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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2) 

군주가 간신보다 교활해야 

사악한 간신일수록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교활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권력자가 더욱 교활해야 한다. 교활함으로 교활함을 누르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예로부터 권력자들은 모두 자신의 수하들에게 충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권력자들이 요직에 인재를 배치하는 기준과 방식을 살펴보면, 충신은 배제하고 간신들을 중용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그것은 권력자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곁에 두고자 했기 때문이고, 수하들이 권력자의 눈에 들기만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쓴소리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권력자가 인상부터 쓰는데 어느 누가 입을 열겠나. 그래도 한마디를 참지 못하는 충신들은 목이 날아가기 바빴다.

명 태조 주원장 밑에서 어사를 지낸 왕권은 일처리가 항상 공명정대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법에 준해 엄하게 처벌했다. 주원장도 그를 아껴 보기 드문 충신이라고 칭찬했다. 왕권은 주위에 말했다.

“폐하께서 충신을 좋아하고 간신을 싫어하니 천하의 복일세.”

하지만 한 친구가 왕권에게 충고했다.

“폐하께서 간신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네. 돌이켜 보면 충신들은 한결같이 모함을 받아 고난을 겪지 않았나. 그러니 자네도 행동을 조심해야 할 걸세.”

하지만 왕권은 주원장을 현명한 군주라 믿고 친구의 충고를 흘려 넘겼다. 어느 날 왕권이 업무를 처리하다 주원장과 부닥쳤다. 주원장이 몇 번이나 타일렀지만 왕권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원장이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는 매번 충신을 자처하면서 어찌 내 명을 거역하는가.”

왕권은 당당하게 말했다.

“군주가 잘못했을 때 무작정 따르는 건 간신입니다. 폐하께서 간언을 듣지 않으시면 소신은 항거하다 죽을 따름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주원장이 왕권을 죽이라고 명하자, 대신들이 나서 말렸다. 주원장 역시 마음이 진정되고서는 자신이 지나쳤다고 깨닫게 됐다. 이에 왕권을 다시 불러 말했다.

“그대가 잘못을 인정하면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왕권은 꼿꼿한 자세로 고집했다.

“잘못이 없는데 무엇을 인정한다는 말입니까. 소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죽이십시오.”

왕권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자 주원장은 소리쳤다.

“내가 충신을 죽였다는 오명을 쓰더라도 네놈은 용서할 수 없다. 당장 이놈을 끌어내 목을 쳐라.”

황제의 대노에 대신들은 더는 두둔할 수 없었고, 결국 왕권은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봐도 이런 충신들보다는 간신들이 운이 좋았다. 간신들은 권력자들의 환심을 사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그들에게 확고한 정치적 입장 따위는 없었다. 오직 자신의 이해만이 관심이었다. 옳고 그름은 상관없이 오직 군주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성인이 아닌 한, 대부분의 군주가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따르는 그들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진시황 때 박사였던 숙손통은 진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진시황이 갈수록 포악해지자 앞으로 나서지 않고 몸을 사렸다.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천하가 통일돼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어찌 자네처럼 박식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기만 하는가.”

이에 숙손통이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우리같이 책 읽는 사람들을 좋아하시지 않네. 더구나 우리의 말은 듣지도 않지. 이런 상황에서 공연히 학식을 뽐냈다가는 화를 당하기 십상일 뿐이네.”

실망한 친구는 문을 박차고 나간 뒤 다시는 숙손통을 찾지 않았다. 숙손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입을 닫고 다른 친구들과도 왕래를 줄였다. 이런 신중한 행동 덕분에 그는 진시황이 박사460여 명을 생매장하는 ‘분서갱유’ 때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충신보다 간신이 운이 좋아

진시황이 죽고 2세가 황위를 계승한 뒤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는 숙손통 등 박사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박사들은 너도나도 반란 무리들을 무력으로 진압해야 한다며 그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숙손통은 말없이 듣기만 하면서 황제의 표정을 살폈다. 박사들의 논쟁을 들으며 황제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숙손통은 황제가 자신이 통치를 못해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이에 황제 앞으로 나아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누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입니까. 그저 일개 도적 떼가 날뛰는 것을 두고 이처럼 소란을 피우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어질고 총명하신 폐하의 보살핌이 두루 만방에 미쳐 관리들은 소임을 다하고 백성들은 배를 두드리며 노래합니다. 어떠한 태평성대에도 도적들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조정에서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지방 관리들이 알아서 도적들을 소탕할 것입니다.”

