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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삼국지로 본 사람 경영’ - 주인을 잘못 고른 탁월한 신하들(2) 

전풍(田豊)과 저수(沮授) 정확하게 판단한 죄로 주군 원소에게 버림받다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여류(余流) 삼국지』저자
전풍과 저수는 모두 기주(冀州) 출신 관료로 원소(袁紹)가 전 기주목 한복(韓馥)의 세력을 흡수한 후 다시 원소 진영으로 와서 일하던 책사들이다. 그들은 관도대전 당시 정확한 전세 파악으로 원소를 말리다 모두 옥에 갇히고 끝내 죽음에 이른다.

▎원소 진영은 중원의 능력 있는 재사들이 다 모이다 보니 개성이 강했고, 질투심도 강했고, 이전투구와 참소가 끊이지 않았다. / 중국 바이두 백과
정사『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원소전에서 “옛날 초나라 항우가 범증의 계략을 어겨 왕업을 잃었는데 원소가 전풍을 죽인 것은 항우의 실책보다 더한 것이다”고 평했다. 또 “전풍과 저수의 지모는 유방의 전략가 장량과 진평에 필적한다” (역사가 손성)거나 관도대전 승리 후 조조가 “만일 원소가 전풍의 계략을 받아들였다면 승패는 알 수 없었을 것”(삼국지 위서 원소전)이라고 평한 데서 보듯 이들은 판단력과 계략을 겸비한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아무리 드높은 명성과 명철한 두뇌와 판단력을 가진들 무엇 하겠는가. 둘 다 주군을 잘못 고르고, ‘신하의 처세’에서 실패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명석함으로 자신들의 목을 쳤으니 신하론의 관점에선 단지 반면교사(反面敎師·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가 될 뿐이다.

가장 큰 잘못은 ‘주군을 잘못 골랐다는 것’


▎원소에 의해 하옥되는 전풍. 전풍은 사태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멀리 세태를 보는 눈을 가졌으나 자기 주군을 보는 눈이 없었고, 자기 주군을 다루는 능력조차 없었다.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은 ‘주군을 잘못 골랐다는 것’이다. 신하로 사는 자들의 제일원칙을 어겼으니 어찌 천수를 누리기 바라겠는가. 삼국지의 주석자 배송지도 “주군을 잘못 골라서 충절을 다했지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건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첫 잘못을 만회할 길이 없었을까? 선택의 잘못을 만회하는 방법은 이후의 처신과 처세술에 달렸다. 이에 대해서 한번 대답을 찾아나가 보도록 하자.

먼저 역사가들에 의해 장량과 진평에 비견됐던 인물들을 ‘개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들의 주군 원소부터 살펴본다.

원소는 4대에 걸쳐 삼공(우리나라로 치면 3정승)반열에 오른 인물이 다섯 명이나 된다는 사대삼공 혹은 사세오공이라 불리는 중원 최대의 명문가 자손이다. 한마디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귀공자였다. 그의 어머니가 노비였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어쨌든 그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가문의 후광을 업고 당대 선비들의 중심이 되었다.

또 그는 궁중의 환관들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자 궁중으로 쳐들어가 환관들을 무차별로 죽여 2000여 명을 도륙했고, 이 같은 환관들의 난이 평정된 후 동탁이 권력을 잡고 황제를 폐위하는 등 전횡을 일삼자 반동탁 연맹의 맹주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문의 후광과 본인의 능력을 발휘해 하북의 또 다른 실력자 공손찬(公孫瓚)의 세력을 흡수하고 기(冀)·청(靑)·유(幽)·병(幷) 등 4주(州)를 평정하여 군웅할거 시대에 최대의 세력으로 우뚝 선다. 이는 그의 조상들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었고, 사세삼공의 원씨 집안 세력을 가장 크게 펼친 후손이 되었다.

