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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천장을 뚫은 파워 우먼, 김옥정 우리은행 부행장 

타고난 친화력, 현장 소통의 무기 

김성숙 포브스 기자 사진 김현동 기자
김옥정 부행장은 우리은행 최초의 여성 부행장이다. 금융계 여성 임원이 드문 시대, 유리 천장을 뚫은 비결을 물었다.

▎서울타워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김옥정 부행장 집무실. 인터뷰 내내 특유의 친화력과 끈질긴 영업 본능을 발휘했다.
‘시대의 변화, 그리고 향상된 업무 능력’ 김옥정(56세) 우리은행 부행장이 유리 천장을 뚫은 도구다. 우리은행은 그동안 여성 부행장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대에 발맞춰 우리은행도 여성 부행장 인사를 단행하게 된다. 하지만 부행장을 맡을 만한 연령대에서 준비된 여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 부행장이 은행을 다니던 시절은 여 행원은 결혼과 동시에 은행을 그만두는 게 관례였다.

“결혼하면 그만두는 분위기였는데, 저는 퇴사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켰을 뿐이죠.” 김 부행장이 유리 천장을 뚫은 비결을 겸손하게 밝혔다. 실적이 곧 승진으로 이어지는 은행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좋은 성과를 남겼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김 부행장은 2010년에 외국인 투자유치 지원 업무를 인정받아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올 초에는 베스트 여성 뱅커 금융위원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부행장은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상업은행에 공채로 입행했다. 95명의 공채 기수 중에 여성은 단 2명이었다. 입사연도인 1981년만 해도 여성 신입사원 비율이 2%밖에 되지 않았다. 유일한 여성 동기는 결혼과 동시에 퇴사했다. 34년이 지난 올해, 우리은행의 여성 신입사원은 전제 신입사원의 40%에 이른다. 어느덧 세상은 많이 변했으나 임원급 여성은 아직도 드문게 현실이다.

34년 만에 오른 우리은행 최초 여성 부행장

핵심적인 은행 업무를 두루 거치는 과정마다 김 부행장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남겼다. 그는 외환 사업, 영업, WM(Wealth Management) 업무를 거쳐 리스크관리 본부 부행장을 맡고 있다. WM사업단 상무로 재직할 당시 김 부행장은 은퇴시장을 공략하고자 ‘100세 라운지 운영’과 ‘상품·서비스 패키지’를 완성하며 사업 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은행권 최초로 ‘펀드 화상 상담’ 시스템을 만들어 신규 고객 유치와 은행의 비이자 수익을 증대시켰다.

좋은 성과는 견고한 체계를 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영업을 잘하려면 ‘시스템, 채널, 인적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는 확신을 실행에 옮겼다. 신재무설계 시스템 확산과 신방카슈랑스시스템을 개편하는 한편, PB 전문 채널을 확대했다. 고객 밀착 PB 영업도 강화했다. 펀드나 방카슈랑스를 판매할 때 불완전 판매가 이뤄지지 않도록 체계적인 교육을 시행했다.

‘화상 교육’은 현장 영업의 달인인 김옥정 부행장의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다. 김 부행장이 사내 인트라넷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대규모 교육을 시행한 점에 대해 직원들까지 높이 평가할 정도다. ‘화상’ 시스템은 개통 당시 200명 정도가 동시에 접속하면 오류가 나기 일쑤였다. 김 부행장은 이를 바로 잡아줄 것을 관련 부서에 여러 차례 요청했고 지금은 만 명이 동시 접속해도 무리 없이 교육을 진행할 정도로 안착했다.

일의 체계를 세우는 감각은 철저하게 현장 업무를 실행하면서 터득했다. 그는 예금이나 대출 업무를 맡을 당시 상인들이 많은 서울 소공동 일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강남영업본부에 근무할 때는 대치동 미도 아파트에서 시작해 선경 아파트, 청실 아파트와 롯데 백화점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를 빈틈없이 훑으며 모조리 정복(?)했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시절, 정복할 아파트 단지를 정해놓고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가는 손님들, 사무실 실장들과 자연스레 수다를 떨다가 고객을 만드는 것이 그의 영업 노하우였다.

“무조건 소공동 상가를 다녔는데 신기하게도 적금이나 대출을 신청하는 상인이 있더라. 혼자 가게를 보니 은행 갈 짬이 안 나는 분들이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들더니, 다음 날은 네 명, 여덟 명으로 불어나는 거다. 그렇게 하니 일이 재미있었다.” 김 부행장은 ‘필드’에서 뛰던 그 시절을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했다. 특유의 친화력은 고객을 유치하는데 한 몫했다. “사람 만나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저는 재미있더라고요.” 그의 대화는 상대방의 의견을 묻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식이다. 튀지 않은 외모와 언변으로 상대의 긴장감을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친근하고 밝은 톤으로 대화를 이끈다. 여느 사람이라면 뿌리치기 힘든 보기드문 친화력이다.

