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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가전의 애플’ 발뮤다 CEO 테라오 겐 

고객의 즐거운 체험을 상품화한 강소기업 

글.사진 김태진 포브스코리아 전문기자
발뮤다의 테라오 겐 사장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록 밴드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잠자는 것 빼고는 모두 일하는 시간일 정도로 일벌레이자 늘 고민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창조적인 CEO다.

▎칸막이가 없는 테라오 사장의 책상은 애플 제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컴퓨터에 직접 타이핑을 하지 않고 노트에 펜으로 기록을 먼저 한다. 디자인 초안부터 성능 개선까지 세심하게 적어 놓고 직원들과 소통한다.
지난 6월 중순, 일본 도쿄도 외곽인 무사시노 시에 위치한 발뮤다의 5층 건물. 테라오 겐(41) 사장을 만나기 위해 3층에서 내렸다. 하지만 100여 평 규모의 3층 공간 어디에도 사장 집무실은 따로 없었다. 20여 명의 직원 책상 옆에 그의 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책상 뒤에는 전자기타가 놓여 있다. 사무실에는 어떤 칸막이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옆자리에는 이 회사의 중핵(中核)인 5명의 디자이너 책상이 자리한다. 그는 수시로 디자이너 곁에 다가가 말을 건넸다. 소형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발뮤다의 사무실 풍경이다.

테라오 사장의 인생 역정은 특이하다. 17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스페인ㆍ이탈리아ㆍ모로코 등 지중해를 따라 1년간 여행을 했다. 경비는 도자기 작품을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겨준 보험금 3000만원이었다. 아버지도 그에게 학교 공부보다 유럽 여행을 권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그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의사소통을 했다. 여행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와서는 뮤지션의 길로 들어섰다. 10년간 기타를 치며 록밴드 생활을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틈나는 대로 중소기업 공장에서 제품 만드는 것도 배웠다. 스타를 꿈꾸던 그의 꿈은 연예 기획사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희망이 된 것은 애플사 제품 디자인이 소개된 한 디자인 잡지였다. 잡지를 본 순간 예전 유럽 여행에서 마음을 파고들던 ‘아름다움’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는 창업을 결심한다. 그리고 2003년 디자인 창조기업 ‘발뮤다’를 설립한다. 그는 “록 뮤지션이든 디자인 기업이든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내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죽을 각오로 일을 했다”

처음 제작은 노트북 받침대였다. 이어 스탠드 조명을 생산했다. 발뮤다 1층 창고에 보관 중인 초기 제품들을 둘러봤다. 멋진 디자인, 깔끔하고 수준 높은 마무리가 매력적이다. 제품기획부터 설계까지, 중국에 외주 생산관리까지 혼자서 했다고 했다. 홈페이지도 그가 공부해 직접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홈페이지 디자인을 직접 한다. 그는 “정말 죽을 각오로 일을 했다”며 “디자인에 혼을 쏟아 부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접한 게 행운”이라고 말했다. “애플 제품의 경쟁력은 고객이 불편했던 경험을 없애고 기분 좋은 체험을 상품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고객이 생활에서 느끼는 ‘아, 이 제품은 이런 때 편리하고 아름답구나’하는 체험 말이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이 아니다. 애플 제품은 디자인이나 기능을 모방(COPY)를 할 순 있어도 체험까지 모방할 수 없다. 그런 게 발뮤다에 접목됐다.”

그는 지독한 일벌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골프 같은 취미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잠자는 것 빼고는 모두 일하는 시간이다. 쉬는 시간은 잠을 자기 전 한 시간 정도 전자기타 연주나 작곡을 하는 것이다. 디자인 창조력을 키워 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 16시간 정도 일한다.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면 기존 제품의 문제점이 눈에 보이고 차별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발뮤다의 레인 가습기는 물 항아리의 디자인을 채용했다. 단순히 디자인만 좋았다면 성공과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가습기를 쓸 때 가장 불편한 게 물을 보충할 때다. 우리는 물만 부어주면 된다. 디자인이 좋다고 팔리지 않는다.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 고객을 위한 즐거운 체험의 상품화가 발뮤다의 경쟁력이다.”

