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남의 TRAVEL & CULTURE]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헝가리 초대 왕을 기념하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 

헝가리 폐슈트 지역 심장부에 세워진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헝가리를 기독교화한 초대 왕 이슈트반에게 바친 것이다.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의 이 성전은 헝가리 국회의사당과 함께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건축물로 헝가리 사람들에게는 매우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성전이다.

▎부더에서 내려다본 도나우강 건너편 페슈트 지역. 왼쪽의 국회의사당과 오른쪽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랜드마크를 이룬다. / 사진:정태남
헝가리 건국 1000주년 기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예로부터 ‘도나우강의 여왕’ 또는 ‘도나우강의 진주’ 등으로 불린다. 헝가리 사람들은 이 도시를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부다페스트는 원래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도나우강 서쪽의 부더(Buda)와 도나우강 동쪽 페슈트(Pest), 부더 북쪽의 오부더(Obuda)가 1873년에 통합되어 이루어진 도시다. 부더 지역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페슈트 지역은 온통 평지다. 한편 오부더는 로마인들이 세웠던 도시 아퀸쿰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페슈트 지역에서는 헝가리 국회의사당과 이슈트반 대성당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치의 중심인 헝가리 국회의사당과 종교의 중심인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이자 규모가 가장 큰 건축물이다. 높이는 둘 다 똑같이 96m인데, 96이란 숫자는 헝가리 역사가 시작되는 896년과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해인 1896년에 맞춘 것이다.

헝가리 민족은 유럽에서 아주 이질적인 민족이다.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옛날 그들은 아시아와 유럽 동쪽에 걸쳐 광활한 평원에서 흩어져 살던 터키계 유목 민족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 기원후 9세기 후반에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지도자 아르파드를 따라 도나우강이 흐르는 카르파티아 분지에 다다랐는데 그해가 바로 896년이다. 유목 생활에도 적합하고 방어에도 유리한 지형을 갖춘 이 지역에 정착한 이들은 10세기에 들어서 힘을 키워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한때 유럽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하지만 955년 남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전투에서 엄청난 패배를 맛보고는 힘을 잃었다. 그 후 그들은 서쪽의 신성로마제국과 동쪽의 비잔티움제국 세력 사이에 끼어 있다가 서방의 기독교를 수용하여 유럽의 일원이 되었다. 즉, 아르파드의 후손인 버이크(Vajk, 997~1038)가 서기 1000년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헝가리 왕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그의 세례명이 바로 이슈트반(Istvan)다. 나중에 그는 ‘성 이슈트반’으로 시성되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 정면. / 사진:정태남
그러니까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헝가리를 기독교화한 초대왕이자 성자인 그에게 바친 것이다. 또 이 대성당은 헝가리 국회의사당과 함께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으니 헝가리 사람들에게는 매우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성전이다. 한편 건국 1000년을 기념하던 당시 헝가리는 유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거대하고 막강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최대 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다. 헝가리어로 정식 명칭은 센트 이슈트반 바질리카(Szent Istvan-bazilika)이고 영어식 표기는 St. Stephen’s Basilca, 즉 ‘성 이슈트반 바질리카’인데 현지에서는 간단히 ‘바질리카’라고도 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대성당


▎헝가리 화가 벤추르의 성화. 이슈트반이 성모 마리아에게 헝가리 왕관을 바치고 있다. / 사진:정태남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정면에서 보면 양쪽에 높은 종탑이 서 있고 그 사이로 돔이 높이 솟아 있다. 돔은 엘리베이터나 364개 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데, 온통 평지인 페슈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아주 좋은 전망대인 셈이다. 이 대성당이 1851년에 착공될 당시 이 지역은 허허벌판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건물은 도시계획에 따라 도로망이 먼저 형성되고 난 다음 그 틀 안에서 세워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대성당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즉, 대성당이 먼저 세워지고 난 다음 이를 기준으로 주변 도로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서양의 도시계획 역사에서 이런 예는 아주 드물다.

