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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삼국지로 본 사람 경영’- 주인을 잘못 고른 탁월한 신하들(3) 

가후(賈詡) 삼국지 최고의 처세술과 책략의 달인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여류(余流) 삼국지』저자
신하의 처세에 성공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면, 반드시 마스터해야 할 사람이 가후다. 가후는 수없이 주인을 바꾸고, 앞선 주인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홀로 살아남아 삼공에 반열에 오르고 천수를 누리다 자기 침상에서 편히 눈을 감은 ‘처세의 달인’이다.

▎『삼국지』 위서 가후전에서 진수는 가후에 대해 “책략에 실수가 없고, 사태 변화를 꿰뚫었다”고 평했다.
가후는 주군을 고르는 눈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는 자리가 있는 곳에 우선 뛰어들고 보는 스타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첫 출발은 동탁의 사위인 중랑장 우보의 참모였다.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당하면서 동탁의 천하는 햇수로 3년 만에 끝났고, 우보 역시 자신의 심복이었던 호적아에게 살해당한다. 게다가 명분 있게 죽은 것도 아니고, 재물을 들고 도망치다 재물에 눈이 먼 심복이 죽인 것이니 우보라는 인물의 됨됨이가 참으로 변변찮았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 다음 주인은 천하의 무도한 이각과 곽사 같은 무리들이다.

이렇게 신하의 첫 번째 원리, 주인을 제대로 골라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가후는 어떻게 천수를 누리며 명성을 떨치는 신하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다 싶으면 지체 없이 떠나라

첫째, 가후는 주인을 움직여서 자기 자리를 만들 줄 알았고, 아니다 싶으면 지체 없이 떠나는 이적(移積)의 달인이었다. 조폭 조직이나 다름없었던 동탁의 잔당들은 동탁이 살해당한 후 그저 죽음이 목전에 이른 상황이었다. 동탁의 부하 이각, 곽사, 장제 등은 장안의 실권을 잡았던 왕윤에게 항복 의사를 밝혔지만, 왕윤은 “모두 용서해도 너희들만은 안 된다”고 거절한다. 이에 이들은 군대를 버리고 도망칠 궁리를 하는데, 가후가 이들을 설득하고 단결시킨다. 그리고 정국을 뒤엎을 수 있는 계책을 내어 장안으로 쳐들어가 여포를 추방하고, 왕윤을 죽인 뒤 동탁보다 더 무도하고 끔찍했던 이각과 곽사가 연합한 건달 정권을 탄생시킨다.

머리라고는 없는 조폭의 중간 보스쯤 됐던 이각과 곽사가 집권하면서 가후는 이 정권의 머리 노릇을 한다. 그렇다고 높은 직책에 앉은 것은 아니다. 다만 관리 선발을 관장하는 자리에 앉아 무도한 권력자들이 저질러놓는 폐단을 인재를 통해 막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건달패거리인 이각과 곽사는 저희들끼리 의심하며 난을 일으켜 장안을 초토화하고 황제를 핍박한다. 이때 가후의 선택은 천자를 보호하고, 그들과 함께 죽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모셨던 주군 이각의 무도함이 극에 달하자 떠나버린다.

다음에 선택한 것이 역시 동탁 잔당의 한 사람인 장제의 조카 장수다. 가후는 별 근거지 없이 떠도는 장수를 도와서 조조·원소의 세력으로부터 중립을 지켰던 유표와 화친을 맺게 한다. 그리고 조조가 쳐들어오자 계책을 세워 조조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또 장수가 원소와 조조 중 어느 편인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섰을 때, 가후는 원소가 보낸 사자 앞에서 원소의 편지를 찢으며 거절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장수에게 조조 편에 설 것을 설득한다. 사실 장수와 조조는 워낙 치열하게 싸웠던 데다 조조의 맏아들과 조카까지 죽였던 터라 장수는 조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또 그 당시엔 누가 봐도 원소의 세력이 워낙 컸기에 조조 편에 선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가후는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눈이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장수를 설득한다.

“조조와 손을 잡는 것이 세 가지 면에서 옳소이다. 첫째, 조공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천하를 정벌하는 것이니 명분이 있고, 둘째 원소는 지금 형세가 강성하니 우리 같은 적은 세력이 저를 따른다 해도 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나 조공은 형세가 약하니 반드시 환영할 것이며, 끝으로, 조공은 오패(五覇)의 뜻을 품고 있는 자라 사사로운 원한으로 대사를 그르치지 않을 것이오.”

세태를 읽는 눈이 정확했다


▎가후는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눈이 있었다. 사진은 중국 드라마 속 가후.
마침내 가후는 장수를 설득하여 조조에게 귀순한다. 조조는 원래 가후의 능력을 높이 샀던 터라 그를 얻은 것을 기뻐하며, 경찰서장 격인 집금오에 임명하고, 후에 관도대전에 함께 데리고 간다. 그 후 장수는 원소의 장남인 원담이 남피까지 도망갔을 때 출전하여 큰 공을 세우며, 조조의 장수로 살았고, 가후 역시 조조의 모사로 관도대전부터 대활약을 펼친다.

