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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휴브리스(오만) 리더십]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 교수 

겸손은 휴브리스의 항생제 

휴브리스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유진 새들러 스미스 영국 서리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8, 2019년 포브스코리아 주최 오만포럼에 이어 다시 한번 서면 인터뷰에서 진전된 연구결과를 알려왔다.

휴브리스의 연구 영역은 기업 부실과 경제위기를 불러온 기업 CEO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재난 상황과 국가 리더십을 휴브리스 관점으로 분석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과학적 방법론을 보강하며 영역을 확장하는 휴브리스 연구의 최근 동향을 들어봤다.

휴브리스 연구의 최신 동향을 말해달라.

휴브리스 연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경영학과 행동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점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정치와 기업에서 휴브리스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영역과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나는 휴브리스 연구자로서 휴브리스의 긍정적인 면과 머신러닝 활용에 집중한다. 이제까지의 연구는 휴브리스의 부정적인 면과 악영향을 겨냥해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자들은 휴브리스의 어두운 면뿐만 아니라 긍정 효과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제니나 순더마이어 박사 연구진은 “휴브리스 성향을 가진 스타트업이 전반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비전 및 시나리오를 수립해 전달하고 중요한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헌신적으로 일하는 데는 능숙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휴브리스의 이러한 긍정적 측면은 스타트업 설립자가 일반적인 실패 가능성을 극복할 동력으로 작용해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미래의 기업가와 관리자를 양성할 때 휴브리스의 위험과 더불어 잠재적 이점도 충분히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자가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휴브리스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기반으로 잠재적 손실을 경계하면서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휴브리스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다. 워런 버핏은 지난 2016년 자서전에서 “휴브리스와 겸손의 적절한 균형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과학적 접근 방식을 소개한다면.

최근 연구에서 나타난 새로운 시도는 머신러닝을 이용해 리더가 사용하는 단어에서 휴브리스의 조기 경고 신호를 식별하는 것이다. 이를 ‘언어적 지표(linguistic markers)’라고 한다. 이 지표가 나타날수록 리더가 휴브리스에 감염되고 있다는 뜻이다. 초기 연구자들은 단어 빈도를 추출해 수동으로 언어적 지표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최근 영국 서리대학교(University Of Surrey)와 호주 머독대학교(Murdoch University)는 공동연구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일단 휴브리스를 인식하도록 학습한 후 대상 CEO가 휴브리스에 감염됐는지를 진단하고 자동으로 결과를 내놓는다. 정확도가 약 75% 수준으로 사람의 판단과 분류만큼의 효율을 확보했다. 이런 접근방식을 점점 정제하면서 대상자의 의사표현(인터뷰, 연설, 트윗 등)에 더욱 광범위하게 접근함으로써 휴브리스 리더를 쉽게 탐지할 수 있다. 이번 머신러닝 기반 연구는 곧 경영 저널에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네이처에 게재된 ‘국가적 코로나19 대응에서의 휴브리스 역할 연구’가 인상적이다. 휴브리스 관점에서 전 세계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네이처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간주되는 국가들은 결과적으로 타국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면역력을 확보했다고 인식하는 ‘예외주의’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나라들의 또 다른 특징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휴브리스 성향의 지도자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과 브라질 보우 소나루 대통령은 과학적 자료를 무시하고 자신이 과학자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오만에 빠졌다.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거나 사망률이 높은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지도자의 자만심이 강했고 혼란스런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았다. 당연히 정부 대응도 신속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했다. 외부의 충고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휴브리스 지도자의 전형인데 코로나19 같은 위기에서는 자국의 질병관리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휴브리스 리더십은 결과적으로 질병의 확산을 조장했다. 한편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전문가의 말을 빠르고 겸손하게 수용해 강하고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했다. 한국, 베트남도 IT기술을 활용하고 전문가의 경고를 신뢰하는 긍정적 태도를 취해 전염병을 성공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19와 휴브리스의 관련성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아던 총리의 연설을 분석했고 이 역시 곧 학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주요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면 트럼프(휴브리스 성향)는 감정지수가 높고 분석력, 진정성지수는 낮았다. 반면 대조군인 아던 총리(비휴브리스 성향)는 감정지수가 낮고 분석력, 진정성지수는 높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기업 휴브리스 최근 사례는 무엇인가.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CEO가 미디어 인터뷰 등에서 반복적으로 말한 내용은 많은 이들이 거부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이었다. / 사진:ETHAN PINES/THE FORBES COLLECTION
휴브리스 바이러스는 실제 정계와 재계에서 살아 숨 쉬고 있고 리더들을 감염시키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금은 몰락한 미국 바이오기술 기업 테라노스(Theranos)다. 혈액 한 방울로 250가지 건강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 미국 최고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 2018년 운영을 중단했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창업자의 이미지를 차용한 엘리자베스 홈즈 전 테라노스 CEO는 미국 규제 당국에 의해 ‘대형 사기’ 혐의가 선고됐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 창업자와 루퍼트 머독 글로벌 미디어 거물 등 유명 투자자들은 수억달러 규모의 사기를 당했다. 그러나 홈즈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법원에 가서야 심판을 받을 수 있었다. 홈즈는 자만감에 도취된 나머지 완성되지 않은 기술로 투자자를 설득하고 기만했다. 홈즈의 휴브리스는 그가 이런 기만 행위를 점점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홈즈가 만들어낸 과대·허위 정보를 믿는 추종자들은 그를 ‘차세대 스티브 잡스’로 부추기며 상징적 여성 리더로 추앙했다. 특히 언론의 격려와 지원은 홈즈의 휴브리스를 더욱 키웠다. 사회 시스템은 사전에 홈즈의 휴브리스 성향을 인식하고 근절하는 데 실패했다. 홈즈의 휴브리스는 신에게 도전한 이카루스*처럼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화상을 입었고 네메시스*(응당한 보복)가 뒤따랐다. 만일 홈즈를 둘러 싸고 적절한 기업 거버넌스, ‘너무나 이상적’(Too good to be true)이었던 기술에 대한 건전한 회의론, 홈즈의 휴브리스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면 이런 참사는 예방할 수 있었다.

