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이탈리아/ 로마(Roma) 

작곡가 레스피기가 음악에 담은 트레비 분수의 인상 

‘로마’라고 하면 역사의 도시,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종교의 도시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또 다른 수식어를 붙인다면 ‘분수의 도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 정도로 로마에는 분수가 많기 때문이다. 레스피기는 그의 교향시 [로마의 분수]에 4개 분수가 주는 인상을 담았다. 이 분수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트레비 분수다.

▎낭만의 로마를 상징하는 트레비 분수. / 사진:정태남
28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가 구석구석 배어 있는 로마는 예로부터 시대, 국적, 종교, 인종, 언어를 초월하여 수많은 여행자와 순례자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도시다. 로마를 찾은 사람들은 광장마다, 건물 모퉁이마다 크고 작은 분수들이 물을 뿜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기쁨과 활력을 느낀다. 사실 로마 중심지 안에서만 ‘족보’ 있는 분수를 꼽아봐도 100개가 넘으니, “분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로마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한 영국 시인 셸리의 말에 수긍이 간다. 이 분수들 상당수는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유명한 건축가나 조각가들이 만든 것으로, 단순히 물을 뿜는 기능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수준 높은 예술품이다. 이 분수들은 예로부터 로마를 찾는 사람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목을 축여주기도 한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는 로마의 심장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직선거리인 비아 델 코르소(Via del Corso)의 동쪽 골목과 연결된 광장 안에 있다. 골목길을 따라 그곳으로 걸어가다 보면 물소리 가득한 공간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데, 다름 아닌 트레비 광장이다. 이곳은 세 개(tre) 길(via)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트레비(Trevi)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트레비 광장 북쪽 건물의 벽면에는 하얀 조각상들이 마치 무대에서 연기하는 듯하다. 그 한가운데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가 마치 개선 마차에 올라탄 듯 두 마리 말이 이끄는 거대한 조개껍질 모양의 마차에 올라서 있다. 이 두 마리 말은 바다의 신트리톤이 이끌고 있다. 그 앞에 펼쳐진 넓은 수반은 바다를 상징한다. 오케아누스의 좌우 조각상은 각각 풍요의 여신과 건강의 여신이다.

로마의 명소, 트레비 분수


▎후 기 바로크 시대의 걸작 트레비 분수. 조각상들은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 사진:정태남
이것이 바로 후기 바로크 시대의 걸작품 트레비 분수다. 이 분수는 미국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이나 이탈리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 등과 같은 영화를 통해서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 로마의 명물 분수가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 지역을 재개발하려던 계획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다. 1730년 새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12세는 로마를 더욱더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시키고 싶어서, 그 일환으로 트레비 지역 재개발 설계 공모전을 열었는데 당선작은 30세의 젊은 건축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설계안이었다. 이 설계안이 선정된 것은 도시계획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훌륭했을 뿐 아니라 다른 계획안들에 비해 공사비가 훨씬 적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트레비 분수는 1732년에 착공됐다. 하지만 공사비 부족으로 공사가 여러 번 지연되고, 니콜라 살비는 공사 중 이런저런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1751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죽은 후 이 분수는 다른 건축가와 조각가의 손을 거쳐, 착공한 지 자그마치 30년이 지난 1762년에야 완공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분수의 물은 그냥 수돗물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물이다. 즉, 기원전 19년에 건설된 처녀수로라고 하는 지하수로를 통하여 로마에서 20㎞ 넘는 곳에 있는 산악지대 수원에서부터 흘러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처녀수로를 건설한 이는 로마제국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이었던 아그리파. 그는 이 물을 이용하여 로마 시내에 자그마치 160개나 되는 분수를 만들었다. 그럼 왜 수로 이름에 ‘아그리파’가 붙지 않고 ‘처녀’가 붙었을까? 또 이 처녀는 누구였을까? 사실 이 처녀는 이름도 성도 모른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 공병들이 땡볕 아래에서 수원을 찾다가 기진맥진했는데 웬 처녀가 나타나 물이 솟는 곳으로 이들을 인도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수로를 ‘처녀수로’라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수원과 트레비 분수 사이의 낙차는 불과 4m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수로의 경사는 1㎞당 2.5㎝도 안 되는 셈이다. 2000년 전에 이 정도로 ‘아슬아슬한’ 경사를 유지하면서 이토록 긴 지하수로를 건설할 수 있었으니 로마인들의 측량기술과 시공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수로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8세기에 한 번 복원되었으며, 또 오랜 세월이 지난 1453년에 완전히 복원되어 오늘날까지도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트레비 분수를 전체적으로 보면 공간 구성이 격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매끄럽게 깎은 돌 수반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바위와 강한 대비를 이루며, 분수의 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수반에 흘러내리고, 물소리 속에 바다의 신 트리톤과 사나운 군마(軍馬)가 양쪽에 그 하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광경 뒤에는 수직 기둥들, 좌우의 조각상, 육중한 돌림띠를 두른 르네상스 건물의 벽면이 이 격정적인 무대를 고요히 조율하고 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물 위에는 한낮의 햇빛이 눈부시게 반사된다.