성당 정면에 써 있는 금빛의 커다란 라틴어 문구 ‘에고 숨비아 베리타스 에트 비타(EGO SUM VIA VERITAS ET VITA)’가 오후의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한다. 이 문구는 다름 아닌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14장 6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다. 그 아래 입구 부분을 보면 로마의 개선문과 그리스 신전을 융합한 형태다. 이를테면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가지 색상의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 공간에 오르간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대성당의 실내 공간 구조를 살펴보면 그리스 십자가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그 중심에 지름 22m의 돔이 올려져 있는 형태데 이런 방식은 르네상스 건축에서 쓰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성당의 내부 구조는 네오르네상스 양식이다.


▎대성당 정면에 보이는 금빛의 문구 EGO SUM VIA VERITAS ET VITA.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다. / 사진:정태남
화려함과 거룩함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헝가리 화가 벤추르(G. Benczur, 1844~1920)가 그린 성화가 눈에 띈다. 이 그림은 성 이슈트반이 천사들이 보는 앞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헝가리 왕관을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성 이슈트반이 헝가리를 기독교화했다는 의미이자 유럽에서는 완전히 이질적인 헝가리 민족이 유럽의 일원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중앙 제단 바로 뒤에는 성 이슈트반의 조각상이 초점을 이룬다. 중앙제단 왼쪽 공간에 있는 황금 성골함 안에는 성 이슈트반의 미라가 된 오른손이 보존되어 있다. 그의 유골을 발굴했을 때 오른손만 미라 상태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오른손이 항상 십자가를 잡고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성당 건축에 얽힌 ‘불편한 진실’


▎페슈트 지역 심장부를 뚫고 솟아오른 듯한 성 이슈트반 대성당. / 사진:정태남
대성당 안은 높은 돔의 창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밝혀져 있다. 고개를 들어 돔을 올려다보는데 돔 한가운데에는 인간을 창조하고 천지를 다스리는 신이 인간 세상을 심판하려고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성당 정면의 라틴어 구절 중 ‘베리타스(Veritas)’가 자꾸만 머리에 떠오른다. 베리타스는 ‘진리’, ‘진실’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니 대성당 건축에 얽힌 ‘불편한 진실’이 문득 떠오른다. 사실 이 대성당을 짓는 데 시간도 많이 걸렸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건축가 힐트(J. Hild)가 대성당을 1856년에 설계하여 공사를 반 이상 진행하다가 1868년에 그만 사망했다. 그 바람에 유명한 헝가리 건축가 미클로슈 이블(M. Ybl)이 공사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진행된 공사 현장을 꼼꼼히 점검하다가 벽에 금이 가는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그는 공사장 주변에 안전 펜스를 치고 사태를 지켜봤다. 8일째 되던 날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 대낮에 돔이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그 당시 유일한 목격자였던 어느 빵 제조 견습생이 신문에 밝힌 바에 따르면, 돔의 꼭대기로부터 먼저 돌이 하나둘 서서히 굴러 떨어지더니, 돔이 조용하게 서서히 주저앉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무너져 내리면서 굉음을 토했다고 한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사고가 났을까? 당시 질이 낮은 건축자재를 쓴 것과 돔을 지탱하는 부분의 공사를 잘못한 것이 화근으로 추정된다. 이를테면 한마디로 부실공사였던 셈이다. 참혹한 현장을 둘러본 건축가 이블은 대성당 설계를 아예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공사를 진행 중이던 1891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를 이어 세 번째 건축가인 크라우스(J. Krausz)가 공사를 맡아 완공한 것은 1905년이고 이듬해에 축성미사가 올려졌다. 그러니까 ‘희망 완공연도’이던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는 해를 10년 넘긴 다음이었던 것이다.


▎지름 22m의 돔 내부. 돔 / 사진:정태남의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한편 1906년 축성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빈에서 왔는데, 당시 떠돌던 소문에 따르면 황제는 축성미사 중에 혹시 돔이 또 무너져 내릴까 봐 불안한 눈초리로 자꾸 고개를 들어 돔을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색상의 화려한 대리석으로 장식된 대성당 내부 / 사진:정태남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 외에 음악· 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에서 지낸 필자는 이탈리아의 고건축복원전문 건축가들과 협력하면서 역사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심취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대기업·대학·미술관·문화원·방송 등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 건축, 미술, 클래식 음악 등에 대해 강연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 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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