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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핀테크 CEO]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분기 거래액 10조원 돌파한 ‘국민 페이’로 키우다 

장진원 기자 jjw@joo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편리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안전한 금융. 2014년 국내 최초로 간편결제 시스템을 선보인 카카오페이가 꿈꾸는 금융의 미래다. 핀테크를 넘어 테크핀으로 진화하는 카카오페이의 무한 확장은 국내 핀테크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는 2011년 보이스톡 개발에 이어, 2013년부터 카카오의 핀테크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010년, 국내에 없던 새로운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 시대가 열렸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등장이다. 휴대폰 ‘문자’를 단순 메시징 서비스에서 채팅 개념으로 전환한 카카오톡은 출시 2년여 만에 피처폰 시대를 접게 만든 일등공신이 됐다. 불과 10년 전 “카카오톡을 쓰고 싶어 스마트폰으로 바꿨다”는 에피소드가 이제는 까마득한 전설처럼 들린다.

누구든, 무엇이든 ‘국민’이란 말이 앞에 붙으면 초대박 히트작임을 인증하는 셈이다. 출시 직후부터 신드롬을 일으킨 카카오톡 역시 단번에 ‘국민 메신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2012년 카카오톡 기반의 모바일 게임인 ‘애니팡’이 대박을 터뜨리기 전만 하더라도 카카오톡 역시 수익 모델을 고민해야 했다. “많이 쓰긴 하는데, 이걸로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벌지”라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게 사실이다. 플랫폼이 가지는 무궁무진한 힘을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난 2011년 카카오에 합류한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도 플랫폼의 힘을 믿고 있었다. 류 대표는 국내 통신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보이스톡을 개발한 주역 중 하나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개발자는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삶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카카오의 문을 두드렸고, 2013년부터 페이먼트사업부 본부장을 맡았다. 국내 최초의 간편결제 서비스로 핀테크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국내 최초의 간편결제로 핀테크 대중화

“보이스톡 덕에 값비싼 국제전화 요금에서 해방됐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발 과정에선 기존 통신업계와 굉장한 마찰을 겪었어요. 기술로 세상을 바꾸기 전에 이해당사자와의 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개발에서 사업으로 커리어패스를 바꾸게 된 계기입니다.”

보이스톡 성공 이후 독립을 고민하던 그에게 회사는 외려 사내 사업을 제안했다. 때마침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한 모바일 커머스를 눈여겨본 류 대표는 복잡한 결제 절차를 쉽고 단순하게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9월 국내 최초의 간편결제 시스템인 카카오페이가 탄생한 배경이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 결제를 하려면 공인인증서부터 시작해 화면을 18번이나 넘겨야 했어요. 이걸 3단계로 줄여버렸죠. 사실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건 기술적으로 석 달이면 충분했어요. 오히려 당국과 카드사를 설득하는 데 1년 넘게 걸리더군요.”

시스템 개발이라는 본업보다 사업화 과정의 협상은 훨씬 지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모바일 금융이라는 더 큰 가능성이 눈앞에 열린 시기이기도 했다. 거대 금융사가 기술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은 가보지 않은 길에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의적절한 예견과 실행은 결과적으로 카카오페이를 국내 간편결제 시장의 퍼스트무버 자리에 올려놓았다.

2014년 첫 서비스 개시 이후 5년여가 지난 현재 카카오페이 가입자 수는 2800만 명에 달한다. 2018년 말 기준 연간 거래액도 20조원을 넘어섰다. 류 대표는 올해 안에 가입자 3000만 명, 내년이면 4000만 명 돌파를 자신한다. 이미 올해 1분기 만에 지난해 거래액의 50%인 10조원을 달성했다. 이쯤 되면 국민 메신저에 이어 ‘국민 페이’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은 수준이다. 류 대표는 “개발 초기부터 철저하게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시장의 반응을 얻은 비결”이라고 말했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공인인증서가 불편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바꿀 엄두를 못 냈죠. 카카오페이는 이걸 1년여의 설득 끝에 바꿔놓았어요. 기존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의 차이라고 봅니다.”

