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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성 티몬 의장이 만난 스타트업]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 

1300만 명 ‘리셀 문화’ 주도하는 플랫폼 

이커머스 시장에서 중고 거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모바일에선 벌써 중고 시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가장 오래된 모바일 중고 거래 앱 ‘번개장터’는 새로운 투자자·CEO 영입으로 중고 시장에 더 공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갖추었다.

▎신현성 티몬 의장과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는 10년 가까이 티몬에서 유통·이커머스 사업을 함께 이끌왔다.
올해 말까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는 130조원을 넘어설 기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연간 거래액만 114조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쇼핑이 폭주하면서 국내 온라인 쇼핑 3대 이커머스 시장인 쿠팡·위메프·티몬은 몸집을 한껏 키웠다. 지난 5월 네이버도 유료 회원제 서비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를 들고 피 튀기는 이커머스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태세다. 지마켓, 옥션, 11번가, 위메프 등도 멤버십 서비스를 강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중고’다. 대다수 이커머스 시장은 ‘신품’만 얘기한다.

“우리는 흔히 중고 하면 ‘낡고, 헐고, 버리기 직전’의 물품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고 시장엔 신품과 동급 수준의 물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른 물품도 소비하고픈 욕구가 강해진 거죠. 지금 전체 이커머스 시장에서 중고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7~8% 수준이지만, 몇 년 후면 절반을 넘어설지도 모릅니다.” -신현성 티몬 의장

지난달 서초구 서초동 번개장터 본사에서 만난 신현성(35) 티몬 의장이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우린 모든 분야에서 넘쳐나는 생산과 소비, 이른바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평생 소유’하겠다는 의지보다 공유와 처분을 통해 새로운 걸 소비하겠다는 실용주의 세대가 늘면서 ‘중고 경제’는 급성장하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 중고 경제 시장 규모를 20조원대로 추산한다. 옆에 있던 이재후(41) 번개장터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과거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던 시장이 중고 장터였죠. 하지만 이젠 거래되는 물품이 한정판 상품, 절판된 책, 연예인 굿즈(관련 상품), 수공예품, 빈티지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실제 번개장터 중고 거래 카테고리에는 아이돌 팬이 거래할 수 있는 ‘스타굿즈’ 코너, 프라모델, 애니메이션 피겨 등 ‘취미·키덜트’와 ‘희귀·수집품’ 코너 등이 있죠. 중고 거래가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소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

번개장터는 수년간 소비 트렌트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 개인 소장품뿐만 아니라 중고차, 신용대출, 아울렛, 재능 거래 등으로 중고 시장 영역을 넓혀온 이유다. 중고 거래를 ‘알뜰 소비’가 아니라 ‘트렌디한 소비’로 인식하는 소비자에 주목한 것이다. 실제 생활 필수재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더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가 번개장터에 몰렸다. 10~20대 사용자 비율을 보면 번개장터는 38%나 될 정도로 경쟁사인 당근마켓(18%), 중고나라(27%)를 압도한다. 구매력이 한껏 커진 1020세대 덕에 번개장터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다. 마이너스 성장이 당연시되는 이커머스 시장과 달리 3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도 기록했다.

이 대표도 번개장터의 성장세에 올라탔다. 지난 1월엔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이 대표를 영입한 것. 사실 그는 신 의장과 꽤 오랜 기간 함께 일해온 유통·이커머스 전문가로 티몬에서 사업전략실장, 스토어그룹장, 대표 등을 역임했다. 티몬 합류 전엔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전략컨설턴트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재원이다.

지난 3월 56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이 대표 취임 후 첫 성과다. 이번 투자엔 BRV캐피탈매니지먼트, 베이스인베스트먼트-에스투엘파트너스, 미래에셋벤처투자, 미래에셋캐피탈,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가 참여했다. 국내 이름 있는 벤처캐피털(VC)은 거의 다 참여했다고 보면 된다. 신 의장과 이 대표의 얘길 좀 더 들어봤다.


▎번개장터는 원스톱으로 중고 거래할 수 있는 앱을 완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상품 검색, 물품 등록, 거래 더 나아가 배송까지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새로운 이커머스 시장이 열린 건가.

신현성 티몬 의장(이하 신 의장): 이제 굳이 이커머스 시장이라고 딱 잘라 말할 필요가 있나 싶다. 이커머스 시장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쇼핑하는 일은 일상사다. 굳이 이커머스 시장이라고 구분한다면 앞으로 더 커질 것 같긴 하다. 중고 시장은 기존 이커머스 시장에 상당한 파괴력을 지닐 정도로 급성장할 것 같다.

중고 거래는 불편하지 않나.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이하 이 대표): 중고 거래는 번거롭고 귀찮은 게 사실이다. 과거 모 포털 사이트 카페에서 가방이나 옷, 노트북 등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판다는 글과 함께 첨부파일로 올렸다. 상대방과 연락하려면 당연히 그 글에 내 연락처를 공개해야 했고, 거래가 끝날 때까지 사기 걱정을 해야 했다. 번개장터에선 물건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기까지 5분이면 충분하다. 에스크로 기반의 안심간편결제 서비스인 번개페이, 안전송금 서비스인 번개송금 등도 안전한 거래를 담보한다. 중고 거래 업체 최초로 최대 거래 피해액 100만원까지 보장해주는 번개보험도 있다.

중고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신 의장: 이커머스 사업을 10년간 해왔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오는 트렌드는 누구나 이해하는데, 중고 시장엔 딱히 주목하지 않더라. 하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소유’보다 ‘사용’에 방점을 둔 욕구가 훨씬 더 커진 것은 분명하다. 실제 중고 시장에 나오는 물품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가격은 신품보다 훨씬 저렴해지고 있다.

