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성격, 일하는 방식 등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더 필요한 존재가 됐다. 상대방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주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치 1조원대의 뷰티 브랜드 ABT 김한균 대표와 1500건 넘는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며 뷰티 마케팅 업계 최정상에 서 있는 뷰스컴퍼니 박진호 대표의 이야기다.
▎상반된 복장만큼 기질도 스토리도 다른 박진호(왼쪽) 대표와 김한균 대표. 화장품업에 대한 열정이라는 공통점이 이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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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에서 태어난 김한균 대표는 대학에서 화장품학을, 대학원에서는 향장학을 공부했다. 2011년, 200만원을 들고 상지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자신의 뷰티 브랜드 파파레서피를 만들었다. 2014년 중국에 진출해 3~4년 만에 마스크팩 누적 판매량 5억 장을 기록했고 중화권에서 단일 품목으로 브랜드 전체 매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30여 개국에서 글로벌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뉴욕에서 유학한 박진호 대표는 회계학을 전공하고 심리학을 부전공했다. 한국에 돌아와 시장, 플랫폼, 브랜드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과 트렌디한 전략을 앞세워 뷰티 마케팅 회사를 차렸다. 파파레서피를 비롯해 닥터자르트, 겐조, 아모레퍼시픽, CJ올리브영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과 1500건이 넘는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뷰티 마케팅 회사로 자리매김했다.한국에서 시작해 글로벌 시장을 휘어잡은 김한균 ABT 대표와 외국에서 시작해 한국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박진호 뷰스컴퍼니 대표. 두 대표를 ABT 본사에서 만났다. 상반된 스토리만큼 복장 또한 완전히 달랐다. 박진호(37) 대표는 재킷과 슬랙스로 멋을 낸 반면, 김한균(37) 대표는 티셔츠와 반바지로 캐주얼함을 강조했다. 두 대표는 만나자마자 복장에 대해 잔소리(?)를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한 사람은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친구와 함께하는 인터뷰인 만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거침없는 지적이 오가지만 얼굴엔 미소가 끊이질 않는 걸 보면 두 대표는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라 친구 사이가 분명했다.동갑내기인 이들은 30대 초반,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김한균 대표는 코스토리(현 ABT) 창업 초기였고, 박진호 대표는 뉴욕에서 장난감쇼핑몰·마케팅 일을 하다가 한국에서 자리를 잡으려던 차였다. 박 대표는 “친구가 ‘아빠가 만든 화장품’을 콘셉트로 하는 뷰티 브랜드가 있는데 마케팅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면서 “흥미롭게 들려 김 대표를 소개받았다”고 말했다.첫인상을 묻자 “특이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나와 비슷한 부류일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김 대표가 답했다. “우린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매우 다르지만 기질 자체는 비슷한 사람들이다”고 박 대표도 동의했다.무엇보다 화장품에 대한 애정이 깊고 자신의 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점이 비슷했다고 한다. “화장품 얘기를 나누며 밤을 샐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사람이 김 대표”라고 박 대표가 말했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박진호 대표가 파파레서피 브랜드 마케팅을 맡고, 함께 일하기 시작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함께 일할 땐 언쟁도 많이 했습니다. 전문 영역이 다르다 보니 목표는 같은데 성취하는 방식이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박 대표는 SNS 마케팅을 많이 하는 분이라 매출과 세일즈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저는 당장의 매출보다는 브랜드 스토리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싶었죠. 둘 다 맞는 이야기인데 참 치열하게 싸웠어요. 그 과정들이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 대표가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서 그는 이 치열한 언쟁 끝에 박 대표에게 마음을 열게 된 특별한 순간이 있었다고도 밝혔다. 결국 제가 주장했던, 브랜드 스토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마케팅을 진행해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그러자 박 대표가 전화를 해서는 제 말이 맞았던 것 같다며 쿨하게 인정하더라고요. 그때 ‘이 사람은 참 그릇이 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표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2014~15년 뷰티업계에서는 비포 앤드 애프터를 자극적으로 보여주고 구매를 이끌어내는 방식의 마케팅이 유행했어요. 하지만 김 대표의 주장대로 우린 제품이 아닌 브랜드 마케팅을 하기로 했죠. ‘파파레서피는 김한균 대표가 아토피가 심한 딸 한별이를 위해 순한 원료만 선별해 만든 화장품 브랜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보통 제품 광고를 하면 해당 제품의 매출만 오르는데, 브랜드 광고를 하니 모든 제품의 매출이 함께 오르더라고요. 