그는 소위 명문대 출신도, 부잣집 아들도 아니다. 요즘 일본과 한국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조언을 구했다. “명문대에 못 갔다고, 대기업에 취직 못 했다고 자포자기하면 어리석음만 남는다. 명문대 출신은 기존 시스템에 익숙해 머리가 굳은 경우가 많다. 과감히 창업에 도전해라. 인터넷 덕분에 얼마나 정보를 구하기 쉬워졌나. 앱 개발같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나 역시 인터넷으로 물류·구매를 공부하고 홈페이지 디자인까지 직접했다. 대신 피나게 일을 해야 한다. 적당히 일해 성공할 수 없다.”

발뮤다의 터닝 포인트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찾아왔다. 유명 대기업들이 매출 감소로 적자로 돌아섰을 때다. 발뮤다에 들어오는 주문도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금융위기 여파가 유럽까지 번지면서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치닫자 그는 “불황이 더 심화하면 소비자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고 남겨둘 것이다. 에너지를 절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소비 전력이 1000W가 넘는 에어컨은 친환경 시대에 더 이상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친환경 아웃도어 기업인 ‘파타고니아’의 제품 철학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애플과 함께 벤치마킹하는 기업이다.

그는 레드오션의 대표 제품인 선풍기에 집중했다. 선풍기를 만드는 일본의 대기업들이 싸게 만드는 데만 집착해 신제품들을 내놓을 때 그는 자연의 바람을 재현하는 선풍기를 떠올렸다. 당시 발뮤다 직원은 고작 3명이었다. 2010년 4월, 이중날개 구조의 혁신적인 선풍기 '그린팬'이 첫 선을 보였다. 일반 선풍기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바람이 생겨 피부에 자극이 심하고 오래 쐬면 머리가 아프다. 그린팬은 중앙과 외곽의 두 부분에서 보내는 풍속이 달라 소용돌이가 없어진다. 자연에 가까운 바람을 만든 것이다. 가격이 저렴한 교류 모터 대신 고가의 직류 모터를 달았다. 그래서 전력 소비를 기존 선풍기의 1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었다. 가격은 일반 선풍기보다 10배나 비쌌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력난이 발생하면서 그린팬은 대히트를 쳤다.

이어 가습기 레인, 공기청정기 에어엔진을 잇따라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이들 제품 모두 기존 거대 가전 메이커들이 구비한 상품이었지만 디자인과 성능이 전혀 달랐다. 상복도 터졌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만 8번 수상했다. 그러면서 ‘소형 가전업계의 애플’이라는 애칭도 나왔다. 설명서를 보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절제된 디자인이라는 애플 디자인의 미학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테라오 사장은 디자인 디렉터를 겸한다. 제품 콘셉트 단계부터 최종 디자인까지 관여한다.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 철학은 ‘최소에서 최대를’이다. 최소한의 부품으로 제품을 만들어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자는 의미다.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2000번의 스케치와 아이디어 수정을 거친다. 거대 가전업체와 경쟁하려면 가격만 싸서 성공할 수는 없다. 소비자가 좋아할 성능과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야 살아남는다.”

발뮤다의 매출액은 2009년 4500만엔(약 4억원)에 불과했다. 그린팬 선풍기가 대박이 나면서 매년 2,3배씩 성장했다. 직원이 50명까지 늘었다. 한국과 중국ㆍ독일에도 진출했다. 2013년 22억7300만엔, 지난해에는 30억엔(약 280억원)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두 자릿수 성장을 예상한다. 발뮤다 제품이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적정 이익을 낸다. 영업이익률은 겨우 두 자릿수에 근접할 정도다. 연구개발과 완벽한 제품을 생산하는 품질관리 비용을 감안한 가격이다. 중국산 카피 제품이 절반 가격에 나오지만 품질에서 절대 발뮤다와 같을 수 없다.” 발뮤다는 2012년 한국리모텍과 손잡고 한국에 진출했다. 현재 선풍기ㆍ가습기ㆍ공기청정기를 판매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토스터기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한국이 최대 수출국이다.

