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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상 아이온큐 공동창업자 인터뷰 

삼성전자는 왜 아이온큐에 투자했나 

삼성전자가 양자컴퓨터에 투자했다. 지난해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인공지능 글로벌 석학을 만나 “한계를 허물자”고 외치기 전에 내린 결정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열린 ‘삼성 CEO 서밋’에서 양자컴퓨터 개발업체 아이온큐(IonQ) 공동창업자인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가 투자한 기업을 이끌고 있다.

▎아이온큐의 공동창업자인 김정상 듀크대 교수. / 사진:아이온큐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기업 삼성전자와 손잡았습니다. 이로써 앞으로 양자컴퓨터 분야가 더 빨리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양자컴퓨터를 혁신의 촉매제라 생각합니다. 국가·대학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관련 인재를 양성하며 산업 발전을 도모할 기회라고 말이죠. 한국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올 초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에 나선 김정상 듀크대 교수의 말이다. 양자컴퓨터 개발업체 아이온큐(IonQ)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그는 “양자컴퓨터는 기술적 실현을 논하는 단계가 아니라 인터넷처럼 변혁을 이끌 기회”라며 “현재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유럽연합(EU), 중국, 호주, 일본, 러시아, 인도 등도 최우선적으로 기술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분야로 양자컴퓨터를 꼽았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믿는 그는 누구일까. 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 학부를 1992년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통 물리학자다. 학업을 마친 후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한 세계 최고 민간연구기관인 벨연구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광학기기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했고, 2004년부터 듀크대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박사 논문으로 네이처지에 게재했던 ‘단일광자 빔 발생장치’는 양자컴퓨터 개발의 실마리이자 양자정보처리기술의 근간이 될 정도로 해당 분야 권위자다. 실제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과학자 가운데 노벨상에 근접한 인물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2015년 9월 미국 메릴랜드대학 물리학자 크리스 먼로 교수와 아이온큐를 창업했다.

김 교수의 뜻은 삼성전자의 ‘미래 위기론’과 맞물렸다. 지난 10월 말 포럼을 열기 전 삼성전자는 아이온큐에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산하 벤처캐피털인 삼성캐털리스트펀드와 아랍에미리트(UAE) 국부 펀드 무바달라캐피털이 이끈 투자단이 5500만 달러(약 65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반도체 제조 분야의 최강자가 “전통적인 반도체 컴퓨터 방식으론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없다”고 보는 아이온큐에 투자했다는 것만으로도 업계 반향이 컸다. 물론 삼성 측은 정확한 투자 금액과 지분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김 교수는 전화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전자, 양자컴퓨터 업체에 600억 넘게 투자


▎양자컴퓨터 개발업체 아이온큐(IonQ) 양자컴퓨터 실험실 내 클린룸에서 작업 중인 연구원. / 사진:아이온큐
이어 “프랜시스 호 삼성캐털리스트펀드의 부회장과 박사 과정 중 함께 연구했던 적이 있다”며 “학위를 마친 후에도 수년간 연락하며 양자컴퓨터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이후 투자받을 생각까진 못했는데 양자컴퓨터 기술로 반도체 핵심 공정 기술을 발전시키고, 양자컴퓨터 산업이 획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 양사가 공감하면서 투자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이온큐가 받은 첫 투자는 아니다. 김 교수는 “뉴 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츠(NEA)의 투자자가 먼로 교수와 제가 공동작성한 논문에 기재된 기술 전망에서 사업 가능성을 보고, 2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했다”며 “다음 해 미국 정부가 제시한 양자컴퓨터의 오류 수정을 연구 목표로 삼아 자금을 지원받았고, 여름쯤 양자컴퓨터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했다. 그 후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2017년 NEA, 구글벤처스(GV),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모았고, 삼성전자가 투자자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개발 최전선에 있는 김 교수가 그리는 양자컴퓨터는 뭘까. 김 교수는 익히 알려진 양자컴퓨터의 우월성보다 ‘접근법’부터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 양자컴퓨터 개발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집적회로(IC) 기술을 기초로 한 큐비트와 원자 같은 자연 상태의 큐비트를 이용하는 방식이 있다”며 “우리는 후자인데 희토류계 원소인 이테르븀(Ytterbium, 원자번호 70번)을 양자 프로세서 장비에 쓴다. 떨어진 이테르븀 원자 여러 개를 레이저빔을 쏴 이온덫(이온트랩) 기술로 가둬 조정하는 기술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원자이온트랩’ 큐비트다.