작곡가 레스피기의 '정오의 트레비 분수'


▎트리톤과 말의 매끈한 표면과 대비되는 울퉁불퉁한 바위. 바로크적인 기법이다. / 사진:정태남
이러한 격렬한 인상을 [정오의 트레비 분수]라는 제목의 시(詩)로 묘사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시를 글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썼다. 그래서 이것을 교향시(symphonic poem)라고 한다. 이 ‘시인’은 볼로냐 태생 레스피기(O. Respighi 1879~1946)인데, 그는 당시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원장을 맡고 있었다.

비발디가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기악음악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음악가들 중 한 사람이라면, 레스피기는 20세기 초 쇠퇴해가는 이탈리아 오페라 음악을 대신하여 기악음악으로 새로운 장을 연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다. 이탈리아는 트레비 분수가 세워진 바로크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전 유럽의 음악가들이 몰려오던 나라였다. 하지만 그후 상황이 달라졌다. 19세기 전반까지 이탈리아는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기악 분야가 크게 뒤져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음악도들은 오히려 이탈리아를 떠나야만 했다. 이탈리아는 단지 오페라로 음악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 사진:정태남
이렇게 기악에 뒤처진 이탈리아에 베토벤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다행히 1880년대를 전후하여 약속이나 한 듯 레스피기, 말라피에로,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잔도나이와 같은 음악가들이 태어나 뒤떨어진 기악음악 수준을 이끌어 올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들 중 레스피기는 러시아로 유학 가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가르침을 받은 후 이탈리아에 돌아와서는 지난날의 영광을 되살리고 이탈리아적인 색채를 찾는 데 열정을 쏟았다. 이리하여 탄생한 것이 ‘로마 3부작’, 즉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다.

그는 음악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이탈리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선지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1917년 [로마의 분수]가 로마에서 초연되었을 때 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즉, 화려한 지난날의 영광에 도취해 있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생소하게만 들릴 뿐이었다. 선지자의 외침은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1918년 토스카니니가 밀라노에서 이 곡을 지휘했을 때는 대성공이었고, 곧 미국에서도 연주되기에 이르렀으며, 1951년 토스카니니가 카네기홀에서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로 녹음한 이래로 음악사에서 가장 훌륭한 교향시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로마의 분수]는 새벽부터 황혼까지 네 개 분수가 주는 인상을 네 개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제목은 [새벽의 발레 줄리아의 분수], [아침의 트리톤 분수], [정오의 트레비 분수], [황혼의 빌라 메디치 분수]이고, 네 곡 전체 연주시간은 대략 15분 정도 된다. 이 네 개 분수 중에서 물론 트레비 분수가 가장 규모가 크고 또 가장 유명하다. 로마를 찾는 사람들은 등 뒤로 동전을 이 분수에 던진다.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면서…


▎처녀가 로마 병사들을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 모습. / 사진:정태남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909호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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