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체코/체스키크룸로프(Cesky Krumlov) 

남부 보헤미아 산속에 숨겨진 보석, 체스키크룸로프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체코 남부 보헤미아 지방 산속에 숨겨 놓은 보석 같은 체스키크룸로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곳은 인구가 1만30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하지만 일 년에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으니, 체코에서는 프라하 다음으로 중요한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체스키크룸로프 전경. 왼쪽 언덕 위에 있는 성과 오른쪽에 있는 성 비투스 성당이 강한 랜드마크를 이룬다. / 사진:정태남
‘체스키크룸로프’라고 하면 귀에도 생소하게 들리고 입에도 쉽게 달라붙지 않는 지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를테면 체코 남부 보헤미아 지방 산속에 숨겨 놓은 보석이라고나 할까.

체코는 서쪽의 보헤미아 지방과 동쪽의 모라비아 지방, 모라비아 북쪽의 작은 실레시아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헤미아’를 현지어로는 ‘체키(Čeky)’라고 하는데, 그 형용사는 체스키(Český)다. 체코에는 크룸로프(Krumlov)라는 지명이 모라비아 지방에도 있기 때문에 이와 구별하기 위해 보헤미아 지방에 있는 크룸로프를 ‘체스키크룸로프’라고 부른다.

블타바강이 휘돌며 흐르는 곳


동화 속의 작은 나라 같은 체스키크룸로프는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약 160km 떨어져 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다. 사실 체코가 1918년에 슬로바키아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단일국가로 독립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일대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주도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 속한 주데텐란트(Sudetenland)라고 부르던 독일어권 지역이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고, 또 이곳에 독일어권 주민이 많이 살았다. 예로, 이곳에는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1890~1918)가 작업했던 화실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는데,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근교 도나우강 변에 있는 소도시 툴른(Tulln) 출신이었던 그가 이곳에 한동안 와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바로 이곳 주민이었기 때문이다.

체스키크룸로프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이 연상된다. 하회(河回)는 문자 그대로 ‘강이 돈다’는 뜻이니 강이 휘돌아 가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다. 체스키크룸로프도 블타바강의 물줄기가 S자처럼 굽어 휘어지는 곳에 있으니 그야말로 체코의 하회마을인 셈이다. 사실 크룸로프란 지명은 원래 독일 지명 크루마우(Krumau)에서 유래했는데, ‘굽어 휘어진 목초지’라는 뜻이다. 같은 형태의 지형을 보고 옛날 우리 조상들은 ‘강이 휘어 돌아가는 곳’이라고 ‘자연친화적’인 지명을 붙였다면 옛날 이곳 사람들은 강이 휘어 감고 도는 것보다는 목초지가 휘어진 것을 더 중요하게 보았으니 ‘경제친화적’인 지명을 붙였다고나 할까.

이 ‘휘어진 목초지’에는 파스텔 색조로 예쁘게 단장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어, 흔히들 생각하는 시골 도시와 격조가 다르고 품위가 있다. 또 이곳에는 현대건축물은 전혀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마치 300~600년 전의 시간이 그대로 굳어져버린 듯하다.

유력 귀족 가문들의 체스키크룸로프 성


▎성벽의 개구부를 통해서 보는 시가지. 오른쪽이 대성당이다. / 사진:정태남
체스키크룸로프의 구심점은 바위 동산 위에 우뚝 세워진 성으로 ‘체스키크룸로프 성’ 또는 ‘로젠베르크 성’이라고 불린다. 특히 성의 지붕을 뚫고 나온 원통형 탑은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 그러고 보니 도시 규모에 비해 성이 상당히 크다. 사실 이 성은 체코에서 프라하 성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이런 옛 도시에서는 으레 대성당이 구심점을 이루지만, 이곳의 대성당 격인 15세기 고딕식의 성 비투스 성당은 도시 규모에 비하면 적당한 크기이나 성의 규모에 비하면 왜소하다. 그렇지만 성이 이 작은 도시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분홍과 초록 색조의 그림으로 단장된 원통형 탑은 하늘로 솟아오를 듯한 모습이지만 전혀 위압적이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보인다.

