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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바람 타고 ‘행동주의 헤지펀드’ 각광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주식을 산 뒤 주가가 오를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지배구조 개편 등 주주 가치를 높이는 ‘행동’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했고 최근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폴 싱어 회장. 엘리엇은 삼성전자 투자로 두 달여 만에 1738억 원의 수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중앙포토
1738억 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 투자로 두 달여 만에 얻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자회사 블레이크캐피탈과 포터캐피탈은 2016년 10월 5일 삼성전자 이사회 앞으로 서신을 보냈다. “삼성전자 보통 주 76만218주를 보유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사업회사와 지주회사 분할)과 30조원의 특별배당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그해 11월 29일 이사회를 열어 엘리엇의 제안에 응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고 2016년 배당 규모를 4조원으로 늘리는 등 앞으로 배당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소각하기로 한 자사주를 제외하면 당시 엘리엇 측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은 0.62%. 엘리엇은 4조원의 배당금 중 248억 원을 챙겨갔다. 주주 제안을 계기로 주가도 급등했다. 엘리엇이 삼성전자 지분 매입 시점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서신을 보낸 10월 5일 이전 한 달 간 평균 주가가 158만4000원이다. 2016년 12월 9일 종가 178만원을 감안하면 약 1490억원의 차익을 거둔 셈이다.

엘리엇은 글로벌 2위 ‘행동주의 헤지펀드(activist hedge fund)’다. 헤지펀드 컨설팅업체 헤지펀드솔루션스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기준으로 운용자산이 270억 달러다.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activism)’는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이런 행동주의 전략을 주가 상승의 촉매로 삼는다. 일정 의결권(지분)을 확보한 후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편 등 주주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때로는 적대적으로 요구한다. 회사의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측면 때문에 ‘기업 사냥꾼’이라는 오명이 붙기도 한다.

글로벌 1위는 350억 달러를 운용하고 있는 칼 아이칸의 아이칸어소시에이츠다. 2006년 KT&G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150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2013년에는 애플에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약 2년간 100%의 수익을 올렸다.

2016년 헤지펀드 시장은 완연한 하락세였다. 시장만큼만 수익을 내는 패시브 펀드가 가장 나은 성과를 거두면서다. 펀드 매니저의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매해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펀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액티브 펀드의 극단이라 할 수 있는 헤지펀드의 성과가 초라하다. 2016년 11월 말 기준으로 연초 이후(YTD) 수익률이 4.5%다. 같은 기간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9.8% 올랐다. 2015년엔 마이너스 수익(-0.7%)을 기록했다. S&P500지수는 1.4% 올랐다. 시장에 관계없이 절대 수익을 추구한다는 게 헤지펀드다. 시장은 올랐는데 헤지펀드는 되레 원금을 까먹었다.

돈은 수익률을 따라 움직인다. 시장조사업체인 이베스트먼트에 따르면, 2016년 들어 10월까지 헤지펀드에서는 770억 달러가 유출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래 7년 만에 최대 규모다.

아시아, 특히 일본을 정조준하다


이 가운데 행동주의 헤지펀드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6년 이후 11월 말 현재 8.5%의 수익을 거뒀다. 2015년에도 4.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전문 매체인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2010년 76개에서 2015년 397개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투자 대상 기업은 136개에서 551개로, 자산 규모는 385억 달러에서 1297억 달러로 커졌다.

엘리엇이 국내 처음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15년 삼성물산 투자를 통해서다. 지분 7.1%를 들고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다. 연대할 주주를 끌어 모았지만 표 대결에서 국민연금을 끼고 나온 회사 측에 졌다. 합병이 성사되면서 엘리엇은 매입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업계에서는 엘리엇이 약 300억~5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 곧, 기업과 ‘척’을 지며 주주가치 제고를 꾀했던 1차 공습에서는 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를 바탕으로 기업의 ‘편’에서 행동주의 전략을 실천한 2차 공습은 성공을 거뒀다. 장화탁 동부증권 주식전략팀장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단기 차익에 집중한 투기자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며 “주주의 가치와 회사의 가치가 일치할 때가 가장 성과가 좋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최근 아시아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투자한 일본 기업은 2015년 8개에서 2016년 상반기에만 13개로 늘었다. 일본 기업 가운데선 성장성이 크고 자산 가치가 높은데도 경영이 불투명한 탓에 주가가 저평가된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해 사내에 현금을 쌓아뒀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분율도 높았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특히, 지배구조가 취약한 가족 기업을 겨냥했다.

2016년 4월 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 일본 세븐앤 아이홀딩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퇴진했던 사건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존재감을 드러낸 결정적 장면이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서드포인트는 “스즈키 회장이 아들에게 세븐일레븐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을 반대한다”고 나섰다. 이사회는 서드포인트의 손을 들어줬다. ‘편의점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즈키의 시대가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종말을 고한 셈이다.

경제 민주화 바람 타고 한국에도 상륙


▎2016년 여름을 강타한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의 출시 배경에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있다. / 나이앤틱
2016년 여름을 강타한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의 출시 배경에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있다. 콘솔 게임 시장의 강자 닌텐도는 모바일 게임 출시에 미적 됐다. 변화를 못 읽고 과거의 성공에 집착했다. 이런 집착의 끈을 끊어준 곳이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오아시스매니지먼트다. 2013년 닌텐도에 약 4000만달러를 투자해 1% 미만의 지분을 확보한 뒤 주주 자격으로 2013~2015년 모바일 게임 출시를 촉구하는 3차례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닌텐도의 주요 주주인 스테이트스트리트뱅크(11.4%) 등과 연합해 닌텐도를 압박했다. 닌텐도는 마침내 증강현실(VR) 전문 게임회사 니안틱과 합작, 포켓몬고를 7월 출시했다. 출시 뒤 단 열흘 만에 주가는 두 배 넘게 뛰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다음 타깃으로 한국 기업을 꼽는다. 한국 역시 저성장에 진입하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 같은 수익성 지표가 낮아지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사내 유보금은 증가 추세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시아 기업 투자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PwC에 따르면 2014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아시아 기업에 투자했을 때 성공할 확률은 30% 수준에 그쳤다. 2015년엔 47%로 뛰었다. 이진우 메리츠 종금증권 연구원은 “이사회 참여를 통한 경영권 확보보다 적극적인 M&A나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으로 전략을 전환한 것이 성공 확률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돼 있고, 사내 현금이 많이 쌓여 있으며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기업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대상 기업이 될 것”이라며 네이버·포스코·엔씨소프트·현대산업개발 등을 대표적 기업으로 꼽았다.

토종 행동주의 헤지펀드로는 라임자산운용이 2016년 11월 첫 선을 보였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성공을 자신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사태 때문이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혹 제기로 그간 기업 로비력에 막혔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동강령)’ 도입이 탄력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보험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기관투자자들은 약한 수준에서나마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다만, 자본력에는 한계가 있다. 라임자산운용의 전체 운용 규모라고 해 봐야 5000억원 수준이다. 수십조 원대의 자금으로 행동주의 전략을 펼치는 글로벌 헤지펀드와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원 대표는 그러나 “현행 제도 하에서도 0.1%의 지분만 있어도 회계장부 열람이 가능하고, 0.5% 이상이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며 “다른 기관 투자자들을 같은 편으로 만들면 기업에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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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호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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