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양기석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대표 

투자의 본질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정부가 벤처기업을 키우기 위해 2022년까지 12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제2의 벤처 붐’을 경제 활력소로 키워보겠다는 취지다. 물론 벤처 투자는 딱히 정답이 없다. 터지면 ‘대박’인데 아니면 ‘쪽박’이다. ‘어떻게(HOW)’란 물음에도 뾰족한 수는 없다. 사모펀드 업계 최고참으로 꼽히는 양기석 대표는 ‘본질’ 얘기를 꺼냈다.

▎양기석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대표는 “VC업계가 가진 창의력에 사모펀드 업계에서 다진 정교함을 더할 생각”이라며 “더불어 앞으로 대만 유안타 본사와 함께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펀드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투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거고, 투자자는 ‘해결사’가 돼야 합니다. 거대 자본으로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는 정교한 사모펀드나 적게는 5억원에서 많으면 100억원 미만으로 열정을 산 벤처투자도 본질적으론 같습니다. 규모가 크다 해서 정밀한 실사가 더 필요하고, 규모가 작으면 창의력에 의존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이 두 능력은 서로 시너지를 낼 거고 결국 하나가 될 겁니다.”

지난 3월 서울 중구 을지로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양기석(57)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말했다. 실제 최근 투자영역을 점차 늘리는 벤처캐피털(VC)도 대형화 추세에 있고, 대형 VC가 속속 사모투자(PE)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양 대표는 “IMM, 스틱 등은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VC보단 PE로 투자를 선회하는 추세”라며 “이런 1세대급 대형 VC엔 금융업계 ‘고수’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세컨더리(Secondary) 펀드의 출현도 주목할 만한 트렌드다. 다른 VC펀드나 사모펀드(PEF)가 보유한 기업 지분을 사들이는 식이다. 초기 운용사들은 투자금을 회수해서 좋고, 기업은 다시금 성장 발판에 올라설 수 있는 자금줄을 얻게 된다. 양 대표는 “투자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해서 ‘딜 소싱’(투자처 발굴)에서부터 ‘밸류업’(기업가치 제고)과 ‘엑시트’(투자금 회수)까지 운용 전 과정이 확 줄어드는 건 아니다”며 “세컨더리 투자 후 기업이 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기업가치 상승)하는 일에 베팅하는 건 어찌 보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운용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6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국내 사모투자 세컨더리 펀드로 유안타인베스트먼드를 선정했고, 약 2400억원을 맡겼다. 이보다 앞선 2017년엔 유안타인베스트먼트의 전신인 동양인베스트먼트가 5년 만기로 조성한 세컨더리 펀드 ‘KoFC 동양 Pioneer Champ 2011-11호투자조합’도 성공적으로 청산했다. 이 펀드엔 주가가 폭등한 바이오기업 신라젠도 포함돼 있었고, 연환산수익율(IRR) 18.3%를 기록했다. 출자자(LP)였던 정책금융공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한국벤처펀드(모태펀드) 등이 끝까지 유안타를 믿은 데엔 사모펀드 최고참인 양 대표가 있다는 점이 한몫했다.

나이 육십에 귀가 순해진다(六十而耳順)’는 이순(耳順)이 가까워진 덕분일까. 분명 그는 변화의 바람을 읽고 있었고, 그 바람에 언제든 몸을 맡길 준비가 된 듯 보였다. 신한프라이빗에쿼티(PE)에 이어 유안타인베스트먼트를 다시금 맹렬히 이끄는 힘은 뭘까. 그는 ‘자리론’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2015년 신한PE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한PE에서 11년 차를 맞는 해였다. 대표로선 4년 정도다. 보통 기관계 사모펀드 대표 임기가 ‘2+1년’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긴 세월이다. 2014년은 대표 이전부터 운영해온 펀드가 거의 청산되는 시기였다. 임기를 더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시금 새롭게 펀드를 조성하면 최소 5년을 맡아야 출자자와의 신의를 지킬 수 있다고 본다. 인사가 순환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큰 조직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몇 달 후 유안타인베스트먼트에 합류했다.

