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독일/쾰른(Köln) 

슈만이 찬양한 라인강과 쾰른 대성당 

라인강은 게르만족의 젖줄이다. 슈만의 [라인 교향곡]은 라인강의 정기가 곡 전체에 흐르는데 특히 제4악장은 쾰른 대성당의 웅대한 광경을 담고 있는 듯하다. 라인강 변에 세워진 이 대성당은 전통적인 중세 석조 건축 시공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딕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라인강과 호엔촐레른 철교 건너편에 보이는 쾰른 대성당. / 사진:정태남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출발한 고속열차 ICE가 북서쪽으로 달린다. 약 한 시간 반쯤 지나자 라인강과 멀리 쾰른 대성당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광경을 보니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교향곡 3번 ‘라인’]이 마음속으로부터 울려오는 것 같다. 라인강은 도나우강과 함께 로마 제국의 북쪽 국경선으로 문명세계인 로마제국과 비문명세계인 게르마니아(Germania)를 나누던 경계선이었다. 하지만 이 강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는 역사의 무대에 올라선 게르만 민족의 젖줄이 되었다. 독일 사람들은 이 강을 파터 라인(Vater Rhein)이라고도 부른다. ‘아버지 라인’이란 뜻이다.

로마인이 세운 고도(古都) 쾰른


열차는 라인강에 놓인 호엔촐레른 아치철교에서 속도를 더 줄이며 천천히 가더니 마침내 쾰른 중앙역에 도착했다. 역 앞 광장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규모의 고딕식 대성당이 엄습하듯 바로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러고 보니 쾰른 중앙역은 다른 유럽 도시와 달리 바로 시가지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다.

쾰른의 기원은 기원전 38년 로마군이 세운 군단기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후 1세기 초 아우구스투스의 의붓아들이자 뛰어난 장군이었던 게르마니쿠스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강 건너편의 게르만족과 대치했는데, 그의 딸 아그리피나는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나중에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황후가 되어 서기 50년에 이곳을 식민도시로 격상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이곳은 ‘아그리피나의 식민도시’라는 뜻으로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Colonia Agrippinensis)라고 불리게 되었다. ‘쾰른(Köln)’이란 지명은 바로 ‘식민지’란 뜻의 ‘콜로니아’에서 유래한다. 한편 프랑스 사람들은 이곳을 콜로뉴(Cologne)라고 하고 영어권에서는 이 표기를 그대로 따른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쾰른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따라서 시내 곳곳에 로마제국의 유적이 눈에 띈다.


▎쾰른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 / 사진:정태남




▎쾰른 대성당의 실루엣이 보이는 라인강. 독일 사람들은 이 강을 ‘아버지 라인’이란 뜻으로 ‘파터 라인(Vater Rhein)’이라고도 부른다. / 사진:정태남


라인강 하류에는 세 개 주요 도시, 즉, 본, 쾰른, 뒤셀도르프가 서로 가까이 있다. 본과 쾰른은 2000년 전에는 로마제국의 도시였던 반면 반면에 뒤셀도르프는 몇몇 게르만 부족이 살던 조그만 마을이었다.


▎호엔촐레른 철교 초입에 세워진 독일제국의 초대 황제 빌헬름 1세 기념상과 라인강 건너편의 쾰른 대성당. / 사진:정태남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