어떻게 김 대표를 인정하지 않겠어요.(웃음)”이 외에도 사소한 결정부터 물류센터를 짓거나 제품의 소비자가를 정하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두 사람의 의견은 자주 엇갈렸다.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열심히 논쟁을 벌였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창업가와 마케터로 만난 두 파트너는 서로를 이끌고 발전시키는 절친한 친구가 되어갔다.하지만 두 사람은 동행을 오래 이어가지는 않았다. 2년 반가량 짧고 굵게 일한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일하는 DNA와 방식이 다르니까요”라며 두 대표가 웃어 보였다. 김 대표가 발로 뛰는 스타일이라면 박 대표는 모더레이터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후 두 대표가 이끄는 회사들은 승승장구하며 업계에서 존재감을 키워갔다. 파파레서피는 중국 진출에 성공한 데 이어 해외로 범위를 넓혀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고 박 대표의 뷰스컴퍼니 또한 뷰티 브랜드들이 앞다퉈 찾는 최고의 마케팅 파트너이자 노하우를 전수하는 업계 고수가 됐다. 특히 두 대표 모두 투자 한 번 받지 않고 이뤄낸 성공이라는 점에서 업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박 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언젠가 김 대표가 중국으로 이민을 가서 화장품 제조를 시작할 거라고 얘기했는데, 실제로 몇 년 뒤에 그 스텝을 밟고 있더라고요. 업계에서 결국엔 중국이 뷰티 시장을 삼킬 거라는 이야기가 돌던 때였는데, 이미 중국 진출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으니 선견지명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또 그 어렵다는 중국 시장에서 성공을 이뤄냈으니 박수 받아 마땅해요.”중국 이야기가 나오자 김 대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찔할 정도로 힘든 기억이라고 했다. “직접 중국 법인장으로 갔어요. 당시 뷰티 브랜드 대부분이 SNS 세상에 매몰돼 있었는데, 우리는 그 눈을 해외로 옮겨보자는 당찬 포부였죠. 막상 가보니 돈이 없어서 힘들었던 사업 초기와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돈이 있으면 뭐해요. 제조 시스템이 우리나라처럼 빨리 돌아가지 않는 데다 문화가 너무 달라서 힘들었어요. 중국에 계신 코스맥스 부회장님이 유일하게 도와주셔서 겨우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중국이 봉쇄되고 아이 출산까지 겹치는 바람에 저는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지금도 잘되고 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에요.(웃음)”이야기를 듣던 박 대표가 한마디 거들었다. “김 대표 성격답게 중국에서도 우직하게 발로 뛰더라고요. 1000명 정도 되는 사람을 모아두고 브랜드를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대요. 중국어를 하나도 몰랐는데 1시간 분량의 스피치를 준비해야 했죠. 회사, 브랜드, 제품 소개를 쭉 적은 다음 중국어로 번역하고 병음으로 변환해 통째로 외워버렸답니다. 나중에 그 영상을 봤는데, 역시 '김 대표다' 싶었어요.”이에 질세라 김 대표의 칭찬이 이어졌다. “박 대표는 사람 관리를 참 잘해요. 리서치, 분석에도 탁월하고요. 이분의 설명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려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브랜드들이 강연자로 많이 초청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도 ‘다른 데 들은 이렇게 하고 있고, 이 방식이 요즘 잘 통하는 것 같다’는 등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줬죠.”김 대표의 말대로 박 대표는 분석에 능하다. 박 대표는 자신의 분석력은 전략적인 자료조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장품은 기술경쟁보다는 마케팅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며 “매일 키워드를 정해 리서치를 하고 개인적인 인사이트를 섞어 트렌드를 정리한다. 또 한 달 평균 800만 명이 제품을 구매하는 올리브영을 면밀히 분석해 시장의 흐름을 읽는다”고 노하우를 공개했다. 이어서 그는 “예전엔 무조건 데이터를 많이 쌓아두고 거기에 의존했는데 요즘엔 데이터를 가공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트렌드가 빨리 바뀌어버린다”면서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판매 데이터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이들의 스토리를 듣고 있자면 ‘개미와 베짱이’가 아닌 ‘개미와 개미’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두 사람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김 대표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미국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3월 아마존에 입점한 이래 월평균 50%씩 매출 성장을 이뤄내며 순항 중이지만 코로나19로 현지에 나가는 건 잠시 중단한 상태다. 올해 백신을 맞은 직원을 필두로 조금씩 현지에 나가 중국에서의 성공 스토리를 다시 써 내려갈 예정이라고. 그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4만6280㎡(1만4000평) 규모의 숲을 구매해 뷰티&문화 복합공간을 짓고 있다. 김 대표는 “이름은 Above ground로 2023년 1월 오픈 예정”이라며 “캠핑·야영 공간, 트렌디한 F&B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화장품 박물관 등이 있고 모든 설계는 ‘지평집’ 건축가님이 맡아주셨다”고 소개했다.
