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이탈리아 로마(Roma) 

거룩한 천사의 성에서 토스카의 마지막 순간을… 

글·사진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테베레강은 영원의 도시 로마의 심장부를 흐른다. 테베레강 건너편 바티칸 초입에 세워진 거대한 원통형 성채 카스텔 산탄젤로(거룩한 천사의 성)는 풋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제3막의 배경이 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성은 원래 로마제국의 문화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전혀 다른 용도로 세운 것이었다.

▎테베레강과 거룩한 천사의 성. / 사진:정태남
영원의 도시 로마의 새벽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거룩한 천사의 성은 어둠의 베일을 벗고 그 웅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미카엘 천사상은 신의 은총을 갈구하는 인간들을 굽어 내려보는 듯했다. 그런데 별안간 그 아래에서 깊은 정적을 깨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그는 그만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가식적인 총살형인 줄로만 믿었던 그의 연인은 예상치 못한 그의 죽음 앞에서 절규했다. 잠시 후 로마 경감 살해혐의로 그녀를 체포하려고 올라오는 경찰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그만 성곽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풋치니(G. Puccini)의 [토스카]의 마지막 장면으로 1800년 6월 15일 새벽빛이 로마를 덮은 어둠을 막 거두어내기 시작할 무렵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총살당한 남자는 친프랑스파 혁명투사인 화가 카바라도씨(Cavaradossi), 투신한 여인은 오로지 예술과 사랑으로 삶을 살아왔던 가수 토스카(Tosca)였다.

[토스카]는 프랑스혁명 여파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걸쳐 로마에서 벌어지는 친프랑스파와 친오스트리아파 간의 대립을 소재로 격동하는 정치 상황을 아주 사실적이며 극적으로 그린 프랑스의 극작가 사르두(V. Sardou)의 희곡『라 토스카』를 오페라화한 것이다. 이 작품은 친프랑스파인 카바라도씨와 그의 연인 토스카, 친프랑스파를 무자비하게 박해하는 로마 경감 스카르피아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오페라의 시간적 배경은 1800년 6월 14일부터 이튿날 새벽까지인데 마지막 제3막의 배경이 바로 거룩한 천사의 성이다.

여행 마니아, 문화 황제 하드리아누스


▎성에서 본 테베레강의 야경. / 사진:정태남
로마의 젖줄인 테베레강 건너편 바티칸 지역 초입에 세워진 이 거대한 원통형 성채는 오페라 [토스카] 제3막에서 보듯 당시 정치범들을 수감하고 처형하던 악명 높은 형무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성은 원래 그런 용도로 세운게 아니다. 처음부터 성이나 요새로 지은 것도 아니다. 그럼 왜 만들었을까?

이야기는 로마제국의 황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트라야누스 황제(Traianus, 재위: 98~117)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 황제(Hadrianus, 재위: 117~138)는 영토를 넓히는 것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탁월한 정치가였고, 박식하고 재기가 넘쳤으며, 미술, 음악, 건축, 문학 등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었으며,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치세 21년 동안 자그마치 12년간 로마제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하니 1주일에 4일은 여행을 한 셈이다. 물론 그의 여행은 로마제국 국경 내부를 굳게 다지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을 먼저 띠고 있었겠지만.


▎다리 위의 천사상과 성. 꼭대기의 미카엘 천사상. / 사진:정태남
그가 치세하는 동안 로마제국은 평화와 복지를 누렸다. 하지만 그는 성격이 변덕스럽고 무자비한 면도 있었기 때문에 죽은 후에 원로원은 그의 모든 업적과 기록을 없애버리는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 기록말살형) 형벌을 내리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후계자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재위: 138~161)가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덕택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 5현제의 한 사람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거대한 영묘