▎쾰른 대성당 내부. 높은 천장은 중력에 대담하게 저항하는 듯하다. / 사진:정태남
뒤셀도르프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1856)의 고향이기도 하다. 슈만은 30세 때인 1840년에 하이네의 [서정적인 간주곡] (Lyrisches Intermezzo)에서 16개 시를 발췌하여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작곡했는데 그중 6번째 곡이 ‘라인에서, 거룩한 흐름에서’(Im Rhein, im heiligen Strome)이다. 슈만은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다가 뒤셀도르프시의 음악감독으로 초빙을 받아 40세가 되던 해인 1850년에 가족과 함께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 ‘파터 라인’에 매료되었던 그는 하이네의 시 ‘라인에서, 거룩한 흐름에서’에 묘사된 쾰른 대성당을 실제로 보고 싶어서 그해 9월 후반에 쾰른으로 여행했다. 그 후 그는 다시 한번 쾰른을 비롯한 라인지방으로 여행하게 되는데 여행에 앞서 11월 2일에 새로운 교향곡의 1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12월 9일에 교향곡 전체를 완성했다. 이것이 바로 [교향곡 3번 ‘라인’], 일명 [라인 교향곡]이다. ‘라인’이란 별칭은 그가 붙이지 않았지만, 그는 이 교향곡을 작곡하던 중 ‘고결한 라인강과 사람들의 역사와 정기가 나의 마음속을 스쳐 흐르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처럼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각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사실 슈만은 처음에 제2악장을 ‘라인의 아침’이라고 제목을 붙였다가 출판할 때는 이를 없앴지만 이 악장은 라인강의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또 제4악장은 쾰른 대성당의 장엄함과 종교의식의 엄숙함을 연상하게 한다.

쾰른 대성당은 고도(古都) 쾰른의 심장 중의 심장이며 쾰른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로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독일어로는 쾰르너 돔(Kölner Dom, 쾰른 대성당)이라고 한다. 독일어 돔(Dom)은 라틴어로 ‘집’을 뜻하는 도무스(domus)에서 어미 -us를 뺀 형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를 두오모(Duomo)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신의 집’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쾰른 대성당은 양식상으로 보면 프랑스식 고딕양식이다. 대성당 정면은 서쪽을 향해 있고, 신앙과 영성을 상징하는 높은 첨탑 두 개가 하늘에 닿으려는 듯 높은 곳을 향하여 솟아 있다. 탑의 높이는 157m. 509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첨탑 위 전망대에서 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황금으로 장식된 동방박사의 성골함. / 사진:정태남


신앙과 영성을 담은 ‘신의 집’ 쾰른 대성당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부서진 첨탑의 잔해. 대성당 앞 광장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사진:정태남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깊숙한 공간이 펼쳐지는 가운데 시선은 자연스레 위로 향한다. 높은 천장은 중력에 대담하게 저항하는 듯하다. 천장을 떠받치는 기둥들 사이에 있는 길쭉하고 높은 스테인드글래스를 통해 빛이 하늘의 축복처럼 은은히 내부 공간으로 스며들어온다. 중앙 제단 쪽에는 대성당에서 가장 소중한 성유물인 화려한 황금빛 동방박사 성골함이 커다란 유리상자에 보관되어 있다. 성골함은 마치 로마제국 후반에 세워진 기독교 성전의 형태를 축소해놓은 듯하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이 성골함은 원래 비잔티움에 있었는데, 314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로 옮기도록 했다고 한다. 그 후 6세기가 지난 1164년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트리히 바르바로싸가 이를 쾰른의 대주교에게 기증했다.

쾰른 대성당은 이 성골함을 보존하던 원래의 성당이 화재로 파괴된 자리에 세웠는데, 그 기원은 콘라트 폰 호흐슈타덴 쾰른 대주교가 초석을 놓은 1248년 8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대성당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여러 차례 중단되다가 1560년에는 완전히 중지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거의 300년이 지난 1842년,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을 주도하면서 상징적인 건축물이 필요했기에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분실되었던 중세의 설계도가 당시에 우연히 발견되어 원래 계획한 형태대로 전통적인 중세 시공방식에 따라 1880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니까 슈만이 1850년에 [교향곡 제3번 ‘라인’]을 작곡할 때 대성당은 첨탑이 아직 세워지지 않은 미완공 상태였다.

이 대성당은 전통적인 중세 석조건축 시공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딕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데 600년 이상 걸려 완공했는데 완공된 지 약 60년 후에 엄청난 위기를 맞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폭격기들이 장구한 역사의 도시 쾰른을 지도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는 듯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기적이 있었다. 대성당은 부분적으로 파괴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멀쩡했으니 말이다. 슈만이 그토록 찬양하던 ‘파터 라인’이 보호했던 것일까?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907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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