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크리스마스 전후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연주될 것이다. 12월 31일 자정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보신각종을 치며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무엇일까, 시간은.
▎대마젤란 은하 (Large Magellanic Cloud)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블랙홀의 시뮬레이션 이미지. / 사진: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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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야속하다. 송창식은 그것을 노래로 표현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 와가는데. 왜 이렇게 망설일까, 나는 기다리는데”(한번쯤, 1974). 야속한 시간은 흐르며, 가버린다. 우리는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비가역적이라고 느낀다. 되돌아오지 않아서 일방향적인 것이라고도 느낀다. 이런 인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전남 장성 출신 가수 불태산의 노래를 들어보자. “떠나가는 구름처럼 흘러가는 강물처럼 가는 줄도 모르고 멀어지는 세월아. […] 떠나갈 시간을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가버린 세월, 2007). 누구나 세월을 되돌리고 싶고 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최호섭처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의 사랑이,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 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세월이 가면, 1988). 그래도 사랑의 기억은 남을 수 있다. 최호섭의 노래 후반부를 마저 듣자.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잊지 않으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 잊기 위해서도 시간은 가야 한다. 어둠이 아침 햇살로 바뀌듯이. “선뜻 선뜻 잊읍시다. 간밤 꾸었던 슬픈 꿈일랑. 아침 햇살에 어둠 가시듯 잊어버립시다”(송창식, 잊읍시다, 1988). 기억조차 없는 이들을 우리는 원망한다.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김광석, 그날들, 1991).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원망하지 않는 담담함도 필요하다. “사랑이 다 그렇죠. 시간이 가면 희미해져 기억조차 할 수도 없겠죠. 그렇죠. 사랑이 가면 또 다른 사랑이 다시 올 겁니다. 꼭 그럴 겁니다” (씨엔블루, 그럴 겁니다… 잊을 겁니다…, 2010). 어떻게 하든, 기억을 탑재한 뇌와 육신이 죽음으로 인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데도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 브람스는 서른두 살 때 모친상을 당했다. 슬픈 마음은 베드로전서 1장 24절의 가사를 합창에 맡기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독일 진혼곡], 제2곡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자고(自枯)와 낙화(落花) 역시 시간의 흐름을 요하는 일이다. 꽃이나 풀과 달리 영원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주님의 말씀이다. 트롬본과 함께 웅장한 선율이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라고 노래 부른다. 영원한 것은 시간 흐름 밖에 있는 것일까. 영원한 것 속에서 시간은 정지하는가. 영원과 시간의 정지를 등치하는 이들이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의 영국 작곡가 존 다울런드(1563~1626)는 류트 반주에 적막하고 차분한 선율들을 많이 작곡하여 예술 가곡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데, 그의 노래 ‘시간은 여전히 서 있네(Time stands still)’는 애인의 영원한 아름다움과 비시간성을 표현하고 있다. “시간은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며 여전히 서 있다. […] 다른 모든 것은 바뀌겠지만 그녀는 그대로라네. 하늘이 자신의 운행 경로를 바꿀 때까지, 시간이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릴 때까지.”
