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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LG맨, 스타트업 엔젤로 뭉쳤다 

 

용퇴를 결정한 베테랑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LG그룹 계열사 전직 CEO들이 뭉친 ‘엔젤식스플러스’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소매를 걷어붙인 6인방의 활약에 업계 기대가 쏠린다.

▎한자리에 모인 엔젤식스플러스 멤버들. 왼쪽부터 김종립 전 지투알 사장, 신문범 전 LG전자·LG스포츠 사장, 이우종 전 LG전자 사장, 유진녕 전 LG화학 사장,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 박종석 전 LG이노텍 사장.
“퇴직자에서 창업자로 거듭났습니다. 최고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등산과 골프로 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요. 수십 년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중소기업·스타트업을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의 출사표에선 40년 현장 경영의 자신감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엔젤식스플러스(ANGEL6+)’. 박 전 부회장을 비롯해 지난해 현직에서 물러난 LG그룹 출신 최고경영자(CEO) 6명이 ‘졸업동기’ 이름표를 떼버리고 한자리에 뭉쳐 얻은 새 이름이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창업 및 보육을 위한 액셀러레이터로 나선 이들 역시 퇴직 후 제2의 창업에 뛰어든 셈이다.

돌아온 베테랑 6인은 모두 지난해 현직에서 용퇴했다. 박 전 부회장과 유진녕 LG화학 사장(CTO), 이우종 전 LG전자 사장, 박종석 전 LG이노텍 사장, 신문범 전 LG스포츠 사장(전 LG전자 인도·중국사업 총괄), 김종립 전 지투알 사장 등이 창립 멤버다.

이름만으로도 국내 제조업의 ‘어벤저스’ 격인지라 재계는 물론이고 벤처캐피털(VC), 액셀러레이터 그룹, 학계 등 각계의 기대와 관심이 크다. 올 10월로 창립 1주 년을 맞은 ANGEL6+는 지금까지 40여 곳에 이르는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했다. 지난 6월에는 아주대학교와 업무협약(MOU)을 맺어 창업동아리 지원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학 자체 역량만으로는 갖추기 어려운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 및 생생한 창업 관련 컨설팅과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아주대학교 1회 졸업생인 신 전 사장의 힘이 컸다. 산업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미리 점찍어 직접투자에도 나섰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봄마루’로, 해당 기업과 ANGEL6+ 멤버들이 모여 워크숍을 진행했고 사업 방향과 성장 가능성을 심사숙고한 끝에 투자를 결정했다.

40년 현장 경영 노하우 한데 모았다


평균 연령 64세,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내뿜는 오라(aura)는 젊음으로 상징되는 여느 액셀러레이터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하지만 나이와 세대를 넘어 40여 년간 실물경제 현장에서 쌓은 관록을 다시 한번 창업 현장에 쏟아붓겠다는 열정만큼은 현역 시절 못지않다. 특히 B2C 위주의 생활밀착형 아이템보다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테크 스타트업에서 가능성을 발굴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지속가능성보다는 투자금 회수, 즉 ‘머니게임’에 매몰돼가는 벤처캐피털 업계의 관행을 바로잡아보겠다는 의도에서다. 창립 멤버 6인의 면면은 이러한 방침의 배경을 짐작하게 해준다.

