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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F&F 회장 

K패션, 글로벌·디지털 입고 날다 

최근 한국의 패션업계를 이야기할 때 김창수라는 이름 석 자를 빼놓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F&F 창업 이후 30여 년을 이어온 독특한 IP 전략, 롱패딩 유행의 원조, 글로벌 골프 브랜드 인수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비즈니스 행보로 메가히트를 연이어 터뜨리면서다.

키스하는 수녀와 신부, 가족들 앞에서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 흑인의 젖을 빠는 백인 아기. 탯줄도 자르지 않은 여아 신생아, 핏자국으로 얼룩진 병사의 군복.

혐오감으로, 때론 터부와 공포심에 두려워 피했던 충격적인 사진들이 난데없이 패션 광고에 등장하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베네통이 1990년대 선보였던 광고 속 이미지들이다. 파격을 넘어 사회적 논란의 한가운데 서기까지 했던 당시 베네통의 광고는 이후 마케팅 교과서에 브랜드 정체성과 커뮤니케이션을 드러낸 성공 사례로 등장하게 됐다.

패션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베네통의 광고디렉터를 맡은 건 1982년 무렵이다. 그때부터 베네통은 화려한 패션, 잘생기고 예쁜 모델 같은 전형적 이미지 메이킹과 결별을 선언했다. 대신 혐오와 차별, 평등과 평화를 이야기했다.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녹색 슬로건은 패션이라는 외피를 입은 문화이자 스토리, 혹은 메시지 그 자체가 됐다.

1992년, 한국에도 베네통이 상륙했다. 전 세계에 컬처쇼크를 던졌던 파격은 한국 패션 시장에도 그대로 이식됐다. 때마침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세계화’라 이름 붙은 슬로건이 전국을 휩쓸었다. 서구에선 날아온, 요즘 말로 힙한 문화상품이 된 베네통은 한국에서도 론칭 3년 만에 4배 넘는 성장세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시절 백화점 전체 패션 브랜드 중 1등 자리도 베네통이 차지했다. 김창수 F&F 회장이 기존의 베네통 국내 유통망을 인수하며 패션업계에 데뷔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1992년 F&F 창업 직후 베네통과 시슬리 같은 해외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들여와 히트를 쳤던 김창수 회장은 이후 레노마스포츠, 엘르스포츠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한국 패션업계를 대표하는 히트 메이커가 됐다. 새로 선보인 브랜드마다 시장의 열렬한 호응을 이끄는 데 성공한 김 회장은 1997년 들어 ‘MLB’를, 2012년에는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이하 디스커버리)’ 브랜드로 패션업계 ‘미다스의 손’이라는 명성을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또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하는 뉴스가 발표됐다. 세계적인 골프 브랜드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하기 위해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했다는 소식이다. 이번 M&A에서 F&F는 가장 큰 비중을 확보한 주요 투자자로서 향후 테일러메이드의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패션은 브랜드 가치와 철학의 외피


F&F의 성공 전략은 ‘검증받은 해외 유명 브랜드를 들여와 국내시장에 안착시켰다’는 해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베네통에서 시작해 MLB와 디스커버리로 이어진 사례가 모두 그렇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첫선을 보인 MLB를 기점으로, 김 회장은 기존의 라이선스 전략과는 확연히 달라진 방식을 취해왔다. 브랜드 자체는 수입해 들여오되, 기존 의류 브랜드가 아니라 해당 브랜드가 가진 지식재산권(IP)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패션과 관계없는 브랜드의 IP를 사온 후 F&F 만의 콘셉트를 입혀 기존엔 없던 완전히 새로운 패션 상품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MLB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디스커버리 역시 미국의 다큐멘터리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각각 의류사업에 국한된 라이선스만 따왔다. 실제로 미국 현지에서 MLB 브랜드를 활용한 패션용품은 모자나 야구 유니폼 정도만 유통될 뿐이다. 야구 팬들을 대상으로 팀 로고를 활용한 라이선스 사업에 국한됐다는 의미다. 국내에서처럼 MLB의 IP를 활용한 의류 상품을 미국 현지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디스커버리도 마찬가지다. 아웃도어 중심의 다큐 전문 채널의 아이덴티티를 들여와 패션 아이템으로 만든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 같은 전략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김 회장과 F&F 사례가 유일하다.

