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어둠 속에서 빛나는 헝가리 국회의사당 

부다페스트 풍경의 구심점을 이루는 중요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도나우강 변의 국회의사당은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국회의사당은 그 자체가 보석 같은 건축물로 도나우강 주변 풍경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니까 만약 이것이 없다면 부다페스트를 ‘도나우강의 진주’라고 부르는 데 주저할지도 모르겠다.

▎부다 언덕에서 본 도나우강과 헝가리 국회의사당. / 사진:정태남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예로부터 ‘도나우강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도나우강 변을 따라 걸으면서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9년에 있었던 격동적인 역사의 흐름을 생각해본다. 그해 대한민국은 헝가리와 수교를 맺었다. 당시 헝가리는 공산 진영에 속해 있었으니 우리나라는 최초로 공산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했던 것이다.

헝가리의 역사는 도나우강이 흐르는 카르파티아 평원에 마자르족 일곱 부족이 자리를 잡은 896년 이후부터 시작된다. 이들이 세운 나라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1873년에 ‘부다’, ‘오부다’, ‘페스트’가 합쳐져 생성된 도시인데 헝가리에서는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부다페스트 풍경의 구심점을 이루는 세 개의 주요 랜드마크는 부다 지역 언덕 위의 왕궁,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 페스트 지역 도나우강 변의 국회의사당이다. 국회의사당은 그 자체가 보석 같은 건축물로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난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부다페스트를 ‘도나우강의 진주’라고 부르는 데 주저할지도 모르겠다.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나라의 집


▎어둠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국회의사당. / 사진:정태남
이 국회의사당을 순수한 헝가리어로 ‘오르사그하즈(Országház)’라고 한다. 오르사그(Ország)는 ‘나라’, 하즈(ház)는 ‘집’, 즉 ‘나라의 집’ 이란 뜻이니 이름 그대로 헝가리 민족에게는 매우 신성한 건축물인 셈이다. 그런데 이 국회의사당 건물은 1873년에 부다페스트가 탄생할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당시 페스트 지역은 거의 개발되지 않은 허허벌판 같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페스트 지역 개발계획이 대대적으로 수립됐다. 이에 1880년에는 헝가리 의회가 헝가리 민족의 자존심을 표현할 수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페스트 지역의 도나우강 1 변에 세우기로 결의하고는 이를 공모에 부쳤다. 이 공모전에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오토 바그너를 비롯해 쟁쟁한 건축가 19명이 참가해 경합을 벌였는데, 1등으로 선정된 것은 부다페스트 공대 교수로 재직하던 임레 슈테인들(Imre Steindl)의 계획안이었다. 이리하여 1885년에 대망의 건립 공사가 시작되었고 임레 슈테인들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국회의사당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맞는 해인 1896년에는 완공되지 못하고 도나우강 변에 화려한 모습을 확고하게 드러낸 것은 착공한 지 19년이 되는 해인 1904년이었다. 그 사이에 건축가 임레 슈테인들은 불행히도 눈이 어두워져 자신의 건축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1902년 여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딕양식의 복고풍 외관과 르네상스 양식의 복고풍 돔으로 이루어진 국회의사당. / 사진:정태남
국회의사당 건물은 규모로 보면 헝가리에서 가장 크고, 높이는 페스트 지역에 같은 시기에 세워진 이슈트반 대성당과 함께 96m다. 이는 헝가리가 건국된 해인 896년과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해인 1896년을 상징한다. 또 외관을 보면 국회의사당은 365개 첨탑으로 장식되어 있고, 외벽에는 섬세한 조각과 장식이 워낙 많아서 어느 부분은 항상 보수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및 자유항쟁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는 임레 너지의 동상. / 사진:정태남
건축양식으로 본다면, 이 건물은 런던 템스강 변에 세워진 영국 국회의사당처럼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던 고딕양식 복고풍이다. 다만 국회의사당의 초점을 이루는 돔은 르네상스양식 복고풍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5세기에 르네상스 건축의 대가 브루넬레스키가 세운 피렌체 대성당의 8각형 돔의 형태를 모델로 하여 16각형 돔으로 만든 것이다. 한편 이 돔 바로 아래에 있는 16각형의 중앙 홀은 국회의사당 실내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공간으로, 헝가리 왕들의 왕관이 2000년부터 바로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


