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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4) 

실크로드에서 돈 번 사람들: 고대의 벤처, 실크로드 상인(3) 

6세기 전반 중가리아 남부 초원과 알타이 산지를 중심으로 성장한 돌궐은 당시 초원의 패자였던 유연(柔然)을 무너뜨리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돌궐은 페르시아와 손잡고 중앙아시아 초원과 북인도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에프탈족을 멸망시켰다. 몽골제국이 팽창하며 호라즘을 정복한 것과 같은 양상이었다. 몽골제국이 위구르 상인, 무슬림 상인들과 유라시아 전역의 상권을 지배했듯이 돌궐은 소그드 상인들과 손잡고 실크로드 교역을 독점했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는 실크로드를 횡단하는 행상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도시였다. 이곳에선 아직도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유목민족 돌궐은 소그드 상인들과 군산 복합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해 막강한 무역 세력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돌궐이 소그디아나를 점령한 후 소그드인들은 돌궐의 가한에게 적극 협력하는 대가로 생존을 보장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소그드인들은 돌궐에 복속한 후에는 돌궐의 영역 내에서 부락 단위의 거주지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돌궐의 가한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축적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이것은 무역에 종사하는 집단으로서는 당연한 대응이었다. 왕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영역 내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상업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614년 돌궐의 칸 밑에서 총애를 받았던 소그드 상인 사독호실(史獨胡悉)은 수나라 입장에서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였다. 수양제와 그의 신하가 ‘천자가 진귀한 물품들을 내놓아 교역하려 하는데 먼저 오는 자가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소문을 내고 사독호실을 유인해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소그드 상인들이 얼마나 이익을 소중히 하고 또 돌궐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았는지 보여준다.

소그드인과 북방 돌궐인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당나라 현종 때인 755년 반란을 일으킨 안록산(安祿山)이 가서한(哥舒翰)이라는 장군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회유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의 부친은 소그드인이고 모친은 돌궐인이다. 그대의 부친은 돌궐인이고 모친은 소그드인이다. 그대와 나는 같은 종족이니 어찌 서로 친해지지 않겠는가?”

7세기 수를 계승해 중국 대륙의 패자가 된 당나라 시대에 소그드 상인들은 한 번 더 도약하게 된다. 대당제국이 등장하자 중앙아시아까지 광범위한 지역의 교통이 좋아졌고 통행이 안전해졌다. 소그드 상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당나라의 정책과 함께 교통의 발달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잇는 무역 활동을 더욱 활성화했다. 당나라는 소그드인들을 유목국가로부터 떼어내 자국에 편입하려 했고, 이는 유목 제국과 당나라 어느 쪽이 소그드인을 확보하느냐가 세력 균형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당나라 말기에 쓰이긴 했지만 관료이자 시인이었던 원진(元稹 )이 남긴 ‘법곡(法曲)’이라는 시에는 당대에 소그드 상인들이 일으켰던 호풍 유행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역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서역의 카펫이 장안과 낙양에 가득하네./ 여인은 서역인의 부인이 되려고 서역의 화장술을 익히고/ 기생은 호음(胡音)을 권하고 호악(胡樂)에 힘쓰네./ 서역의 음악과 기마와 화장의 습속은 오십 년 동안 끊임없이 중원에 전해졌네.”

서역의 말이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고, 서역에서 들여온 카펫이 장안과 낙양에 가득했다. 우리가 동서 교통로를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역과 그 너머 유럽까지 전해진 중국 쪽의 주된 물품이 실크, 곧 비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주로 받아들인 것은 말과 카펫 같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물품이었다. 원진의 시는 당대에 장안과 낙양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서역 물품을 애용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타고 다니는 말, 바닥에 깔고 앉는 카펫, 그 카펫에 앉아 즐긴 먹거리 등. 이 먹거리는 강북 전역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밀로 만든 면 종류의 음식이었다. 그들이 즐긴 음악과 무용도 모두 서역의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장안과 낙양 사람들의 주된 사치품 목록 상위에 오른 물품의 대다수가 서역과 중앙아시아를 원산지로 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전성기를 누리던 소그드 상인들은 8세기 중엽 당나라에서 발생한 안록산의 난으로 타격을 받는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되자 당나라는 소그드인을 대규모로 숙청했다. 소그드인들의 활동은 위축됐고 일부는 이란 등 이슬람 문명권에 흡수됐다. 돌궐이 몽골 초원에서 힘을 잃자 소그드 상인들은 새로운 패자로 등장한 위구르와 연합했다.