둘째는 탁월한 실력이다. 신하에게 있어서 실력이란 어디서나 통하는 궁극의 경쟁력이다. 그는 곽가가 죽은 이후 조조 무리들 가운데 전술과 전략을 담당하는 핵심을 차지한다. 그는 세태를 읽는 눈이 정확했다. 조조가 관도대전에 임해서 반년이나 대치를 하며, 군량 위기로 몰린다. 이때 가후는 조조에게 조조가 이길 수밖에 없는 네 가지 이유를 들며 대치만 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간한다. 조조가 남정하여 손권을 치려 할 때는 “전쟁을 하지 말고 선비들에게 상을 주고, 백성을 위로하고, 편하고 즐겁게 일하도록 한다면 손권이 저절로 머리를 숙일 것”이라며 화친 전략을 간한다. 그러나 조조는 듣지 않고 전쟁을 벌이다 패한다.

또 가후의 인상적인 활약은 막무가내 젊은 장수 마초를 이기는 계책이다. 조조의 장수들은 힘으로 마초를 대적하지 못하고, 그래서 나가 싸우기보다 지키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조조는 평소 침착한 태도로 병사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군심을 잘 다스리는 리더다. 그런데 조조는 마초가 자기 군영 밖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성을 잃고 투구를 벗어던지며 소리친다.

“저 놈이 살아있는 한 내 묻힐 땅조차 없겠구나.”

마초와 대적하며 조조의 스트레스도 그 정도로 극에 달해 있었다. 가후는 이런 천하무적 마초를 같은 편끼리 의심하도록 이간책을 쓰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마초를 멸망시킨다.

또 조조가 후사를 결정하는 문제로 장남 조비와 삼남 조식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가후에게 묻는다. 이때 가후는 즉답을 피하고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다만 원본초(원소)와 유경승(유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원소와 유표가 모두 장남을 후사로 세우지 않아 망했음을 넌지시 일깨워주는 것으로, 조조는 이 말을 듣고 조비를 후사로 삼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 삼국지』 위서 가후전에서 진수는 “순유와 가후는 잘못된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둘은 권모에 빈틈이 없었고, 변화에 따르는 융통성이 있었으니 가히 장량과 진평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한다. 그는 실력으로 수퍼S급 인재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삼가고 조심하는 낮은 자세 전략으로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업무 실력이란 어느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경쟁력일 뿐이다. 이는 살아남는 경쟁력과는 다르다. 오히려 뛰어난 실력 때문에 일찌감치 뿌리 뽑혀 어느 귀신한테 잡혀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은 흔하다. 실력보다 중요한 게 살아남는 처세술이다.

가후는 언제나 외인부대였다. 동탁이 죽고 난 뒤 이각과 곽사의 무리에 속하게 되나 그는 원래 동탁 사위인 우보의 참모였다. 같은 편이긴 했으나 정통파 이각의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동탁의 무리들이 궁지에 몰린 시점이라 그는 이각의 무리를 돕는다. 그리고 드디어 이각의 무리가 권력을 쟁취한다.

이에 이각은 가후를 제후에 봉하려 한다. 그러자 그는 사양하며 말한다.

“그저 목숨을 구하려는 계책을 낸 것이 무슨 공이겠습니까?”

삼가고 조심하는 낮은 자세 전략


▎가후는 삼가고 조심하는 낮은 자세 전략으로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실력이 뛰어날수록 몸을 낮추는 처세야말로 제 한 몸의 위태로움을 피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완강하게 사양하며 큰 벼슬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기관장인 상서복야를 맡기려 하자 이 역시 맡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인사부서의 일을 보는 상서를 맡았을 뿐이다. 그 후에도 가후는 이각이 내리는 관직들을 거절하며, 낮은 자리에 머물고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우며 난리를 부리는 통에는 대신과 황제를 보호하는 일에 나선다.

그는 계책과 모략이 깊고 뛰어난 데다 사람이 영민함에도 이처럼 삼가고 낮추는 태도 때문에 무도한 이각 등도 그를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이후에도 자신의 주군들에게 경계심과 두려움을 주는 기운이 있었는데, 언제나 자세를 낮춰 자신의 영민함이 자신의 목을 치지 않도록 했다.

또 조조 진영에 합류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는 외인부대였다. 이에 그는 깊고 인상적인 실력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나대지 않는 처세로 남들의 눈에서 비껴나려고 애썼다. 그는 항상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지켰으며, 집에 돌아와서도 사사로운 교분을 맺지 않았고, 자식들도 권문세가와 혼인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력이 뛰어난 것 자체로도 그의 주변에선 손톱을 세우고 노리게 돼 있다. 하물며 보호막도 없는 외인부대일 때에야 더하다. 그는 책잡히지 않는 전략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실제로 신하로서의 최고 영예는 순직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서 천수를 누리고 자기 집 침상에서 죽는 것이다.