도무지 패션과는 전혀 관계없을 법한 브랜드를 들여와 ‘패션’이라는 코드로 재해석해낸 전략은 오늘의 F&F를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F&F 사옥에서 만난 김 회장은 이처럼 혁신적인 전략을 착안해낸 배경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MLB와 디스커버리의 성공에 앞서 베네통 이야기부터 꺼냈다. F&F 창업 직후부터 베네통코리아의 지분을 처분한 2016년에 이르기까지, 김 회장은 베네통과의 만남을 “패션이라는 업의 본질을 고민하고 정립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베네통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져 성공한 브랜드입니다. 모든 광고와 이미지를 문화와 인종의 화합이라는 테마로 전달했죠. 단순한 패션 스타일링에서 벗어나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패션으로 표현한 겁니다. 결국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얼마나 진실성 있게 상품에 담아내느냐가 성공의 열쇠라는 거죠.”

1997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의류업 라이선스를 따와 론칭한 MLB는 초기 베네통에서 배운 브랜드 철학을 그대로 따랐다. 다만 기존에 없던 참신한 스토리를 창조해낸 점이 이전과 달랐다. 김 회장은 “야구가 가지고 있는 멋진 이야기들을 패션으로 풀어내보자”는 게 초창기 MLB 브랜드의 콘셉트였다고 설명했다.

“브랜드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생각을 패션으로 표현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저 멋지고 좋은 옷을 만들어 팔겠다는 게 아니라, 패션이라는 매개체로 해당 브랜드의 철학을 어떻게 전할지부터 고민했죠. 그게 제가 내린 패션 브랜드 사업의 정의예요. 가령 야구 경기 중 플라이볼에서 볼 수 있는 희생정신,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스포츠에 몰두해 성공한 사람들의 멋진 스토리 같은 걸 담아냈어요. 점차 좋아하는 일에 몰두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의 라이프를 패션으로 풀어간다는 콘셉트로 발전해갔습니다. 야구가 가진 여러 가치를 본받아 삶의 이야기로 끌어낸 거죠.”

1997년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오히려 MLB 브랜드와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가적 환란에 신음하던 국민에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박찬호 선수의 모습은 한 줄기 단비 같았다.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무대에서 무너진 한국인의 자존심을 홀로 세우던 모습은 그가 소속된 LA다저스를 국민구단으로 만들었고, 한국에도 메이저리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99년 초에는 서울 압구정동 MLB 매장의 상품을 소비자들이 싹쓸이해 가 매장 진열대가 텅텅 비는 일까지 있었다.

“크게 보면 패션이란 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옷으로 풀어내는 겁니다. 샤넬이 코르셋 없는 옷으로 여성 해방을, 아르마니가 젠더리스를, 입생로랑은 여성의 사회 참여를 패션으로 주장했듯이 MLB와 디스커버리 역시 고유한 브랜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패션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생각이 적중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처럼 뭐든 잘 섞는 나라 없어”


1992년 창업 이후 패션업계 몸담은 지 올해로 29년. 그간의 경영 행보를 돌이키던 김 회장은 돌연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작은 나라의 패션 기업이 오히려 오리지널리티를 뛰어넘는 IP를 극대화해 어떻게 성공했는지 풀어놓으면서다.

“사실 서구에선 F&F 같은 전략이 잘 통하지 않아요. 스포츠면 스포츠, TV 채널이면 채널일 뿐이죠. 서양 사람들은 본래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분류하고 나누어 정리하는 걸 좋아합니다. 근대 이후 과학 혁명이 서구에서 발발한 이유죠. 그런데 동양은 다릅니다. 개인보다는 전체, 정복보다는 조화의 가치가 앞서죠. 서로 다 연결돼 있다는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저 역시 아시아라는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서구의 가치를 들여오되, 여기에 동양적 생각과 철학을 가미할 수 있었죠. F&F의 역사도 결국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를 추구해온 시간이었던 겁니다. 예전 말로 세계화, 요즘 말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결국은 동서양의 조화이자 F&F가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에요.”

창업 이후 수십 년간 동서양의 가치를 융합해왔다는 김 회장의 말은 디스커버리 론칭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디스커버리는 2012년 출시 이후 국내 아웃도어 패션 시장의 물줄기를 완전히 다시 틀게 한 브랜드다. 당시 국내시장을 장악했던 해외 브랜드들이 히말라야에서도 견딜 만한 극한의 기능성을 내세운 반면, 디스커버리는 철저하게 일상의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다.

“디스커버리 이전의 아웃도어 브랜드는 모두 극한상황을 이겨낸 영웅들의 이야기만 담아냈어요. 서구 인본주의 사상의 전형이죠. 똑똑하고 강인한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인데, 서구 역사가 지배와 정복으로 점철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청계산, 북한산을 정복하려 오르나요? 백두산을 최초로 정복한 역사가 있나요? 우리에게 자연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대상일 뿐입니다. 디스커버리는 자연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는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라는 정체성을 담고 있어요. 출발부터 콘셉트가 완전히 달랐죠. 결과가 어땠나요? 지금은 모든 아웃도어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을 앞에 내세웁니다.”

