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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가 성장이다(2) 

대규모 관광 플랫폼 ‘크루즈’를 띄워라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가파른 성장세와 경제적 파급효과로 주목받던 국내 크루즈 산업이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맥을 못추면서 방문 관광객은 지난해 대비 반토막 났다. 중국 일변도를 벗어난 시장 다변화, 내수 확대를 통한 해외 선사의 국내 모항 유치가 시급하다.

▎롯데관광개발이 전세선으로 환동해 노선에 띄우고 있는 7만8000t급 크루즈 ‘코스타 빅토리아’
지난여름 찾은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은 새로 건설한 입국심사장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새 입국심사장엔 출입국 심사대 7개, 엑스레이 검색대 4개 등이 도입됐다. 입국심사장 뒤편으로는 대형 버스 수백 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주차장도 조성됐다. 부산항만공사(BPA) 관계자는 “이동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기존 국제여객터미널 내 입국심사장을 이용할 때보다 최대 1시간30분가량 단축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여행객들이 입국 절차를 밟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시내 체류 시간이 길어져 지역관광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 시설은 당분간 그 효과를 경험하기가 힘들 전망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한국 방문 단체관광 상품 판매를 금지하면서 부산항을 찾는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항을 찾은 크루즈 관광객은 57만3000명이었으나 올해는 연말까지 기항 116항차, 승객 수 24만 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발 크루즈 96항차, 30만 명의 부산 기항이 취소되면서 반 토막이 난 셈이다.

제주항의 피해는 더 크다. 지난해 120만9000명까지 급증하면서 올해 150만 명 유치를 목표로 했지만 8월까지 93항차, 18만5212명에 그쳤다. 크루즈터미널의 전세버스 행렬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당초 7월 개항 예정이었던 강정항은 두 달 넘게 ‘개점휴업’ 상태다. 인천 역시 중국발 크루즈 20여 척의 기항이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연말까지 19항차, 3만6000명 유치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 62항차 16만4000명에 비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실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유럽의 대형 크루즈선사가 인천항 기항을 취소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가 올 초 업무계획에서 밝힌 크루즈 관광객 유치 목표는 200만 명이다. 그러나 8월 말 현재 한국을 찾은 크루즈 관광객은 36만1427명으로, 목표치의 18%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크루즈 관광객은 60만 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195만 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 크루즈 산업이 망가진 것은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크루즈 관광객에서 중국인 비중은 무려 91%다. 홍장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양관광·문화연구실장은 “중국 모항지 관광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시장 다변화를 위한 능동적인 노력이 부족했던 결과”라며 “이제부터라도 국내 업체가 주도하는 크루즈 시장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 성장세에 국내서도 인프라 투자 박차


세계크루즈선사협회(CLIA)·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자료를 종합하면 세계 크루즈 시장은 2015년 관광객 2400만 명을 유치해 최근 5년간 연평균 5.1% 성장세를 보였다. 2020년엔 3110만 명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크루즈 시장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관광객은 2015년 기준 209만 명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9.1% 성장했고, 2020년엔 560만 명 유치가 전망된다. 시장규모도 2015년 2조4000억원에서 2020년까지 해마다 20%씩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와 유럽 중심이었던 크루즈 시장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 크루즈 관광객은 2013년 151만 명에서 2016년 325만 명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2016년엔 전년 대비 49.8% 성장하면서 세계 크루즈 시장의 같은 기간 성장률 4.4%를 10배 이상 상회했다. 중국에 입항한 크루즈는 2015년 300항차에서 2016년 850항차로 183.3%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일본과 한국도 각각 136.2%, 97.6%의 성장률을 보였다. 중·일은 주로 카니발·로얄 캐리비안 등 유럽 선사를 유치해 자국 항구에서 출발하는 ‘모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은 이들이 오가는 경로에 잠시 머무는 ‘기항 프로그램’을 부산·제주·속초·동해·인천·포항·여수 등 7개 도시에서 운영 중이다.

국내 크루즈 시장 역시 2005년 방한 관광객 3만 명에서 2014년 100만 명을 넘어선 후 지난해 195만 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724만 명 중 11.3%가 크루즈를 이용했다. 홍장원 실장은 “불황에도 크루즈 여행객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동북아 3국은 경쟁적으로 크루즈 산업을 키우고 있다. 한 번에 수천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는 크루즈선이 관련 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크루즈 산업이 국내에 미친 경제적 효과는 5조원을 넘었다. 관광객들이 방문 도시에서 쓴 돈만 2조465억원에 달하고, 생산유발 효과는 3조4463억원으로 추산된다. 고용유발 효과는 2만4763명이었다.