“꿈결 같은 시간이 영원할 듯했지만”
▎가수 송창식의 2012년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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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잠시나마 드물게, 시간이 정지되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대체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이를테면 인생의 사랑을 만날 때 이런 느낌이 든다. “인생의 사랑을 만나면 시간이 멈춘다는 말은 진짜야. 그러다가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가지.” 영화 [빅피쉬](2003)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다음과 같은 가사로 노래했던 이유도 이런 느낌을 알고 있어서였을까. “꿈결 같은 시간이 영원할 듯했지만” (굿바이, 1995). 영국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는 적지 않은 프로 타자들이 보고한, 시간이 느리게 가는 놀라운 순간을 소개한다. “[시속 160㎞로 날아가는 야구공은] 많은 선수가 증언한 것처럼 실밥을 뚜렷이 드러낸 채 공기 중에 거의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럴 경우, 타자는 갑자기 널찍하게 확대된 타임스케이프(timescape: 시간 풍경) 안에서 여유롭게 공을 칠 수 있다”(『의식의 강』). 어떤 이들은 그들에게 닥친 위험한 사건을 슬로비디오처럼 인식했다. 알프스산에서 추락하는 짧은 순간에 자신의 과거사 전체를 순식간에 더듬고 죽음을 수용하는 마음마저 느꼈던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스위스 지질학자 알버트 하임의 연구, 1892). 이런 이들에게 사고 당시의 시간은 확장되어 천천히 흘렀다. 자동차 충돌로 인해 10m 밖으로 튕겨 나간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그에게 그 사건은 매우 오랫동안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장면은 슬로모션이었고, 그는 마치 관중석에 앉아 모든 사건을 관람하는 느낌을 가졌다.(러셀 노이스(Russell Noyes)와 로이 클레티(Roy Kletti)의 연구, 재인용:『의식의 강』).시간의 속도는 서로 다른 물리적 상태에 따라 실제로 달라진다. 이 현상은 모든 물체에 질량이 있고, 질량 있는 곳에는 늘 중력이 있으며, 그 크기와 무관하게 중력은 시공간을 왜곡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2010년 제임스 친웬 추(James Chin-Wen Chou) 박사팀은 초정밀 시계를 이용해 지표면으로부터 고작 33㎝ 높이에 놓인 시계가 지표면의 시계에 비해 10경분의 4초 정도 빨리 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높은 곳에서 작용하는 중력이 지표면에서의 그것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 논리를 따라가면 중력이 매우 강한 블랙홀 주변에서 발생하는 특이한 시간을 추측할 수 있다. 블랙홀 연구자들에 따르면 블랙홀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느리게 가다가 그 표면에 도달하면 시간이 정지한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알려준 것이 이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 가까이에 있는 행성에 다녀왔던 주인공에게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고작 몇 시간 동안 우주여행을 다녀온 주인공의 자식은 주인공보다 훨씬 늙은 노인이 되어 있다.블랙홀은 태양과 같이 무척 큰 별이 죽으면서 생긴다. 별의 내부에서 붕괴가 일어나 수축하면 거대했던 크기가 작아지면서 밀도가 증가한다.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초고밀도 상태가 된 블랙홀은 그 명칭답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블랙홀은 빛조차 빨아들이기에 볼 수 없고, 그 주위에 있는 다른 별들이나 행성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관측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존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한때 블랙홀이 영원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블랙홀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뜻일까? 우주는 영원할까?우주에도 종말 시나리오들이 있다. 우주의 종말이 어떤 것이 건, 끝난 우주에서는 더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끝나기 전까지는 시간이 어떤 실체로서 흐르는 것일까. 많은 노래가 환기해주듯이 시간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존재한다.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니 시간은 실체여야 한다. 그런데 많은 물리학자가 시간이 실체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고전물리학 법칙들은 모든 사건이 과거의 방향으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역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시간이 인간의 환상이면 이제 곧 사라져 다시 오지 않을 2020년은 무엇인가. 시간은 나를 성숙하게 하는 실체가 아니던가.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송창식, 맨 처음 고백, 1974). 시간이 흘러 두 번째로, 세 번째로 하는 고백은 힘이 덜 들 것이며, 덜 바보 같은 이가 하는 것이다.보통 사람들의 시간 경험을 설명하는 데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물리학 이론이 있다면 엔트로피이론이다. 모든 폐쇄계는 무질서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이 이론은 그 불가피한 경향이 실현되면서 시간이 흐르게 된다고 암시한다. 우주의 종말도 우주 속 유일한 폐쇄계인 우주 그 자체의 엔트로피 양이 커짐으로써 ‘다가오게’ 될 것이다. 2020년이 흘러가면 이 지구 위 많은 것의 엔트로피는 커진다. 애써 부인하며 매 순간을 영원처럼 행복하게 살면 될까? 그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다소 한탕 주의적으로 보인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네겐트로피(Negentropy)의 도입을 통해 잠시 지연할 수는 있다. 1943년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제시한 이 용어는 네거티브 엔트로피, 즉 엔트로피와 반대 부호를 가진 양(量)이다. 조직에서 네겐트로피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은 정보와 소통이다. 이것들이 없는 조직은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블랙홀과 진배없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