황제가 듣고 싶었던 게 바로 이런 말이었다. 황제는 다른 박사들에게 벌을 내리고 숙손통에게는 푸짐한 상과 승진을 선물로 주었다.

황제 앞에서 물러나와 동료들이 황제의 눈을 흐리고 아첨한다고 꾸짖자 숙손통은 탄식하며 말했다.

“현실을 거스르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나. 황제가 어리석고 진언은 들으려 하지 않는데 어찌 하겠나 말일세.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게 나의 본심이겠는가.”

숙손통은 2세 황제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야반도주해 진승, 오광의 무리에 합류했다. 하지만 올바른 현실을 일깨우지 않는 신하를 둔 군주가 성공할 수 있겠나. 진승과 오광의 반란은 곧 패했고, 숙손통은 이어 항량과 의제, 항우에게 차례로 투항해 목숨을 유지했다. 마지막으로는 유방에게 기댔다. 유방과 처음 만날 때의 일화에서도 숙손통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숙손통은 당시 박사들이 입던 높은 관과 넓은 띠의 유복(儒服) 차림으로 유방 앞에 섰다. 하지만 이를 보고 유방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숙손통은 다음에 유방을 만날 때 길이가 짧고 소매도 좁은 초나라 사람들의 옷을 입고 나섰다. 그러자 비로소 유방이 웃음을 지었다.

항우를 격퇴하고 황제가 된 뒤, 유방은 진나라의 엄격한 의식과 예법을 폐지하고 규범을 간소화했다. 그러자 대신들이 조정에서 난동을 부리는 일이 생겼고, 심지어 술에 취해 싸우다 검으로 궁전 기둥을 두드리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유방이 이 같은 혼란에 점점 인상을 쓰게 되자 숙손통은 더욱 엄격한 궁정 예절과 의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청했다. 유방의 윤허를 받은 뒤 숙손통은 노나라에서 선발한 유생 30여 명을 데려와 궁정 예법을 설명하고 예행연습을 시켰다. 한 달 후 숙손통은 유방 앞에서 시범을 보였고 대신들에게 이를 가르쳤다.

기원전 200년 장락궁이 완공되고 처음으로 숙손통이 제정한 궁정 예법에 따라 조회가 열렸다. 장엄한 의식과 함께 순조롭게 조회가 끝나고 황제가 백관에게 술을 내렸는데도 혼란이 발생하지 않자 유방은 매우 기뻐하며 숙손통에게 황금 500근을 하사했다.

“짐이 오늘에야 비로소 황제로서의 존귀함을 느꼈도다.”

이처럼 숙손통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임기응변으로 유방의 아들인 한나라 혜제 때까지 총애를 받으며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다. 어린 혜제는 궁전을 나서 교외에 있는 별궁을 돌아다니며 유희를 즐기곤 했다. 이런 행동은 당시 황제의 위엄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숙손통은 황제가 신나게 놀 수도 있고 명분에도 어긋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이렇게 코치했다.

“옛날 종묘에는 봄에 신선한 과일을 바치는 제사 의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바로 앵두가 제철이오니 폐하께서 별궁을 순회하실 때 앵두를 따서 종묘에 올리십시오.”

혜제는 기쁘게 숙손통의 건의를 받아들였고, 이 제도는 후대까지 이어졌다.

어찌 보면 숙손통은 기회주의자일 뿐이지, 사악한 간신은 아니다. 사마천 역시『사기』에서 숙손통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다.

“숙손통은 세상에 드물게 시무를 가늠할 줄 알았다. 예를 제정하여 진퇴(進退)할 줄 알았고 시기에 따라 변화하니 마침내 한유(漢儒)의 모범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간신 욕하면서 간신 부러워해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인물을 중용하면 간신들이 꼬이게 마련이고 충언을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입으로는 간신을 비판하고 욕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간신들을 부러워하며 함께하려 하기 때문이다.

중국 한나라 성제 때 장방이라는 권신이 있었다. 그는 황제의 사촌이었고, 그의 아내는 황후 허씨의 동생이었다. 황제와 가까웠었던 만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고 황제의 총애를 믿고 법을 어기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누군가 장방의 비행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대신들이 우르르 장방을 찾아가 아부했다.

“누구보다 공명정대하신 대인을 고발한 소인배가 있다기에 우리는 모두 분개했습니다. 혹시 대인이 상처를 받으셨을까 봐 위로의 말씀을 전하려 찾아뵈었습니다.”

장방은 웃으며 대신들에게 관대함을 보였다. 이에 대신들은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아무도 장방을 고발하지 못했다. 장방의 악행이 더욱 심해졌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 보다 못해 자제를 호소했다.