워낙 제후 중에서도 세력이 압도적이었던 터라 그의 부중(府中)엔 인재와 맹장들이 많았다. 관도대전 때까지 지배하는 지역과 군사들의 숫자도 압도적이었지만 인재들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도 조조보다 앞섰다고 한다.

관도대전 막바지에 원소의 장수 장합이 조조에게 투항하자 조조는 “그대가 투항한 것은 유방이 한신을 얻은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였다. 조조가 기주를 점령한 후 자신의 3대를 욕하는 격문을 썼던 진림도 용서해 자기 진영으로 거두고, 마지막까지 기주의 저항을 이끌었던 모사 심배조차도 회유해 자신의 진영으로 거두려고 했다. 그만큼 원소의 신하들은 탁월했다.

그렇다면 원소 진영의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충신 재사가 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하고, 그의 기업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 것일까?

후세에 전해지는 원소에 대한 인물 평가는 대개 이렇다.

‘외모가 출중하고, 태도는 품위 있고 우아했으며, 호인다웠다. 그러나 우유부단하고, 질투심과 의심이 많았다.’

그의 취향에 대해선 ‘호사 취미가 있었고, 자부심이 드높아 아부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비판을 참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또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막내아들인 원상에게 후계를 물려주고 죽는 바람에 맏아들 원담과 골육 간에 전쟁을 벌여 조조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전투구와 참소가 끊이지 않았던 원소 진영


▎주군인 원소에게 직설적으로 간언한 저수. 저수는 관도대전에 임하는 생각이 전풍과 같았으나 전풍이 하옥되는 것을 보고 원소의 패배를 예감한다. / 중국 바이두 백과
그리고 그의 부중의 신하들은 중원의 능력 있는 재사들이 다 모이다 보니 개성이 강했고, 질투심도 강했고, 이전투구와 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조직의 이익을 위해 단결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개약진에 열을 올렸다.

능력이 다 같이 뛰어나니 능력으로 앞서기는 고단하다. 이럴 땐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어차피 신하들끼리는 언제나 경쟁 상태이므로 틈만 나면 음해하고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돼 있다. 뛰어난 인물들이다 보니 음해하고 참소하고 이전투구 하는 양상조차 날카롭고 뛰어나다.

그러나 이런 내부의 치열한 갈등과 경쟁은 원소 조직만의 문제는 아니다. 원래 학벌 좋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집결해있는 조직은 어디나 똑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당시 동오(東吳)의 손권네 집안도 원소네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복잡했다. 손권네 집안의 주요한 장수 감녕은 동오로 투항하기 직전, 동오의 맹장인 능통의 아비를 죽여 두 사람은 원수지간이었다. 능통은 감녕과 마주치기만 하면 칼을 뽑아들고 돌진할 정도로 어수선했다.

그런가하면 동오의 명사로 모든 문신들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했던 장소는 ‘수구꼴통’으로 조조가 83만 대군을 이끌고 강동 맞은편 강가에 군영을 차리자 대뜸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손권을 압박하는가 하면, 허도로 손권의 아들을 인질로 보내야 한다는 둥하며 뒷다리 긁는 소리를 해댔다. 게다가 능력은 뛰어나나 자부심 강하고 오만한 다혈질의 주유까지…….

그들의 개성으로 치자면 결코 원소네보다 뒤지지 않았고, 손권은 정말 산 넘어 산인 신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도 그는 줄창 항복을 주장하는 고집스런 그의 신하들을 눌러놓고 노숙과 주유를 움직여 적벽대전을 치르고, 수구파 신하들을 다 끌고 가며 조조를 강동에 한 걸음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했다.