2012년부터 중국에 발뮤다의 짝퉁 제품이 여럿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중국 업체의 모방 제품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중국에 발뮤다 공기청정기와 거의 흡사한 제품이 나왔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발뮤다가 디자인과 제품개발, 생산에서 고민한 보이지 않는 요소는 베낄 수 없다. 모방 제품이 쏟아지면 발뮤다는 더 유명해질 수 있다. 고객 충성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애플이 이미 그런 점을 증명했다. 스마트폰 디자인 가운데 아이폰 영향을 받지 않는 제품이 있을까?” 그에게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짝퉁은 ‘소비자의 체험’ 베낄 수 없어


▎1. ‘자연의 바람’을 재현해주는 발뮤다 선풍기를 설명하는 테라오 겐 사장. / 2.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게 사장 책상에 붙어 있는 디자인 파트.
발뮤다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가전제품은 편리하기 위해 쓰는 도구다. 가전제품이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면 ‘좋은 체험’을 전달해야 한다. 오감으로 느끼는 체험이다. 사람은 피부의 촉각을 통해 선풍기 바람을 느낀다. 그 바람이 닿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 중요하다. 청각은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을 기분 좋게 느낀다. 시각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느낀다. 오감으로 느끼는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발뮤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 번째는 너무 과하지 않아야 한다. 집 안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가전 디자인이 너무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새로운’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다. 디자이너는 무심코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움과 아름다움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새 것은 며칠만 지나도 옛 것이 된다. 아름다운 것은 100년이 지나도 아름답다.

체험의 상품화를 좀 더 쉽게 설명해달라.

현대인은 산더미 같은 문제에 둘러 쌓여 산다. 사회적 격차가 심화되는 데서 오는 분노와 슬픔도 가득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로맨틱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내 기억에는 여름날 고속도로에서 푸르스름한 석양빛을 볼 때, 양지바른 곳에 모인 낙엽 속에 드러누울 때, 몇 킬로미터나 펼쳐진 해안에서 소중한 사람과 손을 잡고 있던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이런 체험을 디자인과 성능 개선에 반영한다. 체험의 상품화가 그런 거다.

발뮤다는 제품 상자부터 독특하다. 검은 리본을 풀면 상자를 손쉽게 열 수 있다. 제품을 보관할 때는 부품을 해체해 담는 법을 상자 표면에 상세히 그려놓았다.

포장 박스부터 소비자에게 기분 좋은 체험을 주는데…

소비자와 제품 사이에 최초의 만남은 포장이다. 우리가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결국 ‘좋은 체험’이다. 고객이 상자를 열 때 ‘내가 지금 여는 포장은 매우 좋은 제품의 상자구나’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애플 포장을 열면 심플하면서도 정성이 들어있다. 발뮤다도 이런 것을 추구한다.

" 발뮤다스럽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발뮤다를 ‘소형 가전의 애플’이라 부르는데.


애플은 늘 동경하고 벤치마킹하는 회사다. 제품에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 회사 아닌가. 앞으로는 ‘애플스럽다’는 말처럼 ‘발뮤다스럽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직원들과 디자인 철학을 어떻게 소통하나?

우선 2주에 한 번 꼴로 두 시간 정도 전체 직원들을 모아 놓고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내 생각은 매일 진화한다. 직원 역시 매일 바뀐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경영진과 직원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사무실에 칸막이가 없는 이유다. 직원은 경영진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재무 같은 경영 분야는 관리담당 임원에게 맡겼다. 나는 디자인과 상품 경쟁력에 집중한다.

종업원과 동반 성장을 강조하는데, 비전은 무엇인가.

현재 월급은 중소기업 수준이지만 2017년 주식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직원들이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기회라고 생각한다. 중장기 비전은 매출 1조엔 규모로 키우는 것이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진 않겠다. 내 아들이 기업을 하고 싶다면 ‘창업’을 권유할 것이다. 창업자의 경쟁력이 기업의 핵심이다. 발뮤다의 디자인과 창조성에 대한 가치는 내가 떠나면 줄어들 것이다.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한 창업자의 능력이 자식까지 전수되긴 어렵다.

요즘 대기업 마다 너도나도 디자인 경쟁력을 강조한다.

디자인에 문외한인 사장이 임원들에게 ‘디자인이 경쟁력이니 디자인에 투자하라’고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제품 디자인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많은 막대한 투자가 아니다. 경영자가 디자인의 의미를 얼마나 깊게 고민하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끝없이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고민한다.

- 글.사진 김태진 포브스코리아 전문기자

201508호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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