▎성에서 본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 사진:정태남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건축설계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기존 판테온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건했는가 하면, 콜로세움 바로 앞 언덕 위에 베누스와 로마 신전을 독특한 형태로 세웠으며, 로마 근교 티볼리에는 신전, 경마장, 도서관, 박물관 등 여러 가지 기능을 갖춘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환상적인 궁전 단지를 세웠다. 그는 자기가 살 궁전은 후세 사람들도 입이 닳도록 칭송할 정도로 크고 멋지게 지었지만 정작 자신이 묻힐 묫자리가 없었다. 왜냐면 로마제국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재위: 기원전 27~기원후 14)가 자신과 후세의 황제들을 세운 거대한 영묘에는 네르바 황제가 서기 98년에 묻힌 이후 빈 묫자리가 더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건축을 좋아하는 황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내 그는 130년경에 테베레강 건너편 바티칸 언덕 초입에 터를 잡고 자신과 후세 황제들의 묘소로 쓸 거대한 영묘를 착공했다. 또 그는 강 건너편에서 영묘로 진입하기 수월하게 하고 바티칸 지역을 주택지로 개발할 목적으로 영묘 바로 앞에 다리를 세웠다. 이 다리에 첫발을 내디디고 영묘를 바라보면 시선이 영묘 쪽에 집중되기 때문에 영묘는 기념비적인 성격이 매우 강해진다. 한편 이 다리는 1800년 동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가 19세기말 테베레강 양변에 제방이 세워지면서 다소 개축됐다. 이 다리를 지탱하는 다섯 개 아치 가운데 중간에 있는 세 개는 원래 모습 그대로다.


▎거룩한 천사의 성과 다리. 이 다리는 성채를 더욱 기념비적으로 보이게 한다. / 사진:정태남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오랜 여행 후, 말년에는 병마와 싸우다가 62세가 되던 서기 138년, 허무한 인생을 탄식하듯 “방황하는 사랑스런 작은 영혼이여, 육체에 잠시 깃든 벗이여…”라고 읊으면서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이 영묘가 139년에 완공된 다음에야 안장됐다.

당시 이 영묘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겉모습이 많이 달랐다. 6세기 비잔틴 제국 사학자 프로코피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 영묘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정사각형 기단 위에 지름 64m, 높이가 21m나 되는 거대한 원통형의 단층 탑이 올려져 있었으며 이 탑의 바깥벽은 도리스식 기둥과 대리석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위에 흙으로 커다란 능(凌)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 윗부분에는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금빛 청동상이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 영묘는 당시 로마에 있는 건축 가운데 콜로세움 다음으로 가장 웅장한 건축이었다고 전해진다.

오페라 '토스카'의 제3막 배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그가 재위하던 동안 로마제국은 번영과 평화를 누렸다. / 사진:정태남
이 영묘는 격동하는 로마의 역사와 함께 그 기능도 바뀌어, 3세기 후반에는 테베레강 하류 지역을 방어하는 성벽의 일부가 되어 로마를 지키는 견고한 보루였고, 10세기에는 바티칸 궁전을 방어하는 요새였다. 또 1527년 독일 용병에 의한 로마 약탈 기간 중에는 포위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이곳에 피신해 있기도 했다. 그 후부터 정치범들이 수감되고 처형되는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됐다.


▎칼집에 칼을 넣는 미카엘 천사상. 그 아래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 사진:정태남
하드리아누스 영묘는 12세기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거룩한 천사의 성’이란 뜻으로 카스텔 산탄젤로(Castel Sant’Angelo)라고 불리는데, 이 이름은 옛 전설에서 유래한다. 50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당시 로마를 황폐화하던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하여 기도하던 중에 미카엘 천사의 환상을 봤다. 천사는 영묘 꼭대기에 서서 칼집에 칼을 집어넣고 있었는데, 이것은 신의 은총이 내려진 것을 의미했다. 그 후 이 천사를 기념하여 예배당이 세워졌고, 이어서 천사의 대리석상이 세워졌다. 18세기 중엽 이 대리석상은 청동상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별이 빛나던 하늘 아래 카바라도씨와 토스카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바로 그 미카엘 천사상이다.


▎정치범들이 수감되었던 감옥의 문. / 사진:정태남
오페라 [토스카]에서 최고의 아리아로 꼽히는 것은 제3막에서 카바라도씨가 사형대에 오르기 전에 부르는 ‘E lucevan le stelle…’. 우리말로 ‘별은 빛나건만…’으로 번역되어있지만 직역하면 ‘별들은 빛나고 있었지…’다. 이 아리아를 들으면 죽음을 앞둔 카바라도씨의 탄식 속에 토스카와 함께 나누었던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과 삶에 대한 미련이 응축되어 있는 것만 같다.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탄식과 달리…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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