원래 능력 있는 신하들을 대거 이끄는 지도자는 적의 동태나 적을 이길 계책까지 일일이 자기 스스로 챙겨야 할 필요는 없다. 적의 동태를 살피고, 분석하고, 그들에 대항할 계책을 세우는 것은 신하가 할 몫이다. 지도자는 다만 누가 분석에 능한지, 누가 계책에 능한지 자기 조직의 사람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모두 성격이 다르고, 서로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게다가 이유 없이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게 조직이다. 그러므로 원소 조직의 사람들이 개성이 너무 강했던 것은 결코 그의 패인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능력과 성격과 인간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만 알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소는 거꾸로 자신의 신하들을 잘 몰랐고, 그렇다고 전쟁에도 큰 계책은 없었으니 어떻게 이런 사람이 영화를 누릴 수 있겠는가.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한 리더십의 부족

조조는 기주를 점령하고 난 뒤 원소 신하들의 면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북에는 어찌 이리도 의사(義士)와 인재가 많단 말이냐. 원소가 이들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썼다면 내가 어찌 원소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결국은 원소의 인덕이 부족하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서 쓰지 못한 리더십의 부족이 그를 패망으로 이끈 것이다. 의심이 많고, 아부에 약하고, 자기체면 세우기에 바쁘고, 설 똑똑해서 자기보다 뛰어난 자들의 꼴을 보지 못해서 부하까지 질투하는 리더는 늘 파멸에 이르는 길로만 찾아다닌다.

이런 주군을 잘못 고른 죄로 원소의 신하들은 모두 죽거나 조조에게 정복당한 시민으로 투항했다. 원소가 큰 전력을 가지고도 전력이 약한 조조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모가 장량처럼 뛰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신하의 성패는 이렇게 주군의 능력과 운에 편입돼 있다. 그러므로 신하된 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과 신념보다 ‘주군을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풍과 저수는 주군을 잘못 선택한 원죄와 함께 주군과 소통하지 못함으로써 ‘주군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으로 실패한 신하였다.

먼저 전풍은 전 기주목 한복에게서도 중용 받지 못했다. 일각에선 정직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그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조 진영에서 원소와의 전쟁을 논의할 때 공융(孔融)은 “전풍 같은 지혜로운 참모가 있어서 이기기 어렵다”고 조조에게 말한다. 그러자 조조의 큰 모사 순욱(荀彧)은 이렇게 말한다.

“전풍은 지혜로우나 고집이 세고 성격이 강해서 주군의 뜻을 거스르게 될 것이다.”

결국 순욱은 그가 아무리 정확하게 판단하고 지혜로운 계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원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예견한 것이다. 신하는 간하고 제안할 뿐, 선택과 결정은 주군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택되지 않는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제로 원소는 공손찬을 이길 때까지 전풍의 책략을 활용했다. 원소가 전풍의 계책으로 자신의 가장 큰 치적을 만들었으니 그도 전풍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전풍의 제대로 된 계책들은 교만해진 원소에게 하나도 먹히지 않는다.

전풍과 저수는 둘 다 허도에 있는 황제를 모시고 오자고 제안한다. 당시 동탁과 조조가 권세를 얻은 것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아무리 황제가 허수아비 같이 돼 있다 하더라도 황제는 황제였고, 황제를 끼고 있는 자가 정통성을 주장하며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었다. 조조의 성공도 다 떨어진 황제를 허도로 데리고 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원소는 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워낙 사안이 크다보니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러다 조조가 유비를 잡으러 20만 대군을 일으켜 서주로 진격하자 유비가 원소에게 구원을 청한다. 이들 사이엔 이미 함께 조조를 도모하자는 약속이 돼 있던 터였다. 전풍은 기회가 왔음에 환호한다. 그리고 유비의 사자로 온 손건을 데리고 원소에게 가서 당장 허도로 진격해야 한다고 열심히 간한다.

전풍은 “허도가 텅 빈 틈을 이용해 허도를 공격하여 빼앗아야 한다”고 열심히 간한다. 이는 황제를 빼앗아 ‘황제를 끼고 천하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원소는 때마침 막내아들이 옻이 올라 아픈 데에 정신이 팔려 이를 거절한다. 그는 좋은 아빠 코스프레를 하며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이에 전풍이 한 행동은?

주군의 행동에 분노한다.

그는 지팡이로 땅을 치고 던져버리면서 화를 내며 외친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마다하면 벌을 받는다 하였는데 주공께서는 어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하시는가.”

