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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 게임하며 스마트하게 재활치료하세요 

 

글 최은경 기자·사진 오종택 기자
네오펙트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뇌졸중 환자가 집에서도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스마트 재활기기를 내놨다.

▎직접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착용하고 재활훈련용 게임을 해보이는 반호영 대표.
뇌졸중 후유증으로 손가락을 잘 펴지 못하는 A 씨가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여러 개 겹쳐진 컵을 한 개씩 들어올리거나 작은 고리를 봉에 끼우는 식이다. 의무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이걸 왜 하고 있나’ 싶다. 비용도 부담이다. 보통 재활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는데 1년에 2000만원 정도 든다. 병원까지 이동의 어려움, 치료비 부담 때문에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는 환자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뇌졸중 치료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반호영(39) 네오펙트 대표는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MBA(경영대학원)를 마치고 스마트 재활기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재활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하드웨어, 재활훈련 콘텐트를 모두 직접 개발·제조한다.

임상실험으로 효과 입증

대표 제품은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 뇌졸중 같은 중추신경계 질환 환자들의 손 재활을 위한 기기다. 글러브를 장착하면 센서가 환자의 손가락, 손목, 아래팔의 움직임을 측정해 데이터로 저장한다. 환자는 화면을 보며 재활훈련 게임으로 지루하지 않게 훈련할 수 있다. 주스 짜기, 와인 따르기, 칼질하기, 탁구, 낚시, 고스톱 같은 일상적 경험을 담은 게임을 ‘클리어’ 하면서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위, 아래로 돌리거나 손목을 굽혔다 올리는 동작 등을 반복하게 된다. 전문치료사와 함께 개발한 30여 개 게임 콘텐트는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반 대표는 “시각·청각적 요소를 실감나게 처리해 뇌 운동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훈련 과정은 데이터로 저장되고 각 단계를 마칠 때마다 결과가 수치로 나타나 회복 정도를 곧바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이 제품은 인공지능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환자의 능력에 맞게 게임 난이도를 자동 조절한다. 다음 훈련 때는 적절한 개별 맞춤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의사, 치료사는 축적된 데이터를 보고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적합한 치료법을 판단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임상실험으로 기존의 재활훈련보다 효과가 높다는 것이 증명됐다. 국립재활원 재활의학과 신준호 박사 팀은 뇌졸중 환자 46명을 대상으로 4주 동안 실험해 기존 재활치료만 한 것보다 기존 치료와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병행한 치료가 회복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내용은 2월 국제학술지 JNER(Journal of NeuroEngineering and Rehabilitation)에 게재됐다.

기자가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직접 착용해봤다. 딱딱하고 차가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부드럽게 손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힘을 가하면 늘어나고 힘을 제거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탄성중합체 소재를 사용해 손을 구부릴 때도 기기가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벼웠다. 132g으로 라면 한 봉지 무게다. 기존 디지털 재활기기나 로봇은 대부분 크고 무겁다. 반 대표는 “가볍고(Light) 휴대가 간편하면서(portable) 가격이 합리적인(affordable) 것이 라파엘 브랜드의 특징”이라며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나 이동하면서 전문치료사 없이 재활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용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 가격은 마진율을 낮춰 1000만원대로 책정했다. 개인 소비자를 위한 제품은 100만원대로 출시할 계획이다. 비싸 보이지만 수억 원대의 외국 브랜드 제품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이 제품은 국립재활원, 서울대학교병원, 단국대학교병원 등 국내 10개 병원과 미국 카사콜리나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반 대표는 “다양한 하드웨어 기기와 게임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제품군을 늘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 글러브 외에 올해 3가지 제품을 더 선보일 계획이다. 4~13세 어린이 환자를 위한 ‘라파엘 스마트 키즈’와 전신 재활훈련 기기, 손가락 터치훈련 기기 등이다. 중증환자용 재활로봇은 내년 출시를 위해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 판매대수는 60대. 그 중 22대를 해외에서 판매했다. 반 대표는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인 고객을 상대로 대여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여비는 한 달에 100달러 수준이다. 올해 3분기까지 50대를 대여하는 것이 1차 목표, 여기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심층분석해 내년에 고객 수를 1000명으로 늘리는 것이 2차 목표다. 그는 “요즘도 웹사이트를 보고 구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4월 미국에서 대여사업 시작


해외 진출을 위해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폴란드에 유럽 사무소를 열었다.

2010년 설립된 네오펙트는 직원 수가 50명을 넘는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 인력이 40명 정도다. 이 회사는 2012년 첫 투자를 받아 지금까지 SBI코리아, DSC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58억원을 투자 받았다. 제품을 개발하고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미국 FDA(식품의약국), 유럽 CE마크 허가를 받는데 4~5년이 걸렸다. 지난해 매출이 나기 시작해 올해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반 대표는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TV사업부에서 일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2년 정도 벤처 공동창업자로 일했다. 이때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창업에 대한 생각을 접고 MBA에 입학했다. 펀드매니저 자리를 보장받은 시점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재활로봇 알고리즘을 연구하던 카이스트 동문 최용근 네오펙트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제안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펀드매니저의 높은 연봉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활치료에서 소외된 환자들을 위해 스마트 재활기기를 대중화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 글 최은경 기자·사진 오종택 기자

201604호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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