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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의 혁신 오피스(2) 반호프(Bahnhof) 

동굴 속 보안센터 

박지현 기자
스톡홀름 인근의 산에는 45미터 깊이의 지하 동굴이 있다. 스웨덴 인터넷 기업인 반호프(Bahnhof)의 데이터센터는 핵 벙커로 쓰였던 군 시설에 숨을 불어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동굴 안 오피스다.

▎스웨덴 인터넷 기업 반호프의 데이터센터(피오넨)는 과거 핵 벙커를 활용해 사무실로 꾸몄다. / 사진:반호프 제공, 아크데일리
피오넨(PIONEN)이라 불리는 이 사무실은 마치 근대와 현대를 뒤섞어놓은 듯하다. 벽 전체가 천연 화강암 바위로, 철제문이나 장식 없는 시설, 어두운 조명 등은 첩보영화에 등장하는 기밀 시설을 떠올리게 한다. 보안 시스템 회사답다. 사무실 초입엔 정전 시 자동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엔진 두 개가 있다. 실제 사용됐던 독일 잠수함 엔진이다. 이 때문에 존 카룽(John Karlung) 반호프 CEO는 “007 영화의 제임스 본드가 일하는 공간 같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이곳의 역사다. 실제 지하 핵 벙커로 활용됐던 장소로, 1970년대 수도 스톡홀름에 지어진 국방부 건물을 물려받았다. 1990년대에는 스톡홀름 동굴 탐험가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이 주목을 받은 건 한동안 미 국무부 외교 전문을 폭로했던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안 어샌지가 서버베이스를 아마존닷컴에서 반호프 데이터센터로 이동해서다.

2008년 지어진 피오넨은 건축가 알버트 프랑스-라노드(Albert France-Lanord)가 디자인했다. 규모는 약 1000㎡다. 실제 재해에도 안전한 건물이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 공간을 완전히 다르게 재활용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방치돼 있던 벙커 내부의 바위를 거친 형체 그대로 활용했고 조명과 식물을 적절히 활용해 신비로움을 더했다.

존 칼룽 CEO는 포브스코리아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는 서버가 인터넷에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며 “우리는 소화기, 두대의 거대한 잠수함 모터 형태의 예비 동력, 재생 가능한 전기, 열 재활용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오넨 사무실은 기능, 지속 가능성, 미학, 그리고 안전의 균형 잡힌 조합”이라고 자부했다.

건축가 라노드는 동굴 암반을 최대한 사람과 호흡할 수 있도록 가까이 두었다. 공중에 뜬 듯한 미팅룸은 원래 군대와 구조 차량을 위한 피난처였다. 이곳을 원형의 투명한 유리로 감싸 더욱 트인 공간처럼 조성했다. 사무실과 바깥 바위 사이엔 아주 작은 틈만 있을 정도로 밀착시켰고 방음 유리를 사용했다.

자칫 폐쇄적인 공간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식물과 물을 활용하기도 했다. 사무 공간 곳곳엔 식물로 둘러싸인 벽으로 조성했고, 샤워기처럼 쏟아지는 분수대를 설치했다. 식물로 덮은 벽은 마치 이곳에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지하 공기의 질을 향상시키고 직원들이 땅밑에서 오랫동안 일하면 생길 수 있는 밀실공포증에서 벗어나도록 고려한 것이다. 피오넨의 긴 터널에는 동굴 밖의 빛을 안으로 반사시키고 일부만 작은 조명을 켜 모자란 부분을 채웠다. 업무의 집중도를 높이고 은밀한 분위기가 동시에 연출되기도 한다.

다른 사무 공간엔 일부 바위를 치워 인터넷 서버와 다른 장비들을 연결해 데이터센터로 손색없는 내부로 설계했다. 반호프는 스웨덴의 중소 규모 사업자 중 하나로 약 10만 가구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인터넷 업체로 이름을 알렸다.

에너지 효율 높이는 지하 사무실 인기


▎책상 주변을 암반과 식물로 둘러싸 최대한 자연과 가깝게 설계했다.
반호프는 2014년 스웨덴 인근의 키스타 지역에도 새로운 데이터센터 중 하나를 마련했다. 밖에서 보면 마치 화성에 있는 우주기지처럼 보인다. 다양한 갑옷처럼 엮어진 외벽 조각들은 공기 주입식 텐트로 연결돼 있다. 아일랜드에서 수입한 붉은 용암 돌 위에 세워진 이곳엔 정사각형 모양의 컨테이너 방들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하 데이터센터의 장점은 안전뿐 아니라 비용과 에너지 효율에 있다. 실제로 최악의 재해들로부터 자유롭다. 벙커는 강력한 마이크로파와 전자기 펄스 무기로부터 건축 자재와 시설을 보호할 수 있다. 또 번개, 토네이도, 산불,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잠재적 피해를 막는다.

건설 비용절감 효과도 있다. 기존 부지를 활용하므로 외관 공사 개발비용의 부담이 줄어든다. 간혹 도로 위에 지어지는 건축이나 지역 규제에서도 자유롭다. 건설 중 날씨에 의한 공사 지연은 거의 드물다. 물류 이동 시간이 절약돼 낮은 건설 비용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효율이 높다. 지하 시설물의 자연 온도는 일반적으로 지구 표면의 온도보다 훨씬 낮다. 더운 여름에는 물론 서버가 과열되지 않도록 하는 냉각 시스템이 필요 없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이 많이 들 이유가 없다. 전반적으로 스웨덴 지역이 국제 데이터센터 설립에 매력적인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스웨덴의 북부 도시인 룰레에 첫 유럽 데이터센터를 개설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핀란드 북부에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 북유럽 지역의 추운 환경 덕에 서버 과열방지 시설 비용이 절감돼서다. 내부는 당연히 친환경적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데이터센터가 서버 장비 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재활용되며 심각한 오염을 유발하는 것에 존칼룽 반호프 CEO는 “서버가 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건물 외관이 없는 피오넨 데이터센터 입구.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회의실은 트인 원형에 방음 유리로 제작했고, 동굴 벽과 밀착시켰다.



▎어두운 조명으로 연출해 기밀 시설 같은 느낌을 준다.



▎밀폐된 공간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식물과 물을 적절히 활용했다. / 사진:반호프 제공, 아크데일리



▎반호프의 새 데이터센터(KISTA)는 붉은 용암 위에 공기 주입식 텐트로 꾸몄다.



▎반호프의 대부분 데이터센터는 우주기지를 연상케 하는 신비로움을 연출한다. 데이터센터 튤(Thule).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807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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