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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어그테크 파워] 윤좌문 쉘파스페이스 대표 

글로벌 스마트팜, ‘빛길’ 열어준 셰르파 

막연하게 생각했던 식물과 광원(光源)의 비밀을 푼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식물이 자랄 때 필요한 광원만 제대로 쪼이면 생산량도 늘고, 맛·영양분도 풍부해진다.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박사와 두산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최적화(시스템 엔지니어링)’ 경력이 농업에서 빛을 본 셈이다.

▎윤좌문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최적화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기업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다. 퇴사 후 최적화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로 농업을 택했고, 한 줄기 빛을 봤다. 그 빛은 식물을 가장 잘 자라게 하는 힘이었다.
‘광합성’. 중학교 과학 시간에 식물이 빛에너지로 이산화탄소와 미네랄, 물(화학에너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배웠다. 빛은 식물 생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 그런데 식물의 성장단계마다 필요한 빛의 파장이 다르다는 걸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어릴 때 이유식을 먹다 커가면서 밥을 먹듯, 식물도 생장단계마다 빛의 파장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전구를 쪼여도 식물이 잘 자라지 않거나 키만 크고 열매를 못 맺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런 이유로 일종의 ‘빛의 레시피’가 필요합니다. 시설원예농가 입장에서 빛의 파장을 이해하는 건 중요한 일이죠. 필립스, 오스람, 삼성전자, LG이노텍 등도 식물생장용 광원 기기를 개발·생산할 정도로 시장이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존 인공광원을 쓰면 초기투자비가 3.3㎡당 25만원, 온실 운용비는 40%나 늘어납니다. 좋긴 한데 돈이 문제인 거죠.”

지난 11월 12일 대전 카이스트 문지캠퍼스 진리관 쉘파스페이스 연구실에서 만난 윤좌문(43)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윤 대표는 ‘식물이 가장 잘 자라는 빛’을 주는 장비 ‘쉘파라이트’를 만든 주인공이다. 가변형 광원장비 쉘파라이트는 작물별, 그 작물의 생육단계별 광원 레시피에 따라 매 순간 식물 생장에 필요한 빛을 제공하는 기기다.

해외에 먼저 이름을 알렸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0에서 혁신상을 받은 것. 이후 KB인베스트먼트,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사를 포함해 20억원규모 시리즈A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한국 정부기관은 좀 더 빨리 알아봤다. 쉘파스페이스가 창업한 지 1년 만인 2017년 중소벤처기업부 TIPS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2019년엔 산업통상자원부와 연계사업을 진행했다. 올해 농촌진흥청의 빅데이터 수집 개발 과제에도 선정됐다. 윤 대표는 ‘빛의 레시피’가 뭔지부터 설명했다.

식물 성장 돕는 ‘빛’ 찾기


▎쉘파라이트는 현재 국내 연구기관과 북미 실내재배 농가 그룹에 납품됐다. 사진은 쉘파라이트 옆에 선 윤좌문 대표.
‘빛의 레시피’가 뭔가.

한마디로 맞춤형 파장이다. 시설원예의 경우 업계에서 속된 말로 ‘장비빨’ 겨루기가 좀 있다. 일반 생활용 조명에는 청색·적색 파장이 거의 없어 밝게 켜놓아도 식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설원예에서 쓰는 LED 장비는 일반 장비가 아니다. 식물 광합성에 필요한 파장이 달라서 그렇다. 빛은 크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으로 나누는데 430~700㎚(나노미터) 구간의 가시광선이 식물 생장에 도움이 된다. 쉘파라이트는 365~780nm대 광원을 모두 커버한다. 파장별로도 식물에 미치는 영향이 미세하게 다른데 쉘파라이트 하나로 식물별·성장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다.

일반 농가에서 그 빛의 정도를 알 수 있나.

맨눈으로는 잘 모른다. 그래서 키우는 작물에 맞춰 필요 광원 레시피를 스마트폰 앱으로 입력하고 쉘파라이트를 가동하면 끝이다. 인삼을 키우다 딸기로 재배작물을 바꾸면 우리한테서 광원 레시피만 따로 사서 입력하면 되므로 작물의 품질을 높이고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다수 경쟁업체가 이미 개발한 제품이 있지만, 맞춤형·가변형은 아니다. 대부분 범용 파장을 사용하는 고정형 광원기기다. 그래도 빛에 대해 좀 아는(?) 농부는 여러 색상의 전구를 달아보기도 한다.

어떤 원리인가.

빛을 조정하는 게 관건이다. 기본적으로 TV 디스플레이와 비슷한 구조다. 백라이트에 LED를 배치하고 여기에 퀀텀닷(㎚ 크기의 초미세 반도체 입자) 기술을 활용한 광원 입자를 필름에 입히고, 광원을 기계적으로 바꾸면 광도(빛의 세기)는 유지한 상태로 필름에 입힌 서로 다른 크기의 퀀텀닷 나노입자가 통과해 특정 파장을 내는 식이다. 즉, 라이트 하나로 세밀한 빛의 파장 조절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앱상에서 미세하게 조정하면 맨눈으로 다 같은 색상의 광원으로 보일 수 있다. 식물 생장에 필요한 광원 조절은 그만큼 정교해야 한다.

국내 유수 연구기관, 실증테스트 효과 입증

재배할 때 쉘파라이트만 써야 하나.

그래도 되지만, 천연에너지인 태양의 힘을 같이 활용하면 좋다. 쉘파아이란 기기로 매일 달라지는 태양광을 분석하고, 부족한 파장을 쉘파라이트에 전송하면 해당 파장만 공급한다. 농장주 입장에서 에너지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올해 한국기계연구원 옥상 유리온실과 논산 딸기시험장, 카이스트 컨테이너 스마트팜에서 현장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생산량도 늘었지만, 당도와 영양분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금도 쉘파라이트는 국내 전문 연구자 그룹에서 사용 중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충청남도농업기술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 테스트용 장치를 납품했다.