구글·IBM 방식과 달리한 아이온큐 양자컴퓨터


▎삼성 CEO서밋은 2015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현지 주요 기업인들과 투자자, 삼성 핵심 인력이 모여 최신 IT 트렌트와 미래 전략을 논하는 자리다. 사진은 지난 11월 ‘삼성 CEO 서밋’에서 토론 중인 김정상 교수. / 사진:삼성전자
이해가 쉽진 않다. 김 교수가 설명한 접근법이 구글이나 IBM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보자. 우리가 흔히 아는 양자컴퓨터는 기존 반도체 기술을 많이 사용한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고 주장하는 디웨이브(D-WAVE)도 여기에 속한다. 반도체 성능을 극대화하려면 초전도(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에 가까워지는 현상) 환경이 필요하다. 주요 업체가 공개한 양자컴퓨터 사진을 보면 층층이 쌓은 기계에 금박지를 씌워놓은 걸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극저온 상태를 유지하는 금박지를 씌운 냉장고라고 생각하면 된다. 올해 초 공개된 IBM의 양자컴퓨터 ‘Q 시스템 원’이 원통으로 된 밀폐 형태를 띤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교수는 ‘기계의 고도화’보다 ‘소재 안정화’를 꾀하며 기존 방식을 깼다. 상온에서도 돌아가는 양자컴퓨터의 기술적 토대를 쌓은 거다. 전 세계에서 김 교수와 메릴랜드대학 물리학자이자 아이온큐 공동창업자인 크리스 먼로 교수가 이끄는 공동 연구팀이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장점은 ‘상온에서 돌아간다’는 것 말고 또 있다. 김 교수는 “IC 칩에 찍어서 만든 큐비트가 아니라서 소프트웨어로 가동방식을 완전히 재구성할 수 있다”며 “수많은 개발자가 하드웨어적인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연산방식을 바꾼 알고리즘을 효율적으로 실행해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장점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이런 장점이 있다고 해서 당장 실용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양자컴퓨터의 실체가 나오긴 했지만, 아직도 상용화에 짧게는 3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거란 얘기가 나온다. 김 교수는 디지털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 사례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미래에 어떻게 쓰일지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1940년 군사적인 목적으로 처음 등장했던 디지털 컴퓨터가 70년 후 전 세계에 퍼질지 누가 알았겠냐”며 “학술 정보를 주고받으려 만든 인터넷도 드라마틱한 성장세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양자컴퓨터 분야도 이제 초기 단계지만, 분명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김 교수는 가장 빨리 양자컴퓨터의 득을 볼 분야로 ‘화학’과 ‘소재’를 꼽았다. 그는 “대학·기업 연구소 출신으로 복잡한 화학적 반응을 연구하거나 양자물리학 분야에 활용할 특이한 소재를 발굴할 때 기존 컴퓨터 연산으론 많은 한계에 부딪힌다”며 “새로운 연산방식의 양자컴퓨터는 에너지·화학·배터리·제약·반도체와 같은 화학·소재와 밀접한 산업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고, 최적화가 입증되면 교통·리테일 등 물류, 금융 분야로까지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김 교수가 맞닥뜨렸던 한계를 이겨내며 성장해왔다. 올해 초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1월 2일 이재용 부회장이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했던 자리에서 나온 소식이다. 기존 7나노급 양산 제품보다 소비전력은 50% 줄고, 처리속도는 30% 향상된 기술이다.

미세공정 기술 한계 봉착할 반도체업계

하지만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인 대만 TSMC가 3나노급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또 다른 미세공정 개발 경쟁을 예고했다. 결국 삼성전자의 집적회로 기술도 언젠간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거란 위기감이 고조되는 까닭이다. 아이온큐에 전격적으로 투자를 결정한 것도 삼성이 양자컴퓨터에 거는 기대보다 위기감이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포럼에서 김 교수와 함께 토론에 나섰던 손영권 삼성전략혁신센터 사장은 “3나노미터급 반도체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데 정말 비싸고 하기 힘들다”며 “(반도체 양산기술에서) 파워, 안정성, 비용 등은 언제나 (우리에겐) 모두 도전이기에 양자컴퓨터라는 다른 접근법을 생각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거기’에 합류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단 삼성전자는 양자컴퓨터 분야에 발을 들였지만, 다른 기업들은 어떨지 모른다. 기술의 우월함과 활용 가능성은 전혀 다른 얘기다. 김 교수도 양자컴퓨터로 수혜 입을 분야는 꼽았지만, 산업에 어떻게 퍼질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는 경험상 확신했다. 김 교수는 “1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신문과 같은 종이 미디어 산업은 인터넷의 도래와 크게 상관없어 보였다”며 “하지만 사람들은 인터넷에 뿌려진 기사를 보려고 PC에 접속했고 이젠 스마트폰을 든다. 자체 서버를 구축했던 수많은 제조 기업도 클라우딩 서비스로 IT 축을 바꿔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이 주는 혜택이 좀 더 명확해지면 변화를 강요할 필요도 없고, 시장의 선택으로 자연스레 파급된다는 뜻이다.

파급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이온큐도 클라우드 시스템 AWS ‘브라켓’과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퀀텀’과 손을 잡았다. 이들에게 양자컴퓨팅 하드웨어 기술을 제공한 것이다. 김 교수는 “다수의 고객이 클라우드를 통한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에 접속해 자신만의 연산법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실험해볼 수 있고, 개발자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이라며 “지금은 베타테스터급 고객이 접속하게 제한을 뒀지만, 올해 안에 일반 시장에서도 접속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이온큐는 창업 후 4년 만에 두 거대 클라우드 공룡의 손까지 잡았다. 김 교수는 지금도 아이온큐의 공동창업자이면서 듀크대 교수직을 겸직하고 있다. 쉬운 길은 아닌 듯 보였지만 그는 다르게 표현했다. 김 교수는 “듀크대 교수, 아이온큐 공동창업자로 활동하며 이해 상충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며 “듀크대와 아이온큐 모두의 이익을 도모하며 스타트업을 세우는 건 내 아이를 키우듯 나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아이온큐에 있을 때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 점 빼고는 보람찬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빼놓지 않았다. KIST 양자정보 연구단의 외부평가위원을 맡으며, 10년째 한국 연구진의 연구를 돕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연구진에 전하는 당부이자 조언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믿고, (연구개발 투자를)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이 분야에서 강자가 되려면 사람이 가장 중요하죠. 젊은 차세대 연구인력을 교육하고, 대학에서 최고의 연구진을 길러내며, 국가·기업 연구기관이 서로 끈끈하게 협력해야 합니다. 기술이 중심에 선 산업이 크려면 산업계가 투자에 나서도록 장려하는 일도, 개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리스크(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합니다. 양자컴퓨터는 컴퓨터 자체가 아니라 오늘날 모든 기술영역이 직면한 문제를 풀겠다는 약속을 상징합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002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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