▎국회의사당 광장에 세워진 헝가리 애국지사 석상. / 사진:정태남
건물 내부 공간의 배치를 전체적으로 보면 바로크양식 복고풍이다. 이와 같이 한 건물에 여러 가지 양식이 절충되고 혼합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국회의사당이 오로지 헝가리 건축가들의 손으로 디자인되고 완공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국회의사당 광장 남동쪽 구석에는 놀이터의 구름다리 같은 것이 있고 다리 위에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신사의 동상이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의 곁에 서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이 ‘중절모자의 신사’의 이름은 임레(Imre)다. 그렇다면 혹시 자신의 건축 작품이 완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건축가 임레 슈테인들일까? 하지만 이 임레의 성은 너지(Nagy)다. 그는 헝가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의 정치가였다.


▎부다 언덕 위 어부의 성채에서 본 도나우강 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국회의사당. / 사진:정태남
국회의사당 광장에는 헝가리 애국지사들의 기념상이 세워졌고 광장 지하에는 1956년 헝가리 혁명 및 자유 항쟁 60주년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버린 헝가리에서는 열렬한 스탈린주의자 마탸슈 라코시(Mátyás Rákosi) 공산당 총비서가 개인 우상화 정책을 표방하자 헝가리 국민은 그와 그의 후계자를 증오했다. 마침내 1956년 10월 23일 부다페스트에서 먼저 학생 수천 명이 부다페스트 중심가를 지나 국회의사당으로 시위행진을 했고 이에 동조한 시민들은 스탈린 동상을 끌어내리면서 복수정당제에 의한 총선거, 헝가리 주재 소련군 철수, 표현과 사상의 자유,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했다. 이어서 친소련파 헝가리 당국과 소련군에 반기를 든 항거가 시작되어 자유 항쟁의 불길은 헝가리 전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공산당은 개혁파 인사 임레 너지(Imre Nagy)를 수상으로 지명했다. 그는 정치범 석방, 비밀경찰 폐지, 소련군의 부다페스트 철수를 발표하고 헝가리의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와 중립화를 선언했다. 그러자 소련군은 물러났고 10월 말경 상황은 모든 사람이 원했던 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상황은 곧 반전됐다. 11월 4일, 소련이 수많은 탱크와 군대를 동원하여 전격적으로 헝가리를 침공한 것이다. 헝가리 시민들은 이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웠다. 그중에는 어린 학생도 적지 않았다. 이 격동기에 헝가리 시민 2500~3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소련군도 700여 명이 죽었으며 혁명군을 지휘하던 임레 너지는 체포되어 1958년 부다페스트 감옥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친소련파 공산당이 다시 들어선 헝가리 국회의사당에는 붉은 별이 그려진 깃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30년 전, 헝가리에서 퍼져나간 자유의 물결


▎국회의사당 광장 지하에 조성된 1956년 헝가리 혁명 및 자유항쟁 60주년 기념관. / 사진:정태남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9년에 대한민국 여권으로는 갈 수 없었던 공산국가를 나는 그해 여름 난생처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국회의사당에는 공산당을 상징하는 커다란 붉은 별이 있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헝가리는 공산국가 중에서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를 누리던 나라였다. 사실 공산 치하의 동독 시민들은 이러한 헝가리를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로 여겼다. 그런데 그해 여름 헝가리에 여행 왔던 동독 시민들이 자유를 찾아 오스트리아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탈출 행렬이 계속 이어지자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을 아예 개방해버렸다. 이어 헝가리에서는 10월 23일에 다당제와 대통령제 및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공화국이 탄생했다. 이로써 붉은 별이 그려진 깃발은 내려졌고 공산주의 시대는 도나우강 물에 완전히 씻겨 떠내려갔다. 헝가리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간 자유의 물결은 그해 11월에 독일 베를린장벽도 무너뜨렸다. 헝가리 국회의사당은 다시 밝은 태양처럼 아름다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부다페스트도 ‘도나우강의 진주’라는 명성을 되찾았다. 국회의사당에서 휘날리는 헝가리 국기를 보면 빨간색은 헝가리 국민이 조국을 위해 흘린 피, 흰색은 자유, 녹색은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1912호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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