작물마다 레시피가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 그래서 실험실 내에서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주요 작물 위주로 최적의 생장 광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외부 기관과 고객들 데이터도 함께 수집해 데이터 마이닝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재배해서 광원별, 파장별로 생장시킨 뒤 추출해 성분을 분석한다. 단순히 크기와 색상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다. 시설재배가 가능한 작물이라면 모두 적용할 수 있고, 이게 곧 우리의 레시피 비즈니스 모델과 직결된다.

전공과 이력이‘ 빛’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인다.

시스템 엔지니어링, 즉 ‘최적화’를 전공했다. 카이스트생명화학공학과에서 석유화학, 미생물, 에너지, 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적화하는 기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적화란 특정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수식화해 모델화하는 학문이다. 두산중공업에 사회 첫발을 내딛고 나름대로 인정받으며 지냈다. 창업의 꿈을 잊고 살던 어느 날 아내가 ‘창업한다며!”라고 외친 한마디에 사표를 던졌다. 사업 아이템도 회사를 나와서 고민했다.

어떤 계기로 최적화 기술을 농업에 활용할 생각을 했나.

뭐라도 창업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가 스타트업에서 먼저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 플라스마 기술 스타트업에서 일할 참이었다. 때마침 아내의 권유도 있어 사표를 냈는데, 회사 팀원 몇몇이 뒤따라 사표를 냈다고 들었다. 나를 믿고 따라 나온 친구를 위해 일단 스타트업 취업을 접고, 함께 모여 창업 아이템을 연구하기로 했다. 시장조사도 하고, 우리 특기를 잘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찾다 선택한 게 농업이다.

쉘파라이트가 첫 제품인가.

아니다. 처음엔 식물재배기를 개발하려고 했다. 광원조절기는 시스템의 일부였다. 올해 LG전자도 식물재배기를 선보였지만, 2016년만 해도 IT 기술을 접목한 하우스팜 시설만 생각했지 소형 재배기는 없었다. 이거다 싶어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투자를 받고 약용식물을 키우는 가정용 식물재배기를 만들었다. 레시피는 개인이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맞췄다. 하지만 시제품을 가지고 박람회를 돌면 농장주들이 계속 광원 기능만 물었다. 다시 시장조사를 해보니 시설원예나 버티컬팜(빌딩형 수직농장), 컨테이너팜에서 가변성 광원 수요가 상당하는 사실을 알고 피버팅(Pivoting, 사업 전환)해버렸다. 그간 만들었던 식물재배기는 광원 레시피 데이터를 마이닝하는 툴로 쓴다.

사업 전환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한번 투자받은 기술 스타트업이 주요 사업을 피버팅한다는 건 사활을 건 도전이다. 이미 시제품을 내놓기 직전까지 갔으니 투자사와 우리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의견이 오갔겠나. 밥 먹듯이 밤을 새워가면서 만든 제품을 한순간에 내려놓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아니면 확실한 시장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가 스마트팜 사업 자체를 하고자 뛰어든 게 아니라 기존 농가에 도움이 되는 조력자가 되려고 창업했으니 초심을 잃는 일도 아니었다. 회사 이름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돕는 도우미를 뜻하는 ‘셰르파(Sherpa)’를 붙인 까닭이다.

특정 재배작물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전략 같다.

맞다. 그래서 초기에 딸기와 인삼 정도를 샘플로 삼아 테스트했다. 주로 수확 주기가 짧고, 단가가 비교적 비싼 작물을 찾았다. 최근 주목한 곳은 북미 카나비스(Cannabis, 대마)팜 시장이다. 사실 이것도 해외 박람회에서 쉘파라이트에 관심을 보인 농장주가 카나비스를 재배하고 있어 알았다. 실제 카나비스 재배 방식은 온실재배와 실내재배 두 가지뿐이다. 여기에 온도, 습도, 빛 등 소위 스마트팜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 북미에선 카나비스가 합법화된 곳이 많고, 의료용 카나비스 시장이 엄청 큰 데다 작물 단가가 1㎏당 5200달러(약 580만원)이나 한다. 실제 미국과 캐나다 의료용 카나비스 기업과 쉘파라이트의 기술검증(POC)을 진행 중이다.

다음 계획은 뭔가.

양산과 시장 발굴이다. 코로나19로 해외 바이어들과의 미팅이 줄긴 했지만, CES 2020에서 혁신상을 받은 이후 쉘파라이트가 필요한 글로벌 재배 솔루션 그룹들의 화상회의가 줄을 지었다. 시장의 욕구를 잘 짚어낸 셈이다. 양산과 더불어 작물별 파장 데이터 연구에 집중하고, 레시피를 정교화할 생각이다. 나아가 농장주가 설치한 쉘파라이트에서 나온 데이터로 재배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민한 이는 알아챘을 거다. 어릴 적 먹던 농산물의 맛이 달라졌다는 것을. 토양이 산성화되고 시금치, 당근, 딸기가 가진 영양분이 지난 50여 년간 40%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관련 논문도 많다. 더 크게, 더 많이 생산하려고 농약과 비료를 과하게 쓴 우리 욕심 탓이다. 농약과 비료를 안 써도 맛 좋고 안전한 농산물을 만들게 돕겠노라며 쉘파라이트를 밤낮으로 개발했다. 식물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시작한 일이 인간 삶의 가치를 더하겠다는 철학이 된 셈이다. 생각이 곧으면 조금 부족해도 사람들이 공감해주리라 믿고 다시 한번 달릴 참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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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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