박진수 전 부회장은 옛 럭키(현 LG화학) 프로젝트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42년간 한 우물을 파온 정통 ‘화학맨’이다. 입사 초기 16년간 생산현장에서 일했고, 임원 승진 후에는 ABS수지 등 각종 화학소재의 세계 1위를 주도했다. 지난 2013년 CEO 취임 후에는 적극적인 R&D 투자와 과감한 선행시설 투자로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가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유진녕 전 사장은 1981년 LG화학 고분자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래 LG화학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연구원장으로 현역을 마친 정통 CTO(최고기술경영자)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LG화학은 디스플레이, 2차전지, 생명과학 분야 등에서 연구원 5500여 명이 일하는 세계적 R&D 캠퍼스로 성장했다. 유 전 사장은 특히 38년간 쌓아온 R&D 경력을 바탕으로 기술혁신과 조직문화를 접목한 경영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우종 전 사장은 스스로를 ‘자동차쟁이’라고 부른다. 옛 대우자동차에서 22년, LG그룹에서 18년, 총 40년을 자동차산업에 몸담아온 스페셜리스트다. 지난 2000년 말까지 대우차 차량 개발을 총괄하면서 레간자, 매그너스, 레조, 라세티 등 총 9개 차량의 플랫폼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2001년 LG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LG CNS 본부장으로서 소프트웨어 공학의 업계 접목을 활발히 시도했고, 자동차 설계 및 개발 아웃소싱 전문 업체인 V-ENS를 창설해 CEO를 맡았다. 전기차 및 전기전자 자동차 부품사업에 힘을 기울여 미국 GM의 전기차 볼트(BOLT)에 총 11종의 부품을 단독 공급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박종석 전 사장은 38년간 LG의 가전사업을 대표하는 디지털TV와 스마트폰, 전자부품 분야를 총괄했다. 입사 이후 지금까지 기초 이론과 상업화의 전 개발 사이클을 경험한 전문가로, 한국의 디지털TV가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주역 중 하나다. 2010년부터는 스마트폰 ‘G시리즈’로 혁신을 주도했고, 2016년부터는 LG이노텍 CEO로 재직하며 광학부품, 기판소재, 자동차부품 등의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박 전 사장은 특히 재임 기간 중 특허 253건을 직접 출원했고, 이 중 137건을 등록한 아이디어뱅크로 통한다.

신문범 전 사장은 재직 기간의 대부분을 글로벌 시장 개척에 바쳐온 영업·마케팅 대가다. LG그룹에서 일한 30여 년간 중동,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특히 LG전자 인도법인 부사장과 생활가전본부장 재임 기간 동안 혁혁한 공을 인정받았다. 지난 2009년에는 인도 이코노믹타임스가 선정한 ‘인도 100대 기업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0년에는 인도 전자산업회가 주는 ‘올해의 전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종립 전 사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광고인이다. 1982년 희성산업(현 HS애드)에 입사한 이래 광고 마케팅 한 길을 걸어온 전문 광고인이다. 대한항공(Excellence in Flight), 배달의 민족, SSG.com, LG시그니처 등 광고업계 및 사회에 크게 회자되는 유명 광고 캠페인을 만들어낸 김 전 사장은 차별화된 전략과 크리에이티브, 브랜드 가치 창출을 위한 멘토로 활약 중이다.

아이디어 찾고 키우는 게 평생의 일


“재미있는 조합이다. 편하게 생활하던 ‘꼰대’ 사장님들끼리 모인다고 되는 일이 있겠나?”

김 전 사장은 ANGEL6+ 결성 소식을 전한 뉴스 댓글을 들려주며 웃었다.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도 있었지만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비아냥도 많았다고 한다. 유 전 사장은 “오랜 기간 사장으로 일했던 사람들이니 ‘디테일에 약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라며 “ANGEL6+의 차별점이 바로 디테일과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멤버들이 수십 년간 해온 일이 바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 가능성을 평가하고 실제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일상이었죠. 현직에 있을 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화학과 소재, 부품 분야 엔지니어들이 주축이어서 디테일한 기술을 누구보다 깊숙이 이해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강점이죠.”

박 전 부회장은 “멤버들 가운데 빠른 경우 임원이 된 게 25년 전”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복판을 헤쳐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기술개발은 물론이고 조직문화, 경영혁신, 인재 육성이라는 조직 전반의 문제 해결에 일생을 걸어온 스페셜리스트라는 뜻이다.

