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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웨딩·글램핑·콘서트·스노골프… 

골프장의 화려한 변신 

요즘 골프장의 고민이자 해답은 ‘변신’이다. 공급과잉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골프장들이 대중적인 문화스포츠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아빠’만 놀던 골프장이 가족이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난티 클럽 서울은 수영장 앞 숲엔 9채의 글램핑 시설이, 왼편으로 27홀의 골프 코스가 펼쳐진다.
7월 중순에 찾은 아난티 클럽 서울의 스타트하우스에선 카트를 타고 필드로 향하는 골퍼의 행렬이 이어졌다. 평일이지만 사람이 많아서인지 티오프 간격은 짧았다. 경기도 가평 중미산과 통방산이 이어진 60만평의 산자락에 펼쳐진 27홀 코스에선 경쾌한 티샷 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운 햇볕 탓에 그늘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여기까지는 여느 골프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전은 클럽하우스와 그 주변 시설에서 시작된다.

우주선 모양의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마치 작은 테마파크에 온 느낌이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1층 라운지의 ‘더 레스토랑’엔 식사하는 이들이 꽤 많다. 주로 가족이나 중년 여성들의 모임이었다. 라운지 밖으로 펼쳐진 야외 수영장에선 물놀이에 한창인 아이들과 한가롭게 선탠을 즐기는 여성들이 보였다. 아난티 클럽 서울을 운영하는 에머슨퍼시픽그룹의 최재임 과장은 “우리는 골프에 한정하지 않고 한층 확장된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한다”며 “수영은 물론이고 글램핑, 트래킹, 테니스 등을 즐길 수 있으며 겨울엔 스노골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프로샵도 남다르다. 골프용품 외에도 주방용품과 식기세트, 명품 핸드백과 캐릭터 상품까지 다양하게 구비했다. ‘일부’가 이용하는 골프장을 ‘가족’이 즐기는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아웃도어 스포츠 테마파크로 변신


지난 5월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간한 ‘레저백서 2015’에 따르면 국내 골프장 수는 2004년 말 213개에서 지난해 말 507개로 2.4배 증가했다. 그 사이 골프장 이용객 수는 1641만 명에서 3204만 명으로 95.3% 증가했다. 이는 정부가 골프 대중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2000년부터 퍼블릭골프장에 대해 일반세율을 적용하면서 나타난 효과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서 황금알을 낳던 골프장 사업은 요즘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절박한 생존경쟁은 새로운 골프장 풍속도를 만들어냈다. 테마파크형 골프장이 등장하는가 하면 필드 위에서 야외결혼식을 진행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 콘서트도 개최한다. ‘잔디 농사’라 불리는 골프장업계에선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앞서 글램핑 시설과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갖춘 아난티 클럽 서울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가 대표적이다. 글램핑 이용객은 텐트는 물론이고 음식 준비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아난티 클럽 서울에서는 요리사가 등심과 삼겹살, 해산물 등을 직접 구워준다. 최재임 과장은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점,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남성들은 골프, 여성들은 수영, 아이들은 숲 속에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즐길 수 있어 가족 단위 이용객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비회원이라도 글램핑을 예약하면 수영장과 라켓클럽 이용이 가능하다.

스카이72 역시 장비가 필요 없다. 힐링피크닉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축구공과 캐치볼, 배드민턴 등을 빌려준다. 글램핑은 탁 트인 평지의 잔디 위에서 진행한다. 주변에 벙커와 퍼팅 그린이 그대로 있어 어른들은 짬짬이 골프연습도 할 수 있다. 보통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하는데 매번 10동의 텐트를 꽉 채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식음료 서비스는 워커힐 레스토랑에 위탁운영 한다. 강원 원주의 한솔 오크밸리CC도 ‘가족 쉼터’가 골프장 운영 콘셉트다. 매주 토·일요일 야외 잔디광장은 온 가족의 놀이터가 된다. 리모트 컨트롤러(RC)카를 운전하고 RC카 미니 레이스도 펼칠 수 있다. 잔디 위에 조성된 9홀의 미니 코스에서 가족끼리 가볍게 골프를 칠 수 있고 토너먼트 형식의 시합에도 참여할 수 있다. RC카와 미니 골프, 숙박을 묶은 패키지 상품도 판매 중이다.

웨딩·캐릭터 이종 협업으로 시너지


▎서원밸리CC는 매년 5월 수 만 명이 몰리는 그린콘서트를 진행한다. 지역주민에 대한 문화 체험 기회 제공과 함께 골프장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보고 있다.
박인비 선수의 결혼식장으로 유명세를 탄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CC는 야외웨딩홀을 운영하고 있다. 웨딩플래너협회와 업무 협약을 맺고 특별하고 여유 있는 예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수도권 근교 골프장이라는 장점을 한껏 살린 것이다. 특히 서원밸리CC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아이돌그룹과 7080 가수들이 출연하는 그린콘서트를 무료로 진행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문화 콘텐트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약 4만 명이 운집한 올해 콘서트엔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수천 명의 한류 팬이 다녀갔다고 한다. 장타대회, 어프로치 경연대회, 보물찾기, 골프용품 할인 판매 등의 사전행사도 진행한다.

경기 파주의 베스트밸리CC는 연초 골프의류업체 데니스와 손잡고 데니스CC로 간판을 바꿔 걸었다. 기능성 골프의류·용품 브랜드인 데니스가 보유한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해 국내 최초의 캐릭터 테마 골프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레스토랑에선 세사미스트리트, 탈의실은 심슨, 골프 코스엔 데니스 캐릭터가 골퍼를 반긴다. 홀별로 무료 라운드권, 고급 리조트 숙박권, 데니스 골프백 세트 등 다양한 경품을 내걸었다. 데니스의 제품을 특가에 구입할 수도 있다. 골프장과 골프웨어 업계가 협업한 대표적인 사례다.

티오프 간격이 10분으로 회원제골프장보다 오히려 여유 있다는 강원도 홍천의 퍼블릭골프장 블루마운틴CC는 여성을 위한 이벤트가 돋보인다. 지난 4월 홍차클래스를 시작으로 5월 컬러 컨설팅, 6월 필라테스, 7월 헤어스타일링 클래스를 진행했다. 전북 익산의 에메랄드CC는 1인당 13만 원짜리 전라도 한정식을 예약하면 그린피와 카트 이용료, 캐디피를 전액 면제해준다. 전복과 삼합 등 건강식과 무료 라운드를 결합해 인기다.

비 골퍼의 골프장 방문 유도해야


▎골프장의 다양한 변신
아예 정기적인 코스 개방을 선언한 곳도 있다. 제주 중문CC는 11월까지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금요일에 일몰을 감상하는 관광상품을 선보였다. 10번 홀을 출발해 페어웨이를 따라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코스는 15번 홀까지 이어진다. 최남단 마라도, 중문해변 주상절리 위로 펼쳐진 해안과 함께 붉게 물든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과 골프장 개방을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려는 골프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한 골프장 코스 개방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이제 골퍼만을 상대로 한 골프장 영업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훌륭한 입지에 위치해 있고,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라운딩 시간이 끝난 뒤 웨딩 촬영지로 활용할 수도 있고, 단체 파티를 유치할 수도 있다”며 “문호를 개방하면 자연스럽게 수익성 향상과 이미지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chodj21@joongang.co.kr

201508호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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