김 회장은 남다른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전략의 비결로 한국인 특유의 ‘하이브리드’ 기질을 꼽았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감을 섞어 완전히 새로운 코드로 재탄생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MLB와 디스커버리의 성공은 서구적 가치에 동양적 사고와 철학을 입힌 것이 주효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요즘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한류 붐이 일고 있죠. K팝을 보세요. 글로벌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음악과 퍼포먼스 자체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건 아닙니다. 서구적 음악과 춤에 동양의 가치를 더해 호감도를 높였다고 봐요. 자극적인 소재를 앞세우는 서양음악과는 확연히 다르죠.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도 계층 간 갈등과 미국 개척사라는 서구적 주제를 ‘가족’이라는 동양적 코드로 풀어낸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진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성공 사례죠. MLB와 디스커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하이브리드죠. 한국 사람들이 원래 섞는 걸 좋아합니다. 술도 섞고 찌개도 섞어찌개와 부대찌개, 비빔밥에 심지어 김치버거까지. 섞는 거에 천재적인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그리고 이런 믹스 과정을 통해 동서양이 두루 공감할 수 있는 새로움을 만들어냅니다. IP로 패션을 만든다? 서구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롱패딩이 불러온 디지털 혁명


▎MLB는 현재 중국 시장에서 매우 핫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F&F의 독창적 전략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 잠재돼 있던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 2017년 홍콩 몽콕에 1호점을 내며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 MLB는 현재 홍콩에 7호점, 마카오 3호점, 대만 9호점을 운영 중이다. 특히 중국 본토 시장의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2019년 들어 온라인 채널 티몰과 2개 오프라인 매장으로 출발한 중국 시장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매장 수를 80여 곳 늘렸고, 현재 300여 개 매장이 들어섰다. 김 회장은 올해 말까지 중국 내 MLB 매장을 400여 개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내에서는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아요. 야오밍이라는 스타플레이어 덕에 미국프로농구(NBA)가 유명한 것과는 다르죠.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MLB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결국 동서양의 가치를 융합한 우리만의 코드가 아시아 시장에 먹힌 거라 봐요. 스포츠와 라이프스타일의 융합, 활동성과 패셔너블함의 융합이 통한 거죠. MLB 역시 넓은 의미의 한류라고 봅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MLB의 면세 채널과 중국법인의 올해 2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162%, 599% 증가한 936억원, 605억원을 기록했다고 분석한다. 올 2분기에만 중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매출만 약 1500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계절적 성수기에 접어드는 4분기 예상 실적을 반영하면 중국법인의 매출액은 지난해 745억원에서 올해 3050억원, 2022년에는 5000억원을 상회할 거란 전망이다.

김 회장은 F&F의 글로벌 진출을 도운 또 다른 공신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꼽았다. 디지털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감한 건 뜻하지 않은 계기로 찾아왔다. 2017년 겨울에 터진 ‘롱패딩 사건’이다. 미니스커트나 크롭티, 레깅스처럼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패션업계라지만, 롱패딩의 유행은 업계에서도 사건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파급을 몰고 왔다.

“패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롱패딩 유행을 빗대 ‘크레이지 롱패딩’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7년 한 해에만 디스커버리 롱패딩이 40만 장 팔렸어요. 한 가지 스타일로 20만 장을 넘어섰고, 매출액만 1000억원에 달했는데, 롱패딩이라는 전에 없던 시장이 새로 탄생한 거였죠. 한국 패션 리테일 역사상 길이 남을 숫자가 탄생한 겁니다. 그런데 롱패딩이 왜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요? 저도 처음엔 이유를 몰랐어요.”

김 회장은 2017년 말부터 불기 시작한 ‘미친 롱패딩’ 열풍의 기원을 곧 디지털에서 찾았다. 당시 포털 실검 순위 1위에 하루 종일 ‘디스커버리 롱패딩’이 떠 있는 걸 발견하면서다. 순식간에 이슈를 빨아들이는 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커뮤니티의 등장은 기존 마케팅의 공식을 완전히 뒤엎은 혁명과도 같았다.

“디지털 생태계의 위력에 놀랐을 수밖에요. 운동선수들의 벤치파카에서 출발한 롱패딩이 디지털 환경에서 국민적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한 거예요. 우리가 개척해 낸 아이템을 지금은 세계 유수의 패션 브랜드들이 따라하고 있어요. 유례가 없는 일이죠.”