류 대표는 핀테크 기업이 안게 되는 숙제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했다. 규제와 리스크다. 금융회사의 경우 규제가 불편하더라도 그에 맞춰 단계를 늘려 리스크를 피하려는 속성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핀테크 기업은 사용자 경험이 비합리적이라 판단할 경우 이해당사자 설득에 먼저 나서고, 경우에 따라선 법 자체를 바꾸려 노력한다. 류 대표는 이를 ‘리스크 테이킹 DNA’라고 불렀다. 고객의 가치와 경험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다.

핀테크 넘어 테크핀이 이끄는 금융 혁신


▎카카오페이는 핀테크를 넘어 '테크핀' 기업임을 강조한다. 금융의 보완재에 머물지 않고, 기술을 활용해 금융을 리드하겠다는 의지다.
카카오페이는 스스로를 핀테크가 아닌 ‘테크핀’ 기업으로 정의한다. 글자 순서 하나 바꾸었을 뿐이지만,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함의는 완전히 다르다.

“핀테크는 기술로 금융을 보완한다는 의미예요. 반대로 기술을 활용해 금융을 리드하는 게 테크핀이죠. 예를 들어 은행은 금융 역량이 가장 중요해요. IT는 외주로 해결하는 식이죠. 반면 우리는 기술을 활용해 쓰기 편한 금융을 만듭니다. 금융 역량은 은행이나 카드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해결하는 거죠.”

사용자 경험과 이용 편의성에 중점을 두자 비즈니스 영역도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현재 카카오페이는 간편결제와 송금 외에도 QR코드·바코드를 이용한 오프라인 매장 결제, 선·직불형 카드, 멤버십, 청구서, 인증 등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금융 플랫폼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뤄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출시한 ‘카카오페이 투자’는 그간의 페이먼트 영역을 뛰어넘어 본격적인 금융 비즈니스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카카오페이 투자는 따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지 않고도, 카카오톡 안에서 바로 금융상품 투자가 가능하다. 다양한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둘러보고, 예상 수익금을 미리 확인한 뒤 원하는 금액을 투자할 수 있다. 최소 투자금액은 1만원(최대 100만원)으로 금융 투자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미들에게 쉽고 편한 투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금융상품은 고관여 투자입니다. 저 역시 ‘카톡에서 금융상품 판매가 가능할까’라는 고민이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내부 심사인력이 엄선한 상품을 매일 11시에 오픈하는데, 10~20분이면 완판돼요. 주식, 펀드, 채권 등 안정적인 상품의 공급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증권업계를 놀라게 한 바로투자증권 인수도 카카오페이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선택이라는 게 류 대표의 설명이다. 증권업계의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익 비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존 증권사와 경쟁할 계획은 없다는 뜻이다. 류 대표는 “좋은 투자 상품을 찾고, 편리한 금융을 위한 라이선스 확보 차원에서 증권사 인수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진출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국내에선 국민 메신저로 불릴 만큼 카카오톡의 지배력이 절대적이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확장성의 한계가 뚜렷하다. 류 대표는 이를 위해 지난 2017년 2월 중국 알리페이의 모회사인 앤트파이낸셜그룹으로부터 2억 달러를 투자받으며 파트너십을 맺었다. 지금까지 카카오페이가 투자를 받은 곳도 알리페이가 유일하다.

“2017년 분사하자마자 외부 투자 의뢰가 쏟아졌어요. 알리페이를 선택한 건 우리가 꿈꾸는 비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에요. 금융혁신을 이뤄 더 많은 사람이 삶의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모토죠.”

지난 1월부터 중국 관광객이 알리페이를 통해 국내 택시에서 결제가 가능하게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만간 한국인이 중국과 일본에서 결제하는 서비스도 출시할 예정이다. 카카오페이와 알리페이의 페이먼트 시스템 호환은 물론, 투자 등 금융 분야의 시너지도 활발히 논의 중이다.

핀테크 산업의 리더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떨까. 류 대표는 “최근 4~5년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카카오페이도 5년만 지나면 ‘저렇게 불편한 걸 어떻게 썼지’라고 말할 거라 장담합니다. 정부당국의 정책 기조도 눈에 띄게 바뀌고 있어요. 규제 속에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면 말할 것도 없죠. 카카오페이를 포함한 핀테크 업체들이 금융을 주도하는 시기가 곧 올 겁니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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