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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상 이모티브 대표 

게임 치료제 개발하는 인지공학자 

코로나19 탓인지 그동안 질병으로 취급받았던 게임이 지난해 정식 치료제로 인정받았다. 미국에서 수년간 어린이 수백 명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끝에 치료 효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자동차 운전자를 연구하던 공학자가 게임 치료제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분명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WHO는 지난해 4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게임을 하라고 장려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같은 해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아킬리인터랙티브가 개발한 모바일 게임 ‘인데버알엑스(EndeaverRX)’를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DTx)로 승인했다. 이 게임이 어린이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이하 ADHD)’를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질병이 치료제가 된 셈이다. 시장 성장세까지 가팔라졌다. 특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 치료제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상황이다. 아일랜드 시장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드마켓스는 디지털치료제 시장 규모가 21억 달러(약 2조4000억원)에서 2025년에는 7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트라는 한술 더 떠 2025년 90억 달러 시장이 될 거라 전망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조현병,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알코올 중독 등의 정신과 질병에 디지털 치료제를 쓰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가 정확히 뭘까. 앞서 말한 게임 ‘인베더알렉스’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해 질병 치료 효과를 내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아우른다. 의학적인 효능이 있어야 하기에 일반 헬스케어 소프트웨어(앱)와는 완전히 다르다. 치료제라 불리기에 1세대 치료제 ‘저분자 화합물(알약이나 캡슐)’, 2세대 치료제 ‘생물 제제(항체, 단백질, 세포)’를 개발할 때 거치는 임상시험이 필수다. 미국에서는 당연히 FDA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불모지다. 게임 치료제와 관련된 인허가는 아예 전무하고, 의료보험 이슈로 가면 날이 선다. 인색한 투자는 물론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까지 강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게임 치료제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이모티브’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의 의뢰를 받아 사람과 유사한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휴먼 라이크(human-like)’ 로봇의 인지모델을 개발 중이다.

“대학 졸업 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습니다. 뇌공학 전공을 살려 운전자의 인지모델을 연구했습니다. 자동차가 서거나 주행하는 와중에 운전자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행동을 연구했죠. 운전자 사용 편의성을 높이려고 제네시스 GV80에 장착된 ‘오목형 중앙 집중 조작계’도 개발했습니다. 평면형은 활용 중에 중심을 찾을 수 없는데 오목한 구조는 손가락만 얹으면 시각적 인지 없이도 터치패드 중앙을 찾을 수 있죠.”

지난 7월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이모티브 사무실에서 민정상(40) 대표가 창업 전에 했던 일을 설명했다. 실제 오목형 중앙 집중 조작계는 콘셉트 기획부터 양산까지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직접 개발한 세계 최초의 기술이다. 이를 위해 민 대표는 4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현대자동차 유럽기술연구소에서 직관적인 터치 기술을 자동차에 도입할 방법을 생각했다.

10년간 자동차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왜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을까. 갑자기 민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서 퇴사 전까지 맡았던 ‘디지털트윈’ 프로젝트 얘기를 꺼냈다. 디지털트윈은 가상 공간에 현실의 ‘쌍둥이’인 자동차 모델을 만들어 시뮬레이션한 뒤,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자동차에 연동해 제품과 생산공정을 동시에 혁신하는 기술이다. 그는 “단 한 지점에서 오류가 나면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기에 인공지능(AI)을 공정 개선에 곧바로 적용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생산공정 근로자들의 행동에 따른 온갖 변수를 시나리오화해 AI에 학습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류를 잡는 일. 민 대표는 사람한테도 적용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10년간 고려대학교 인지인간공학연구실에서 연구만 했던 대학 동기이자 친구인 오형석 CTO도 민 대표 곁에 섰다. 친정 격인 현대자동차도 이모티브에 서비스 로봇 소프트웨어와 인터페이스 개발 일부를 맡겨 홀로서기를 도왔다. 인천테크노파크,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민 대표에게 창업한 과정부터 물었다.


▎이모티브가 개발한 인지훈련 게임 화면. / 사진:이모티브
현대자동차에서 나와 곧바로 창업했나.

그런 셈이다. 지난해 10월 퇴사하자마자 이모티브를 창업했다. 1년가량 고민했다. 처음부터 치료제 개발을 생각한 건 아니다. 아동 ADHD 환자의 인지능력을 확인하고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ADHD 치료를 받는 아동이 생각보다 많았고 조현병, 우울증, PTSD,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한 정신과 질환이 사회문제로 불거지는 것을 보고 ‘디지털 치료제’로 방향을 틀었다.

디지털 치료제 중에서 게임을 택한 이유가 있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매년 아동 ADHD 환자가 늘어 최근 4년간 40% 넘게 증가했다. 문제는 ADHD에 대한 편견 탓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 문턱을 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치료 과정은 더 험난하다. 아이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받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약물 처방이 필요한 경우 지켜보는 부모가 더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안타까웠다. ‘병원이라도 제때 갈 순 없을까’, ‘약 처방을 받지 않아도 될 방법이 있을 텐데’ 고민하며 힘이 될 방법을 찾고 싶었다.

보완재라고 생각한 건가.