“폐하께서 대인을 사랑하시기에 대신들이 아첨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형세가 바뀌어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릴 테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장방은 아내의 쓴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고 흘릴 뿐이었다. 그는 공을 세운 것도 없이 오히려 황제를 유희와 환락에 빠뜨리는 데 열성이었지만 대신들은 그를 충신이라 칭송하기만 했다.

장방의 위세는 갈수록 커져 드디어 황태후 일가까지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됐다. 황태후는 성제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장방을 내쫓으라고 다그쳤다. 황제는 태후의 말을 어길 수 없어 할 수 없이 장방을 변방의 말단 관리로 내보냈다. 장방이 권력을 잃자 대신들은 곧 태도를 바꿔 장방의 악행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장방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자 성제가 냉소를 띠며 말했다.

“어찌 하루아침에 그토록 태도가 돌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 그렇게 장방을 칭찬하고 상을 주라 말하더니, 어떻게 하루 만에 그를 욕하며 벌하라 할 수 있는가?”

황제의 말에 대신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누군가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총명하신 폐하께서 장방을 총애하시기에 저희는 그저 의심 없이 그를 충신이라 여겼고, 폐하께서 그를 내쫓으셨기에 저희는 그저 의심 없이 그가 간신이려니 한 것입니다. 저희는 그저 폐하의 결정을 따르고자 했을 따름이옵니다.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참으로 기가 막힌 대답이지만, 이만큼 세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말도 없을 것이다.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는 기준이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사람들이 적으로 여기면 간신이 아니라도 간신이 되고, 사람들이 친구로 여기면 간신이라도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악한 간신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교활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여기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권력자가 더욱 교활해야 한다. 교활함으로 교활함을 누르는 것이다.

군주는 교활함으로 간신의 교활함 눌러야

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의 아들인 제 위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왕다운 위엄이 없어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국사를 돌보지는 않고 주지육림에 빠져 흥청망청 즐기기만 했다. 이웃 나라들은 제나라를 업신여겨 끊임없이 침략했고, 제나라 대신들은 왕을 만만히 보고 거리낌 없이 뇌물을 받고 국법을 어기기까지 했다. 얼마 되지 않는 충신들이 위왕에게 간언했지만 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3년 뒤 순우곤이 진언을 했다.

“왕궁에 큰 새가 있는데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아 사람들이 모두 근심합니다. 왕께서는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위왕은 비로소 자세를 고쳐 앉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새는 쉬이 날지 않지만 한번 날면 하늘 끝까지 솟구칠 것이요, 쉬이 울지 않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제 위왕은 곧바로 전국의 현령 72명을 도성으로 불러들였다. 지방관들이 다 모이자 왕은 즉묵현의 대부에게 말했다.

“내가 비밀리에 그대가 다스리는 현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백성들의 삶은 풍족했고 관리들은 정사에 힘써 모든 것이 편안했소. 그런데도 항상 그대에 대한 험담만 들려오는 것을 보면 그대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은 모양이오.”

위왕은 즉묵현 대부를 치하하며 그 자리에서 1만 호를 상으로 내렸다. 이어 위왕은 엄중한 목소리로 아성의 대부를 불렀다.

“내가 아성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논밭은 잡초가 우거지고 백성들의 삶은 곤궁했으며 적국에게 많은 땅을 빼앗기기까지 했더군. 그런데도 날마다 그대에 대한 좋은 말만 들려왔으니 필시 그대가 뇌물을 써서 나를 우롱했음이라.”

위왕은 곧바로 명을 내려 아성 대부를 처형하고, 그에 대해 좋은 말만 했던 사람들도 솥에 넣어 삶아 죽였다. 아울러 국법을 어기고 백성을 해친 관리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열거하고는 엄한 벌을 내렸다.

그야말로 한번 날아 하늘 끝에 닿고 한번 울어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향락에 빠지고 우매한 척한 것은 제 위왕의 계략이었다. 만년에 재상 관중이 죽고 간신들을 중용했다 굶어 죽는 신세가 된 아버지를 보고, 힘을 키울 때까지 어리석음을 가장한 것이었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감춰 간사한 무리들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까지 기다린 뒤 일거에 제거한 것이다.

이후 그는 평민이었던 추기를 재상으로 중용하고 손빈을 군사, 전기를 장군으로 기용해 대를 이은 패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또 각국의 학자를 초빙해 학문을 논하고 인재를 선발해 크게 씀으로써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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