롱패딩의 빅히트를 계기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눈뜬 김 회장은 글로벌 시대를 리드하기 위한 핵심 플랫폼이 디지털임을 직감했다. 당장 사내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글로벌 CRM(고객관리) 플랫폼인 세일즈포스 솔루션을 도입했고, 마이크로소프트365 시스템을 들여와 사내 업무환경 자체를 디지털로 전환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트렌드와 소비 패턴의 변화, 구매 프로세스까지 데이터화했다. 부서 간 소통도 디지털의 힘으로 강화됐다. 현재 F&F는 말단 직원부터 대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사결정 과정이 공유되고, 브랜드별 매출과 재고 현황 등이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오프라인 광고는 소비자 반응을 측정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감과 경험에 맡겼죠. 반면 디지털은 소비자의 반응을 기술적으로 분석해냅니다. 광고 효율이 좋아지고 판매 흐름과 예상이 훨씬 정확해지죠. 상품 개발과 마케팅에도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더욱 명확한 타깃팅이 가능합니다. 데이터의 흐름 덕분이죠.”

테일러메이드 인수, 글로벌 확장 위한 신의 한 수

MLB로 본격화된 글로벌 진출도 디지털의 힘을 톡톡히 보고 있다. 전 세계에서 들어온 주문을 받아 글로벌 기지에서 생산하고, 이를 다시 세계시장에 뿌리는 일련의 과정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상하이에서 베트남에 전화해 “물건 언제 들어오느냐”고 묻던 모습은 완전히 옛날 풍경이 됐다.

“K팝, K드라마에 비해 K패션이 힘을 못 쓴 건 재고관리와 공급망 때문이었어요. 패션산업은 원활한 온라인 생태계를 갖추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글로벌 브랜드의 오프라인 상품과 물류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했던 거죠. 이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F&F는 이미 K패션을 위한 디지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고, 실제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패션 기업으로 비상하겠다는 김 회장의 비전은 테일러메이드 인수로 정점을 찍었다. F&F는 지난 8월 초 미국의 세계적인 골프용품업체 테일러메이드 인수 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3대 골프 브랜드로 꼽히는 테일러메이드 인수에 F&F는 유일한 전략투자자(SI)로 참여했다. 출자금 약 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김 회장은 향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센트로이드PE와 함께 총액 2조원 규모의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글로벌 브랜드 인수라는 과감한 베팅에 대해 김 회장은 “회사의 캐시플로 역량이 좋아 큰 부담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국내 패션업계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F&F의 디지털화도 골프산업에 베팅한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골프산업은 사양산업이었다”고 말했다. 죽어라 연습해도 좋은 스코어 내기가 어렵고, 비싼 값 주고 프로에게 레슨을 받아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은퇴자용 스포츠였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스크린골프 붐에서 시작된 디지털 바람은 골프를 국민 스포츠로 변모시키고 있다.

“스크린골프 연습장에 가면 자기 스윙 폼과 헤드스피드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유튜브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프로의 레슨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SNS 플렉스 문화까지 더해져 자신의 골프 라이프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바람을 가장 강하게 맞은 산업이 바로 골프입니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테일러메이드의 상품성에 F&F가 가진 강점을 가미하면 전혀 다른 차원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 말미 김 회장은 다시 패션이라는 업(業)의 본질에 방점을 찍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수단, 사회에 영향을 주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바로 패션”이라는 정의다.

“인간은 옷을 입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제겐 인간이 먼저가 아니라 패션이 먼저죠. 서양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발전했다고 말하지만, 동양은 맹모삼천지교처럼 환경에 큰 영향을 받아요. 패션은 인간이 세상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섞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입니다. 동서양 어디에나 존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양쪽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공존할 수 있고 또 비슷한 가치를 동시에 녹여낼 수도 있습니다. 패션이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멋진 유산이죠.”

[박스기사] 테일러메이드 인수로 글로벌 날개 단 F&F


올 8월 3일 테일러메이드 인수 딜을 마친 F&F는 센트로이드PE와 함께 본격적으로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F&F는 테일러메이드의 국내 의류 판권 확보가 아닌 미국 ‘본사 경영권 인수’임을 명확히 했다. 국내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단위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계산이다.

테일러메이드는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북미, 유럽, 일본, 오세아니아 등 글로벌 매출이 전체 매출 비중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카테고리별로는 골프클럽 및 볼이 90%, 기타 용품 8%, 어패럴이 2% 수준이다. F&F 인수로 어패럴 사업 확장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F&F 역시 테일러메이드 본사 인수 후 패션사업 노하우를 더해 테일러메이드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는 복안을 밝혔다. 이를 통해 지배회사 지위를 굳건히 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110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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