치료제를 표방했지만, 현재 처방약을 완전히 대체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매일 먹는 약을 반으로 줄여주거나 병원에 가서 상담하는 횟수를 줄여주는 일, 병원에서 진단하기 위한 과정을 줄여주는 역할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특히 치료 훈련을 하는 아이들의 경우 적극적인 참여가 꼭 필요한데, 이때 게임이 제격이다.

치료제는 결국 임상 과정이 필요하다.

맞다. 처음에 병원과의 협력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지난해 미국 FDA가 최초로 승인한 게임 ‘인데버알엑스’만 해도 600명 이상의 ADHD 어린이(8~12세)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하는 데 7년이나 걸렸다. 부담은 있었지만, 병원들이 쉽게 우리의 개발 취지에 공감해줄 것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팅과 설득 끝에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과 인제대학교부산백병원이 손을 잡아줬다. 이후 김해의생명산업진흥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 산하기관도 우호적이었다. 특히 올해는 교보생명, 아이돌봄 선생님 매칭 서비스 ‘째깍악어’와 협력해 20만 명의 아동인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서울대와도 아동 ADHD, 자폐 환자용 앱 개발을 추진 중이다.

임상을 거치지 않는 방법도 있을 텐데.

사실 한국에서는 임상시험이 어렵고, 비즈니스 모델 구축도 어렵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효과가 검증되기만 하면 FDA가 승인해준다. 시장 반응을 먼저 살피는 방법을 고민 중인 이유다. 국가별로 잘 구축된 구글플레이 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양대 마켓에 게임을 올려보는 것 말이다. 코로나19 탓에 해외 지사 설립이 더 어려워진 요즘 앱 생태계에서 해외시장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FDA 승인을 받은 곳도 꽤 보이고, 국내에서 경쟁사도 등장했다.

그렇다.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디지털치료제 기업이 전 세계에 여덟 군데 정도 되고, 게임만으로는 아킬리인터렉티브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게임을 비롯해 디지털 치료제 회사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국의 뛰어난 의료 기술과 게임기술이 만나면 미국 기업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만의 강점도 있다.

이모티브의 강점은 뭔가.

인지공학자가 중심인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회사에서 인간의 행동패턴 연구를 10년 가까이 해왔고, 오형석 CTO는 대학에서 인지공학 연구에만 10년이나 몰두한 박사다. 덕분에 우리는 게임 치료제에 뇌의 기능적 영역과 관련된 인지신경학적 데이터, 사용자 행동 정보 기반의 사용자 인지구조 모델링을 담을 수 있었다. 게임 스스로 인지한 데이터를 가지고 게임 형태를 사용자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 막연하게 ‘인지모델을 탑재했다’는 식이 아니라 ADHD 증상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탑재해 실시간 디지털 차트로도 볼 수 있다. 의사, 환자, 환자 가족 모두가 질병을 더 빨리 인지하고, 잘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팀을 꾸리면서 깊이 있는(?) 면접을 봤겠다.

우선 연봉도 많이 못 주고 비전만 있는 회사인데도 합류해준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지난해 창업했을 때만 해도 CTO와 나, 두 명이 전부였다. 인력 충원이 시급했지만,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를 찾겠다는 심정으로 면접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지공학을 10년간 연구하고 활용한 덕에 면접자의 얼굴 표정, 말투, 손짓 등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했다. 특히 말투가 오래 남는데, 대화를 풀어가는 과정을 유심히 살피며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았다. 험난한 스타트업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른 인성과 성실한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어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웃음) 장장 6개월에 걸친 마라톤 면접 끝에 지금의 팀이 꾸려졌다.

인지공학자는 조직관리를 어떻게 하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한다. 스타트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건 완성된 인재다. 하지만 한국 현실이 어디 그런가. 나조차도 대기업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며 경험을 쌓고 성장해왔다. 생각해보면 전권을 쥐고 죽기 살기로 일했던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성장한 듯싶다. 이모티브도 구성원 모두에게 의사결정권을 준다. 초기 기획부터 운영 방향을 정하고, 꾸려가는 것까지. 옆에서 보면서 너무 아닌 것만 얘기해주고 일단 지켜본다. 정답은 없지만, 수개월 만에 사무실 곳곳에 성장한 팀원들이 눈에 띈다.

처음 창업한 게 맞나.

사실 2015년쯤 현대자동차그룹 사내 스타트업 팀 중 하나인 마이셀에 스카우트 된(?) 적이 있다. 친환경 소재인 버섯 균사를 이용해 차량 복합재, 패브릭 등 각종 차량용 소재를 개발하는 팀이었다. 사내벤처 시스템에서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을 쌓은 개발진과 교류할 기회였다. 연구·개발하면서 그룹 내에서 회사 운영 노하우도 익힐 수 있었다. 마이셀은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완전히 분사해 바이오 소재 기업의 길을 걷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목표가 있다면.

인지공학을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풀고 싶었다. 디지털 치료제를 인체에 직접 투약하는 기존 약물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올해 정식으로 게임을 출시하고, 내년부터 미국 FDA 인증을 준비할 계획이다. 다시 말하지만 100% 기존 의약 체계를 대체하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조금 더 저렴하고, 기존 치료 방식을 보완하고자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환경·사회적인 장애를 가진 이에게 큰 힘이 될 거라는 자부심과 믿음이 가장 크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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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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