박 대표는 뷰티 마케팅 회사를 넘어 뷰티 스타트업을 지향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뷰티업계의 혁신을 이끄는 주체가 되겠다는 포부다. 일례로 회사에 자체적인 콘텐트 사업부를 두고 브랜드의 사업 모델을 B to B에서 B to C로 전환하고, 뷰티 기업들과 여러 환경 캠페인을 전개해 ESG 경영, 디지털 전환 등 중대 과제를 함께 해결해가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젠 경험과 노련함까지 갖춘 전문가로 거듭난 두 사람에게 한국 뷰티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김 대표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박 대표는 마케팅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먼저 박 대표의 이야기다. “클린뷰티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ESG 경영이라는 이슈까지 맞물려 뷰티 브랜드들은 친환경적인 부분을 무조건 챙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친환경 성분, 패키지 등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는 순간 리스크가 커져요.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기준은 생각보다 높고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업사이클링’을 키워드로 내세우는 게 좋습니다. 단기간에 ESG 경영으로 변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중간 단계를 두는 전략이죠. 기업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소비자를 설득하고 그 과정을 버틸 수 있는 시간과 힘이 중요해질 겁니다.”김 대표는 브랜드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뷰티 브랜드의 IP는 결국 원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패션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화장품에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브랜드로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거든요. 이런 마음으로 저도 최근에 원료를 개발했습니다. 와인에서 추출한 귀부균인데, 처음엔 곰팡이가 피고 원료끼리 충돌도 하는 바람에 안정화하는 데까지 3년이나 걸렸네요. 브랜드가 개발한 독자적인 원료가 제품의 기능성, 효능도 챙겨주지만 결국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가치를 올려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화장품, 뷰티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두 사람의 눈빛이 반짝였다. 박 대표가 “화장품은 이젠 미적인 것보다 속도감이 우선되는 시대가 됐다”며 “화장품 업계가 과포화 시장이라고 하지만 항상 히트 상품이 바뀐다. 이에 따른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들도 계속 생겨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는 의견을 내놓자 김 대표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글로벌 브랜드의 스테디셀러는 출시된 지 10년 이상 된 것도 많다”며 “단순히 판매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고객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소통하고 그 경험들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나를 팔아도 잘 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동안 두 대표의 진지하고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이처럼 두 사람은 만나면 쉬지 않고 논쟁을 벌인다. 서로의 관점과 해석을 공유하는 유익한 시간이다. 요즘엔 이 시간을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박 대표의 클럽하우스 채널에 김한균 대표가 게스트로 등장해 경영 철학, 경영 노하우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인플루언서부터 회사 대표까지 업계 사람들이 몰려 이들의 대화에 귀기울인다고. 박 대표는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그 시간이 마냥 즐겁다”고 밝혔다.10년을 가까이서 지켜본 두 사람.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예전에 재무제표, 세금계산서를 모두 수기로 작성하던 버릇이 있었어요. 속속들이 알고 컨트롤해야 하는 성격이죠. 박 대표가 옆에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법도 배우라’고 했는데 이제 조금씩 그 연습을 하고 있어요. 경영도 임원분들에게 어느 정도 맡겼고요. 사실 요즘엔 애기들 트렌드 따라가기도 바쁘네요. 얼른 박 대표가 결혼해서 이 삶을 같이 즐기면 좋겠어요.”“저는 오히려 예전의 김 대표처럼 돼가는 것 같아요. 그간 재무제표, 손익계산서에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아서 직접 챙겨보기로 했죠.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면서 재무적인 부분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수기로 작성하진 않을 겁니다.(웃음)”-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