업계에서 내가 은퇴하기엔 좀 이르다고 본 것 같다.(웃음) 유안타인베스트먼트의 전신인 동양인베스트먼트와 인연이 있었고, *동양사태 이후 재기를 노리는 회사에서 PMI(인수 후 통합작업) 같은 실사를 요청받은 것도 있었다. 2015년 2월쯤 부임해 5월까지 조직을 들여다봤다. 자기자본금 600억원에 비해 운용자금이 적었다. 사람도 많이 나갔고, 펀드 조성도 3~4년의 공백이 있었다. 본사에 3가지 솔루션을 보고했다. ▶청산 후 증권사 흡수 ▶자본감소 후 자기자본이익률(ROE) 정상화 ▶사모펀드 운용규모 키우기. 회사는 세 번째를 택했다. 어느 정도 정상화에 5년 정도를 목표로 삼았다.

*동양사태: 2013년 현재현 당시 동양그룹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부실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대거 판매해 투자자 4만여 명이 약 1조7000억원의 피해를 본 사건

PE와 VC, 본질은 ‘하나’


▎유안타인베스트먼트는 올해 초 세 번째 세컨더리 펀드 결성을 마쳤다. 1호와 2호의 성공적인 운용 경험이 토대가 됐다. 지난해 6월 국민연금이 PEF 세컨더리 투자 펀드 운용사로 유안타를 지목했고, 2000억원을 출자했다.
벌써 3년이 흘렀다.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이끌었나?

조직을 독립계처럼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본사를 설득했다. 그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줬다. 일단 과거 계단식으로 복잡한 직급 체계를 단순화했다. 임원, 시니어 매니저, 주니어 매니저 딱 3개로 말이다. 의사 결정도 운용부서마다 전결권을 주어 운신의 폭을 넓혔다. 별도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 부서는 없앴다. 운용역이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관리할 줄 알아야 책임감도 생기는 법이다. 인력도 보강했다. 관련 업계보단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을 찾았다. 특히 VC 분야에 신경을 썼다.

오랫동안 PE 업계를 주름잡았다. VC는 다소 생소하지 않았나?

예전 투자업계에선 VC는 규모가 너무 작았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내가 VC 파트에 신경을 쓴다고 해서 그 분야를 꽉 잡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새로운 시각이 필요했고, 기존 VC 인력이 좀 더 깬 사고를 하길 바랐다. 보완할 점도 있었다. 수천억원 단위의 딜(거래)을 하는 PE업계에선 딜을 보는 데 상당히 정교한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대상회사를 조사하는 듀 딜리전스(Due Dillgence, 기업실사)도 자산상태, 인력 등의 상황에 따라 재무, 법률, 노무, 산업 등으로 상당히 세분화해 진행한다. 수억원을 들여 전문기관의 리포트를 받기도 한다. 이것도 모두 펀드 비용에 포함돼 있다. 반면 10~20억원 규모의 딜이 주된 VC 파트는 이 부분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 VC도 PE처럼 정교한 기업실사를 요구했나.

그렇지 않다. 아직은 두 업이 실무는 좀 다르다. 앞서 투자 본질은 같다고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VC에 PE들이 구사하는 실사 업무를 하라고 요구할 순 없는 일이다. 직원들 부담을 덜어주고자 한 게 아니다.(웃음) 스타트업도 초기 투자 말고 3단계 투자인 ‘시리즈 C급’ 자금을 받아야 의미 있는 ‘숫자’로 실사가 가능하다. 애초에 가능성에 무게를 뒀던 스타트업에 재무제표부터 내놓으라고 하면 어디 쉽겠나. 단지 투자 생태계에 공정한 거래 프로세스를 위한 과정은 정교하게 봐야 한다.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최근 벤처캐피털 업계 얘기를 들려달라.

