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 

클래식 기타 선율에 담은 알함브라의 추억 

스페인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그라나다는 이베리아반도를 800년 동안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인 알함브라는 이베리아반도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건축과 예술의 백미로 손꼽힌다. 알함브라는 타레가의 [알함브라의 추억]이라는 기타 음악을 통해 여행자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는다.

▎알바이신 언덕에서 본 알함브라 성채. 한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이다. 멀리 보이는 시에라네바다산맥 정상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다. / 사진:정태남
이베리아반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 알함브라 성채로 올라가는 길목과 알바이신 지역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광장 플라사 누에바(Plaza Nueva) 한가운데에 섰다. 어디선가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축제일의 종처럼, 아니 승리를 찬양하는 듯한 환희의 종소리처럼…. 왜 그렇게 들리는 것일까? 종소리가 사라지자 뇌리 속에 아직 남아 울리던 여운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집시의 노래 소리가 겹쳐진다. 고개를 드니 우람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가 수백 년의 전설을 간직한 채 솟아 있다. 성채의 높은 탑 위에는 정복자들이 꽂아 놓은 듯한 깃발들이 휘날린다.


플라사 누에바에서 좁은 길을 따라 알함브라를 향하여 걸어 올라간다. 허름한 호텔들과 기념품 가게들, 또 기타 제작소 등을 지나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로 들어선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를 쓴 미국 외교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3~1859)도 세 달 동안 그라나다에 머물면서 이 길을 순례자와 같은 마음으로 지났으리라. 산길을 따라 오르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기타 선율이 가냘프게 들려온다. [알함브라의 추억]이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관광객을 상대로 동전을 얻으려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이곳에서 솟구치는 벅찬 감정을 기타에 담는 것이리라. 기타 소리는 새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에 파묻힌다. 기타는 음량이 작은 악기이지만 소리만큼은 뇌리에 깊게 남는다.

이슬람세력의 마지막 보루


▎알함브라가 보이는 알바이신 언덕에서 노래하는 집시. / 사진:정태남
알함브라는 이베리아반도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건축의 백미다. ‘알함브라’라는 말은 원래 ‘붉은 것’이란 뜻의 아랍어 알-함라(Al-Hambra)인데 불그스름한 외관 건축재료 색깔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라틴계열 언어에서 h는 발음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페인 사람들은 ‘알람브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알함브라’라고 발음해보라고 권유한다. 왜냐면 이 발음이 원음에 더 가깝거니와 또 어쩐지 더 신비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함브라는 크게 군사용 요새인 알카사르(Alcazar), 왕의 공적(公的)인 공간과 사적(私的)인 공간으로 이루어진 궁전, 그 옆에 바싹 붙어 후세에 세워진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이루어진 성채와 이 성채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지역에 세워진 왕의 여름 별장 헤네랄리페로 구분되는데,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제외하고 모두 13~14세기에 세워졌다.


▎알함브라 성채 안 군사용 요새였던 알카사르. / 사진:정태남
그러면 이베리아반도의 역사를 한번 간단히 뒤돌아보자. 로마제국의 속주이던 이베리아반도는 로마제국시대 말기부터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들어와 왕국을 세웠다가, 711년에는 다시 남쪽으로부터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기 시작하여 불과 몇 년 만에 이베리아반도를 거의 모두 석권하다시피 했다. 한편 북쪽으로 쫓겨났던 이베리아반도 주민들은 그곳에서 여러 개의 작은 왕국을 건설하고는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레콩키스타(Reconquista), 즉 국토회복 전쟁에 돌입했다. 기독교 세력은 승기를 잡고 점점 남진하더니 그라나다만 제외하고 안달루시아를 모두 점령했다. 그러니까 알함브라는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그런데 최후의 날이 점점 다가오는데도 알함브라는 오히려 더 찬란한 모습으로 가꾸어져갔다. 마치 기독교 승리자에게 인간이 사는 땅은 아름답게 가꾸어져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듯. 또 ‘이슬람 건축과 예술의 결정체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그러다가 마침내 1492년 1월 2일, 아라곤 왕국의 왕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은 끝까지 버티던 그라나다를 함락함으로써 국토회복 전쟁을 마무리했고 거의 800년에 이르는 이슬람 시대를 종식했다. 그라나다에서 쫓겨난 이슬람 나스르(Nasr)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 ‘잃어버린 천국’ 알함브라를 멀리서 뒤돌아보며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

섬세한 여성적인 건축


▎대사들을 접견하던 홀 앞의 파티오. 작은 분수와 연못이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사진:정태남
알함브라 성 안에서는 단연 나스르 왕궁이 압권을 이룬다. 매표소에서 30분마다 지정해준 시간대에만 이곳에 입장할 수 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육중한 외부 인상과 달리 내부 궁전들은 과시하려고 웅장하게 지은 건물들이 없어 상당히 친밀감을 준다.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은 이슬람 건축과 전혀 관계없는 육중한 르네상스식 건축이다. 건축 자체로는 나름대로 훌륭하지만 이곳 분위기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기존 이슬람 건축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알바이신 언덕에서 봤을 때는 오히려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일체가 된 느낌이다. 이를테면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남성적인 우람한 건축이라면, 알함브라 궁전은 여성적인 섬세한 건축이라고나 할까.