가뜩이나 틈만 나면 서로 음해하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원소의 조직에서 전풍의 이런 행동이 어떻게 주군의 귀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되고, 아들이 아파 심란한 아버지 원소는 이런 몰인정한 신하에게 역시 분노한다.

원소의 지원을 받지 못한 유비는 조조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혼자서 원소에게로 도망친다. 후한 말, 모든 전쟁에는 유비가 있었다 할 정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전쟁 충동질로 이골이 난 그가 이번엔 원소에게 조조와 싸우도록 충동질을 한다.

이때 전풍은 말린다. 과거 허도가 비었을 때는 공격할 타이밍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그의 말을 들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주인공은 조조가 아니라 원소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자부심 강한 스타일리스트 리더의 함정

그러나 원소는 듣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전풍을 참하려다 주위의 만류로 참형은 거두고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전풍이 바락바락 대들었고, 가뜩이나 전번에 기회를 놓친 것으로 원소도 속이 상한데 거기다 그 기억을 되살려내면서 비난조로 말하니 원소의 격노가 워낙 컸던 탓이었다. 나중에 이로 인해 전풍이 종군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손바닥을 치며 기뻐했다고 한다.

저수는 감군(監軍)과 도독을 맡고 있던, 한때 원소 조직의 2인자였던 모사였다. 그의 세력이 워낙 크다보니 다른 재기발랄한 모사들이 그를 가만 놔둘 리 없었다. 각종 음해가 들어가고 원소는 의심하게 되고 저수의 직책을 줄여나간다.

저수는 전풍만큼이나 사태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관도대전에 임하는 생각이 전풍과 같았다. 그러다 전풍이 하옥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재산을 가족들에게 나눠주며, 하직인사를 한다. 그는 이미 원소의 패배를 예감한 것이다.

저수는 중원의 질서를 재편한 관도대전의 첫 탐색전인 백마전투부터 종군하며, 원소에게 간한다. 그런데 간하는 내용이 장수 안량을 백마 선봉으로 보내려 하니 “안량은 맹장이나 편협하고 강하여 부장들이 안량의 눈치만 보느라 약하고 의욕이 적다”고 한다거나 안량이 죽고 난 뒤 문추를 다시 출병시키는 것을 말리며, 지구전을 주장한다. 또 조조가 식량보급로 확보에 유리한 관도로 물러가자 관도로 진격하려는 원소를 말린다. 그러나 원소는 듣지 않는다.

이에 저수는 한탄한다.

“윗사람은 제 고집만 내세우고, 아랫사람은 제 공만 앞세우려 하니, 과연 내가 저 광활한 황하를 두 번 다시 건널 수 있으리오?”

그리고 저수는 관도에서 속전속결을 하려는 원소를 말린다. 원소는 자신의 70만 대병의 위용에 자못 흐뭇해하면서 이런 대군으로 무엇이 걱정이냐는 식이다. 이에 저수는 말한다.

“비록 아군의 수효는 많으나 조조 군사의 용맹스러움을 당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원소는 이 직설적인 말에 화를 내며 저수에게 쇠고랑을 채워 감옥에 가두라고 명한다.

물론 저수의 판단은 옳았다. 그런데 자부심 강한 스타일리스트 리더는 대부분 속이 좁아서 계속 옳은 판단만 하는 신하를 증오한다. 자신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존재이므로. 또 주군이 소인배가 아니라 하더라도 듣기 싫은 ‘옳은 말’을 할 때에는 화법과 태도,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 신하들의 말로

그런데 대부분 자신의 정직성과 옳음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은 태도가 거친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상대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까지 취한다. 그들은 고분고분 얘기하고, 상대를 먼저 기분 좋게 만들어주면 왠지 아부하는 것 같이 느껴져 오히려 훨씬 거만하고 직설적으로 ‘옳은 말’을 해버려 용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만인들이 ‘옳은 말’을 하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또 그런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더 거만하게 말하고 상대를 비하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그렇게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 신하들은 거의 죽임을 당했다.

