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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성공한 한국인 창업가] 이복기 원티드랩 대표 

일본 채용시장의 관습을 깨다 

도쿄(일본)=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완전 고용 시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 채용시장에 한국 스타트업 원티드랩이 도전해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이복기 원티드랩 대표를 일본 지사에서 만나 일본 시장 도전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4월 홍콩 위워크에서 열린 원티드 채용 이벤트에서 이복기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 : 원티드랩
2016년 여름. 당시 BNP파리바재팬의 조희준 영업본부장이 일본 상장기업 대표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식사 도중 조 본부장이 기업 소개서 메일을 받았다. 한국투자공사(KIC)에서 투자 업무를 맡아 친했던 사업 파트너가 보낸 메일이다. 공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파트너가 갑자기 스타트업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좋다는 공기업을 나왔다는 이야기에 ‘대체 어떤 곳이기에 자리를 옮겼나’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조 본부장이 그에게 연락해 기업 소개서를 요청했던 것. 조 본부장은 잠깐 자료를 검토하면서 전율했다. ‘일본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 본부장은 한국에 있는 스타트업 창업가를 만나 일본 진출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스타트업 창업가는 해외 진출을 고민하던 시기였지만 일본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나라였다. 조 본부장의 강력한 추천을 믿고 창업가는 일본 진출을 결정했다. 같은 해 9월 한국 스타트업은 일본에 ‘리퍼미(referme)’라는 일본 법인을 설립했다. 일본 시장을 잘 아는 조 본부장에게 지사장을 맡겼다. 요즘 일본 채용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리퍼미가 탄생한 배경이다. 당시 조 본부장이 전율했던 한국 스타트업 서비스가 바로 2015년 4월 설립된 원티드랩의 ‘원티드’다. 창업한 지 1년밖에 안 된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이라는 어려운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배경이다.

일본 도쿄 롯폰기에 있는 리퍼미 사무실에서 만난 원티드랩 창업가 이복기(39) 대표는 “원래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계획이었는데 조 지사장을 만난 덕분에 일본에 처음으로 도전하게 됐다”며 웃었다. 현재 원티드랩은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다. 창업 4년 만에 해외 4개국에 진출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추천’이 아닌 ‘응원’ 철학 내세워 일본에 안착


▎일본 롯폰기에 있는 리퍼미 사무실에 이복기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조희준 지사장(오른쪽 세 번째), 일본 지사 직원들이 모였다. / 사진 : 원티드랩
원티드는 쉽게 말해 ‘추천 기반 채용 서비스’다. 구직자가 커리어를 잘 찾을 수 있도록 지인이나 함께 일했던 동료가 기업에 추천하고, 구직자가 입사하면 추천한 이가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다. 이 대표는 “지인 추천 서비스는 20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원티드 이전에는 모두 실패했다”면서 “원티드의 성장을 보면서 창업의 성공 여부는 아이디어보다 누가 언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며 웃었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에서 5년 동안 일하다 창업에 도전했다. 5년 동안 20여 개에 이르는 중요 사업전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한다. 매일 새벽까지 일하면서 실제 기업에 중요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일에 보람도 느꼈다. 잘나가던 컨설턴트는 어느 날 문득 ‘세상에 이렇게 해결할 문제가 많은데, 나를 다 바쳐서 풀 만한 문제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대표는 “당시 딱히 아이디어도 없었지만, 내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 후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퇴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티드랩 이전에 두 번 창업했고, 모두 실패했다. 집단소송 및 여행 프로그램 판매 서비스였다. 특히 여행 프로그램 판매 서비스는 8개월 만에 1억원 정도의 비용을 쓰고 접었다. 그는 실패 경험을 또 다른 도전의 디딤돌로 삼았다. 그는 “이전 사업에서 더 적은 비용을 썼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더 많은 비용을 썼다면 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절한 수업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또 “창업에서 핵심은 수많은 난관을 인내하면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원티드랩을 창업하면서 가장 집중한 것도 팀 구성이었다. 이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 없이 팀부터 구성했다. MS 출신의 황리건, 변호사 출신의 다음카카오 개발자 허재창, 비슬로우 창업 멤버 김세훈 등 4명이 모여 창업을 준비했다. 창업 멤버가 모여 처음 한 일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 아이디어 100개를 모았고, 마지막 남은 게 원티드였다. 보통의 창업 과정과 전혀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이 대표는 원티드로 일본 진출을 결정했을 때도 가장 먼저 팀 구성에 집중했다. 일본 시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조희준 지사장에게 일본 지사를 맡겼다. 이 대표는 “조 지사장이 일본 시장을 가장 잘 알고 있고, 네트워크가 넓기 때문에 일본 지사를 맡기는 것이 당연했다”면서 “조 지사장에게 팀 세팅과 서비스의 현지화를 전적으로 맡기면서 짧은 시간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 지사장은 “한국 스타트업은 일단 서비스를 론칭하고 고도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일본에서 불완전한 서비스를 내놓으면 그 스타트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본 사용자는 완벽주의가 강하다는 특성이 있다. 이런 일본 현지의 특성을 잘 아는 현지인을 중심으로 팀을 세팅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원티드라는 서비스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현지화를 위해 리퍼미라는 서비스 명을 사용한다.

