가 10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보도했다. 4월에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주주총회 때 주주들이 머무를 저렴한 숙박공간을 구할 수 있을지 에어비앤비에 요청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아버지와 ‘놀이’가 창의성 키웠다”

지난해 12월 31일 하루 동안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사람은 25만 명에 달했다. “지난해 말까지 1100만 명의 여행자를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해동안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여행자는 600만 명이었어요. 그전 4년을 더한 것보다 한 해 실적이 더 좋았던 거죠.”

블레차르지크는 “우리는 큰 꿈과 비전이 있고 지금은 그 꿈을 이뤄나가는 시작 단계”라며 “현재 우리 회사가치가 얼마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투자 유치와 관련한 소문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그보다 5년, 10년 후가 더 중요하다”며 “규모를 더 키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3명의 공동창업자는 각자 역할이 있다. 체스키는 CEO로 경영을 책임진다. 블레차르지크와 최고제품책임자(CPO)인 게비아는 신규 사업을 연구한다. “몇 가지 시험적으로 운영하는 것 중 하나가 청소 서비스입니다. 많은 여행객이 투숙할 때 숙소의 중요하게 청결성을 생각하더군요. 주인에게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고 에어비앤비가 청결성을 인증하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블레차르지크는 엔지니어로서 서비스가 어떻게 구축됐는지 잘 안다는 점이 새로운 사업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블레차르지크는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 매니저, 옵넷테크놀로지 엔지니어로 일했다. 열두 살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익히고 고등학생 때 온라인 마케팅 사업을 한 이력을 자랑한다.

“아버지가 전기기사였어요. 아파서 결석한 날 아버지 서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책을 보게 됐어요. 그때부터 컴퓨터 게임 대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취미로 삼았습니다. 작업한 것을 인터넷에 올리곤 했는데 열네 살 때 누가 1000달러를 줄 테니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거예요. 주변에서 믿지 않았지만 일을 해주고 정말 1000달러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줘 그렇게 4년 동안 사업을 했어요.” 당시 대학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정작 얻은 것은 도전정신과 자신감이었다고 한다. “’와, 이거 신난다. 컴퓨터만 있으면 제품을 만들어서 세계 누구한테나 팔 수 있겠구나. 평생 이 일을 하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했죠.”

어린 시절 남다른 기질을 보인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다.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게 해줬어요. 직장에서 전기제품을 가져와 분해하고 안에 뭐가 있는지 보게 했죠. 전기회로에 불이 왜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설명해줬어요. 아버지는 뭔가 고장이 나면 ‘우리가 고치지 뭐’ 라고 했어요. 방법을 모를 때는 책을 사서 연구하고 같이 수리하는 것이 아버지와 저의 놀이였어요. 그런 경험이 호기심을 키워주고 창의성 발달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는 성공한 사업가로 주목 받고 있지만 “개인적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여전히 자전거로 집과 회사를 오가며 일에 몰두한다. “절차를 간소화해서 더 편하게 예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올해의 과제입니다. 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그에게 에어비앤비의 경쟁상대를 물었다. “누군가 뉴욕에 와서 에어비앤비의 숙소에 머물고, 고향에 돌아가 집의 빈 방을 에어비앤비에 등록한다. 이런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 우리 경쟁력입니다. 비즈니스 모델과 웹사이트는 모방할 수 있어도 촘촘하게 형성된 커뮤니티를 따라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에어비앤비는… 세계 곳곳의 숙소를 온라인과 스마트폰으로 등록·검색·예약할 수 있는 온라인 숙소공유서비스 업체다. 숙소의 주인은 여유 주거공간을 사이트에 등록하고 여행자들은 원하는 숙소를 검색해 숙박을 신청한다. 에어비앤비는 둘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 회사는 공유경제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을 나온 동창생 브라이언 체스키, 조 게비아가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숙소가 없어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방을 빌려준 것이 에어비앤비의 시작이었다. 원래 이들과 함께 살던 블레차르지크도 곧 합류했다. 회사명은 공기를 불어넣어 언제든 쓸 수 있는 공기 침대(air bed)와 아침(breakfast)을 제공한다는 뜻에서 지었다.

201405호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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