트렌드 변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신 의장: 일종의 중고 물품을 둘러싼 시각 변화다. 과거엔 ‘초라해 보이는 것’, ‘낡은 것’으로 치부되던 중고품이 ‘경험 소유’의 목적물이 됐다. 중고 거래에서 느끼는 재미도 달라졌다. ‘새 제품에 가까운 물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데서 나아가 이제는 ‘숨겨진, 희귀한 제품’을 찾는 데서 재미와 희열을 느낀다. 여기서 책정한 가격이 적절한지, 제품은 멀쩡한지, 믿고 거래해도 되는지 등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고 거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신뢰 구축이 최우선인 것 같다.

이 대표: 그렇다. 번개장터는 수년간 ‘사기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사기꾼 잡는 일에 몰두해왔다. 사기 전력이 있는 사용자의 정보(연락처, 계좌번호 등)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자동 차단하는 시스템도 있다. 실시간 채팅 기능인 ‘번개톡’의 경우 지역 내 실명 인증을 거치도록 해 사고가 발생하면 추적할 수 있다. 사실 단 한 번이라도 중고 시장에서 사기를 당하면 중고 거래를 자체를 꺼리게 된다. 물론 번개장터에서도 사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 최저 수준(전체 거래의 0.1%대)이다.

번개장터만의 전략은 뭔가.

이 대표: 크게 두 가지 축이다. 우선 중고 거래 ‘선입견’을 바꾸는 것이다. 신 의장 말대로 중고 시장이 ‘숨겨진, 희귀한 제품’을 찾는 보물창고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사실 중고는 어느 시장에나 존재한다. 집, 자동차, 미술품 등이 그 예다. 어떤 방식으로든 가치를 지닌 물품을 거래하려는 욕구는 늘 존재해왔고, 이를 보증하는 각종 시스템도 같이 발달해왔다. 번개장터는 그 시스템이 되려는 거다. 슈퍼 셀러를 육성하는 것도 전략 중 하나다. 우린 영향력 있는 판매자를 육성하거나 독자적이면서 가치 있는 컬렉션을 보유한 판매자와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중고 거래의 인스타그램 정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의 영향력도 중고 시장에 녹이고자 한다.

이 대표가 번개장터에 합류할 때 기여했다는데.

신 의장: 최대주주한테 소개해줬을 뿐이다.(웃음) 물론 C-Level(경영진)급 인재를 소개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대표가 중고 거래에 관심을 가진 건 티몬에서 일할 때부터니 벌써 10년이나 됐다. 중고시장에 대한 열망을 늘 가지고 있었고, 이 대표도 프랙시스캐피탈 경영진과 베인앤드컴퍼니에서 함께 일했던 경험까지 있어 소개하기 편했다. 번개장터가 억 단위에서 조 단위로 성장하는 스케일업을 이루려면 이커머스 기업을 이끌어온 경험이 필요했는데 마침 이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줬다.

티몬에서 일한 경험이 주효한 셈이다.

이 대표: 신 의장한테 많이 배웠다. 특히 시장과 사람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 신 의장은 시장과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고, 작은 부분이라도 고민했다. 특히 고객이 원하는 바를 따질 땐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봤다. 번개장터에서 고객관리 인력을 4배나 늘린 이유다. 중고 거래에서는 커뮤니티 파워가 상당한데 이를 공식 ‘룰’로 끌어올려야 고객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이를 위해 하버드대 MBA 출신으로 유튜브 한국 유저 마케팅 총괄 최재화 CMO(최고마케팅책임자), 카카오에서 부사장 및 SNS 사업본부장을 역임한 정용준 CPO(최고제품책임자)도 영입했다. 다른 분야 인력도 계속해서 충원 중이다.

주주 입장에서 본 이 대표는 어떤가.

신 의장: 주변에서 인재를 자꾸 데려간다.(웃음) 농담이다. 그만큼 이 대표는 사람 욕심이 많고, 24시간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티몬에서도 단순히 아이디어에 그칠 사안들을 실현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언제나 우리가 제일 잘할 것 같은 일은 많지만,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대표는 선택과 집중에 능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할 사람을 모으는 에너지가 충만한 경영자다.

최근 밀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뭔가.

이 대표: 원스톱으로 중고 거래할 수 있는 앱을 완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대로 ‘번개톡’, 번개페이’ 등 기존 편의 서비스를 더 정교화하고 있다. 상품 검색, 물품 등록, 거래 더 나아가 배송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수익 창출도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광고, 에스크로 결제, 디지털 컨시어지 서비스 등에서 수익을 내지만, 직매입 사업 등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엿보고 있다. 직매입 사업의 경우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제품, 비교적 시장가치가 확실한 제품을 번개장터가 선매입해 품질 검수 후 시장에 푸는 식이다. 이 외에도 ‘가장 매력적인 중고 상품을 가장 쉽게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든 걸 고려할 생각이다.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신뢰’와 ‘경험’을 강조했다. 소비는 수익보다 문화를 바꾸는 일이 우선이고, 이를 바탕으로 쌓은 신뢰에 편리한 이용 경험을 얹어야 사람이 모인다는 데 공감했다. 신현성 의장은 “이 대표가 두 가치를 세우려고 사람 욕심을 내는 것 같다”며 “국내 모바일 중고 장터 맏형인 번개장터의 제2 도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재후 대표는 이렇게 화답했다.

“수년간 ‘믿을 만하고, 편리한 중고 거래’를 어떻게 하면 실현할까 고민했습니다. 이커머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달려온 지도 벌써 10년이나 흘렀군요. 중고 거래를 확산하기 위해선 혁신적인 기술과 다양한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세대를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더 사람 욕심을 내는 것 같네요.”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202007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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