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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CULTURE | 유혹하는 ‘카리브 해의 진주’ 카르타헤나 

 

글·사진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그의 이탈리아 본명은 콜롬보(Colombo)이다. 이것을 라틴어로 표기한 콜룸부스(Columbus)의 영어식 발음을 따라 한글로 표기한 것이 ‘콜럼버스’이다. 그의 본명을 그대로 따와 국명으로 정한 나라가 바로 콜롬비아(Colombia)이다. 즉 ‘Colombo’에다가 장소를 나타내는 어미 ‘-ia’를 붙인 것이다. 이러한 콜롬비아의 최고 관광도시가 바로 카르타헤나이다. 수도 보고타에서 비행기 편으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카르타헤나 중심의 호텔 마비치(Mavich)의 옥상 테라스에서 본 카르타헤나의 성벽 안의 구시가지. 멀리 고층 아파트와 호텔이 밀집한 신시가지가 보인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관문 콜롬비아

콜롬비아라면 먼저 세계적인 커피 생산국이란 사실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데 이 나라가 아직도 위험한 곳으로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실 콜롬비아는 과거 오랜 기간 동안 무장세력과의 내부 분쟁을 겪었으니 여행지로는 꺼려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정부는 그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2016년 6월에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과 화해했고 이에 따라 콜롬비아의 대외적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콜롬비아는 이제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는 것은 콜롬비아가 다양한 문화와 자연환경을 잘 보존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CNN 트래블(CNN Travel), 블룸버그 통신(Bloomberg News)은 콜롬비아를 ‘2017년 최고의 여행지’로 선정했을 정도이다. 그래도 꺼림칙하게 느껴진다면, 먼저 콜롬비아의 북부도시 카르타헤나에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떨까?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카르타헤나의 거리.
카르타헤나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한마디로 ‘카리브해의 진주’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콜롬비아 제1의 관광도시이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콜롬비아의 북부해안은 카리브해, 북서해안은 태평양에 면해 있고 이 두 바다 사이에는 파나마가 마치 빨대처럼 길게 비스듬히 꽂혀 있는데 카르타헤나는 카리브해 해안에 위치한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대략 10도이니 사계절 구분은 없고 일년 내내 여름 날씨가 지속된다.

카르타헤나 시내에 들어서면 남국의 꽃향기와 눈부신 태양과 바다에 매료된다. 그리고는 높이 솟은 고급 아파트들과 호텔들을 배경으로 수많은 요트들이 바다에 정박해 있는 신시가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언뜻 보기에 지중해의 모나코 같은 인상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카르타헤나 앞바다에 떠 있는 듯한 작은 로사리오 섬은 도시를 떠나 자연에 묻혀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천국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유명한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를 비롯하여,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또 미국과 유럽의 부유층들도 카르타헤나를 즐겨 찾는다.

그런데 카르타헤나가 지닌 진짜 매력의 포인트는 다름 아닌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이다. 이곳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는 안달루시아풍의 집들과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 또 1811년 콜롬비아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다음에 세워진 ‘공화국 양식’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콜롬비아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바로 이런 환경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새로운 대륙에 세운 ‘새로운 도시’


▎카르타헤나 앞바다 카리브해의 로사리오 섬.
구시가지 입구는 황갈색의 시계탑이다. 그 아래의 통로를 통해 들어서면 마차의 광장이 펼쳐지고 상인들이 외치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광장 한쪽에는 16세기 스페인의 사령관 페드로 데 에레디아(Pedro de Heredia)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가 1 533년 6월 1일 바로 이곳에 도시를 세운 주역이다. 이 신도시의 이름은 스페인 남동해안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그것은 에레디아의 부하 대부분이 그곳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는 스페인의 카르타헤나와 구분하기 위해 ‘서인도 제도 지역의 카르타헤나’라는 뜻으로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Cartagena de Indias)라고도 한다.

한편 스페인의 카르타헤나는 역사적으로 보면 카르타고인들이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 이후에 세운 식민도시로 원래 이름은 ‘새로운 카르타고’라는 뜻의 카르타고 노바(Carthago Nova)였다. 그런가하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 814년에 세운 식민도시로 페니키아어로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는 그야말로 새로운 대륙에 세운 ‘새로운 도시’라고 할까?


▎세관 광장에서 보이는 여러 양식의 건축물들. 식민지 시대의 양식과 공화국 양식의 건축물 (왼쪽 끝) 뒤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보인다.
마차의 광장은 시청과 세관 광장으로 연결된다. 이곳에는 콜럼버스의 하얀 석상이 광장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니 비행기가 없던 시대에 유럽 사람들에게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관문이었고, 카르타헤나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관문 중의 관문으로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자국을 내디디던 곳이었다. 이처럼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카르타헤나는 금·은과 같은 보물을 쿠바를 거쳐 본국 스페인으로 보내던 곳이었으며, 또한 멕시코의 베라크루스와 함께 아프리카 노예 교역이 허가된 항구였다. 옛날 악명 높은 노예시장이 있던 곳이 바로 지금의 세관 광장이다. 당시 일년에 1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노예들이 극히 비인간적인 조건하에서 몇 달간의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왔었다. 이런 연유로 카르타헤나에서는 흑인과 흑인 혼혈이 아주 많이 보이는데 특히 강렬한 색상의 전통의상 차림으로 거리에서 열대과일을 팔고 있는 흑인 여인들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카르타헤나에서 약 50㎞ 떨어진 마을 팔렝케 데 산 바실리오 사람들이라고 하여 팔렝케라스(Palenqueras)라고 불린다. 이 마을은 식민지 시대에 카르타헤나에 끌려왔다가 탈출한 노예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그들의 후손인 이 여인들은 단순한 노점상이 아니라 카르타헤나의 아이콘처럼 보인다.

삶의 기쁨을 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시가지 입구인 시계탑이 있는 마차의 광장.
카르타헤나가 카리브해의 부유한 항구로 발전하자, 이에 눈독을 들인 프랑스와 영국 해적들은 이곳을 수차례 공격하고 약탈하면서 시가지를 파괴했다. 또 영국은 아예 이곳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함대를 동원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카르타헤나 시가지를 둘러싸는 11㎞의 굳건한 성곽과, 도시 외곽 요충지에 세워진 크고 작은 요새들은 옛날 치열했던 전투의 역사를 증언해준다. 카르타헤나에 남아있는 당시의 방어시설들 중 구시가지 외곽 동쪽 해발 40m의 언덕 위에 세워진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 성(Castillo San Felipe de Barajas)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최대 규모의 요새로 카르타헤나 구시가지와 함께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카르타헤나가 이처럼 보존이 잘 되어있다고 해서 이 도시가 예쁘게 박제된 박물관 같은 곳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옛날 수도원이나 귀족들의 저택을 개축하여 만든 고급스러운 호텔을 비롯하여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적지 않고, 연중 내내 음악제, 영화제, 미술전, 문학 페스티벌 등 수준 높은 문화행사도 많이 열리며 거리에는 밤늦게까지 삶의 기쁨이 넘쳐흐른다.

국내에서 콜롬비아로 가려면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이나 멕시코에서 환승하든가, 아니면 스페인이나 독일에서 환승한 다음 대서양을 횡단해야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그곳으로 한번 여행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500여 년 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몇 달 동안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것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콜럼버스의 석상이 있는 세관 광장. 이곳은 악명 높은 노예시장이었다.



▎카르타헤나를 방어하던 거대한 벙커 같은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San Felipe de Barajas) 요새.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내고 있는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및 옛 건축 복원 전문가들과 오랜 기간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오페라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201802호 (20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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