ANGEL6+가 창립 이후 제조 기반 기업에 공을 들이는 것도 기존 액셀러레이터와 다른 차별점이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전해액 개발사를 만나 전기차 대중화와 사업 확대를 위한 컨설팅에 나섰고, 고분자소재 가공 전문 기업을 찾아 핵심 사업의 문제점과 성공 전략을 전수하기도 했다. 카본나노튜브 소재 전문 기업을 만나 미래 사업 전략과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략은 제조 기반 기업의 토양이 자리 잡기 힘든 벤처·스타트업계의 현실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왔다. 국내 벤처캐피털(VC) 업계가 단기간의 사업화와 빠른 투자를 통해 투자금 회수(EXIT)에만 집중하는 사이, 정작 산업 기반인 테크기업들이 외면받는 풍조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사장은 이를 마라톤에 비유했다.

“제조업은 결국 인류 역사와 함께하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플랫폼과는 다르죠. 꾸준한 기술개발 못지않게 투자 타이밍도 중요한데, 장거리 마라톤 게임을 단거리 경기처럼 급하게 밀어붙여선 안 되죠.”

이 전 사장도 수익 창출에만 치우친 VC업계의 관행에 쓴소리를 던졌다.

“초기 인큐베이팅과 엔젤펀딩을 통해 창업까지 가는 건 분명 머니게임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머니게임만 아는 사람들이 기업 평가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창업 생태계가 오염됐다고 할까요. 우리 경험이 좋은 스크린과 필터링으로 작용해 젊은 창업가들이 전혀 생각지 못하는 노하우를 전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제조 기반 스타트업·중소기업 키운다

수십 년간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도 ANGEL6+만의 경쟁력이다. 기술 경쟁력은 탄탄히 갖추었지만, 시장 개척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신생기업 입장에선 여섯 멤버가 수십 년간 쌓아온 네트워크가 가뭄을 해소할 단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전 사장은 자동차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예로 들며 ANGEL6+의 경쟁력을 설명했다.

“자동차산업 태동 이후 바로 요즘이 가장 큰 변화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전기차와 통신화, 자율주행과 공유자동차 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죠. 자동차업계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공고한 성을 깨뜨리고 있어요. 다만 이들이 글로벌 기업에 제안할 수 있는 통로가 무척 제한적입니다. 가령 미국이나 독일 선진 기업들과 국내 스타트업을 이어주는 매칭데이를 조직할 수 있을 겁니다. 가능성 있는 인재들을 자동차업계에 데뷔시키는 역할이 되겠죠.”

대학과 협업하는 산학협력도 ANGEL6+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례다. 대학별 창업동아리 주관 교수들의 부탁으로 대학생 예비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에 활발히 나선 배경이다. 신 전 사장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업가’ 양성을 목표로 아주대와 MOU를 맺었다”며 “대학이 주축이 된 창업 환경 조성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창업동아리와는 실제로 창업 아이템 2건을 선정해 인큐베이팅에 나선 상태다.

자본금을 직접 갹출해 투자한 기업 ‘봄마루’는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ANGEL6+의 사업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봄마루는 AI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콘텐트를 제작하는 게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다. 김 전 사장은 “봄마루가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인 ‘에스트리(S-Tree)’는 온라인에서 방대하게 생성되는 다양한 트렌드를 발견하고, 유튜브와 블로그 등 하루 10만여 SNS 채널을 분석할 수 있다”며 “AI와 빅데이터는 향후 제조업의 필수 툴이 될 것”이라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 제조업의 부흥과 영광을 이끌어온 베테랑들이 바라보는 한국 경제와 제조업의 미래는 어떨까. 박 전 부회장은 그 무엇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2차전지처럼 ‘시드(seed)’가 바탕이 돼야만 합니다. LG화학이 자동차 배터리 1위에 올라선 것도 25년 이상을 쏟아부은 결과예요. 화학 분야 같은 경우 10년 안에 되는 게 별로 없어요. 바이오 신약 개발은 15년 이상 걸리죠. 그런데 정부 주도 R&D의 83%가 3년 미만 단기 과제이고, 5년 이상 장기 과제는 3.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말로만 노벨상을 외칠 게 아니라 제2의 반도체와 2차전지를 위한 장기 프로젝트에 힘써야 합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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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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