김 부행장은 여성 리더가 잘할 수 있는 업무로 직원과의 ‘공감’ 능력을 꼽았다. 김 부행장 역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기회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달 8월만 해도 대구와 충청, 부산과 광주지역 영업본부를 다녀왔다. 현장에서 화상 연수, 열린 강좌가 열릴 때면 직원과 함께 듣는다. “지점에서 근무했지만, 본부에서 근무하다 보면 감을 잊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현장 직원을 자주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소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에도 가까운 영업점의 팀장들과 식사를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업무를 추진한 결과, 관리 업무의 비중을 줄이고 영업기회를 늘릴 수 있었다. 또한, 영업점 평가 시 비현실적인 요소를 개선하는 등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제도를 개선했다. 이같은 작은 제도 개선은 우리은행의 자산 증대로 이어졌고 건전성은 공고해졌다.

현재 그가 맡은 업무는 리스크관리다. 리스크 업무는 최근의 경기 부진과 저금리 기조, 그리고 은행 간의 경쟁 심화로 주요한 업무가 되었다. 신용, 시장, 금리, 운영 등의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업무가 주된 일이다. 우리은행은 ‘바젤 Ⅲ’의 유동성 규제를 기준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용평가 모형을 개선하는 등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고 영업현장과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은행이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이를 현장 직원까지 잘 숙지하고 지키는 것이 관건이다.”

김 부행장이 취임 후 현장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영업점 여신담당자가 부실 여신 방지와 관련한 교육을 충분히 익히도록 화상 교육, 집합 교육, 방문 교육 등을 통해 반복했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리스크 업무가 당장 성과가 나타나는 업무가 아니어서 그런지 교육 참여에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업무 현장에서 교육 효과를 실감하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외에도 우리은행은 프런트, 미들, 백오피스를 연결하는 ‘통합 트레이딩 시스템’을 은행권 최초로 구축해 파생 거래 상대방의 신용위험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재미있는 일이 많은 은행이라서 즐겁다


“은행이라는 곳이 참 재미있는 곳이다.” 김 부행장에게 은행은 서민부터 자산가들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는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또한, 은행은 예금, 대출, 트레이딩 등 돈 되는 업무를 일선에서 다루기에 지루할 틈이 없는 흥미진진한 곳이었다. “2020년에 자산시장이 200조 규모로 커진다고 한다. 이를 예측하고 투자 방향이나 대안을 찾는다는 것이 참 재미있지 않은가?” 그는 즐겁지 않은 일이 없어 보였다. 오늘 그를 만든 것은 자신의 업무를 사랑하고 ‘재미’ 있는 일로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집무실 벽에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사랑하기’라는 글귀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괴테의 명언을 매일 소리 내어 읽는다고 한다.

물론 김 부행장도 신입사원 시절에는 힘들었고, 주어진 실적을 채우지 못해서 창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예금 하나 들어주세요.”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단다. 그렇게 마냥 멈칫할 수는 없었다. 은행은 매일, 그리고 시시때때로 핵심성과지표인 KPI(Key Performance Index)가 공개된다. 전 직원이 보기 때문에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김 부행장은 그때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은행에서 일하는 것은 똑같은데 기왕이면 잘하자. 신발이 닳도록 다니면 고객이 들겠지!”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영업현장으로 나갔다고 한다. 현장에서 부딪히니 실적이 따라왔다. 서서히 몸에 익자, 모르는 사람을 대면하는 것도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것도, 명함을 불쑥 내미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은행은 여성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이라고 김 부행장은 강조했다. “여성이 꼼꼼하고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에 은행 업무와 잘 맞는 것 같다. 고객을 만날 때는 업무 이외의 이야기도 많이 하므로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 고객은 다르다. 남성 대표가 대부분이라 사우나를 같이 갈 수도 없는 치명적인(?) 영업상 어려움이 따른다.

김 부행장은 ‘섬기는 리더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입사하던 시절만 해도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카리스마형 리더가 대세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다. 이제 기본적인 시스템은 안정화되었고 섬세한 제도 개선이나 창의적인 업무를 개발하는 시대다. “윗사람이 낮은 자세로 직원을 섬겼을 때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는 것 같다. 능력이 뛰어난 직원도 많기에 그들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본부 직원이 영업점 직원을 섬기면 직원들은 자연스레 고객을 섬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인생도 자산을 투자하듯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된다. 직장 생활 5년, 10년, 20년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관련 자격증이나 공부를 한다면 나의 꿈은 이뤄지지 않을까?” 김 부행장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공감형으로 마무리했다.

- 글 김성숙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201509호 (201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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