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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체코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 

신이 보낸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고향을 찾아서 

드보르자크처럼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곡들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대곡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프라하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 넬라호제베스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 꿈을 엿볼 수 있다.

▎드보르자크 동상과 생가
체코를 대표하는 대음악가 드보르자크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 중에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영어권에서는 ‘Going home, going home, I am going home’으로 노래한다.

애수를 띤 듯하면서도 낭만적이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이 노래의 멜로디는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제2악장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신세계’는 미국을 말한다.

드보르자크는 1891년 9월에 미국 뉴욕음악원 학장으로 초빙 받아 대서양을 건너기 전에 이미 유럽에서 확고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즉, 외국으로부터 연주 초청은 물론이고 1889년 12월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친히 수여하는 훈장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왕립 체코 과학 문학 및 예술 아카데미의 정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891년 미국으로 떠나던 해에는 프라하의 카렐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제국의 어떤 음악가도 그런 명예를 누려본 적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도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3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창작에 전념, 왕성하게 활동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특히 서정미가 넘치는 오페라[루살카]를 초연한 1901년은 프라하음악원 명예학장도 맡았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종신 상원의원으로도 추대되는 등 생애 최고의 해가 되었다.

프라하에서 그는 평소에 숲과 관목, 꽃으로 단장된 카렐 광장에서 아침 일찍 조용히 산책하며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는데, 1904년 4월 18일 갑자기 쓰러진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5월 1일 63세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러니까 그의 조국이 191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명으로 독립하기 14년 전이었다. 그는 모든 체코 국민의 애도 속에 블타바강이 내려다보이는 비셰흐라드 언덕 위에 조성된 국가유공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곳은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는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체코 출신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체코 국민주의 음악의 선구자 스메타나가 못다 이룬 체코 음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모든 체코 국민에게 무한한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드보르자크는 체코 출신의 국제적인 대음악가였지만 본래 ‘금수저’ 출신은 아니었다. 그는 1841년 프라하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작은 여관과 정육점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프라하에는 중앙역 외에도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기차역이 있다. 프라하 근교 북쪽에 있는 넬라호제베스에 가려고 마시코보 나드라지(Masarykovo nádraží) 역에서 시티 엘레판트(City Elefant)라고 하는 기차를 탔다. 이 기차는 프라하 북부의 블타바강변의 작은 도시와 마을들을 연결하는 완행열차다. 기차는 구불구불한 블타바강의 흐름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강을 따라 펼쳐지는 보헤미아의 들판과 숲을 보니 마치 드보르자크의 경쾌하고 달콤한 슬라브 춤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블타바강 변의 작은 마을 넬라호제베스


▎드보르자크 생가와 왼쪽에 보이는 롭코비츠 성
프라하를 떠난 지 약 50분쯤 후에 넬라호제베스 역에 도착했다. 역 주변을 둘러보는데 멀리 언덕 위에 세워진 품위 있는 16세기의 성채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우아한 이 성채는 보헤미아의 유력 귀족 가문인 롭코비츠 가문이 1623년에 구입한 이래로 롭코비츠 성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넬라호제베스 역은 워낙 작아서 역무원이라곤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전체 인구가 1500명도 되지 않는 마을이라서 인적이 아주 드물다.

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드보르자크 생가는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집 앞에서는 롭코비츠 성이 보이는데, 드보르자크의 외할아버지는 롭코비츠 성에서 일하던 집사였다. 드보르자크는 1841년 9월 8일에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민속악기 연주 실력이 뛰어났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드보르자크에게 풍부한 음악적 감성을 물려주었다. 그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압제가 매우 심했을 때였는데도 넬라호제베스와 같은 보헤미아 시골 마을에서는 활기찬 축제가 많았으며 사람들의 태도는 매우 낙천적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던 드보르자크는 5살 때 여인숙 손님들에게 바이올린으로 춤곡을 연주해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곳 시골 학교 선생에게 바이올린을 제대로 배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함께 결혼식이나 축제에서 함께 연주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받을 수 있던 음악 교육은 이것이 전부였다. 왜냐면 11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 밑에서 정육점 일을 본격적으로 도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드보르자크가 12살이 되자 아버지는 가업을 물려줄 생각으로 여관과 정육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독일어를 습득하도록 하기 위해 그를 외삼촌이 사는 가까운 소도시 즐로니쩨에 보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 진로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은인을 만나게 된다. 이 은인은 다름 아닌 그의 독일어 선생 안토닌 리만이었는데 이 선생은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다. 리만 선생은 드보르자크에게 음악이론과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법도 가르치면서, 그의 비상한 재능을 알아보고는 가업을 잇게 하려는 그의 부모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아들이 음악가의 길을 걷도록 했고, 또 그의 외삼촌에게는 조카를 경제적으로 후원하라고 설득했다. 이리하여 소년 드보르자크는 리만의 덕택으로 16살 때인 1857년에 청운의 꿈을 안고 더 넓은 세계인 수도 프라하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프라하 생활은 괴로움과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이를 극복하고 성공 가도를 걷게 되지만.

소년 드보르자크의 꿈을 완행열차에 싣고


▎드보르자크 생가 안 그가 살던 시대의 모습으로 재현해놓은 방. 드보르자크 생가.
드보르자크 생가는 1932년에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그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 자필 악보, 편지, 당시 사진 전보, 개인적으로 소유하던 책과 물건 등을 전시하고 있다. 생가 바로 옆 넓은 녹지대에는 드보르자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롭코비츠 성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몸은 약간 기울인 채로 지휘봉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그의 얼굴을 보니 아주 고집 센 시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는 보헤미아의 다른 농부들처럼 땅딸막하고 완고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생의 소박함을 즐길 줄 알았다.

드보르자크 생가를 뒤로하고 롭코비츠 성에 올라서서 넬라호제베스의 전경을 내려다보는데 프라하로 향하는 완행열차가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드보르자크가 취미로 장난감 기차를 수집했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넬라호제베스에 철도가 놓인 것은 그가 9살 때였는데 그때 기차에 매혹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기차에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눈을 영원히 감을 때까지 넬라호제베스에서 프라하로 달리던 기차를 회상하며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또 그가 살아왔던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았으리라.

드보르자크는 신이 그에게 준 삶을 살아가면서 좌절과 실패를 맛보았지만 성공의 절정에서는 겸손했으며 늘 순리를 따르며 소박함을 유지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영위했는데 그 기쁨은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블타바강 변에 스며드는 5월의 따스한 봄빛처럼.


▎드보르자크 동상.
사실 드보르자크처럼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곡들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명작인 [신세계 교향곡], [첼로협주곡], [슬라브 춤곡], [유모레스크], [어머니가 가르치신 노래] 등 대곡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깊게 스며들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독일 지휘자 한스 뷜로는 드보르자크를 브람스에 버금가는 신이 보낸 작곡가라고 칭송했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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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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