*이카루스(Icarus): 그리스 신화 속 인물로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라올랐는데 자유롭게 날게 되자 너무 높이 날아 태양의 뜨거운 열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네메시스(Nemesis): 그리스 신화 속 보복의 여신으로 정의로운 복수라는 상징적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뉴노멀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특히 과거 성공에 대한 집착이 휴브리스 리스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뉴노멀 시대 휴브리스를 경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CEO와 정치인이 코로나19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예측할 수 있었지만(빌 게이츠가 실제 예측했다), 실제 발생 확률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충격 방지’를 위해 우리는 구조와 시스템에 회복탄력성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조직신뢰성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전 세계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도전에 직면했었지만 가능성을 정량화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갖추려면 필수 공중보건 조치를 마련하고 역학 추적 기술,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할 백신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둘째, 또 다른 교훈은 겸손이다. 인류 자체가 자만심에 빠져 바이러스, 기후변화 등 거대한 재해에 인류가 얼마나 취약한지 잊고 있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가장 주목하고 걱정해야 할 이슈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겸손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최근 디지털 전환으로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인간의 자율성, 숙련도, 목적동기부여 등 인간 본성의 강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면 휴브리스와 같은 인간 본성의 취약점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인간 본성에는 강점과 약점이 있다. 코로나19 팬더믹은 이 두 가지를 드러나게 했다. 예를 들어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백신을 개발해 인간의 과학기술 숙련도, 창의력, 혁신성을 보여줬다. 반면 인간의 휴브리스가 자연을 함부로 취급해 발생한 기후 위기는 과거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방법의 약점에서 기인했다. 휴브리스와 겸손은 인간 본성의 음과 양이며 인류는 우리 자신, 공동체, 지구와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의 리더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리더의 위치는 때때로 매우 외롭고 최고 자리에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휴브리스에 빠지기 쉽다. 리더들은 기존의 기반을 유지하고 피드백을 수집하며 비판을 존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리더지만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가능성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겸손은 휴브리스의 항생제다. 추종자들은 자만심에 빠진 리더를 결국 외면할 것이다.

※ 유진 새들러 스미스 교수는 - 영국 최대 에너지 기업 브리티시가스 인재개발부를 거쳐 현재 영국 서리경영대학원 교수로 리더십과 혁신, 특히 경영자의 직관과 오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데이비드 오언 전 영국 외무장관이 설립한 영국 휴브리스 학회 ‘다이달로스 트러스트’의 멤버로 서리 경영대학원에서 오만이 리더십에 미치는 영향과 예방책을 연구하는 ‘휴브리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na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103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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