그럼 누가 이런 성을 세웠을까? 블타바강의 흐름이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 위에 중세의 비티고넨 가문이 처음으로 성을 세운 것은 1250년. 그 후 50여 년이 지난 1302년에는 독일계 로젠베르크 가문이 이곳의 주인이 되어 성을 크게 확장했다. 로젠베르크는 독일어로 ‘장미의 동산’이란 뜻이다. 이 가문이 1602년까지 통치할 때 체스키크룸로프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으니, 그야말로 이곳은 ‘장미꽃이 만발한 곳’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성에서뿐만 아니라, 성 비투스 성당, 시청사를 비롯하여 시내 주요 건축물 곳곳에 장미꽃잎 5개로 디자인된 로젠베르크 가문의 문장이 유난히도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체코는 ‘이야기의 땅’이다. 가는 곳마다 전설과 이야기가 얽혀 있으니 말이다. 특히 체스키크룸로프는 모든 집에 고유의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대부분 음침한 이야기다. 서양에는 여러 가지 버전의 ‘화이트 레이디’ 유령 이야기가 곳곳에 있는데, 체코판 ‘화이트 레이디’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로젠베르크 성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로젠베르크 성 구내에 있는 빌헬름 폰 로젠베르크의 초상화. 그가 통치할 때 체스키크룸로프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 사진:정태남
1449년 로젠베르크 가문의 군주 울리히 2세는 20세 난 딸 페르히타(1429~1476)를 모라비아 지방의 강력한 귀족 가문 리히텐슈타인의 요한과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요한은 그녀를 정신적·육체적으로 평생 학대하다가 임종 시에야 비로소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용서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요한은 그녀를 저주하고 눈을 감았다. 페르히타는 로젠베르크 성에 돌아와 49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요한의 저주를 받은 그녀의 혼령은 흰옷을 입고 성안을 배회해야만 했다. 혼령은 주요 절기마다 나타났는데 흰색 장갑을 끼고 있으면 체스키크룸로프에 좋은 소식이, 검은 장갑을 끼고 있으면 이 도시에 재앙이 온다는 뜻이었다.

로젠베르크 가문은 체스키크룸로프를 300년 동안 통치했는데 빌헬름 폰 로젠베르크(1535~1592) 때 이 성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멋지게 개축됐다. 그가 죽은 후 로젠베르크 가문의 수장이 된 그의 동생 페터 복(Peter Wok)은 후계자가 없는 데다가 재정 문제까지 겹쳐, 1601년에 이 성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이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2세에게 매각됐다. 이로써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로젠베르크 가문의 역사는 끝나고 말았다. 그 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30년 전쟁 중이던 1622년에 그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한 에겐베르크(Eggenberg) 가문에 이 영지를 증여했다. 에겐베르크 가문이 3대에 걸쳐 체스키크룸로프를 통치한 다음, 1719년에는 슈바르젠베르크(Schwarzenberg) 가문이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중부 유럽의 유력 귀족 가문들이 계속 통치하면서 체스키크룸로프는 그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부활한 체스키크룸로프


▎체스키크룸로프 시가지. 로젠베르크 성이 병풍처럼 솟아 있다. / 사진:정태남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로젠베르크 성을 찾아보는 것 외에도 좁은 골목길을 따라 그냥 걷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무심코 걷다 보면 원형 탑이나 강물과 마주치게 되거나, 시청 광장 안에 들어서게 되니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사실 시가지 규모는 인구가 1만30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하지만 일 년에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으니, 체코에서는 프라하 다음으로 중요한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그런데 체스키크룸로프가 아름다움을 항상 유지해왔던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다행히도 전쟁의 참화로부터 안전했지만, 공산주의 치하에서는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구조적인 문제나 행정적인 문제로 손 대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의 건물이 더러 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그런 상태였다고 하니, 이곳은 꿈과 낭만이 가득한 도시가 아니라 우중충하고 진짜 귀신이 나올 듯한 황량한 도시로 보였을 것이다.

체코가 1989년에 민주화되고 난 다음에 체스키크룸로프는 본격적인 복원 작업을 마치고 불사조처럼 다시 태어나 아름다운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1992년에는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체스키크룸로프가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체코 사람들이 지난날 암담했던 공산주의 시대의 기억을 하루속히 떨쳐버리려는 강렬한 의지를 지녔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하늘로 치솟으려는 탑은 미래로 향하는 부활의 상징으로 보인다.


▎로젠베르크 성 입구. 우람한 원통형 탑이 솟아 있다. / 사진:정태남



▎로젠베르크 성. 체코에서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큰 성이다. / 사진:정태남



▎바로크 시대의 조각 분수와 파스텔 색조의 건물. 건물 오른쪽에 5개 장미꽃잎으로 디자인된 로젠베르크 가문의 문장이 보인다. / 사진:정태남



▎골목길에서 보이는 로젠베르크 성 / 사진:정태남



▎시청 앞 광장에 있는 바로크 시대의 분수와 건물들. / 사진:정태남
※ 정태남은…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902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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