더구나 원소는 아부하는 말을 좋아하는 스타일리스트다. 게다가 자기 자신에 대해 비정상적일 만큼 만족하고 자부심이 높은 잘난 족속이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네가 잘못됐고, 내가 옳다’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차라리 죽어 마땅한 짓이다.

전풍과 저수는 멀리 세태를 보는 눈은 가졌으나 자기 주군을 보는 눈이 없었고, 자기 주군을 다루는 능력조차 없었다. ‘좀 더 고분고분하게, 아부하듯이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맞춰주면서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기술’만 가졌더라면, 삼국지 주인공은 조조가 아니라 원소로 바뀌었을 것이며 지금 온 세상이 칭송하는 제갈량의 자리에 전풍과 저수의 이름이 올랐을 수도 있었다.

그런 그들을 역사가들은 불운한 ‘의사(義士)’로 떠받든다. 사실, 원소 진영의 무질서한 난맥상을 돌아보면 그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신하론의 관점에선 그저 ‘나쁜 신하’의 사례일 뿐이다. 그들의 최후는 장렬했으나 실패한 신하로 죽고 난 뒤 ‘알고 보니 네가 옳았다’고 칭찬받으면 무엇 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핍박받았던 많은 신하들은 대부분 ‘옳은 판단을 하고, 옳은 말로 간했던 신하’들이다. ‘옳은 말’은 자신의 목을 치는 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도덕적으로 승리했으니 됐다고?

아니다. 신하의 위치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핍박받아 쫓겨나거나 죽는 것은 모두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패하지 않을 모든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자신의 판단과 지략에 자신이 있다면, 판단력을 더욱 예리하게 다듬기 전에 주군을 기분 좋게 설득하는 화법부터 익히는 것이 좋다.

주군을 망치는 간신배들은 다 갖춘 이 기술 하나 습득하지 못하고, 어떻게 성공적인 신하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신하들이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신하는 종속변수’라는 것이다. 주군이 승리해야 신하에게도 영광이 있는 것이다. 일을 이루는 것은 주군의 기력에 따라 좌우된다. 주군을 승리하게 하는 일이 신하 자신의 자존심·체면·신념보다 중요하다.

‘승리하는 주군의 잘 나가는 신하’만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과 신념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전풍(田豊, ?~200년)

자: 원호(元皓)
소속: 기주 (한복→원소)
출신: 기주 거록군(冀州 鉅鹿郡)이라고 전해지나 일설엔 발해군 사람이라고도 한다. 천부적으로 권모와 지략이 풍부했다고 전해진다.
출사: 기주목 한복을 섬기다 191년 원소의 초빙으로 원소 진영의 별가(別駕)로 출사한다.
사망: 200년, 원소에게 관도대전을 말리다 옥에 갇혀 있던 중 관도대전 패전 후 부끄러워진 원소가 보낸 보검으로 자결.

저수(沮授, ?~200년)

소속: 기주 (한복→원소)
출신: 기주 광평군 (冀州 廣平郡). 어린 시절부터 큰 뜻을 품고 책략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사: 한복 밑에서 기주 별가로 출발해 기주가 원소에게 병합될 때 원소 진영으로 옮긴다. 감군(監軍)· 분위장군(奮威將軍)을 거쳐 도독(都督)으로 승진했으나 관도대전 당시 진중에서 속전속결을 말리다 투옥된다.
사망: 원소가 달아난 후 관도 군영의 감옥에서 조조에게 붙잡혀 투항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고, 틈을 노려 달아나다가 붙잡혀 처형당한다.

양선희 -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매주 칼럼‘양선희의 시시각각’을 연재하는 중이다. 2011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래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여류(余流)삼국지』 (메디치 미디어), 『카페 만우절』(나남) 『5월의 파리를 사랑해』 (문예중앙) 등이 있다.

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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