전쟁터다. 벤처캐피털의 심사역은 속된 말로 ‘관상쟁이’ 역할이라고 해아 하나. 수백 군데가 생겨나고 또 투자할 곳은 시시각각 변한다. 1년에 100곳 정도를 뚫어져라 본다고 치면 최종 투심보고서에서 다룰 기업은 2개 정도 남는다. 완전 초기 투자는 리스크가 크기에 매출이 어느 정도 일어나는 스타트업을 찾는다. 말이 쉽지 20년 이상 경험 있는 운용역도 실패한 사례가 허다한 게 업계 현실이다. 업계에 있으면서 1000여 개 기업을 밑바닥까지 훑어본 이도 실수를 한다. 프리IPO(상장 전 자본유치) 거래가 성사됐다 해도 2~3년 후 상장은 희망사항이고, 약속대로 상장하는 경우도 30%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심사역에겐 숙명이다. 그만큼 고된 일이다.

그래도 주요 투자 포인트가 있지 않나?

정답은 없다. 내가 보는 요소는 네 가지다. ▶비즈니스 모델 ▶코어 밸류(핵심가치) ▶상업성 ▶확장성이다. 비즈니스 모델과 코어 밸류는 사실 그 기업의 CEO와 수많은 미팅을 거치면서 윤곽을 잡아간다. 시장 관점에서 중요한 건 상업성과 확장성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성장을 거치면서 하드웨어(제조업 등)를 끼고 가도 매출 500억원 수준을 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일단 넘기 시작하면 1000억원은 금방 넘는다. 여기서부터 판단은 온전히 운용사 몫이다.

특별한 노하우나 이 업계에서 살아남는 최고의 비결은 뭔가?

‘어떤 회사를 사라’, ‘전문가 보고서를 읽어봐라’, ‘CEO와 대화해라’가 아니다. 비결도 없고, 정답도 없다. 세세한 기준과 판단은 운용역의 몫이다. 나는 기준을 세세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분명 내 판단으로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라도 운용역들이 이를 반박할 근거를 들고, 지적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면 이를 인정한다. 선임이 안 된다고 했다고 포기하면 펀드매니저가 아니다. 자신만의 인사이트와 신념이 있어야 한다. 소신도 없는데 제대로 된 회사를 찾아 투자할 수 있겠나.

직원에게 이 업계에서 당부하는 바가 있나?

직무 얘기보다 태도를 강조한다. 분명 회사 구성원 모두 뛰어난 이들이다. 그들만의 생각과 논리가 있고, 방식이 있다. 최대한 존중한다. 그보다 회사를 발굴해 투자하는 쪽에 서서 갖는 우월감을 버리라고 한다. 출자자돈으로 투자한 곳에서 밥도 얻어먹어서도 안 된다. 투자가 잘 안 된다고 해서 다른 기회로 만회하려 하지 마라. 투자 실패 사례는 더 꼼꼼히 리포트에 남겨라. 다 당부에 가깝다. 업무 협력에 있어서 남 탓할 것도 없다. 내가 제대로 자료분석을 해 건네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우린 프로다. 두 가지 관점에서 고민을 안겨준다. ‘투자 성과를 냈는가’ 아니면 ‘자기가 한 단계 발전했나’ 둘 다 아니라면 스스로 돌아볼 것을 권한다.

‘사람’이 중요하고 이들의 역량이 핵심 전략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세세한 방법보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여기엔 동기가 중요하다. 사실 ‘자리’ 얘기부터 꺼낸 까닭도 있다. PE와 VC가 투자업계에서 만나는 일이 벌어졌고, 이 둘은 업계에서 하나가 될 거다. 여기서 ‘업의 본질’은 다시금 나온다. 그래서 3가지 측면에서 대표를 뽑는 기준을 본사에 제안했다. ▶20년 이상의 운용업계 경력이 있을 것 ▶충분한 임기를 보장할 것 ▶펀드운용 기간 중 임기가 종료되더라도 운용책임 기간 중 성과는 퇴임이후에도 철저히 보장할 것 등이다. 기관에서 일하는 임기는 숙명이지만, 임기가 끝나도 임기 중 기여한 성과를 정확하게 보상하기로 했다. 그렇게 규정을 바꿨고, 출자자를 만나 이 규정을 되레 홍보하기도 했다. 투자 생태계에서 상호 신뢰는 이렇게 출발한다.

201905호 (2019.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