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이한주 스파크랩 대표 

창업자들을 돕는 창업자 

김선엽 인턴기자
199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인 호스트웨이(Hostway)를 공동 창업한 한국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실리콘밸리보다 한참 뒤쳐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바라보다 또 한 번의 창업을 결심한다.

▎이한주 대표는 “스파크랩은 해외에서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창업자들이 만든 엑셀러레이터이기때문에 창업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엑셀러레이터들과 차별화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붐이 활발하던 1990년대,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크 앤드리슨(Marc Lowell Andreessen)이 개발한 웹 브라우저는 인터넷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혁신적인 브라우저를 경험한 미국 시카고 대학 4명의 청년들은 인터넷이 인류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에 차게 되고, 인터넷을 호스팅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기로 한다. 그들이 대학졸업 후 1998년에 창업한 회사가 바로 호스트웨이다. 시카고에서 시작된 호스트웨이는 이후 한국 등 12개 나라 140만 고객에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호스트웨이는 2014년 수천 억원을 받고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엑시트에 성공한 호스트웨이의 시작점이자, 그 중심에 있었던 4명의 청년들 가운데 당시 26살이었던 이한주 대표도 있었다.

이한주(45) 스파크랩 대표는 회사 경영보다는 창업에 더 열정적인 혁신가다. 그는 “확실한 문제 의식을 갖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창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창업을 통해 성장 궤도에 오른 호스트웨이를 다른 운영자에게 매각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한주 대표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뉴저지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시카고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전공과 무관한 스타트업에 빠져들게 되고, 친구들과 호스트웨이를 창업한다. 그의 창업은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실리콘 밸리의 창업환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덕분에 가능했다. 동시에 그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환경이 한국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는 열정, 어떤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는 분위기와 제도가 한국에도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의 인생을 관통한 삶의 철학이기도 했다. 그가 호스트웨이를 창업한 것도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인터넷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을 일으켜서 그 세계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성공한 창업자가 창업한 엑셀러레이터

호스트웨이가 글로벌 회사로 성장할 즈음, 그는 한국에도 실리콘 밸리와 같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큰 목표를 세우게 된다. 창업하는 이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창업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그는 2012년 12월, 마침내 당시로서는 생소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스파크랩(Sparklabs)을 창업하게 된다. 스파크랩 창업 멤버는 소프트웨어회사 N3N의 공동창업자이자 사장인 김호민, 그리고 위스콘신 출신으로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을 했던 버나드 문 등 한국계 이민자였다.

사실,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라는 개념이 국내에 생겨난 지는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는 창업 아이디어나 아이템만 존재하는 단계의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해 사무실,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케팅, 전략 등 각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을 멘토로 연결시켜주는 단체다. 국내에서는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기업이 없어서, 2005년 미국에서 시작된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2016년 현재 한국에는 23개의 엑셀러레이터가 있지만 글로벌 지향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는 스파크랩이 거의 유일하다. “해외에서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창업자들이 만든 엑셀러레이터이기 때문에 창업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엑셀러레이터들과 차별화된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한국에서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욕구와 수요는 많은데 대부분 창업자들이 그 방법을 몰라 창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스파크랩은 창업자들의 이러한 수고를 덜어주고 글로벌 진출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멘토들을 통해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이미 세계적으로 120명의 멘토들과 제휴를 맺었으며 그 중 80명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타히어로’라는 게임을 만든 중국계 미국인 카이 후앙, 넥슨의 창업 멤버 김상범 씨 등 유명 인사들도 멘토로 활약 중이다.

스파크랩은 검증된 스타트업을 선정해 3개월 동안 멘토들과 함께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대표는 “교육기간 동안 매주 10%의 성장을 요구하는데, 실제 이러한 성과를 내는 스타트업들이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3개월의 교육이 끝난 후 400여 명의 VC, 200여 명의 세계적인 대기업 관계자들과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데 참석하는 데모데이가 열린다. 일종의 졸업식 개념으로 스타트업 대표들이 자신의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스타트업과 VC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VC의 투자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총 146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스파크랩 6기가 데모데이로 졸업하기까지 스파크랩은 총 48개의 스타트업을 VC에 연결해 투자를 이뤄냈다. 스파크랩을 거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스타트업이 바로 미미박스(1기)다.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는 스파크랩과 관련해 “스파크랩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적인 사고, 기업을 운영해 본 노하우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미미박스를 비롯한 48개 스타트업은 지난 3년 동안 750여 개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는 앞으로 “몇 십만 여개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이한주 대표의 주장이다.

자금 모금 가로막는 정부 규제 문제

이 대표는 스파크랩의 성과에 대해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고,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활발성을 홍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은 10% 안팎에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을 키우려는 스파크랩의 노력과 시도가 계속되는 이유는 창업 과정에서 생기는 열정과 에너지를 생산성이 있는 쪽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파크랩이 하는 일은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는 일”이라고도 했다.

스파크랩은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 6% 지분의 대가로 모든 회사들에게 2만5000달러 (약 2700만원)를 투자한다.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투자활동을 지속해 나가려면 자금 모금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엑셀러레이터에게 자금을 모

으고 투자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지위가 없는 게 문제다. 스타트업은 혁신을 하기 위한 시도인데, 막상 상품을 들고 시장에 나가려고 하면 매번 정부의 규제에 막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국내 엑셀러레이터가 키우는 스타트업은 연간 총 400여개 수준이다. 그 숫자가 천 단위를 넘어가는 외국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규모다. 그럼에도 스타트업 엑셀러에이터인 스파크랩의 활약으로 미미박스, 망고플레이트, 파이브락스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배출됐다. 스파크랩이 더 왕성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어떤게 필요할까? 이한주 대표는 규제 완화를 거론했다. “엑셀러레이터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 대한 국내 규제를 풀어야만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기를 띌 수 있다.” 올해, 이한주 대표의 하소연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 김선엽 인턴기자

201603호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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