한국은 지정학적 조건이 크루즈 산업 육성과 성장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크루즈 시장인 중국인들이 일본이나 러시아 등으로 여행을 하면서 기항지로 선택하기에 딱 좋은 위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완공되어 운영 중이며, 2018년 3월 제주 강정항 크루즈터미널 준공과 2019년 인천항 크루즈터미널 개장을 앞두고 있다. 속초항은 올해 9월 국제여객터미널을 완공했다. 정부는 2020년까지 크루즈 전용부두·여객터미널·복합관광단지 등 기반시설 조성에 1조617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김기주 부산항만공사 부장은 “크루즈 산업의 핵심은 항만 인프라와 관광 프로그램의 연계”라고 말했다.

중국인·면세점 일변도 탈출 시급


▎1. 제주항에 정박한 ‘골든프린세스’호의 수영장. / 2. 아시아 최대 크루즈선인 ‘오베이션’호 (16만8000t급)가 지난해 부산 남구 감만부두에 입항해 있다.
문제는 인프라 시설만으로 크루즈 산업의 큰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중국 의존적 크루즈 정책으로는 정치적 관계 변화나 2년 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과 같은 우발적 사태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국내 크루즈 산업은 연평균 30% 이상 급증하는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 때문에 ‘앉아서 돈 번’ 모양새였다. 중국·일본·러시아 등을 경유하는 기항지로서의 지리적 이점 덕분이었다. 그러나 취약한 기반은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분석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기항 크루즈 관광객의 58.2%는 ‘처음부터 한국이 기항지로 포함된 상품’을 선택했으며 ‘타 국가 기항지와 비교 후 선택’한 비율은 15.6%에 불과했다. 중국발 크루즈가 한국을 기항지에서 빼버리거나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기항하는 상품을 외면하면 우리나라로선 사실상 대안이 없는 구조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뒤늦게 중국을 대체할 시장 개척에 나섰다. 일본 주요 도시를 기항하는 모항 크루즈를 확대하고 대만과 동남아 관광객을 일부 유치하는 등 시장 다변화에 나서고 있는 것. 하지만 이들이 중국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는 지적도 있다. 여행 코스가 한반도 남쪽인 제주·부산항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고, 시장 규모 자체도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해수부가 기대하는 내년 대만 크루즈 관광객 수는 6만 명가량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중국 내 개별 관광객에 대한 마케팅 강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국관광공사가 중국 상하이와 시안 지역의 잠재 크루즈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623명 중 400명(64.2%)이 개별 크루즈 여행을 선호했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선 개별 크루즈 관광객도 비자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개별관광객 관광 상륙허가’ 시범사업을 재운영하고 온라인 여행사와 공동으로 프로모션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쇼핑 일변도의 관광 프로그램도 뜯어고쳐야 한다. 국내 크루즈 시장은 중국과 일본을 연계하는 중간 기착지로서, 쇼핑관광 중심의 기항지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보니 국내 크루즈 시장의 지출 구조는 쇼핑비용이 90% 이상이며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에는 그 비중이 99%에 육박하고 있다. 크루즈는 항공기와 달리 수화물 무게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중국인을 중심으로 쇼핑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분석이다. 크루즈관광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면세점 매출 외에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또 쇼핑관광에 치우친 상품은 제품 선호도 변화, 제품 가격 등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크루즈 관광객 유치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부산·제주·인천 등 지역별 관광자원을 활용한 특색 있는 관광 콘텐트를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홍장원 실장은 “크루즈관광과 연계된 지역 프로그램과 메가 이벤트가 턱없이 부족해 하선율이 떨어진다”며 “기항지 여행 시 ‘관광할 시간이 짧고’ ‘관광지가 흥미롭지 않다’는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기항지 관광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물론 세부항목별 만족도가 2014년 이후 3년 연속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관광지 매력’과 ‘관광일정’ 분야에서 가장 만족도가 낮다.