알함브라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곳은 ‘사자의 파티오(Patio de Leones, ‘파티오’는 스페인식 안뜰)’다. 파티오를 둘러싸고 있는 방들은 술탄의 하렘이 있던 사적(私的)인 공간이었으니, 이곳은 알함브라에서 가장 은밀하고 신비스런 장소인 셈이다. 파티오 한가운데에 있는 사자의 분수에서 솟아나 떨어지는 물소리는 이 은밀한 공간 구석구석에 묘하게 반사되어 들린다. 파티오에서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이라고 불리는 어두운 내실(內室)로 들어선다. 벽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도형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는 ‘알라는 승리자’와 코란에 나오는 구절을 수없이 새겨 놓았다. 또 천장은 마치 바위굴 속에 나오는 4 종유석처럼 우아하고 섬세하고, 또 어떻게 보면 수없이 많은 하늘의 별을 새겨 넣은 듯하다.


▎왕의 여름 별장 헤네랄리페에서 내려다본 알함브라 성채와 그라나다 시가지. / 사진:정태남
파티오에서 공명되어 들려오는 물소리는 햇빛에 반사되어 아른거리는 아라베스크 무늬들과 어우러진다. 그라나다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구석구석에서 들린다. 특히 알함브라에서 들리는 물소리보다 더 음악적으로 들리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이 물소리는 [알함브라의 추억]의 트레몰로 선율로 서서히 바뀌어지는 듯하다.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추억


▎나스르 궁전 ‘사자의 파티오’ 안에 정교하게 장식된 벽과 기둥. / 사진:정태남
[알함브라의 추억]을 작곡한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1852~1909)는 노래 반주나 하는 민속 악기로 전락해버린 기타를 다시 연주용 악기로 승화시킨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스페인 동부 항구도시 발렌시아 근교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기타 연주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마드리드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공부한 다음부터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연주여행을 하며 ‘기타의 사라사테’라고 불렸으며 작곡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발렌시아 순회 연주 때 콘샤 마르티네스(Conxa Martinez)라고 하는 부유한 여인이 제자 겸 후원자가 되었다. 1896년 어느 날 그녀는 타레가의 안달루시아 순회 연주를 기획하면서 그라나다에 함께 왔는데, 타레가는 이 도시가 지닌 매력과 마력에 완전히 이끌려 이곳에서 받은 인상을 오선지에 옮겼다. 그리고는 보잘것없는 작품이지만 콘샤 마르티네스에게 헌정한다고 악보에 기입했다. 그는 이 곡을 원래 트레몰로 연습곡으로 썼다. 트레몰로(tremolo)는 ‘떨림’이라는 뜻으로 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는 듯이 되풀이하는 연주법이다. 그런데 타레가는 ‘보잘것없는 작품’으로만 여겼던 자신의 소품이 1세기 이상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클래식기타 명곡으로 자리 잡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편 이 곡의 제목은 악보 출판사가 워싱턴 어빙이 1832년에 쓴 책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라는 제목에서 영감을 받아 정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출판사는 ‘추억’이란 코드가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이다.


▎섬세하게 장식된 ‘두 자매의 방’ 천장. 수없이 많은 별을 새겨 넣은 듯하다. / 사진:정태남
이 곡은 연주시간이 5분도 되지 않는 소품이며 곡의 구조도 아주 단순하고 간결하다. 그러면서도 내면에는 알함브라 궁전에서 느끼는 듯한 신비스러우면서도 은은하고 화려한 애수가 담겨 있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또 어찌 보면 그 속에는 ‘잃어버린 천국’ 알함브라를 뒤돌아보며 탄식하던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의 눈물과 회한의 슬픈 추억이 어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곡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든 듣는 사람의 자유다. 물론 신파조의 3류 소설가라면 타레가가 달빛 어린 알함브라 궁전에서 콘샤 마르티네스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괴로워하면서 이 곡을 작곡했다고 꾸며대겠지만.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910호 (2019.09.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