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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음식 이야기② 옛 여자 친구의 레시피 

피카소에게 여자란 창조적인 작업의 원천이자 인생과 예술 속에 녹아 있는 불가결의 존재였다. 피카소의 여인을 따라가 보면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주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961년 3월 14일,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자크린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신문의 표제를 장식했다. 심지어 피카소의 가까운 친구들도 보도가 있기 전까지 이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피카소보다 거의 50세 연하였던 자크린은 마치 그림자처럼 피카소의 옆을 지켰고, 자기 자신은 아예 없는 듯, 피카소의 모든 변덕을 이해하고 받아주었다. 자크린이 만드는 요리에는 자극적인 맛보다는 피카소의 건강에 대한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위 수술을 받은 피카소는 담배를 손에 댈 수 없었고, 먹고 마시는 데 항상 조심해야만 했으며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남을 꿰뚫어 보는 듯한 예리한 시선도 시력이 떨어져 둔감해지고, 청력도 감퇴되어 이제는 방문객과 재치 넘치는 논쟁을 벌이는 일도 거의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피카소일지라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상상력은 흐려지지 않았다. 상상 속에서 그는 약해지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했다. ‘장어 마틀로트’는 자크린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린, 요리에 대한 헌사로 바치는 피카소의 그림이다. 스태미나에 좋다는 장어와 양파가 주재료인 이 요리는 그림으로 보기에도 성적인 상징성을 띤다. 구불구불 꿈틀대는 긴 장어는 힘 있는 남성을, 붉은 빛을 띤 즙 많은 둥근 양파는 여성을 닮았다.

자크린은 피카소가 작업에 몰두할 때는 집안일을 돌보았고, 매력적이고 세심한 안주인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다. 피카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의 사랑에 의존했다. 젊어서는 여인에 대한 욕망이 그에게 생명력의 원천이었다면, 이제는 여인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사랑 중독에 가까웠다. 심지어 아주 짧은 기간이라도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은 공백 상태에서는 창조적인 일에 거의 몰입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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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호 (20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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