마케팅도 차별화했다. 한국에서는 지인 추천을 마케팅의 중심에 놨지만, 일본에서는 ‘당신을 응원한다’라는 서비스 철학을 내세웠다. 일본인의 특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시장조사를 하다가 일본인들은 지인이나 동료를 기업이나 타인에게 추천하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일본에서는 추천보다는 응원이라는 개념을 접목했고, 일본 사용자들의 부담감을 덜어주면서 리퍼미 사용자가 늘어나게 됐다”고 강조했다.

조 지사장은 왜 원티드 서비스의 성공을 확신했을까. 그는 “일본 채용시장의 상황은 변하는데, 채용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침체는 2010년대 들어오면서 회복 추세로 돌아섰다. 일본 기업은 투자를 확대했고, 채용시장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조 지사장은 “일본 채용시장은 완전 고용 시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일할 곳이 늘어나면서 종신 고용의 전통도 깨졌다. 경력직으로 입사해도 기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1~2년 만에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젊은이가 늘어났다. 조 지사장은 “일본 기업은 경력직을 구할 때 보통 헤드헌터를 이용하는데, 입사가 결정되면 입사자 연봉의 30% 정도를 헤드헌터 업체에 준다”면서 “이렇게 고비용으로 경력직을 구했는데 1~2년 후에 이직을 하는 직원이 늘어나면서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었고, 이런 기업의 부담을 원티드가 줄여주는 대안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복기 대표도 “일본 취업 시스템과 구직자의 미스 매칭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리퍼미가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현지화에 집중하면서 리퍼미 서비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처음엔 50개 기업 클라이언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기업 클라이언트가 1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특히 페이스북, 우버, 트위터,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기업이 많다는 것이 리퍼미의 장점이다. 이 대표는 “리퍼미가 페이스북이라는 중요 클라이언트와 손잡으면서 어떻게 페이스북과 함께할 수 있느냐고 놀라는 이가 많다”면서 “글로벌 기업이 많이 들어오면서 리퍼미가 좋은 인재를 찾을 수 있는 채용 플랫폼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 시장에서의 원티드랩의 빠른 성장 속도는 수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업 후 지금까지 117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했다. 4명으로 시작한 원티드랩은 현재 아시아 5개국에서 임직원 70여 명이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2019년 4월 현재 원티드 회원은 60만 명에 이르고, 4000여 개 기업이 원티드를 이용하고 있다. 서비스 론칭 후 지금까지 구인 구직이 50만 건이나 성사됐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원 정도. 이 대표는 “50만 건 매칭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세상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우리의 데이터를 가지고 서비스를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고, 지금까지 경력직 채용 시장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신입 채용시장에도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시장에 도전하고 싶은 한국 스타트업에 조언을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이 대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도전하려는 서비스가 정말 잘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최대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일본 시장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05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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