원래 소문난 마당발이 허명(虛名)은 얻으나 실속이 없고, 때로는 그 숱한 인맥의 어느 부분에 치여 명예도 잃고 목숨도 잃는 일이 허다하다. 진정 실력 있는 사람은 숨어서 몸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주군의 선택에서 실수할 수 있다. 처음 본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무도하거나 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주군에게서는 영화를 구하지 않고, 때가 왔을 때는 떠날 줄 알고, 실력이 못 미치는 주인과는 함께 실력 있는 주인을 찾아 투항할 줄 아는 처세가 중요하다. 또 실력이 뛰어날수록 몸을 낮추는 처세야말로 제 한 몸의 위태로움을 피하게 하는 방법이다.

양선희 -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매주 칼럼‘양선희의 시시각각’을 연재하는 중이다. 2011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래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여류(余流)삼국지』 (메디치 미디어), 『카페 만우절』(나남) 『5월의 파리를 사랑해』 (문예중앙) 등이 있다.

[박스기사] 동탁의 모사 이유(李儒) - 주군을 완전히 잘못 고른 지식인


▎동탁의 모사 이유는 주군을 완전히 잘못 골라 자신의 능력을 세상을 파괴하는 데 사용한 불우한 지식인이었다.
소설 『삼국지』에 나타난 동탁 진영에서 가장 맹활약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모사는 이유(李儒, 자는 문우(文優))다. 이유는 동탁이 당시 황제인 유변(劉辯)을 폐하고, 그의 아우인 유협(劉協)을 황제로 앉히는 문제에서부터 관여하기 시작하여 동탁 진영의 모든 전략이 그의 머리에서 나온다. 소설에서 이유는 단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원소가 맹주가 된 반동탁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원소의 숙부인 태부(太傅) 원외(袁隗)를 죽이고, 낙양(洛陽)에 불을 지르고 떠나 장안(長安)으로 천도하도록 건의하여 성사시키는 등 동탁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계책을 내놓은 모사로 그려진다.

이유가 간하는 대로 할 때 동탁은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사도 왕윤(王允)이 동탁에게 초선을 보내고, 이로 인해 동탁과 여포(呂布) 사이에는 갈등이 깊어지자 이유는 초장왕(楚莊王)의 절영지연(絶纓之宴)의 이야기를 하며,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라”고 간한다. 동탁은 워낙 이유의 말을 잘 듣는지라 처음엔 보내려 하다가 나중에 초선이 반발하자 마음을 바꾼다. 이에 이유는 “우리 모두 한 계집의 손에 죽겠구나”라며 통탄한다. 이유의 계책이 먹히지 않으면서 동탁 진영은 무너진다. 동탁은 수양아들 여포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직후 이유도 함께 처형되는 것으로 소설은 그리고 있다.

최악의 무뢰배 동탁을 섬긴 불운

그러나 다른 기록에 따르면 이유는 동탁 사후에도 살아남아 이각이 이유를 헌제에게 천거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이유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는 점에서 일단 소설에 나타난 그의 면모만으로 본다면, 이유는 판단에 실수가 없는 모사 중의 모사였다. 그러나 그는 주군을 완전히 잘못 골라 자신의 능력을 세상을 파괴하는 데 사용한 불우한 지식인이었다.

이유가 모셨던 동탁은『삼국지』‘동탁전’의 첫머리에 따르면, ‘젊은 시절 협기를 숭상하여 일찍이 강족이 사는 곳까지 떠돌아다니며 그 우두머리와 사귄 사람’이다. 한 마디로 건달 혹은 깡패였다는 얘기다. 완력이 대단했고, 염치와 도덕이 없었으며, 무식하고 배포가 컸다. 원래 구질서가 무너지는 시기에는 이런 인물들이 등장해 기존 질서를 완전히 허물고 무정부 상태와 같은 혼란을 야기하여 새로운 영웅들을 불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물들은 권력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외부에서도 나타난다. 가깝게는 명나라 말기의 이자성이라든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도 신군부 쿠데타 세력과 같은 이들이다. 동탁은 그들 중에서도 최악의 무뢰배 중의 하나였다. 그는 역사 속에서 후한 말의 혼란을 단기간에 극적으로 ‘혼란의 궁극’까지 밀어붙인다. 후한 말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뛰어난 인물들이 동시에 튀어나와 일전을 벌인 것은 동탁이 가져온 엄청난 충격의 여파로 인한 것이다.

동탁은 나쁜 권력이 갖는 모든 특징, 무식함·파괴·포악함·공포·탐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악한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식인, 즉 모사의 계책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뛰어난 지식과 지능과 재능을 갖고 태어난 자가 때로는 세상을 악하게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서기도 한다. 바로 이유가 그런 인물이 된다. 재능이 뛰어난 자들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용처는 아주 달라진다는 점을 이유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201705호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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