▎고구려 사신이 그려져 있어 유명해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의 소그드인들. 이 행렬은 학자들에 따라 조상묘 참배 행렬로 보기도 하며 결혼 행렬로 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남벽에서 보이는 종교적 요소가 대체로 조로아스터교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소그드 상인들이 한반도와 어떤 관계였는지는 아직 밝혀진 사실이 많지 않다. 하지만 신라·발해·고려 시대의 유물은 소그드 상인들의 무역 활동이 한반도에까지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소그드 상인들에게까지 발해 모피의 우수성이 알려져 그들이 발해에 흑담비 모피를 사러 다녔던 담비길은 러시아 학자가 발굴해 발표되기도 했다. 괘릉의 무인상과 흥덕왕릉의 외호석상은 서역인이 분명하다. 경주 용강동 고분의 도용과 서악동 고분의 신장상도 마찬가지다. 당시 국제 정세로 미루어본다면 메부리코에 턱수염을 한 소그드인일 수 있다.

몽골제국도 돌궐이 소그드 상인들과 군산복합체를 만든 것과 같이 위구르 상인, 이슬람 상인과 손잡고 글로벌 무역망을 통합했다. 5세기에서 10세기까지 500년간 유라시아 국제 교역을 주도했던 소그드 상인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 있지만 약소민족이던 그들은 군사강국 흉노·돌궐·위구르·당나라와 손잡고 국제 정세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강대국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로 실익을 넓혀갈 수 있었다.


▎투루판 베제클리크 33호 석굴의 벽화(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관). 당시 실크로드의 상권을 쥐고 있었던 소그드계 상인들의 모습일 것이고, 이들 상인들의 공양으로 유지했던 석굴들이 실크로드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은 이 장삿길들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마사하루 교수에 따르면 몽골제국이 등장해 세계 체제를 형성하기 이전인 5~10세기경에 이미 소그드 상인들이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교역을 하면서 느슨한 형태의 통합, 즉 초기의 자유무역지대가 유라시아 대륙에서 태동했다. 이 시기를 전근대적인 세계 체제의 초기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그드인들은 초기에 조로아스터교를 많이 믿었으나 이후 마니교, 불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이슬람교도 믿었다. 그들은 무역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문명 교류라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중개하고자 했던 글로벌 마인드를 소유하고 있었다. 실제로 불교와 기독교, 조로아스토교와 마니교 등 여러 종교적 가르침이 중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소그드 상인들은 많은 역할을 했다. 그들은 소그드인 자체 문자를 가지고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소그드 상인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했다. 유라시아 상권을 제패했던 소그드인들의 언어는 오늘날 영어와 비슷한 지위를 누린, 상인들의 국제 공용어였다. 소그드인들이 사용하던 문자는 돌궐·위구르·몽골·만주 문자 형성에 큰 영향을 줬다. 이집트에서 한반도까지 광대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인류의 문명 교류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것이다.

999년 소그디아나와 이란에 걸쳐 있으면서 압바스 제국의 일부였던 사만 제국이 멸망하고 동시에 유라시아의 국제 공용어였던 소그드어가 쇠퇴하면서 이슬람교가 유행했다. 소그드 상인의 상인정신은 페르시아와 아랍의 무슬림 상인에게 그대로 계승됐다.

요즘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 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公試族)이 70여만 명이나 되고 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한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세계 경영’을 외쳤던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필자의 롤 모델이었다. 천년도 더 전에 이집트, 로마에서 신라, 일본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고 다녔던 소그드 상인, 아랍 상인과 같은 장사꾼들이 한반도 젊은이들의 로망이 되면 좋겠다.


▎수나라 시대 무덤에서 발굴된 소그드 상인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도기.
-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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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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