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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5) 역사에서 얻은 지혜, 고전에서 얻은 철학 

 


▎희귀 식물들이 어우러진 게티 센터 선인장 가든과 LA 도시 파노라마.
파란 사파이어 빛을 띤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하늘을 바라보며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A) 근교의 프리웨이를 달린다.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말리부 쪽으로 짙푸른 태평양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높은 언덕 위에 멋지고 웅장한 건축물이 나타난다. 석유로 재벌이 된 미국의 J. 폴 게티(Jean Paul Getty)가 지은 미술관, 즉 게티 센터(Getty Center)다. 오래전 이곳을 지나다가 현지인에게 “저 건물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지난 1월 게티 센터를 더욱 깊이 있게 관람하고자 LA를 다시 찾았다. 오전에는 게티 빌라(Getty Villa), 오후에는 게티 빌라에서 약 20분쯤 떨어진 게티 센터의 문화 공간에서 하루 종일 고대 유물과 근현대 예술 작품에 흠뻑 빠져들었다.

사업가이자 수집광이 세운 게티 센터


▎500개가 넘는 식물로 이루어진 센트럴 가든.
게티는 미국의 사업가이자 열렬한 미술품 수집가였다. 석유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게티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매료되었고 일생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며 고고학 유적지를 찾았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가장 먼저 방문했을 때부터 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오래전에 죽은 문명들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건축 잔해들을 보았습니다.”

게티는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안가에 자리한 그의 빌라를 고대 로마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이탈리아 나폴리만 근처에 있던 도시로, 베수비오산 대분화로 서기 79년 폼페이와 함께 매몰됨)에 있었던 ‘빌라 데이 파피리(Villa dei Papiri: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장인이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화려한 건축물)’로 재현했다. 게티 빌라 입구에 있는 높은 벽에는 “나의 모든 예술 작품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나에게 다가옵니다. 예술 작품들은 그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상징이며, 창작가의 희망, 꿈, 좌절의 거울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게티 빌라를 돌아보면 마치 고대 로마에 와 있는 듯하다. 외부에 있는 야외극장, 허브 정원, 아름다운 분수정원을 산책하고, 내부 박물관에서 헤라클레스 사원과 고대 유물들을 돌아보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에트루리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야외에서 산책을 하다가 한 무리의 개구쟁이 초등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박물관을 관람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역사에 관한 지혜를 얻어 가는 모습을 보며 “예술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간 노력의 결과물 중 몇 안 되는, 실존하면서 영속적인 것”이라며 모든 문화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 게티의 말이 떠올랐다. 사업가이자 수집가인 게티는 그렇게 소중한 역사의 학습장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게티 빌라 입구에 적힌 문구. “예술작품은 창작한 작가의 상징이며, 창작가의 희망, 꿈, 좌절의 거울이다.” - 게티
고대 유물에 대한 잔상을 간직하고,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설계한 웅장한 분위기의 건축과 문화 공간인 게티센터로 이동했다. 자동차를 세워놓고 언덕 위 센터 건물까지 트램을 타고 올라갔다. 건축물 밖 넓은 뜰을 거닐며 마음의 여백을 느껴본다. 멀리 LA 시가지와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답고 탁 트인 전망, 그리고 로버트 어윈(Robert Irwin)이 설계한 센트럴 가든(Central Garden)은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멋지게 설계된 건물 안 전시실들은 유럽의 미술작품, 조각, 장식 예술품, 사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1조원의 방’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시실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붓꽃)’와 클로드 모네의 ‘아침햇살 받은 루앙 대성당(The Portal of Rouen Cathedral in Morning Light)’ 등을 만날 수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괭이를 가진 남자(The Man with the Hoe)’, ‘양치기 소녀와 양 떼(Shepherdess with her flock)’ 등 인류 예술사에 빛나는 걸작들이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만든다.

역사와 문화가 리더를 만든다


▎산책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잔디 정원.
필자는 58개국에 83개 자회사를 둔 글로벌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면서 매우 의미 있고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매년 한 번씩 각 사업국을 돌며 열었던 세계 사장단 회의가 기억에 남는다. 주최국 선정 절차가 재미있다. 다음 해에 행사를 주관할 나라는 비밀에 부쳤다가 행사 마지막 날 턱시도를 입고 진행되는 만찬 시간에 마치 올림픽 주최국을 발표하듯 극적으로 발표한다. 회의를 여는 주최국 자회사는 1년간 그들 나라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부분을 준비해서 1주일간 소개한다.

25년 동안 전 세계에서 열린 사장단 행사를 경험하면서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나라가 그들이 자랑하고 싶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박물관과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등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 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 런던의 대영제국 자연사박물관과 전 대영제국 해군사관학교,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와 노르웨이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선진국 정치·경제계 리더들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분야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며 다양한 역사의 ‘공과 과’를 접하고 학습하면서 훌륭한 자질과 품격을 갖추며 성장한다.

지난 2003년 한국이 주최국이 되어서 약 60개 나라에서 CEO와 글로벌 경영진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지금의 멋진 국립중앙박물관도, 리움 미술관이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도 없었다. 고심하던 끝에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호암미술관을 찾아 한국의 역사적 미술품을 보여주며 국제적인 위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많이 등록했지만 당시에는 호암미술관이 그나마 국보급 미술품이나 도자기들을 전 세계에서 온 경영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 훌륭한 예술품을 평생 수집한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께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야외 전시 작품들이 있는 게티 센터 입구 전경.
잃어버릴 뻔했던 보물 같은 문화재를 평생 수집한 간송 전형필 선생에게도 전시된 국보급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새기곤 한다. 지금은 G20 선진 경제 국가의 일원이 된 우리나라에 훌륭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이 생겼지만 소장품들의 내용이 보완되어 역사와 문화에 관한 훌륭한 학습 현장이 되길 기대한다.

오석원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심경(心經)』 수업에서 “리더는 역사에서 지혜를 얻고, 고전에서 철학을 습득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리더십이 잘 발휘되지 않고 사회가 혼란한 것을 정확히 지적한 내용이다. 한국을 이끌 미래 리더들이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교육 과정에 역사와 철학 교육이 깊이 있게 실현되어야 우리나라를 선진 대국으로 도약시킬 지혜와 철학을 갖춘 큰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다.

게티는 소중한 역사를 학습할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유물을 보며 “한 개인에게 영감을 주고, 참되고 영원한 미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을 수집하는 것보다 더 큰 희열을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게티와 호암, 간송과 같은 수집가에 의해 이러한 노력은 채워진다. 리더는 역사에서 지혜를 얻고, 수집가는 그 역사를 보전한다.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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