국내 크루즈 시장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국적 선사를 통한 모항 육성’이 답이다. 중국 등 해외 크루즈선사의 기항으로 성장해온 국내 크루즈 관광의 실정상 국내 시장 활성화나 외래 관광 시장 다변화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내 수요 늘려서 모항 육성해야


▎지난해 ‘퀀텀 오브 더 시즈’호가 관광객 약 5500명을 태우고 부산 감만 부두에 입항한 모습. 승객 4000여 명은 12개조로 나눠 해운대·누리마루· 해동용궁사·자갈치시장 등 부산의 명소를 관광했다.
그러나 한국을 모항으로 출발하는 크루즈는 아직 미미하다. 2012년에 처음으로 국적 크루즈선사인 하모니크루즈가 2만t급 크루즈를 취항했지만 이듬해 1월 운항을 중단하고 폐업했다. 이후 한국을 출발하는 크루즈는 일부 여행사들이 외국 배를 단기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력한 국적 크루즈선사 후보로 현대아산을 꼽아왔다. 국적 크루즈선사 출범을 위해 팬스타라이너스와 현대상선이 2015년 설립한 국내 합작법인 코리아크루즈라인이 계약 해지로 해산된 후 과거 금강산 유람선을 띄웠던 현대아산이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지난여름 현대아산이 7만5000t급 코스타 빅토리아 호를 빌려 부산항을 모항으로 하는 한국~일본 크루즈를 2항차 운항하자 그 기대감은 커졌다. 그러나 현대아산은 내년 용선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현재로선 국적 크루즈 검토는 물론 내년 추가 용선 계획도 전혀 없다”는 게 현대아산 관계자의 말이다. 시장에서는 “현대아산이 크루즈관광 사업을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해외 크루즈선사 유치를 통해 크루즈 노선과 상품을 다변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를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선사를 유치해서 일본·러시아와 연계한 환동해·북극권 크루즈 노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장원 실장은 “국제 크루즈선사와 크루즈항만을 공동운영해 해외 크루즈선사의 국내 모항을 유도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며 “눈 구경을 희망하는 동남아 관광객을 항공기로 양양공항에 유치한 후 속초에서 출발하는 환동해 크루즈 관광과 연계하는 에어앤크루즈(Air&Cruise) 상품 등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크루즈상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크루즈선사 유치를 위해선 내국인 크루즈 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크루즈 관광객은 6만 명 정도로, 최소한 국내 수요가 10만 명은 넘어야 크루즈 산업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제크루즈선사협회는 “인구 대비 크루즈 관광객 비율로 볼 때 한국의 크루즈관광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며 “현재 크루즈 여행 경험이 낮은 수준이지만 중국·일본과 함께 내수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은퇴자가 많은 교원공제회와 군인공제회 등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박스기사] ‘동북아 크루즈 강자’ 꿈꾸는 일본


▎일본 요코하마 항구
일본 국토교통성 항만국은 최근 “올 들어 7월까지 크루즈를 이용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135만8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세라면 2016년 유치 실적 199만2000명을 10월 중에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항만국은 중국에서 출발하는 대형 크루즈의 일본 기항이 급증하면서 올여름부터 ‘월별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항만국 관계자는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은 2020년 크루즈 관광객 유치 목표를 500만 명으로 잡고 있다.

일본 또한 2012년 센카쿠제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중국인의 일본 단체관광 취소 사태를 겪은 바 있다. 2013년 방일 중국인 관광객은 약 132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7.7% 감소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은 개별 관광객을 타깃으로 여행박람회 개최, 온라인 마케팅 실시, 복수비자 발급 허용 등 다양한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방일 중국인 관광객은 2014년 83.2%가 늘면서 단기간에 회복했다. 지난해 방일 중국인 관광객은 약 637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크루즈 기항이 가능한 일본 내 항만은 104개나 된다. 그러나 항만국은 지난 1월 지자체의 과잉경쟁 방지를 위해 전국에 6개 항을 국제 크루즈 거점 항만으로 선정했다. 외국선사와 항만당국이 공동으로 크루즈항을 개발해 거점 모항과 단순 기항지로 구분하는 것이다. 크루즈선사에게는 최소 10년 이상 크루즈부두 우선 사용권과 터미널 내 공공시설을 지원한다. 이 같은 ‘민관 제휴’ 방식 개발은 큰 효과를 나타내 현재 요코하마항·시미즈항·사세보항 등에서 카니발크루즈·로열캐리비안·겐팅홍콩 등 4개 선사와 공동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내수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항만국에 따르면 지난해 크루즈 등 유람선 탑승객은 24만8000명을 기록했다. 일본 대형 해운사 닛폰유센의 가장 값비싼 여행상품인 석 달 코스 세계 일주 크루즈 상품은 출시 첫날 매진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를 두고 “일본의 부유한 은퇴 노인들이 호화 여행 상품에 몰려들고 있다”며 “일본에서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노인과 부유층은 늘고 있으며 두 집단이 겹치기도 한다”고 전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201711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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